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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남자가 아름다워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_120910, 월

이 소설은 영화로 먼저 알려졌다.

속으로는 꼭 보고 싶은 영화였지만, 바보같이,

선비인 척 하느라 이런 야한 영화는 차마 보지 못했다.


그 시기가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80년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므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의 일이었다.


그 후로도 다음이나 파란을 통해 영화를 다운받을 때

항상 이 영화가 눈에 띄었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치고는 했다.

얼마나 촌스러운 야함이겠는가?


그런데, 세계문학전집을 마구잡이로 읽고 있는 가운데,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라는 이름의 소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소설은 야한 소설이 아니었던가?

왜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가 있지?


그래서 핑계김에 세계문학을 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30년을 묵혀 온 궁금증도 해소할 겸 책을 들었다.


30대에 막 접어든 코니는 대학교육을 받아서

제법 책도 많이 읽고 토론도 많이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유로운 처녀였는데,

귀족인 클리퍼드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된다.

전쟁으로 불구가 되어 돌아온 남편의 수발을 위해서였다.


책의 전반부는 아주 평범한 한 가정의 삶으로 시작된다.

그렇지만 매우 평범하면서도 신랄한 비판이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악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상당 부분 돈 문제 때문이다.

모든 일에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돈을 버는 과정이 중요하고,

행동의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돈을 쓰는 방법도 중요하다.

돈을 벌고 쓰는 과정과 결과가 반인륜적 반도덕적이 되면

소중한 돈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비난과 극복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돈은 마치 정치와 같다.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양심과 상식을 갖춘 시민들이 정치를

천하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정치 혐오는 독재자들이 시민들에게 정치 혐오감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정치나 정치가들을 혐오하는 것이 현명한 시민의 도리인 것처럼 여기도록.

그러나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이며,

독재자들에게서 받은 바보 교육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 불과하다.


어쨋든 돈과 정치에 대한 혐오는

과정과 결과를 모두 무시하는 독재자나 욕심쟁이들에게

돈과 정치의 힘이 자꾸 집중되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결과를 초래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라면

멋있게 벌어서 아름답게 돈을 쓰는 방법과

당당하게 세상에 기여하는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현명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돈도 많이 벌고,

정치에도 열심히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로렌스도 초기 산업사회의 문제점들을 혐오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킨 러시아도 크게 기대되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더러운 것을 피하는 심정으로

은둔하는 것을 귀한 가치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코니의 사랑으로 선택받는 주인공 광부의 아들 지식인 멜러즈를 

도시를 피해 숲에서 사는 사람으로 은둔시킨다.


오늘날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계급만 존재하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돈에 사로잡힌 돈돌이 계급'이었다.

돈돌이 사내와 돈돌이 계집.


  차이가 있다면 오직,

  돈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와

  돈을 얼마나 많이 바라느냐일 뿐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피땀 흘려 노력한 노동자나 농민들에게

부족하지만 점점 많은 시간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몰라서

술을 먹거나 TV를 보면서 그냥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한 노동자의 가족들의 인생도 달라지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교육의 중요성이 있다.

노예를 키우는 교육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

점수와 등수 올리기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사람과 노동을 알고 역사와 정의를 알며 문화와 예술을 아는

폭넓은 교육이 필요하다.


귀족들이 귀족 교육을 한다면,

노동자들도 노동자 교육을 해야 한다.

문제는 자기 존재를 발전시키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노동자의 모습을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교육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농민 계급 스스로에게 있다.

정부를 변화시키든 스스로의 교육 방법을 바꾸든

새롭고 희망에 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들(노동자들)의 배를 채워주는 것은 바로 산업이라고.

비록 그들의 호주머니를 아주 두둑하게

채워주지는 못하지만 말이야.


개개인은 거의 중요하지가 않아.

문제는 우리가 어느 역할을 하도록 길러지고

길들여지는가 하는 점이야.


귀족 계급을 만드는 것은 개인이 아냐.

그건 바로 귀족 계급 전체의 역할과 기능인거야.

그리고 평민을 평민의 존재로 만드는 것 역시 

하층 대중 전체의 역할과 기능인 것이지.


제법 많은 독서와 토론으로 교양을 쌓은 사냥터지기 멜러즈는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공부를 해서 사무도 보고

인도에 가서 중위까지 올라가는 영광을 누렸으나

궁합이 맞지 않아 실패한 결혼 때문에 은둔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이 너무 비참하게 살고 있고,

귀족이나 자본가들은 안락함에 젖어 인간성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비참한 노동자들이 그런 삶을 멈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고

그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오직 채털리 부인에게만 그의 속마음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깨어 있지만, 외롭고 가난하며 은둔해 있는 가여운 존재이다.


그렇지만 사랑을 아는 그를 코니는 사랑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든

돈만 벌기 위해서 사는 삶을 그만두자.

우리 자신을 위해서 눈곱만큼 벌고

사장들에게 거액을 벌어다 바치면서

그렇게 살도록 강요받고 있다.


싱싱하게 아름다워야 하는 당신네들은 

지금 추하고 반은 죽은 상태일 뿐이다.


여자들이 여자다울 수 없는 것은

바로 남자들이 남자답기 못하기 때문인 것이오.


모든 남자들은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일만의 생각일까?


