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호텔들은 모두 만족스러웠다. 부킹 닷컴의 평점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가격과 만족도는 한 두 시간 발품 파는 것이 최고다. 게다가 협상만 잘 하면 놀라운 가격에 좋은 호텔을 구할 수도 있다. 겨울철 비수기니까 가능한 일일게다.
아침 식사를 하고 레스토랑 입구의 팁박스에 2리라를 넣어 두었다. 형제의 나라에 너무 적은 팁을 주는 것이어서 미안한데도 가족들은 팁을 너무 주려고 하지 말란다. 이곳의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쫀쫀한 녀석들 -
화려한 톱카프 궁전을 갔다 왔으니 돌마바흐체는 굳이 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한다. 뭐, 좋다. 화려한 장식물들은 보기에 좋지만 크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느니 동네 뒷길을 산책하는 것이 더 좋다. 어쨌든 바람이 부니 아야 소피아로 가자. 비가 내리면 가려고 아껴 둔 장소이고, 오랜 여행으로 다리도 피곤하니 많이 걷지 않아도 되어 더 좋았다.
아야 소피아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지어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바친 성당이라고 한다. 세계사 시간에 대제라고 배운 2명의 황제가 있다. 콘스탄티누스와 유스티니아누스다. 콘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세웠으며, 여러 가지 기독교 우대책을 실시하여 기독교의 대중화에 공헌하였다. 유 황제는 성소피아 성당을 지으면서 메인 벽화에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콘 황제의 손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도시를 바치게 하고, 자신의 손으로는 성 소피아 성당을 바치게 한다.
콘 황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도시를 예수님께 바쳐 버린 것이다. 게다가 529년 유 황제는 아테네에 있는 ‘아카데메이아’를 폐교한다고 공표했다. 플라톤이 개설하여 천년 동안 이어 온 학문의 전당을 폐쇄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유 황제는 발칸지방 출신이었으니, 집안의 뿌리와 생명력을 잘라내 버리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제15권)에 따르면, 또 다시 1천년이 흐르고 피렌체의 메디치가가 활약한 15세기가 되어서야 학문의 전당 아카데미이아가 다시 부활하게 된다고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가톨릭의 국교화로)의문을 품기보다는 복종하는 것을 인간의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에 결정적으로 접어든 것이다”고 쓰고 있다. 아카데메이아의 폐쇄가 곧 중세 암흑시대로의 추락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으나 암흑시대를 상징한다고 이해해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아야 소피아는 아름다웠고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꾸며진 성화들 또한 정겨웠다.
그리미가 입장을 하려는데 검표기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검표원들이 달라들어 고치려고 하는데 되지 않는다. 덕분에 전혀 새로운 장면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또 얻는다.
입구에서 매우 드물게 검은 관광객과 만났다. 추억에 남는 사진을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을 얻을 수 있었다. 자유롭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물론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터키의 자미를 방문하면서 요란한 성화와 성상들이 없어서 소박하고 포근한 기분이었다. 오직 신과 나의 대화가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성당 입구에 걸려있는 성화가 마치 나를 환영해 주는 것같이 반가웠다. 이래서 무일은 만신교도가 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모든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들에게 애정과 포근함을 느낀다. 교회의 것이든 본인의 것이든 재산이나 챙기려고 하고, 현실 권력을 좌우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수도자들이 아니고 권력자들에 불과하다.
동로마 제국 말기에 십자군들에 의해 귀중하고 비싼 성상과 기물들이 탈취되었고 심지어는 금색 모자이크 타일까지도 뜯겨졌던 소피아 성당은, 다시 오스만 투르크에 정복된 후에는 벽면 전체에 회칠을 하고 칼리그라피로 장식되어 자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으로 변경이 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회칠을 벗겨내면서 모자이크 성화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매우 독특해서 아름답다. 십자군 이전의 아름다운 성당 모습을 재현해 낼 수 있다면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할텐데, 어느 세월에 완성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년 단위로 터키를 다시 방문한다고 하면, 세 번째 방문할 때 쯤 다시 한 번 들어가 봐야겠다. 터키가 계속 성장하고 있으므로 20년 정도 지나면 꽤 부자 나라가 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나저나 소원을 비는 청동간판에 엄지손가락을 끼고 한 바퀴 돌리는데 성공을 해서 소원을 이룰까 했는데, 돌리고 나서 손가락이 촉촉하게 젖은 느낌이 나야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것까지는 알지 못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이뤄지겠지. 세상이 분명히 바뀔 것이다.
