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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지나치지 않게 유연하게_121106, 화

시골에 책상이 없다.


일하고 놀고 공부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인데, 부엌의 식탁과 앉은뱅이 밥상과 작은 방의 컴퓨터 책상을 믿고, 책상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제 하나 만들어야겠다.

그리미가 빌려다 준 책이다. 터키 여행서에 빠져 10월 한 달을 헤매이다가

간신히 그렇지만 유쾌하게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페이지도 넘기지 않았는데, 할 일이 생겨 버렸다.


"큰 돈은 아니지만 기부도 하며 살았고(중략) 다행히 환경보호에 대한 신념과 맞아떨어져 자동차 없이 산 덕분에 큰 돈이 절약됐다. 옷, 가구 등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건 만들어 쓰면서도 구차스럽단 생각은커녕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동안은 무언가를 만들어서 쓸 필요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공구가 없었고 시간과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10여년 전에 반쪽이 공방을 한 달여 다닌 적이 있는데, 작은 어항을 머리에 얹어놓는 서랍장 하나를 만드는데도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되어버렸다. 효율이 너무 없었다. 참, 그 때 무일에게 목공 설계와 공구 사용법을 가르쳐 주던 그 예쁜 공방의 선생님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톱밥 먼지 날리고 공구 소리 요란하던 작은 공간에서 그녀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자연과 환경, 인간과 사회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참 피곤하게 산다. 아니 그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유연한 삶을 추구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다른 무엇을 더럽혀야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줘야 하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가치관에 비추어 본다면 유연한 자신들의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존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무일이지만 이런 사람들과 똑같이 살려고는 하지 않는다. 취지는 좋지만 너무 피곤하고 효율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 가족들에게 가장 부러웠던 일이 있다. 멋진 차를 자랑하는 부동산 중개인과의 경쟁에서 부부의 자전거가 승리를 거두고 뿌듯해 하는 장면이었다. 두 아이들 모두에게 자전거를 가르쳤고, 그리미에게도 10년이 넘도록 자전거를 가르쳐 왔다. 이런 노력을 하고도 자전거를 이용한 가족여행을 거의 할 수 없었다. 자전거 타기를 두려워하여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그리미가 있어서다. 가족 4명이 자전거를 끌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이들 가족의 모습을 우리 가족들과 함께 그대로 재현해 보고 싶다.

책에서 자연스럽게 써놓은 하나 하나의 이야기를 전부 따로 따로 놓고 검토해 보아야 할 정도로 이 책에는 이슈가 많다. 가정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의 전도이며 커다란 토론거리가 되는 것이다.


"독일 연안인 북해에서 잡은 새우는 지구를 빙 돌아 인건비가 싼 아프리카에서 껍질을 까서 다시 독일로 돌아온다. 운송에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도 그게 독일에서 까는 것보다 비용이 더 싼 것이다."


농사를 짓고 있는 무일에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들이 작업하는 북해의 새우를 유럽 사람들이 먹어주지 않는다고 하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나마 돈을 벌 수 있던 희망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아무리 작은 임금이라도 꾸준하게 받을 수 있어야 그들의 삶이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임금을 받게 되면, 저임금에 대한 문제 의식도 생겨서 임금이 오르는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의 임금이 점점 높아지면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경제 자극의 필요성은 매우 큰 것이다. 가장 최선은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옳다. 그렇지만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하고 실천했으면 한다.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무일은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농사를 짓고, 벌을 키워 꿀을 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영화를 보거나 대금과 오카리나를 연습하고,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자전거를 타고 골프를 치는 등 많은 일을 한다. 다 좋아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도 푹 빠져서 전문가 수준으로 잘 하는 일은 없다. 게다가 그런 활동으로 돈도 벌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 공부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려 본 적도 없고, 또 부귀영화가 없다고 해서 불행하게 느낀 적도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학력에 대한 강박관념이 적다. (중략) 우리 아이들이 그간 열중해서 노는 와중에 자신이 원하는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계발해 왔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내 아이들이 그렇게 중대한 과업을, 그 나이에, 자기 힘으로 이룩했다는 자신감을 안고 세상으로 걸어 나가 어렸을 때 자긍심 지수를 학교 성적에 두지 않았듯이, 커서도 행복 지수를 부귀나 영화에 두지 않는 현명하고도 소박한 인생을 살기를 기원한다."  
 

글쓴이의 두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어 성장해 가고 있다. 참 부러운 일이다. 난독증까지 있는 아이들이 거둔 성공이라 더욱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발견하는 문제와 학교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서로 대립적이지 않다고 본다. 학교는 다양한 지식을 가르치고 예술과 운동을 하게 하는 등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려고 가족과 함께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학교 공부가 자신의 꿈과 적성을 발견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 대학입시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아주 상세하고도 구체적으로 물어봐 준다. 부모로서 대학의 그런 요구가 참 고맙다.


