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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집짓는 이야기

조금씩 재산이 늘어난다_입주 -48일_130308, 금

무일이 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이 있다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책을 읽을 때도 아주 재미있어서 하루 이틀만에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면

보통 두 세권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


한 권만 계속해서 읽으면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다.


오늘로 사흘째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1) 일단 불을 피워 장작을 태우고,

2) 잿더미 밑에 깔려있는 장작 삽으로 꺼내다가 다 마치지 않고

3) 베란다에 널린 폐기물들을 주워 담기도 하고

4) 수레에 음식물 폐기물을 실어다 밭에다 뿌리는 등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일의 내용을 바꿔가며 작업을 한다.

한 가지 일만 계속하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도 철거 작업을 하는 중에 즐거운 일이 있었다.

베란다에 무수히 널려 있는 폐품들 중에서

피해를 입지 않고 쓸 수 있는 물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농기계 박람회에서 산 모판 묶는 도구를 찾았다.

정말 아이디어가 뛰어나 훌륭하면서 단순한 제품이었다.

올해 모내기를 하고 나서 모판을 정리할 때 쓰려고

포장지에 담아 고이 모셔 두었다가 다 태워 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포장지 밑에서 얌전히 약간의 그을음만 묻었을 뿐

기능에 이상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보존되었다. 기뻤다.


심현께서 정성들여 담궈 놓으신 매실 액기스와 고추장아찌도 살아났다.

땅콩 자루도 들깨 자루도 고추가루도 피해를 입지 않은채 잿더미 밑에 살아 있었다.

피해 규모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큰 기쁨을 주었다.


그 밖에도 커다란 스텐 그릇 두 개, 김치 눌르는 돌,

크기 조정이 되는 스패너, 설탕 등 끊임없이 재산이 늘고 있다.


좋지 않은 소식도 물론 있다.

고물상에 연락해서 베란다를 뜯어가라고 했더니

집을 망가뜨릴까봐 도저히 철거를 못하겠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철거를 해서 원활한 집짓기가 되기를 원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염목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전문 철거팀에 의뢰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 그렇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겠지.


주방과 거실의 짐들을 옮기려고 하니 거의 이사 수준이다.

하루 종일 쓸고 닦으며 박스로 포장을 해 두셨다.

내일 아이들과 함께 컨테이너와 비닐 하우스로 옮기면 되겠다.




마을 입구 내곡 슈퍼의 아주머니가 오셨다.

심현께서 고추가루를 사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부랴부랴 한 봉지를 싸들고 오셨다.

그리고, 인삼밭 작업자들을 위해서 월요일부터 국을 끓이는데,

좀 넉넉하게 끓여서 가지고 오시겠다고 한다.

참 고마운 인심이다.


막걸리 통이 15개 가까이 나왔다.

뚜껑도 따지 않은 새 통인데 창고 속에서 발효되고 있었다.

모두 밭으로 싣고 가서

한 병 한 병 모두 마시는 기분으로 작은 밭 여기저기에 뿌려주었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마을 청년들은 회관 뒷마당에 1년 동안 쌓인 재활용 물품들을 포대에 담는 작업을 했다.

하루 종일 걸려서 일을 끝내고,

마을 사람이 기부한 돼지를 한 마리 잡았다.

우리가 일을 끝내고 들어가자 마을 회관에 돼지고기 잔치가 벌어졌다.

소주 한 잔에 돼지고기 비게를 충분하게 먹었으니

잿더미로 낀 때가 잘 씻겨 내려갔을 것이다.


인터넷 회선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