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BC490-BC480년)에서 마라톤대전과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그리스의 강국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을 믿고 델로스 동맹에서 독선적인 군사 외교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동맹 도시국가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스스로에게 가장 민주적인 도시가 다른 도시에 그러지 못했던 것은 그들만의 풍요로움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탄압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잘 나가던 아테네도 전통의 군사강국인 스파르타와 펠레폰네소수스 전쟁(BC 404년)에서 대패하고 주도권을 상실한다. 로마식 패자 동화정책이나 공동체 정책은 이런 아테네의 몰락을 지켜 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카데미아를 중심으로 철학과 학문의 중심을 유지하던 아테네는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아카데미아가 강제 폐쇄(529년)당함으로써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종교가 쓸데없는 힘을 가질 때 이런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만다. 그런데, 매우 이상하게도 그리스인들은 누구보다도 종교에 충실하다. 학문이나 예술보다도 인간은 종교에 의지하여 사는 모양이다.
유네스코의 상징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 만든 것이다. ‘파르테논’이란 말은 ‘처녀’를 뜻하는 그리스말에서 와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가르킨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그 처녀 여신이 다스리던 땅의 구석구석을 보러 다니는 것이다. 로마인이 말하던 테세우스의 땅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부지런하다고 책에서 읽었는데, 그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아침을 6시 반부터 준다고 한다. 일하러 나갈 때야 그랬겠지만, 여행 중인 사람들이 그렇게 일찍 아침이 들어갈까? 16일 간의 여행에서 쌓인 피로가 약간 무력감을 준다. 집에 돌아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 싶기도 하다. 아니야, 일어나자. 8시가 다 되어 간신히 눈을 떴다. 어제 밤에 욕조에서 몸을 푹 담그고 쉬어서 고양이 세수만 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커다란 식당을 독차지하고 앉았다. 일찍 관광들을 나가셨나 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계란 후라이다. 삶은 달걀은 까먹으려면 귀찮다. 잘 되었다. 그리고 크로아상. 매우 부드러워 좋다. 이스탄불에서 먹지 못한 시리얼. 그리고 돼지고기 삼겹살 베이컨. 다 좋은데 야채가 없다. 주방에 물어 보았더니 아침 식사에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야채 값이 비싼 모양이다. 야채가 없으니 그리미는 힘들었겠지만, 우리들은 모두 잘 먹었다.
말로만 듣던 아크로폴리스를 아테네 여행의 첫번째 코스로 잡았다. 3일의 일정으로는 날씨를 고려할 것이 없이 제일 좋은 것부터 보러다니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다행이 날씨도 좋았다. 호텔 맞은편 길에서 전기버스를 타고 신타그마 광장 다음 정거장에 내려 걸어가면 된다고 한다. 시키는데로 하지 않고 일단 아무 버스나 타고 나서 물었다. 안 간단다.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결국 시키는데로 전기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장난 아니게 많다. 우주신은 토할 것 같다고 한다. 게다가 덥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찾는데, 그리스 문자로 써진 간판은 읽을 수가 없다. 길거리 카페에는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들이 예닐곱명 앉아 있었다. 답답하니 긴장감을 무릅쓰고 '아크로폴리스'를 물어 보았다. 카페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 마디씩 거들며 길을 일러준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를 띄며. 보기와는 다르네.
계속해서 비가 내린 지난 2주간의 날씨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날이 너무 좋다. 천천히 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가게들도 이제 막 장사 준비를 한다. 천 년이 넘은 오래된 교회를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더니 아야 소피아에서 보았던 귀여운 느낌을 주는 모자이크 성화가 우리를 반겨준다. 아무도 없는 작은 교회지만 슬쩍 보고 나오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교회를 지나서 한참을 가니 큰 대로가 나오고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막 도착하고 있었다. 그분들이 대오를 정리하는 동안 매표소로 가 보니 아크로폴리스 근처의 모든 유적을 보는 표가 인당 12유로이고 18살 이하는 무료라고 한다. 우주신 무료. 단, 박물관은 별도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알고 있던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의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뜻으로 종교의 중심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방어를 위한 목적이 있었지만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여러 신전을 세우면서 신들이 거주하는 신성한 장소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상징이 아테네고, 아테네의 상징이 아크로폴리스여서, 아크로폴리스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오해될 수 있었겠다.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의 산실인 민회가 열렸던 곳은 아크로폴리스 건너편에 있던 야트막한 언덕인 프닉스다. BC 6세기 말 클레이스테네스 치하에서였다. 프닉스라는 말은 ‘숨막히는’이라는 뜻인데, 이 언덕에서 민회가 열릴 때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든 군중들 때문에, 열띤 토론의 분위기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는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나라를 위한 정치토론이 숨막히게 전개되었었다고 하니, 말 잘 못하면 잡혀가서 고문당하고 생명까지 잃는 시대를 살아 온 우리의 처지가 부끄러웠다. 2,500년이나 뒤쳐진 야만인이 아닌가.