남자들이란 모두 똑같답니다.

그저 아기들과 같아서,

추어올리고 구슬리면서,

자기네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끔만 하면 되는 거지요.


코니는 남편인 불구의 클리퍼드처럼 

귀족들이 평민들에게 예의 없이 군림하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코니는 클리퍼드 같은 귀족들이 동일 계급의 사람들에게만 예의를 차리고,

정신적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허위라고 생각한다.


이런 그녀의 생각에 상당 부분 동의할 수 있지만,

그녀가 멜러즈와의 사랑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은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으니 무일이 불행한 것일까?

아니면 로렌스의 사랑에 대한 생각이 과장인 것일까?


벌거벗은 채로 비를 맞으며 춤을 추다가 사랑을 나누거나

가장 아름다움 꽃들을 꺾어다가 사랑하는 나신 위에 장식하거나.


(오랜 동안 불구의 귀족을 수발들면서 사랑을 억눌러 왔던 그녀는)

자기 본성의 진정한 근본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아무 부끄러움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관능적 자아,

부끄럼 없이 벌거벗은 자아가 되어 있었다.

그랬다. 바로 이거였다. 이게 바로 삶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궁극적인 벌거벗음을

한 남자, 즉 다른 한 존재와 함께 나눈 것이다.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갖추지 못한 현대의 남자들에 대해

로렌스는 코니의 생각을 빌려 질타한다.

여자들이 이런 남자들을 정말로 알고 있는지

은근히 두려운 생각이 들 정도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너무나 겉치레뿐이고

굴욕감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정신의 지고한 즐거움이라고!

그 자신마저도 정신에 있어서,

그저 엉망진창에다 겉치레 뿐인 존재가 되고 마는데!


많은 부분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발견해서 기뻤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주인공은,

시골의 작은 농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고집스럽게 자신과 사회를 평가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신뢰받기도 한다.


그러면 되는 것일까?


(멜러즈가 채털리 부인에게)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에겐 여자 같은 면이 너무 많다고들 합디다......


하지만 그렇지 않소.

돈을 벌거나 출세하는 것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오.


사실 나는 군대에서 쉽게 출세할 수도 있었소.

하지만 나는 군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소.


군대를 죽은 곳으로 만든 것은

바로 어리석고 아귀 같은 고관급들이었소.

그들이 군대를 완전히 바보같이 죽은 곳으로

만들어버린 거요.


난 병사들을 좋아했고,

병사들도 나를 좋아했소.

하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작자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대장 행세를 하면서 오만하고 뻔뻔스럽게 구는 작태를

난 결딜 수가 없었소.


(채털리 부인이 멜러즈에게)


당신에게는 미래를 일궈낼 힘이 있어요.

당신이 가진 용기 있는 부드러운 애정이에요.



사람이 흥미를 잃는 요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어떤 황홀한 일에서도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여행은 좋은 사람과 같이 가거나 만나거나 즐겨야 하고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어야 하며

먼 곳에서 쓸데없는 소식이 없어야 즐겁다.


정말로 아주 멋진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프랑스, 스위스, 티롤 지방 또는 이탈리아 등

그 어디서도 진정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차에 실려 그 모든 곳을 지나쳤을 따름이었다.


멜러즈의 마지막 편지에서는 매우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런 표현 하나를 보더라도

로렌스가 대단한 작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은데,

모두 다 당신을 곁에 두고 만져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오.

팔로 당신을 껴안고 잘 수만 있다면,

잉크는 이렇게 글자로 줄줄이 박혀 흐르지 않고

잉크병에 그대로 남아 있었을 거요.


1928년에 3번의 재창작을 거쳐 완성된 이 소설은

당시 출판사들이 노골적인 성 묘사와 비속어의 사용을 담고 있는 부분을

삭제한다면 출판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로렌스는 이를 거절하고 자비로 1,200부를 찍어 판매하는데,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만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판매금지 된다.


그러자 무수한 해적판들이 쏟아져 나와 

비싼 값으로 은밀하게 거래되었다고 한다.

로렌스가 죽고 30년이 지난 1959년에 미국의 그로브 사에서 처음으로

무삭제로 정식 출판되었는데, 미국 정부가 이를 탄압하자

소송을 제기하여 승리함으로써 완전히 합법 출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코니와 멜러즈의 사랑은 몸과 마음을 다하는 사랑이었으며,

돈과 기계와 차가운 이성이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산업 사회 문명 속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을 회복하고자 하는 로렌스의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동의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


클리퍼드는 육체적 불구여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에 매몰된 인간이기에 사랑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돈과 지위와 이성의 힘으로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기를 원하는 존재가

자본주의 사회의 귀족이자 상층 부르조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 보면,

남편 또는 아내,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오직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들은 현대판 클리퍼드로서 

진정한 사랑을 모르고 정신적 사랑이나 명예와 부와 계급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데 그 비극이 있다.


세상에 사랑이 없어지고 아름다운 사람이 없어지는 이유가

정기에 충만한 멋진 남자가 사라지고,

그런 멋진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어야 할 아름다운 여자들이 사라져 버려

세상이 칙칙하게 변했다고 하는 로렌스의 주장에는 공감한다.


멋진 남자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이 책은 명작으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 채털리 부인의 연인(1928년), D.H. 로렌스 /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