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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땅콩 이삭줍기_130923, 화

긴 추석 휴가를 마치고 농원으로 출근.

기온은 시원한데도 차창으로 내리쬐는 햇살은 너무 강하다. 

벼들이 잘 영글겠다. 


논에서 외출했다 돌아오시는 정농과 수천을 만나서

논을 한바퀴 돌아보는데,

피와 독새풀이 예쁘게 단풍이 들고 있다.

저들을 전부 제거해 줘야 하는게 이번주의 일이다.


명법사의 노스님과 보살님이 차 한잔과 수박을 대접해 주신다.

지난 농사철 내내 땡볕에서 일하는 부자가 안쓰러우셨는지

아침 저녁으로 음료수 새참을 내주셔서 고맙기 그지없다.

밤꿀 한 병 가져다 드렸지만 보답이 되겠나 싶다.


오늘 오후 작업은 땅콩 거두기다.

지난 10년 동안의 농사에서 제일 신났던 일이 땅콩거두기다.

기대를 하고 비둘기와 까치가 손대지 못하도록 쳐둔 그물을 거두었다.


이런, 이런, 이런,,,,


그물을 좀 덜 팽팽하게 쳐 두었더니

그물 사이를 뚫고 땅콩밭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땅콩 한 그루를 걷어 올려도 따라 나오는 땅콩은 없고,

새들이 먹고 남겨 둔 껍질들만 가득하다.


새 한 개 먹고 나도 한 개 먹으려 했지만

올해는 새들이 다 먹고 남긴 것을

우리가 이삭줍기 하는 격이 되어 버렸다.

세 사람이 4시간 동안을 캤지만

한 바구니도 채우지를 못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인삼주 한 잔.

잘 되는 농사도 있으면 실패한 농사도 있지, 뭐.

마음을 다독이며 얼른 잠을 자 버린다.


내년에는 더 팽팽하게 그물을 쳐야겠다.


지난 주말 인왕산 아래 작은 계곡을 산책한 것이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