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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이스탄불이 불타고 있다_130114, 월

가방을 도둑맞은 것에 대해 짧은 순간 마음을 정리했다. 뒷정리나 잘 하자. 그 가방에 들어있는 것 중에서 가장 경제가치가  큰 것이 새로 구입한 전기레인지이지만 가격은 5만원 이하다. 책은 한 번 이상 보았고, 옷들도 이미 충분하게 입어서 버린다고 아까울 것들은 아니다. 전기밥솥도 여행에 꼭 필요한 사랑스러운 물품이기는 하지만 벌써 10년 가까이 사용한 제품이라 없어져도 아까울 것은 없다. 

허망하게 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받은 충격이 더 문제지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다. 좀 더 정신을 집중하고, 확인하고, 즐겁게 여행하자. 그래, 속옷이나 양말도 터키 여행 기념으로 이곳에서 사 입도록 하지 뭐.




마음은 그렇게 다독였지만, 아이들은 또 다른 짐칸으로 보이는 곳으로 허겁지겁 뛰어갔고, 무일도 저 멀리서 아무 일이 없다는 듯 평화롭게 일하고 있는 승무원에게 달려갔다. “우리 짐을 도둑 맞았어요. Help me! Our baggages are stolen!”라고 외칠 순간에 저 멀리서 천재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 있어요, 아빠” 

가방을 찾았다. 단순한 차이를 생각하지 못한 엄청난 착각이었다. 이스탄불행 페리는 탈 때는 뒤쪽에서 타고, 내릴 때는 앞쪽으로 내리는 시스템이어서 짐칸의 위치를 착각했던 것이다. 한 칸인줄 알았던 짐칸이 모두 네 칸이나 되었던 것도 우리를 겁먹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게다가 운 나쁘게도 짐을 둔 칸을 빼고 나머지 세 칸을 차례로 뒤져나가도 가방이 보이지 않자 놀람의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친절한 아주머니를 도둑으로 몰아버리면서. 

아주머니, 죄송해요. 

간밤에 난리를 치르고 좋은 호텔에 누웠더니 세상 모르게 잘 잤다. 한밤중에는 라디에이터까지 가동이 되어 더욱 따뜻했다. 10시가 다 되어 일어나서 샤워를 마치고 테라스 식당으로 올라갔다. 11시까지 아침 식사를 주는 터키의 호텔은 게으른 여행자들에게는 천국과 같다. 

사방이 툭 트여서 정말로 아름다웠다. 마르마라해와 아야 소피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고, 햇볕은 따갑게 내리쬐고 있다. 식당 안에서 측면으로 쏟아지는 태양빛은 너무 뜨거워 괴로울 지경이었다. 모자 쓰고 선글라스 끼고 식사를 해야 했다. 언제나 이렇게 뜨거우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엊그제까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구경하기가 힘들었으니 이런 날씨는 알라가 우리 가족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한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일이. 







뜨거운 태양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선글라스까지 쓴 매우 요란스러운 차림의 아가씨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커피와 차이를 서비스 해 주는 식사는 평범했으나 맛은 좋았고, 이곳의 경치도 언제나 가슴 속에 남아서 그리워질 것 같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놀란 가슴은 아직도 긴강감으로 쪼여 있다. 그 쫄아든 가슴을 두툼한 옷 속에 감춰두고 톱카프 궁전(Topkapɪ Saray)로 향했다. 드디어 우리가 이스탄불(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을 보는구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웅장하게 자리잡은 아야 소피아 앞에 톱카프 궁전이 있다. 목적지는 궁전인데도 카메라는 자꾸 성당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건물이다. 요란한 치장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야 소피아의 내부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햇볕을 즐기며 돌아다니기로 했다. 


개 한 마리가 궁전의 첫번째 문인 '황제의 문' 앞 입구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자고 있다. 길거리가 워낙 깨끗해서 개들도 편안하게 누워잘 수 있을 정도다. 아니다. 원래 개들은 아무데나 누워자니까, 그렇게 누워자다 일어난 개들을 사람이 만져도 지저분한 느낌이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개를 보고 나니, 무위도식하며 먹고 놀다가 때로 공부하는 우주신에게 입장권을 사오는 일을 맡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니체리 정원으로 들어서서 푸른 잔디밭과 이름 모를 나무와 보스포러스를 보면서 잠깐을 걸어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궁전과 보물박물관, 하렘으로 구성된 볼거리 중에서 하렘을 제외하고 두 개를 볼 수 있는 표를 사오라고 시켰다. 그랬더니 어떻게든 영어를 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쪼르르 자판기로 달려간다. 음, 지시를 잘못했군. 그래도 자판기 옆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터키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 이것저것 정보를 주자 잘 알아듣고 제대로 된 표를 사온다. 


하렘은 들어가서 따로 표를 구입하면 된다고 한다. 25리라니 중국의 살인적인 입장료에 비하면 그리 비싸지도 않다. 볼 것이 많은 곳에서는 열심히 보고 다녀야 하니 눈은 호강을 하지만 다리가 몹시 피곤해진다. 외국인들은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다니는데, 우리는 여행 안내서에 나오는 내용들도 다 읽어 보기가 어렵다.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도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 

친절하고 세세한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오늘 하루를 이곳에서 다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여행 준비과정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아는 만큼만 즐기지 말고, 더 많이 알수록 더 즐거운 상황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처럼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없다면 고민할 일은 없을 것이다. 