위험해 보이는 이층 난간 위에 올라앉아 기념사진을 찍어대는 터키의 젊은 청춘들이 언제나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길거리 음식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군밤 150g과 찐 옥수수 한 개, 빵 두 개와 환타 한 병이다. 어제 통닭을 살 때 함께 주신 빵도 마저 먹기로 했다. 그동안 너무 잘 먹고 다녀서 그랬는지 퍽퍽해서 잘 넘어가지 않는다. 차라리 굶는 것이 낫겠다. 고등어 케밥을 살 수 있다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기 위주로 되어 있는 케밥에 고등어라는 생선이 끼워져 있으니 우리 식구들에게는 딱 맞는 음식이라 할 것이다.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간다. 교통카드 10회권이 28리라다. 이틀 동안 4회를 쓰고 이제 6회가 남았다. 마지막 날까지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자랄 수도 있으니 그리스에서 돌아올 때 늦은 시간에 들어오므로 셔틀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20유로라고 하니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이렇게 날씨 좋은 터키를 두고 비 내리는 그리스로 가려니 안타까운 맘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 공원을 산책하는 호사는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큰 가방 한 개와 기념품 사둔 것을 호텔에 맡기고 공항으로 출발한다. 공항은 술탄아흐멧의 트램 T1을 타고 악사라이가 아니라 좀 더 가서 제이틴부르누역에서 갈아 타는 것이 좋다고 한다. 톱카프 다음 정거장에서 T1 연장선으로 갈아타고 제이틴부르누에서 M1으로 갈아타고 종착역까지 간다. 시내에서 잠깐 혼잡했을 뿐 공항까지 계속 터키인들의 생활공간을 지나서 간다. 국제공항이라 꽤 시끄러울 것 같은데 잘 사는 것을 보면 설계가 잘 되어 있는 모양이다. 바닷가 저 멀리에 버려져 있는 인천공항은 넓어서 편리하기는 한데 고립된 느낌이 나지만 아타튀르크 공항은 동네의 한 귀퉁이다.
에게해 항공의 기내식은 토마토 한 조각 끼워져 있지 않은 샌드위치라서 먹기가 참 힘들다. 생선과 야채를 좋아한다는 그리스의 기내식이 어째 이러는지. 한 시간 만에 아테네에 도착한다. 인당 왕복 25만원이라는 꽤 비싼 비용으로 예약을 했는데 허탈하다. 게다가 15일만에 다시 비행기를 타게 되니 귀가 찧어질 듯이 아프다. 일주일 단위로 비행기를 타지 않는 한 이 증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어쨌든 징검다리로 비행기를 타야하니 귀국할 때까지는 더 이상 귀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고통 한 고비를 잘 넘긴 느낌이다.
아테네 공항은 이름을 외우기가 힘들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이름이 긴가.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공항)는 현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고 한다. 무일 보다 꼭 100년 전인 1864년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변호사로 활동하며 오스만투르크의 지배에 대항해 크레타 해방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크레타 자치정부의 총리가 되었고 후에 그리스 총리도 역임했다. 그 후 왕정복고에 반대하다가 파리에 망명해서 1936년에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런데도 대표 공항의 이름에 그의 이름이 붙었으니 김구 선생이나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인물인 모양이다.
공항 대합실을 나오자마자 시티은행 ATM이 있어서 300유로를 찾았다. 더 많이 찾고 싶었지만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참았다. 불법 체류자들이 많은 데다가 정치와 경제 모두 불안하니 여행자의 마음도 덩달아 불안해진다. 여행자를 위한 안내데스크도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여행자가 많지 않으니 우리처럼 물어봐 주는 사람들이 반가운 듯 한다. 시내까지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할까 하다가 메트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신타그마 광장까지 M3(BLUE LINE)를 타고 가서 RED LINE을 타고 네 정거장을 타고 가서 내리면 호텔이 가깝다고 한다.
