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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강도를 조심해야 해_130118, 금

6시에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단 한 장의 신용카드와 꼭 필요한 돈 160유로만을 챙겼다. 외환위기로 도탄에 빠진 그리스의 정정이 매우 불안하고, 치안이 안정되지 않아서 수많은 불법체류자들이 도둑질과 강도질을 하는 등 범죄의 소굴이니 조심하라는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노트북과 천재의 카메라, 터키 리라, 원화 등등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안전 금고에 꼭꼭 숨겨두었다. 여권도 금고 속에 집어넣고 사본만 들고 가기로 했다. 얼마나 겁을 먹었던지 금고 속의 우리 재산은 안전할 것인지도 걱정을 하면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제와 똑같은 메뉴다. 40분까지 식사를 마쳐야 하는데 벌써 25분이다. 크로아상 3개, 계란 후라이 3개, 베이컨, 살라미, 버터 2개, 시리얼 한 접시, 커피 한 잔이다. 쉽지 않다. 45분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배는 채울 수 있었지만 접시를 비우지는 못했다. 우주신과 무일은 남아있는 크로아상과 빵에 살라미와 계란 버터를 발라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호텔 프런트에 부탁해 둔 택시가 호텔 앞 도로를 막고 있어서 부리나케 택시에 올랐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가 안되었다. 요금은 3.8유로인데 버튼을 하나 누르니 4유로가 추가된다. 주행요금에 기본 요금을 나중에 추가하는 모양이다. 호텔에서 알려준 가격이 8유로 였으므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대형 버스터미널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큰 규모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소박한 크기다. 버스표를 끊는데 일방인지 왕복인지를 묻는다. 왕복을 끊도록 하자. 카드를 내미니 안된다고 한다. 이럴수가, 첫 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학생 할인도 없어서 순식간에 120유로의 현금이 사라져 버리고 이제 32유로 남았다. 남는 돈이 너무 적은데, 호텔에 다시 갔다 올까? 그냥 가자, 박물관 입장료는 카드로 되고, 32유로면 시내 교통비는 무료니까 밥은 먹을 수 있을거야. 식당에서는 카드도 될 것이고. 그것도 안되면 다른 사람에게 좀 빌리면 되지 뭐.


좁디좁은 골목을 커다란 버스가 잘도 빠져 나간다. 안내서에는 차장이 있다고 했는데, 운전기사가 차표 검사까지 다 하는 시스템이다. 여행 안내서가 현실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한다. 16유로나 되는 요금을 받으면서도 쓴 커피 한 잔을 주지 않는구나. 너무하다. 이틀만에 터키가 벌써 그립다.  











아테네 북서부의 파르나소스산 포키스(Phocis)협곡의 산자락에 자리잡은 델피는 최정상의 높이가 2,475m나 된다. 고원지대로 접어들면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만일을 대비해 우산을 모두 챙겨오기는 했지만 걱정이 되었다. 아테네의 날씨는 오늘도 좋았으니, 어제 델피를 보고 오늘 아테네를 돌아볼 걸 그랬나 보다. 


산꼭대기 아슬아슬하게 뚫려 있는 도로의 끝에 우리를 포함해 여행자 7, 8명을 내려놓고 버스는 떠나 버린다. 비는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하다. 안 되겠다 박물관을 먼저 보자. 버스에서 내려 표지판을 따라 5분 여를 걸어 내려간 곳에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까마득한 산과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참 신기한 지형의 땅이다.  