유럽의 성당들을 장식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는 달리 술탄 궁전의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는 기술의 문제일까, 아니면 술탄들의 종교적 경건함에서 나오는 것일까도 매우 궁금했다. 맘 편하게 소박함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생전 보지 못했던 문양, 계단 설계, 분수, 응접실, 정자, 양탄자, 보물, 활, 장총, 칼 등등 볼 것은 끝이 없으나 점점 몸이 피로해진다. 어떻게 하면 이 피로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 

빨리빨리 보고 지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유물들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이 박물관은 후레쉬만 조심한다면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막상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보니 별로 찍지도 않았다. 사진 찍기 조차 힘이 들 정도였나보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보물들이 신기했지만 더 좋았던 것은 모세의 지팡이나 다윗의 칼 등 구약 시대의 유물들이 마치 진짜처럼 전시되어 있는 것이 더욱 신비로웠다. 정말 진짜로 고증된 것인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것과 달리 마호멧의 수염과 이빨이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니 진품을 모셨을 것이다. 엇, 정말 놀라운 것을 보았다. 너무 평범해서 머리 속에 남아 있지를 않다. 이 부분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진 찍기도 구경 하기도 지칠 정도로 많은 볼거리들 때문에 입장료 아까운 생각은 나지 않고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기만 했다.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결국 벗어났다. 구경 한 번 잘 했다.

귤하네 공원으로 간다. 좀 쉬자. 벌써 봄을 준비하시는지 백합 구근을 심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남자와 여자가 어우러져 할 일을 온통 남자들이 하고 있다.







가끔 앉아서 다리도 쉬면서 거대한 공원을 지나 보스포러스 해협 쪽으로 내려갔다. 시르케지 역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관광에 지쳐서 그냥 가기로 했다. 아직 시간 많은데, 뭐.

에미뇨뉴 부두에서 보트 투어(2시간 1인당 10리라)를 떠나기에 앞서 고등어 케밥을 먹어 보기로 했다. 식당 앞의 아저씨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5리라를 외쳐댄다. 아, 불안하다. 이 식당 저 식당을 빙 둘러 보다가 제일 첫번째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그래 일단 먹어보자. 가지고 가나, 앉아서 먹나, 안에 들어가서 먹나 모두 5리라란다. 흠, 좋아. 일단 2개를 시켰다. 차이 두 잔과 함께. 타맘. 약간 가시가 걸리기는 하지만 먹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괜찮구먼. 우주신은 너무 맛있단다. 여행기를 읽어보면 비리다는 사람도 있고, 가시도 심하게 걸린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레몬 살짝 뿌려서 먹으니 양도 푸짐하고 좋았다. 휴지도 준다. 

혹시나 해서 두 개의 케밥을 넷이서 나눠 먹었는데, 너무 맛이 좋아서 두 개를 더 포장해서 달라고 했다. 한국말을 못하시는 제2의 무스타파 아저씨가 너무도 신나게 주문을 받아서 가신다. 천재가 계산을 담당했더니 연신 장난을 거시며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놀러 나온 사람 같았다. 많은 터키 사람들이 매우 유쾌해 보이기는 했지만 이 아저씨는 유쾌함이 매우 체질이시다. 두 개의 케밥을 싸들고 보트로 가는 우리들을 아저씨가 즐겁게 배웅한다.  

그런데, 저녀석 앞에 놓인 닭뼈다귀는 먹으라는 것인지, 음식 좀 달라고 시위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무일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웃으며 자고 있다.












 보스포러스 투어는 아픈 다리를 쉬는 시간이면서 놀라운 석양을 보는 시간이었다. 역시 오래 바라볼 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이스탄불 전체가 완전히 불타고 있다. 사진으로는 절반도 담아내지 못했다. 정말 렌즈 바꿔야겠다. 

귀여운 꼬마 숙녀들의 사진도 많이 찍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놀랄까봐 참았다. 해가 지자 날은 점점 추워지고, 오랜 관광으로 피곤해진 얼굴이 많이 일그러져 있다.












 이집트 바자르에서 한 팀은 버스 티켓을 사러 가고 무일과 그리미는 저녁을 위해 감자, 양파, 고추를 사러 갔다. 정신이 없다. 그래도 무사히 살 것은 샀다(2.5유로). 유로를 내니 유로로 거슬러 준다. 쌀 사는 곳은 너무 멀어서 포기하고 닭 1kg(10리라)과 디저트도 샀다. 푸짐하다. 맥주도 3병 샀다. 15리라. 먹자 마자 모두들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어제에 이어 너무 긴 하루였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궁금한 것이 생겼다. 로마 제국 - 서로마 제국 -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1) 로마제국은 지중해를 내해로 삼아 라틴어와 로마법을 기반으로 하여 유럽과 소아시아, 북아프리카와 영국을 영토로 번성했다.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으면서 공동황제(로마제국에서는 황제가 두 명인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로 임명한 두 명의 아들에게 각각 동쪽과 서쪽의 로마를 다스리게 했던 것이 역사가들에 의해 동로마, 서로마제국으로 불리워진 것이다. 

2) 서로마제국은 로마제국의 서쪽이다. 서로마 제국은 오도아케르가 이끄는 강력한 야만족들에 의해 로마와 이탈리아 반도까지 점령되면서 붕괴(476년)되고, 로마 제국의 동쪽만 남게 된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해 가는데도 안정된 체제를 유지했던 동로마 제국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해서 이탈리아와 서유럽은 로마화된 야만족들의 세상이 되었다.

3) 동로마제국은 로마제국의 동쪽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중심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원래 그리스 민족이 세웠던 비잔티움이라는 도시가 로마 황제 콘스탄틴누스에 의해 점령되면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 과거의 도시를 근거로 후세의 역사가들이 동로마 제국을 비잔틴 제국이라고 불렀다. 동로마 제국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로마 제국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로마제국과 달라진 것은, 그리스어가 공통어로 사용되었고, 카톨릭파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다는 것이다.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