전철 티켓은 기계에서 출력하면 되는데, 그룹권은 2인이 14유로, 3인이 20유로고, 1인은 8유로다. 불행하게도 4인권은 없다. 2인권 2개를 끊어서 시내를 진입하기로 하고 표를 끊고 나서 안내판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더니 여행자들을 위한 3일(72시간) 교통권이 있다. 인당 20유로다. 공항만 왕복해도 인당 14유로인데, 인당 20유로로 시내의 모든 교통수단을 다 이용할 수 있고 공항 왕복도 가능하다는 여행자 교통권은 경제적이다. 사무실로 가서 그룹권 2장을 반납하고 80유로에 3일권을 4장 샀다. 별로 특별하지도 않다. 그룹권과 똑같은 모습인데 도대체 어떻게 구분되는지 모르겠다. 일단 각인을 했다. 각인하지 않거나 무임승차를 하면 무조건 30배라고 들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그리스어로 적혀 있는 전철역 이름을 읽기 위해 애를 썼더니 뒤에 앉은 그리스인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리스 문자의 파닉스를 몇 번째 외우고 있지만 발음도 어렵고 외워지지가 않는다. 한 두 가지 질문을 했더니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데, 영어 발음을 알아 듣기가 쉽지는 않다. 물론 발음이 좋다고 해서 꼭 알아들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리스 문자는 수학이나 화학 문자로 많이 사용되어서 눈에는 익는데, 막상 발음을 하기가 어려웠다. 옆에 칸에 앉은 독일인도 우리와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런데, 그리스인들 영어 다들 잘 하는구나. 다행이기는 한데, 천재도 발음이 알아듣기 힘들다고 한다. 코너를 발음하는데 ‘코르나르’처럼 들린다.
어두운 밤에 낯선 땅에 내려서도 천재는 알아서 길을 잘 찾는다. 부킹닷컴에서 예약한 칸디아 호텔은 꽤 크고 살짝 낡은 호텔이지만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4인실을 예약했는데, 트윈룸 2개를 주고 내일 상황을 봐서 4인실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방에 올라가 보니 제법 넓어서 굳이 방을 바꿔달라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화장실도 두 개가 되니 더 편리하지 않겠는가. 이스탄불의 4인실도 65유로였으니 이곳도 그 정도 가치는 할 것이다. 방도 참 따뜻하다. 그리스의 경제상황 만큼이나 으스스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니만큼 호텔의 상황은 잘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녁 준비를 위해서 으스스한 골목길을 따라가서 작은 가게에서 쌀과 파프리카, 살라미와 물을 사왔다. 언제나 우리의 저녁은 풍요롭고 개운하다.
내일은 날씨가 좋다고 하니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한 아테네 시내 구경을 하면서 야외를 돌고, 시간이 남으면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 신전을 다녀오기로 했다. 비가 올 확률이 40%인 모레는 델피를 다녀와서 역시 시간이 남으면 박물관 한 곳을 가기로 했다.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워낙 먼 곳에 있으므로. 친절한 그리스인으로부터 수니온 곶을 가려면 시내에서 버스를 타는 것 보다는 전철을 타고 외곽으로 빠져 나가서 거기에서부터 타고 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주었다. 땡큐다.
아, 그리스다. 어쩌면 꿈에 그리던 곳이다. 민주주의와 철학과 학문의 모태가 아닌가? 지금 그들이 어렵고, 전성기는 머나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그리스는 그리스이고 아테네는 아테네다. 감동의 첫 발이다. 고맙고 행복하게 생각하자. 그들이 아직까지 평화롭게 살고 있음을. 아 참, 친절한 그리스인이 전철역 한 곳의 이름을 발음해 달라고 하자, 40년 전의 독재자가 자기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인 곳이라고 한다. 독재자는 정말 오랜 동안 서민들을 씁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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