야만의 역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반성하면서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니, 대리석 기둥으로 만들어진 프로필레아(Propylaia, 현관)가 나타난다. 힘들게 언덕을 오르면서 잡념을 털어내라고 했다는데 별로 힘들지 않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프로필레아의 바깥은 남성적 웅장함을 자랑하는 도리아식 기둥, 안쪽에는 여성적인 우아함을 갖춘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만들어져 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바라보는 지중해는 매우 깊고 짙푸르다. 가까운 곳에 섬들이 산재해 있어 따뜻한 느낌도 충분하다. 뒤편을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산들에 둘러쌓여 막힌 아테네인들이 지중해로 나아 갈 의지를 다지기에 이곳 신전에서 내려다 보는 지중해의 모습은 다소 만만하다. 물론 그러다가 많은 그리스의 사나이들이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멀리서 신전 아래의 축대를 바라보면 마치 불국사의 축대처럼 자연 바위를 그대로 살리고 그 위에 대리석으로 석벽을 쌓아 올렸다. 바늘 한 개도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솜씨가 훌륭했다. 접근이 불가능해서 바늘을 직접 찔러보지는 못했다. 먹구름이 신전의 한 쪽을 슬며시 점령해 버린다. 바람이 약간 강해지고 있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파르테논 신전은 계속해서 보수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내부 출입이 되지 않고 주변에는 거대한 돌들을 운반한 작은 철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터키 같으면 보도블럭처럼 밟고 다녔을 유적 무더기들을 곳곳에 쌓아두고 언젠가는 제자리에 복원할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서 빨리 이 아름다운 신전이 복원되었으면 좋겠으나 오랜 동안의 군사독재와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국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여 안타깝다.
이 신전이 지금처럼 파괴된 것은,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무기고로 사용된 신전에 베네치아 군대가 쏜 대포알이 강타했고, 보관되었던 폭탄들이 터져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 년이 넘도록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신전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버린 것이다. 전쟁은 정말 나쁜 것이다.
아레이오스 파고스는 ‘아레스의 언덕’이란 뜻으로 인류 최초의 법정이 열린 곳으로 신화는 말하고 있다. 자신의 딸을 겁탈한 악당을 살해한 전쟁의 신 아레스에 대한 재판이 이곳에서 열렸고, 신들은 아레스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스 대법원의 명칭은 아레이오스 파고스라고 한다.
이 언덕은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사이에 하얀 대리석 언덕으로 남아있고,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아테네인들에게 예수를 전도하였다는 동판이 있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바위 언덕인데, 살짝 올라서서 아고라와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다보면 왠지 아늑하다. 이 한 겨울에도 햇살이 따사롭고 가벼운 바람이 부는 곳이니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놀기에 얼마나 좋았겠는가.
프닉스 이전에는 민회가 저잣거리인 아고라에서 열렸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신성한 종교 중심지가 아크로폴리스라면 아고라는 삶의 중심지였다. 아고라의 원래 기능은 시장이었으나, 노예들과 함께 장을 보러 나왔다가 노예들은 물건과 함께 집으로 돌려 보내고, 사람들은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게 되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과 제자들이 함께 만나 토론하던 곳도 아고라였었고, 사도 바울이 아테네인들과 어울려 예수에 대해 논쟁한 곳도 이곳이었다고 한다. 민회는 나중에 프닉스 언덕으로 옮겨져 열렸어도 토론의 현장은 계속 아고라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아고라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비록 목은 잘렸지만 남아있는 아우구스투스의 동상(옷을 입었기 때문에 죽기 전의 신격화 되지 않은 아우구스투스의 조각상이다)은 매우 아름다웠다. 조각 예술은 그리이스인들이 발전시켰고, 우리나라의 불상 제작에 까지 그들의 기술력이 전파되었다고 하니 놀라운 일다.