무일에게도 대학생활은 정말 중요한 시기였으나 너무 큰 희생을 강요당했다. 생명까지 잃은 친구들이 있었으니 홀로 억울하다고 주장할 일은 아니지만,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자들의 지배를 받던 시절은 지금도 끔찍하다. 그래도 우리는 일제의 폭압과 전쟁의 광기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다행이라 할 것이다. 저자가 대학생활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일로서는 지금도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대학시절이다. 공부하며 일하고, 일하며 공부하고 싶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준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지금도 한없이 부럽고,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선진국들이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며 수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그런 풍요를 누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참으로 행복하고 알찬 학창시절을 보냈다. 공부도 재미있고, 인생도 즐거워서 되도록이면 오래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실천했다. 그런 결정은 내가 경제적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략) 시끄러운 깡통공장에서 .... 공립노인병원에서 .... 술집에서 .....  등 많은 일을 겪었는데, (중략)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설계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선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성적관리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항상 머리 속에 떠올랐던 것은, 꿈을 실현하는 것과 경제생활이 병행될 수 있을지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어서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고, 1년에 적어도 3주 이상은 여행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생활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사고 싶은 물건도 사야 한다. 주변에 도움을 주어야 할 일들이 생기면 몸과 마음으로 지원하는 것 뿐만아니라 기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생존하기 위해 양심과 가치관을 팔아치우거나 왜곡시키는 일이 생기지도 말아야 한다. 꿈은 다양한 것을 만족시켜 줄 수 있도록 잘 정돈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존재의 기쁨을 경쟁력으로 평가해 소중한 인격체를 부품으로 전락하게 할 수는 없었다. (중략)우리 아이들은 획일적으로 찍혀 나와 아궁이에 던져져 엔진을 돌리는 연료가 아니다."


선택의 과정에서 비교표를 만들어 장단점을 비교해 보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느낀 일이지만, 한 장의 표로 시간과 비용, 행복, 고통의 크기와 효율을 따져보는 일은 재미있으면서 유용한 일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연금이나 보험, 세금 내는 일을 아까워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부모의 모습은 꼭 배워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처럼 부정과 비리가 많아서 세금과 연금과 보험이 아깝게 버려지는 일이 많은 나라에서도 이 말은 유용하다. 많은 시민이 세금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세금이 함부로 사용되거나 몇몇 사람들에 의해 착복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만큼 시민들의 감시가 철저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일주일에 열 시간 일하고 480유로(세금 120유로 제외)를 버느냐, 아니면 일곱 시간만 일하고 400유로(비과세)를 버느냐를 두고 저울질했다. 우리는 아들에게 사회복지국가에서 보험이나 연금 내는 걸 아깝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단지 시관 관리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했다. (중략)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삶의 질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선택하라고 권했다. (중략)아들은 일을 적게 하는 쪽을  선택했다. 나는 아들에게 잘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상식과 민주주의가 관철되려면 독일의 철저한 역사 청산과 반성하는 방법을 배워서 적용해야 한다. 가장 먼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을 모든 증거 자료를 통해 교육하고 방송되어야 한다. 한국 전쟁이 벌어져 얼마나 끔찍한 희생들이 있었나를 배워야 한다. 이승만과 박정희 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들 또한 한 점 남김없이 조사되고 교육되어야 한다. 419와 광주민주화 항쟁의 희생과 성과도 더욱 철저히 분석되고 교육되어야 한다. 군사독재 시대의 야만적인 폭력들을 파헤치고 가해자들을 응징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 집단과 시대로 애매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실명으로 조사되어야 한다. 갑이 을에게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고 정확하게 특정시켜야 한다.


  "무시무시한 다큐멘터리 필름들을 보며 나치가 저지른 범죄가 실제로 어떠했다는 것을 똑똑히 배웠다. (중략)만족할 줄 모르는 독일인들은 통일이 된 후에 동독의 비밀경찰이 저지른 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심판했다. 피해자가 직접 본인에 관한 국가보안부의 비밀 서류철을 열람해 내막을 밝혀낼 수 있도록 많은 보조 인력을 동원했다. 그 결과 수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을 감시했던 끄나풀과 공직자를 직접 조사해 고발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도 벌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어 좋았지만, 조직을 위해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야 할 때가 가장 비참했다. 좋은 기사를 써 달라고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고 상품권을 주고 식사와 술 대접을 하거나, 회의록을 임의로 수정하는 등 정말 한심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진다. 무일 또한 마찬가지여서 불법적인 범죄행위들을 저질러 왔다. 조직에서 떠남으로써 그런 불법행위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양심과 상식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것만큼 인간에게 괴로운 일은 없는 것이다.


  "양육강식의 패거리 문화를 막는 유일한 길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개인이 자신의 양심과 판단 능력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현대의 독일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이라도 법에 어긋나면 복종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 이것은 나중에 심판을 받을 적에 상부의 명령이었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는 20%의 사람들이 이끌어 가고 있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1% 이내의 영재들이 사회의 발전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런 관점들이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약자나 소외자들이 패망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을 같이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시간당 임금이 5만원이 넘는 사람들이 5천원도 안되는 최저 임금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열 배가 넘는 그 차이를 하루 빨리 개선해 나감으로써 사회 발전의 추동력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공감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최저임금은 2010년을 기준으로 시간당 10,000원으로 인상되어야 한다.


  "한 나라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마치 손과 발처럼 긴밀한 공생 관계에 있다는 것, 몸의 가장 약한 부분이 사람의 수명을 결정한다는 것" 


한 권의 책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지 말자. 한 권의 책에서 하나를 얻으면 된다. 이 책에서 꼭 한 가지를 얻으려고 한다면 무엇을 얻어야 할까? 무일은 이것을 꼭 우리 사회에 적용하고 싶다.


"상관의 명령이라도 법에 어긋나면 복종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 이것은  나중에 심판을 받을 적에 상부의 명령이었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참으로 훌륭한 독일의 민주주의다.


- 고등어를 금하노라, 임혜지 / 푸른숲(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