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막 학교에 들어가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언권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자유로운 외국 땅으로 가고 싶었다. 상식과 합리성이 통하는 세상이라는 캐나다나 뉴질랜드로 가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과감하게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던 주된 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영어 공부를 했는데도 여전히 초등학교 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영어 실력으로 외국에서 적응하는 것이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견뎌낼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단, 몇 년 만이라도 온 가족이 함께.
“한때 꿈꾸어보기도 했던 외국 생활, 막연한 낭만을 동경했었지만 생각했던 낭만은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아프리카에 와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 살던 곳에서는 보지 못하던 모든 낯선 것에 툭하면 눈물 바람이었다.(중략) 의사소통이야 내 하고 싶은 말 하고 산다지만 언어의 맛과 멋을 거세당하고 사는 그 목마름, 관념과 사고의 확장은 여지없이 저지당하고 사는 듯한 그 무기력함. 황송할 정도로 넓고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고 살아가지만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고 옹색해져서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오랜 역사와 가정교육, 개인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어떤 생각을 신념으로 만들어 나간다. 좋은 생각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파시즘이나 인종주의, 사대주의, 지역주의 같은 잘못된 신념들조차 그것을 받아들인 개인들의 가슴 속에서는 이성과 진리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친구가 던진 메시지의 핵심은 딱 두 가지였다. 어려서 수석을 도맡으며 학교를 졸업했으니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과, 종북주의 세력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데 앞장서겠다는 신념이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고, 감옥 생활과 해병대 근무를 하다가 한의사가 된 이 친구는,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보수가 있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의 정치철학에는 희망의 메시지는 없고, 그가 거리를 두려고 했던 극우들과 똑같은 언어, 배타성, 증오심이 자리 잡고 있으니 도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의해 건설된 나라인 남아공은 그 후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네덜란드계와 영국계 백인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백인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통해 유색인종을 차별하면서 그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중략) 또한 냉전체제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는 보이지 않게 서방 세계의 옹호를 받고 있었다.”
사람의 역사에서 한 번도 전쟁이 멈춘 적은 없었지만 아프리카는 알렉산더, 로마, 유럽, 미국을 거치면서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착취와 수탈의 현장이었다. 아주 조금 남아있는 그들의 문화를 보면 그들도 충분히 찬란한 문명을 수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데, 좀 더 빠르고 강한 문명에 의해 말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도 마찬가지다. 도시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땅과 자연과 느림을 기반으로 하는 시골문명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다. 전쟁은 없지만 전쟁 보다 더욱 강한 돈과 깨끗함, 편리함이라는 생활 양식이 모든 나라를 도시화하고 있다. 이 변화의 끝이 무엇일지 정말 궁금하다. ‘침묵의 봄’도 ‘사막’도 ‘무력화된 인간’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 ‘해피엔딩’일까?
“은데벨레 부족은 남아공에 사는 흑인 부족 중 가장 신비스런 부족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다름 아닌 그들의 예술적 감각 때문이다. 그들의 전통 가옥은 흰 바탕에 원색의 기하학적 무늬가 들어가는데, 신기하게도 한 채도 같은 문양을 가진 집이 없다고 한다. 남아공의 피카소 부족이라고도 불리는 은데벨레족의 의상은 그 색깔이 화려함의 극치를 보인다. 특히 여성의 전통 의상의 경우 구슬로 일일이 꿰어 만든 섬세한 치마나 허리 장식 또한 위에 걸치는 화려한 원색의 천은 그들의 검은 피부색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백인들의 나라는 왜 이렇게 극진하게 자연을 보호하는 것일까? 사람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편견과 차별과는 달리 자연에 대해서는 정말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다. 사람 보다 자연이 더 크고 위대한 것은 맞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자연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게 커진 다음에야 같은 종으로서의 인간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랑이 생기는 것일까.
“남아공은 생태계 보전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아주 철저하다. 조개 잡는 데도 허가증이 필요하고, 낚시하는데도 허가증이 필요하고, 국립공원에서 야생화 한 송이 마음대로 꺾어 나올 수 없다. 심지어 들판에 흐드러지는 꽃 한 송이, 고사리 하나를 꺾어도 불법인 나라이다.”