걷고 또 걸었다. 아고라 –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의 신) 신전 – 스토아 – 바람의 탑 등등. 이제는 유물을 보는 즐거움이 아니라 우리가 보아야 할 유물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이 더 즐겁다. 정확히 찾으면 그만큼 덜 걸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에 가는 동안 천재가 사라져 버렸다. 어디선가 보고 싶고 읽고 싶은 것을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미는 금방 초조해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신전 아니면 스토아에 있을 것이라고 해도 아들이 없어지자 웃음의 형태가 벌써 달라진다.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헤파이스토스 신전 보다 파괴되어 일부만 남아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더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규모가 크고 더 아름다웠다는 것, 아테네의 수호신이라는 것 등등. 실제 보다 상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스토아에서 만난 여러 석상들 중에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케사르의 석상이 정감이 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작은 박물관에 엄청난 양이 보관되어 있는 진흙을 구워 만든 테라코타 도기들도 좋았다. 그리고 그야말로 역사책에서만 보았던 도편추방의 기록도 보았다. 작은 그릇 조각에 이름이 적혀있는 것들이 많기도 하다.
점심을 먹으려고 레스토랑들의 메뉴판을 훑어보니 이것저것 먹다 보면 거의 20유로가 된다. 그냥 길거리 음식을 먹기로 했다. 작은 골목길의 레스토랑에서 점잖은 할아버지가 나오시더니 자신들의 가족 식당에 대해서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4인용 식탁이 68유로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그리스의 다양한 전통 음식으로 제공된다고 한다. 만약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으면 3인용 메뉴를 시키면 42유로로 충분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다정하게 이야기 하시니 말을 끊어 버리기도 거절하기도 힘들다. 가족들은 벌써 저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지만 그리스 레스토랑들의 손님 끌기는 매우 점잖고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거절하기가 힘들다.
역시 가족들의 도움으로 다음 골목을 구경하다가 간단하게 식사를 할 장소를 발견했다. 대충 인당 10유로면 식사가 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메뉴를 보고 주문을 하려고 하니 인당 15유로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음료까지 포함하면, 음.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천재가 시간이 없어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청년이 안타깝기는 하다. 다시 할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
매우 밝은 얼굴로 그러나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게 우리를 맞이해서는 테이블을 셋팅하고 물을 가져다 준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한 가득 여러 음식들을 가져 오시더니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주시면서 선택을 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18가지 메뉴 중에서 7가지를 골라서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게다가 디저트와 음료도 포함이고, 3인용이지만 4사람 모두에게 제공한다고 하신다. 42유로로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맛도 좋았다. 약간 매콤한 맛이 부족한 것이 아쉬웠다. 아, 고마우신 할아버지의 170년 전통의 가족 식당.
팁을 포함해 45유로를 계산해 달라고 영수증에 기록해 두었는데, 실수로 4유로만 결제하고 다시 한 번 계산하게 하신 것이 너무 미안하다고 하신다. 정확하게 42유로만 결제하신다. 하우스 와인이겠지만 포도주도 한 병이나 마셨는데 말이다. 누가 그리스가 험악한 곳이라고 했던가. 할아버지에게 치안 상태에 대해 물었더니 약간 좋지 않은 지역이 있고 만원 버스에서 소매치기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신다. 약간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고 한다. 오히려 문제는 세금만 축내는 정부에 있단다. 이별이 아쉬웠다. 박물관을 가야해서.
박물관은 문이 닫혔다. 내일은 밤 10시까지 문을 여니 그 때 다시 오라고 한다. 그래 좋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델피가는 방법을 자세히 알아 두었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와 거의 일치한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스텝에게 델피 투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확하게 1인당 100유로이고 할인은 없다고 한다. 호텔에서 출발하니 편하다고 한다. 버스표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직접 전화를 해서 확인하더니 30분 전까지 터미널로 오면 된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델피는 참 멋진 곳이니 꼭 가보라고 한다. 택시를 타면 15분 정도면 도착하니 7시 30분 차를 타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점심을 잘 먹어서 저녁은 맥주와 음료수, 과자로 떼우고 그냥 자기로 했다. 아직도 배가 그득하다. 돼지고기, 쇠고기, 감자, 호박, 샐러드, 잼, 만두 등등. 참 잘 먹었다. 이제 자자, 내일 우리는 신탁을 들으러 가야 한다. 옴파로스도 만나고.
하아드리아누스 문과 제우스 신전, 전차 경기장 등을 하루에 다 보는 것이 맞기는 한데, 점점 다리가 뻗뻗해 진다. 박물관이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몸살이라도 났을 것같다. 잘 먹기도 했지만, 너무 피곤하니 신진대사도 일어나지 않는지 소화도 잘 안되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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