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을 보려고
6시부터 일어나서 돌아다녔더니 졸리다.
어제 먹다 남은 닭볶음을 덥히고,
함께 먹을 동료를 모집했으나
설거지를 전제로 했다고 해서 끝까지 거부당했다.
일단 먹이고,
설거지를 하라 했으면 아무 소리가 없었을텐데,
순서가 바뀌는 바람에
외로운 식사 끝에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아, 졸려 -
여름옷을 입고 다니는 데도 덥다. 차 안은 뜨거운 햇살로 더워서 에어컨을 가동하거나 창문을 열고 있어야 했다. 한 겨울에 이런 행운을 갖게된 것만도 행복한 일이다. 칼데라 너머로 이아마을에서 피라마을까지 파노라마로 좌악 펼쳐지는 모습은 감동이다. 돌 위에 앉아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때로는 시퍼런 바닷물의 검은 부분이 언뜻언뜻 눈에 들어오면서 사람을 잡아 끌어내리는 것처럼 느껴져 두려운 생각도 든다. 떠나야 하는 모양이다.
기원전 1,500년 경에 티라섬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에 묻혀버린 마을이 대대적으로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서 미케네 문명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고대 도시 아틀란티스가 이곳일 수도 있다는 가설이 계속해서 퍼지고 있다. 화산 폭발로 섬의 중심부가 모두 바다로 가라앉아 거대한 칼데라를 형성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대를 가지고 들어가 보았지만, 여러 유물들은 티라와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묘하게도 박물관과 인연이 닿지 않는다.
길가 작은 교회와 커다랗게 펄럭이는 그리스 국기의 조화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 섬의 집들과 교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모양이다. 맑고 경건하다.
그리스의 음식이 형편없다고 해서 기대하지 않았던 음식인 수브라키(7.5유로)는 맛있다. 지로스(2.5유로) 또한 저렴하고 맛이 수브라키와 똑같다. 똑같은 음식인데, 하나는 접시에 담아서 테이블에 앉아서 먹고, 하나는 네프킨과 쿠킹 호일에 싸서 들고 다니면서 먹기 때문이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수브라키 2인분을 먼저 먹어보고 나서 지로스 2인분을 추가로 포장해서 동네 구경을 하며 고소한 맛을 즐겼다. 원래 계획은 호텔로 돌아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나가는 것이었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기름과 시간을 낭비하느니 점심을 사먹기로 한 선택은 훌륭한 것이었다. 맛도 깔끔하고 좋았다. 허브나 소금, 올리브 오일 말고는 특별한 화학처리를 하지 않으니 깔끔하고 담백한 음식이었다.
다리는 계속 차를 타고 다녔는데도 조금만 걸으면 천근만근이 되어 버린다. 이제 호텔방에 처박혀서 좀 쉬어야 할까 보다. 시원시원한 렌터카 사장님은 대충 훑어보더니 운전 잘했다고 하면서 날씨가 좋았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모든 자미와 모든 교회에 항상 기도하고 낮은 자세로 여행의 무탈함을 빌었기 때문이 아닐까.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한다. 발뒤꿈치에 붙어 있는 발바닥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비명 소리를 내지만 가족들을 위해 그 정도 근육의 고통은 어떻게든 참아내야 한다. 먼저 쌀을 씻어서 밥을 한다. 내일 아침에 배달되는 아침 식사의 부족한 부분까지 생각해서 밥을 충분히 해 둔다. 홍합 참치 새우 순두부양념 국을 만들기 위해서 부지런히 칼을 놀리는 그리미의 보조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래야 음식 맛이 좋아진다. 좋은 기분에서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선누룽지를 만든다. 이 숙소의 열악한 후라이팬 덕분에 정상적인 생선구이가 불가능해서 생선 필레를 마구잡이로 열을 가하다 보니 탄생한 음식이다. 보기에는 그래도 맛이 좋다. 생선이라는 재료와 누룽지라는 재료가 둘 다 맛이 좋지 않은가. 그 둘의 합성어인 생선누룽지는 당연히 좋은 맛을 낼 수밖에 없다.
오늘 저녁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몇 가지를 기념해야 했다. 일단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다. 이번 여행 유럽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면서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결국 맥주 한 잔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래 마지막 일정이면 좋은 점과 기뻤던 일, 행복했던 시간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런데, 밥이 남을 것 같다는 둥 배가 부르다는 둥 술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둥 반찬 남은 것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등 가지가지 쓸모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다. 더 이상 쓸 말도 없다. 다들 아프지 말아라. 그러고 보니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들도 거의 바닥을 보인다. 이제 멸치 한 줌, 무말랭이 한 줌 남았다. 김은 넉넉하게 가져왔는지 아직도 여유가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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