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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집짓는 이야기

일머리를 잡다_입주 -49일_130307, 목

마을회관의 우리방은 오래 동안 비워둔 방이라 냉랭했지만 잠은 잘만했다.

입맛이 없어서 뻑뻑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현장으로 가는데 비가 제법 내린다.

비가 오든 안오든 할 수 있는 일은 할 것이다.


정농께서는 컨테이너 내부 정리,

심현께서는 비닐하우스 내부 정리,

무일은 외부 현장을 정리하여 11일(월)의 공사 착수를 준비하기로 했다.


마을회관에서 가져간 드럼통에다가 밑불을 피우고

타다 남은 통나무들을 집어 넣었다.

아침에 내린 비로 통나무가 많이 젖어있었는지 불이 잘 붙지 않는다.

한참을 씨름해서 간신히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이렇게 불을 붙이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허무하게 화재가 난다는 것이 또다시 믿기지가 않는다.




일단 태워야 할 나무 토막들을 가져다 넣으며,

어떻게 해야 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아무리 타다 남은 나무라지만 한 달 이상을 사용할 수 있는 양이었으니

양이 꽤 많아서 태우는 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외벽에는 군데군데 유리섬유도 드러나고 아스팔트 슁글도 바닥에 떨어져 있다.

단순히 나무만 태운다고 해서 현장이 정리될 것 같지 않았다.

힘이 들더라도 분리 수거를 해서 비닐 봉투에 담아 놓으면

폐기물 처리가 쉽고 일도 진척되는 것이 보일 것 같았다.


나무를 충분히 집어넣어 놓은 뒤에

퇴비를 뿌리고 보관해 둔 퇴비포대를 꺼내왔다.

서른 장이 넘으니 꽤 많은 양의 쓰레기를 담을 수 있겠다.


불에 녹은 아스팔트 슁글, 유리섬유, 플라스틱 조각들을

천천히 푸대에 담아 한 곳에 쌓았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타다 남은 땔감들도 나중에 태우기 좋게

한쪽 구석에 정렬해 놓았다.


나무 더미의 윗쪽은 옮겨쌓는 작업이 원활했는데,

아래로 내려가니 지난 겨울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서

나무가 떼어지지를 않는다.

봄이 왔으나 구석구석까지 다 스며들지는 않은 모양이다.

                                                                                                                                                                                                                            

삽으로 얼음을 깨어가며 작업을 하게 되니 일이 더디다.

두 시간 가까이 정리작업을 했는데도 현장은 일을 한 흔적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포대에 담긴 폐기물의 양은 제법 되어 위로가 된다.


국수를 끓여서 점심을 먹고 다시 두 시간 남짓 일을 했더니

그제서야 일한 흔적이 드러난다.


하루 정도만 더 일하면 보일러실 옆에 쌓여있던

불탄 장작과 폐기물들은 정리를 할 수 있겠다.

역시 일은 해 보아야 일머리가 잡히는 모양이다.


읍내에 나가서 은행일을 보고 달력을 하나 얻어왔다.

마트에서는 실수를 했다. 샴푸를 사온다는 것이 린스를 사왔다.

분명히 확인을 한다고 했는데도 실수한 것을 보면

큰 일을 앞에 두고 머리 속이 복잡하기는 한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하루일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다시 신고를 해야겠다.


책이나 보려다가 소식을 궁금해 할 것같아 카톡으로 식구들과 이야기를 했더니

토요일에 전부 내려와서 일손을 돕기로 했단다.

좀 위험하기는 하지만

내일 일을 좀 진행시켜두면 

큰 문제없이 주변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가족이 가장 큰 위로이며 힘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데,

부천집의 문주란에 꽃대가 올라왔다면 사진이 전송되어 왔다.

싱싱한 생명이 느껴지는 문주란의 꽃대처럼

우리집 수리도 싱싱하게 잘 이루어지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