돈을 매개로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은 가능할까? 화폐 가치가 항상 변하고 공황과 금융위기,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도 오기는 하지만 돈을 매개로 하는 사회는 차근차근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돌잡이를 하는 아이에게 돈을 잡으면 좋겠다는 부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생애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아이에게 부모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둘러서서 돈, 돈, 돈을 외치는 것을 보면 좀 무섭다. 건강과 지식을 갖추면 돈이 따라오는 것인데, 돈을 추구하기 위해 건강과 지식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돈에 대한 광풍이 가라앉기 위해서는 정신이 바로 서야 한다. 정신세계가 똑바로 서있지 못하는 사회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돈과 사람을 같은 저울에 달지 말고, 사람을 중심에 두고 돈을 수단으로 하여 사람됨을 쌓아가야 행복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집집마다 고유의 계량기 번호를 가지고 있고 전기를 사러 가면(마트로) 금액만큼의 전기량과 16자리의 숫자가 찍힌 영수증을 준다. 그 영수증에 찍힌 숫자가 핀코드인데, 집 계량기에 붙은 계기판에 입력을 하면 금액만큼의 전기가 충전되는 것이다. (중략) 왜 이렇게 불편한 시스템을 도입했을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처럼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고 책임의 한계가 분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중략) 돈이 있으면 쓸 만큼 사서 쓰고 돈이 없으면 못쓴다는 너무 분명한 자본의 논리와 더불어 사전에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는 의미가 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첫 번째가 가족이 화목하게 함께 하는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주말이나 방학이면 언제나 함께 하는데도 일하는 동안에 떨어져 있으면 외롭고 우울해진다. 두 번째로 좋은 일을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기는 하겠지만 특별히 그 사람들 틈에 끼어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시골에서 부모님과 농사를 지으면서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함께 하는 친구들이 서로 격려하며 농사를 짓는다면 훨씬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 번째로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시간과 돈과 노동에 쫓기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남아공의 가장 대중적인 문화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Braai)는 숯이나 장작을 피워 바비큐처럼 고기를 구워먹는 것을 말한다. (중략) 브라이 파티를 할 때 남아공 사람들의 특성이 드러나는 한 면을 볼 수 있다. 손님을 초대하고 그때부터 숯을 피우고 장작불을 떼고, 그 불 옆에서 와인이나 맥주 한 잔씩을 마시며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은 다음에야 비로소 고기 구경을 하게 되다. (중략) 처음에는 답답한 감이 있었지만, 차츰 익숙해지면서 브라이 파티를 하면서 더욱 친해질 수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느림이 주는 여유가 아닌가 싶다.”
2층집을 하나 짓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2층에는 눈이 시원하도록 큰 창을 낸 침실과 거실과 서재를 마련해서 소박하지만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아래층은 복합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일단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카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차와 커피, 효소음료를 마실 수 있고 간단한 시골밥상으로 식사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그 카페의 한쪽 공간에는 아주아주 작은 무대를 만들어서 연주와 노래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또 하나의 공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그 달에 어울리는 책들을 가져다 꽂아놓고 읽게 하는 작은 서가도 마련해 두고 싶다. 전통매듭과 자수, 그림그리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 싶다. 1, 2층 모두 합해서 50평 남짓한 공간에 이 모든 장소들이 배치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지금 이곳이 멋진 경치도 없고 독특함도 없는 곳이어서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런 꿈을 꾸어본다.
“남아공에서 자동차 여행길에 만나는 가장 큰 즐거움 중에 하나는 독특한 분위기의 팜스톨(farm stall)이다. 팜스톨은 지방 특산물을 파는 시골 가게를 말하는데, 주인의 성향에 따라 팜스톨의 멋진 분위기가 특색있게 꾸며져 있다. (중략) 그 고장의 특산물인 과일 말린 것이 풍성했고, 크고 작은 병에는 여러 가지의 잼이 소박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작은 가게 안에는 크지 않은 탁자가 몇 개 놓여 있었고, 가게 밖에 내놓은 식탁에는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남아공에 대한 3년간의 삶에 대해 기록해 놓은 이 책을 통해서 얻은 것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남아공은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잠재력을 갖춘 나라이다. 그렇지만 야간에는 집 안에서만 지내야 할 만큼 치안은 불안한 상태이다. 좋은 정책들이 베풀어지면서 증오와 폭력은 점점 줄어들고 희망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나라다. 언제나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고 한 번쯤 여행해 볼 만한 가치가 있으나 살고 싶지는 않은 그런 나라다.
“시내 상점들도 대부분 6시 전후에서 폐점을 하지만 밤새도록 안팎으로 환하게 불을 밝혀놓는다. 비싼 전기세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역시 치안상의 문제이다.”
“남아공의 경제 구조는 카푸치노 커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흑인 인구가 빈곤층으로 자리 잡고 있고 적은 수의 백인이 대부분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중략) 아름다운 주택가 길을 따라 운동을 하는 백인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흑인들의 모습에서 작은 아파르트헤이트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결국 정치가 중요하다.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하는데, 갈등을 잘 해결해 나가면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지혜가 생기지를 않는다. 평화로운 정치는 정말 불가능한 꿈일까? 인류 역사에서 아테네에서 아주 잠깐 동안 실현되었다. 그것도 노예와 외국인과 여자는 차별받는 상태에서. 문명이 수천 년을 흘러왔는데도 쉽지 않은 일이 정치의 평화다. 우리는 해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흑인 정부가 수립되고 나면 수반되리라고 우려했던 일련의 사건들, 백인 쿠데타나 흑인 종족간의 분쟁 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화해정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중략) 자신들과 같은 색을 가진 대통령이 당선되기만 하면 세상이 바뀌기라도 할 것 같은 기대를 했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중략) 그들에게 어쩌면 빵 한 조각보다 평등과 자유를 얻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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