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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집짓는 이야기

이사를 하고 전화와 인터넷을 개통하다_입주 -50일_1303006, 수

천재와 아침부터 끙끙대며 이사짐을 날랐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목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숙소로 빌려 둔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야하는데, 많은 이불이 필요해서 이불짐이 커졌다. 침대 매트리스도 옮기기로 했다. 퀸사이즈 매트리스인데도 왜 이렇게 무거운지 두 사람이 들어도 힘이 든다.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작아서 매트리스가 실리지를 않는다. 계단으로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온몸으로 힘껏 밀었더니 매트리스가 접히면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쏘옥 들어간다. 다행이다. 김치에 노트북에 책에 옷 보따리에 대충 싸서 실었는데도 마음이(화물차 더블캡의 별명)의 화물칸이 그득해진다. 


마음이의 정기 검사를 해야 해서 이사짐을 싣고 자동차 검사장으로 갔다. 검사할 때는 짐을 내려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18,000원으로 1년치 정기검사를 마쳤다. 수유리로 출발하려는 순간에 워셔액 주입구가 고장났다는 생각이 나서 다시 자동차 정비소로 갔다. 워셔액 보관통이 깨져서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3만원. 돈은 얼마 나오지 않았는데, 부품을 멀리서 실어와야 하는지 거의 30분을 기다려서야 수리가 되었다. 그래도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던 부분을 손보고 났더니 마음은 편안해 진다.


아침부터 내내 기다리셨던 부모님 댁에 도착했더니 11시 50분이다. 가다가 길거리에서 식사를 하느니 좀 이른 편이기는 하지만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가는 것이 편안하겠기에 싸두었던 점심 도시락을 풀어서 식사를 했다. 막상 집수리를 하러 내려 갈려고 하니 마음이 좀 가라 앉아서 입맛이 당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건강해야 험한 일을 할 수 있으려니 생각하고 밥 한 공기를 열심히 먹어치웠다.


마음이 무거워서 그랬는지 천천히 천천히 가는데도 음성 집이 금방 다가온다. 경량목조주택으로 지은 우리집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이렇게 소중한 것인 줄은 몰랐다. 집이란 것은 언제나 우리가 필요한 곳에 존재하다가 집값이 오르면 팔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해 가는 것이지, 우리의 삶과 하나로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집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모든 생활이 흐트러져 버리고 나니 집이 정말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을회관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청소를 하고 있으려니 보건소에 마련된 동네 사우나에서 쉬시고 돌아오시는 어른신들이 반갑게 환영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70대가 대부분인 어르신들이다 보니 마을사람 하나하나를 모두 소중하게 여기신다. 우리 집이 들어와서 새 집도 세 채나 지어지고 인구도 10여 명이 늘어난 데다가 어린 아이들까지 들어온 것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다 보니 부모님이 혹시나 이곳을 떠나실까 걱정하셨다고 한다. 




사실 이곳을 떠날까도 생각했었다. 작년 겨울에는 정농(필자인 무일의 아버지)께서 팔이 부러지셔서 3개월 이상을 고생하셨고, 봄에는 심현(어머니)께서 손가락을 크게 다치셨다가 봉합수술을 받고 역시 3개월 이상을 치료받고 간신히 회복하셨다. 12월 1일의 화재는 작년 한 해의 모든 불행 중에서 가장 큰 불행이었다. 아무도 다치시지 않았고 집도 절반은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 땅이 이제와서 우리의 정착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집과 땅을 팔고 새로운 땅을 찾아 이사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무농약 무제초제로 되살려 놓은 땅을 두고 간다는 것도 너무 아까운 일이었고, 새로운 땅에서 다시 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도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집을 수리하고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모님도 이 땅과 집을 두고 다른 곳으로는 가시지 못하겠다고 하신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전화와 인터넷을 개통해 달라고 114에 전화를 했더니 이틀 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이틀 동안은 사이버 세상과 거의 단절이구나. 한 시간 쯤 후에 전화국 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에 정농께서 신청하신 전화 이전을 하러 오겠다는 것이다. 참 잘 되었다. 오는 김에 인터넷도 같이 이전을 해 달라고 했다. 집 수리를 위해 거실에 쌓여 있는 가재도구들과 외부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느지막하게 기사들이 와서 순식간에 전화선과 인터넷선을 연결해 주고 간다. 마치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저녁은 마을 청년회에서 토끼고기로 특식을 마련했다고 한다. 마을 회관 거실에서 청년들이 직접 요리한 토끼탕으로 식사를 하는데 참으로 맛있다. 토끼 한 마리로 열 댓명의 사람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 되었다. 약간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지만 강한 양념으로 맛을 내니 느끼하지도 않고 먹을 만 했다. 진도 고모가 보내 주신 봄동에다가 쌈을 싸서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입주 -50일을 이렇게 무난하게 보내게 되었다. 인간의 노동력과 시간은 참 신비롭다. 차근차근 손을 쓰고 발길을 옮기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되어가니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한 걸음씩 새로운 집을 향해 나아간다.


하다 못해 트럭에 까지 별칭을 붙여 주었는데 귀중한 집에 택호를 짓지 않았다. 오늘부터 택호를 무엇으로 할 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1) 부활당 : 죽었다 다시 살아났으니 부활이다.

2) 무일당 : 무일이 사는 집

3) 정심당 : 정농과 심현이 사시는 집


뜻은 좋으나 어감이 좋지 않다. 차차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