박물관에서 티켓을 끊으려고 했더니 어른은 9유로 학생은 5유로라고 한다. 카드로 결제가 되느냐고 했더니 안된다고 한다. 16세의 학생은 얼마냐고 했더니 무료라고 한다. 그래, 일단 표를 끊을 수는 있겠구나. 27유로를 내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은 5유로고 동전까지 해서 5.7유로다. 레스토랑은 카드가 될테니 돈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스핑크스 근사했다. 철학자인 듯한 조각상 훌륭했다. 테라코타 형식의 그림들 좋았다. 옴파로스와 춤추는 아가씨들까지 따뜻하게 잘 구경했다. 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사진은 찍어도 좋은데 후레쉬는 터뜨리지 말라고 하는데도 자꾸 터뜨려서, 생김새가 비슷한 우리 식구까지 괜히 미안하게 만들었다. 이 박물관에서 또 하나 안되는 것이 조각상과 함께 인물사진을 찍는 것이다. 사진 찍는 자세를 잡다가 실수로 동상이나 유물들을 손상시킬 수 있어서인 모양이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읽은 이야기지만 그리스의 신전들도 실제로는 모두 색이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진으로 단청 없는 신전들만 보아서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박물관에 전시된 신전 조각들은 상당수가 색칠이 되어 있었다.




















아테네 보물창고 옆에 무희들의 기둥 위에 올려져 있던 이 옴파로스(지구의 배꼽)는 제우스가 세상의 중심을 알기 위해 동과 서 양쪽으로 날려 보낸 독수리가 함께 내려앉은 곳이란다. 그저 우연과 신화에 따라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확한 측량에 의해 선정된 곳이라고 한다.








포근한 박물관에서 아테네의 아름다운 유물들과 함께 한 따뜻한 시간이었다. 다리가 적당하게 아플 때 쯤에 구경도 끝마칠 수 있었다. 박물관 구경을 끝내고 나오자 거짓말 같이 비가 그쳐 있었다. 신전 꼭대기의 경기장까지 오르는 동안 기원전 500년의 건물들과 사이프러스 나무, 푸른 하늘, 붉은색 계곡, 검은색 계곡, 푸른 초원이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해 주었다.


2,500년전의 까마득한 예날에 어떻게 이런 첩첩산중의 오지에다가 신전을 짓고 신탁을 받을 생각을 했을까? 아테네인들은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신탁을 듣기 위해서, 전령이 이 오지를 왔다갔다 하는 동안에 차분하게 앉아서 기다릴 수 있었던 여유도 있었나보다. 이곳이 세상의 중심(배꼽, 옴파로스)인지는 어떻게 계산한 것일까? 어쨋든 환상적인 산악 경치를 볼 수 있는 신령스러운 곳임에는 틀림없다.


축대를 쌓는 축석기술도 훌륭하여 자연석을 최소로 가공하여 아귀를 맞춰놓은 것이 근사한 문양을 형성한다. 그리고 지금은 한겨울인데도 영상 15, 6도를 오르내리고 있어서 들판에는 온갖 잡목과 야생화들로 가득하다. 발칸은 거친 산악지형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축복받은 땅이다.


아침에 다 먹지 못하고 가져온 두 개의 샌드위치와 물 한 병은 신전을 오르는 동안 귀중한 양식이 되어 주었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같은 이 오지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올라온다. 수학여행을 왔는지 학생들도 많이 왔는데,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자 일제히 강남스타일을 부르며 시시덕댄다. 싸이 덕분에 세계인과 언제나 공유할 수 있는 춤과 음악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관광을 끝내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흐려지더니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약간 쌀쌀한 기운도 느껴진다. 돌아가는 차는 오후 3시고 현재 시간 2시. 레스토랑에서 따뜻하게 식사를 하려고 했다. 멋진 식당에 들어가서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현금만 가능하고 저쪽에 가면 출금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현금 카드를 가져오지 않았어요.


버스 정류장 앞 가게로 갔다. 오렌지 쥬스 한 병과 과자 두 개를 샀더니 4.8유로다. 이제 90센트 남았다. 아직도 유료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갈 수 있는 돈이다.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며 근사한 계단에서 쥬스를 마시며 과자를 씹고 있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돈 없는 여행자의 마음을 하늘도 알아주시는 모양이다. 


