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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신나게 노는데, 공허해 보인다_131027, 일

친구를 잘 두어서 한국시리즈 야구 경기를 관람할 기회를 얻었다.

집 앞의 통닭집에서 한 마리 튀기고 김밥, 맥주, 커피와 홍차까지 알뜰하게 챙겨서

잠실구장으로 달려갔다.


제법 시간 여유를 두고 갔는데도 잠실운동장 주변은 주차하려는 차들로 가득하다.

야구, 농구, 체육대회까지 겹쳐서 온통 차들이다.

운동장 주변은 통닭을 사는 사람들과 들고 온 사람들로 나뉜다.

참 재미있는 풍경이다.

식구들을 먼저 내려주고 주차장을 찾으려 했는데, 다행이 탄천 강변도로에 일렬주차가 가능했다.


기대했던 시구는 여자가 하기는 했는데, 안 보기를 잘했다.

자리잡고 앉았는데 햇볕이 장난이 아니다. 무료로 나눠 준 응원용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모자와 선글라스까지 꼈는데도 뜨겁다.

추울 줄 알고 담요까지 챙겨왔는데.



우주신과 무일은 경기에는 관심없고 시원한 운동장을 바라보며

싸 가지고 간 맥주와 통닭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왔다는 그리미만 응원도구로 신나게 분위기를 즐긴다.

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삼성을 응원한다고 한다.

친구의 부탁도 있고, 5차전 표를 구해서 경기를 볼 수 있기를 목매고 있는 또다른 친구를 위해서.


응원석 바로 옆 구역이라 시끄러워서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다가 이런 어수선한 곳에 왔더니 머리 속이 혼란하다.

미리 챙겨 간 두 개의 캔맥주는 날이 뜨거우니 술술 잘 넘어간다.

캔맥주를 두 개만 사간 이유는 현장에서 파는 생맥주를 사먹기 위해서였다.


캔맥주를 다 먹고 현장 생맥주도 두 잔을 더 먹고 났더니

통닭과 맥주와 김밥을 거의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볼까. 

방망이를 두들기고 소리를 지르고 일어섰다 앉았다 활개를 치며 놀았다.

9회가 끝나가자 술기운이 모두 달아난다.




경기는 삼성이 끌고 가다가 두산이 따라붙는 형세로 제법 박진감이 있다.

활발한 타격전이 이뤄져야 더 재미있을텐데, 아쉽게도 투수들이 경기를 지배한다.

치어리더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참 열심히 논다.

응원석에서는 체게바라가 쉼없이 춤을 추며 논다.

운동장 곳곳에는 젊은 청춘들이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며 가을의 운동장을 즐긴다.


이승엽이 안타 치는 것도 보고,

홍성흔의 홈런, 오승환의 깔끔한 마무리 투구 모습도 직접 보았다.

그렇게 쉼없이 경기는 흘러갔고,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오심 때문에 경기가 중단되었을 때 잠깐 야유만 했을 뿐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인정한다.

경기가 끝나자 조용하게 운동장을 빠져 나간다.

경기장에서의 흥은 다 어디로 가고 김빠진 맥주처럼 가라앉아서 거대한 아슬팔트 평면 위로 퍼져간다.

신나게 놀았는데, 공허해 보인다.


불법으로 얼룩진 정치에도 잠깐 야유할 뿐 그저 인정하고 살아간다.

그러니 더욱 공허하다.


그리미의 총평.

정말 신나게 놀고 맛있게 먹었는데, 표를 사서 와야 한다면 오지 않겠다.

야간 경기가 아니라서 맥주를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리미와 우주신은 꿈나라를 헤맨다.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