무일의 지갑 속에는 아직 사용해 보지 않은 카드 한 장이 남아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것이다. 아직까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만일 이 카드를 사용했는데도 현금이 출금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의지할 최후의 보루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 조금만 참자. 배가 약간 고프고 추운 비바람을 피할 공간이 없는 것 뿐이다. 여행은 원래 이 정도 고생은 해야 하는 것이다.













추위를 잊고 버스를 기다리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주신과 옷벗기 가위바위보를 했다. 비바람이 몰아쳐 상당히 추웠기 때문에 겉옷 하나만 벗어도 추위가 뼈 속을 파고든다. 그래도 기온은 영상이고 땅은 온갖 풀과 꽃으로 가득하다. 무일과 우주신의 대결 - 


1821년 그리스는 오스만투르크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자체만의 힘으로는 어림없는 싸움이었지만 계관 시인 바이런을 비롯한 유럽 지식인들의 참전과 영향력 행사로 1829년 독립을 쟁취한다. 평생 그리스를 사랑했던 시인 바이런은 의용군을 이끌고 1823년 11월 그리스에 도착하지만 병을 얻어 그 다음해 4월 19일 죽는다. 


이때부터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그리스의 독립을 위한 연합군이 되어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독립전쟁을 벌이게 된다. 초기에는 에게해 연안의 섬들은 물론이고 소아시아 지방까지 술탄으로부터 빼앗는데 성공한 그리스의 독립전쟁이 순탄한 듯 했다. 그러나, 술탄의 굴욕적인 항복에 반발하여 케말 파샤를 중심으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리스와 전쟁을 선포하여 소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영토들을 회복하여 현재의 터키공화국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쟁 과정에서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 권력만 바뀌었을 뿐이지(로마제국/비잔틴제국/오스만제국) 이천년 동안을 하나의 연합국가로 살아왔던 곳이다. 마지막 술탄도 터키 군부에 의해 사형에 처해지고 그 자손들도 100년 가까이 터키땅에서 추방됨으로써 오스만제국의 500년 역사도 막을 내렸다고 한다.


어렵게 독립을 얻은 그리스지만 몇 차례의 군사 쿠데타와 군사 독재로 나라는 활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21세기에 접어든 이곳에서 우리는, 신나게 웃고 있는 그리스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누구나 정부를 싫어하며,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은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터키인들의 활기찬 기운을 받다가 그리스의 딱딱함을 만나니 당황스럽다. 친절한 그리스인들 몇몇이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참 다행이었다.


버스 시간이 30분 이상이나 지났는데도 버스는 오지 않고 있다. 그리미는 우주신이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다. 게임에 진 우주신은 오리털 겉옷을 무일에게 빼앗기고 추위에 덜덜 떨고 있다. 그리미의 강권에 밀려 결국 수정 제안을 해야 했다. 내일 아침에 커피 한 잔과 차이 한 잔을 서비스 하는 것으로 겉옷을 돌려 주었다. 뭐 좋다. 승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메트로는 아직도 파업을 풀지 않았다.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여행자 패스는 무용지물이 되어 간신히 본전을 뽑을 수 있을 것같다. 그래도 파업을 하는 그들의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어렵게 버스 노선을 연구해서 무사히 라리사역에 도착했다. 이틀 동안 보지 못했던 까르푸가 있기에 겨우 10유로의 쇼핑을 하고 카드로 계산을 했다. 가능했다. 오는 길에 맥주나 포도주를 사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미 너무 많이 걸어와서 다시 걸어가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기분 좋게 호텔로 돌아왔더니 그리미의 핸드폰으로 10유로가 두 번 계산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다시 까르푸로 가서 환불을 받고 하이네켄 맥주 4병을 사서 돌아왔다. 아테네에서의 마지막 만찬이다. 모두들 참 수고했다. 제법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마지막 남은 맥주를 마시려고 하는데, 배가 빵빵해서 잘 넘어가지를 않는다. 어거지로 밀어넣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금고 속에 보관해 둔 모든 귀중품들도 얌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도는 만나지 못해서 좋았다.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이 안전한 여행에 큰 도움이 되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