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예정 시간인 7시 보다 1시간이 앞선 새벽 여섯 시에 불과한데 커다라 오토갈에 도착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표지판을 보았더니 Blueseas 어쩌고로 되어 있다. 아직 아니겠지. 다시 눈을 감고 자려고 하는데, 천재가 아무래도 부르사인 것 같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졸린 눈을 부비고 바깥으로 나가 물었더니 부르사에 도착했다고 한다. 허 참, 아직 동도 트지 않았다. 게다가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모양이다. 그것은 비록 불편한 잠이지만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그 생각만으로 벌써 피곤이 쌓인다.
'아, 피곤해.'
바깥이 깜깜해서 버스를 타고 가려다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서 일단 뜨끈뜨끈하게 난방을 하고 있는 오토갈에서 쪽잠을 자다가 해가 뜨면 움직이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너무 밝고 너무 뜨거워서 쪽잠 자기도 불가능하여 대충 눈만 감았다 떴다 하면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엎어져서 편하게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 화장실 가는 길에 만난 아가씨는 왜 그렇게 반갑게 말을 거는지 모르겠다. 영어는 못한다고 한다. 어쨌든 참 기분이 좋았다. 잠이 깰 정도로. 그리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던가? 했어야 하는데.
버스비가 1.7리라 어쩌구 쓰여 있는데, 나한테는 무려 12리라를 받는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순간 매표소에 대고 '울루자미'가 아니라 '울루다으'라고 외쳤던 것이 생각났다. 길게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울루자미'라고 말하면서 버스표의 교환을 요구했다. 점원 아저씨는 버스표에 38번 버스를 크게 써 주더니 저쪽으로 가라고 한다. 허 참. 나중에 생각해 보니 부르사 교통카드를 사게 되면 할인 가격에 갈 수 있다는 말 같았다.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가족의 추측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가 되는 어떤 분에게 물었다. 부르사 교통카드가 이스탄불에서도 쓸 수 있느냐고. 안된다고 한다. 그럼, 이렇게 비싼 교통비를 지불하며 다녀야지.
울루자미까지 가는 버스는 노란색 38번 굴절 버스다. 짐을 놓을 공간이 넓다.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장애인용 휠체어를 세우는 공간이었다. 주변에 장애인은 없었다. 가방 네 개를 모두 그곳에 내려놓고 여유 있게 앉아서 간다.
사람들이 제법 많다. 제법 시간이 흘러서 건너편에 앉은 분에게 울루 자미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보며 금방이라도 대답해 줄 분위기다. 다행히 무일이 제대로 사람을 찍은 모양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하고 나선 마지막에 자기와 같이 내리자고 한다. 부르사는 큰 도시라고 하더니 과연 집들도 많고 가게도 많고 차들도 많다.
울루자미 앞에 내려서 우물쭈물하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더니 길을 가르쳐 주었던 친절한 터키인이 다시 되돌아와서 저 건물이라고 딱 찍어 가르쳐 준다. 울루자미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 새벽에 호텔도 예약하지 않은 상태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가 문제였다. 그것을 설명하는 대신에 근처에 맥도널드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20미터 뒤쪽으로 가면 있다고 한다. '사으 올룬(고마워요)' 고마운 아저씨가 기분 좋게 웃으며 제 갈길을 가신다.
문을 연 맥도널드에는 손님이 없다. 그래도 비도 피하고 화장실도 있다. 그리미와 우주신을 쉬게 하고 천재와 함께 호텔을 구하러 다니기로 했다. 한 시간 안에 적당한 호텔을 구할 수 있어야 할텐데. 자신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부킹 닷컴에 나오지 않는 호텔이라. 우리나라 모텔들도 부킹 닷컴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얼마나 잠자기 좋은가, 가격도 싸고. 재활용 시트가 다소 문제지만, 요즘은 그런 문제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숙소들이 있겠지. 찾아보자. 그래도 발걸음은 무거웠다. 하늘도 우중충하다.
검색해 놓은 Artic Hotel은 3인실이 150유로에다가 추가 침대가 15유로다. 그런데 완전히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밤을 묵어야겠다고 했더니 매너저가 한 말이다. 분명히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섞여 있었다. 저녁에 다시 들러보니 단체 관광객이 호텔을 점령하고 있다. 인근의 다른 호텔들도 가격은 비슷했다. 호텔들이 3성급 정도로 참 깨끗해 보였다. 그동안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적어도 200 유로는 있어야 네 사람이 하루 밤을 묵을 수 있겠다. 4인이 65유로에 묵다가 인당 50유로라고 하니 협상을 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벼룩도 낯짝이 있지 않은가?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언덕길이다. 완전히 낡은 집과 건물들이 좁은 골목으로 계속 이어져 있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더욱 우중충한 도시가 되어 버렸다. 규모는 제법 큰데, 방들은 정말 좁고 답답하며 냄새까지 나는 오텔들도 150리라를 달라고 하면서 아침은 별도(인당 5리라 정도였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런 돈을 주고 잠을 자기에는 부르사의 날씨와 주변 풍광은 별로다. 울루자미도 도심 한 복판의 혼잡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날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르사 시내 곳곳에는 언제 내린 눈인지 시커멓게 얼어 붙어 있었고 내리는 비에 줄줄 녹아내리고 있었다. 지저분했다. 우리는 이런 지저분한 거리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과 멋진 문화를 보러 온 것이다. 잘못 온 것일까?
오래된 도시의 증거로 돌들이 촘촘하게 박힌 도로는 한가운데로 물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시원하게 물이 흘러내린다. 신나게 달리는 차들이 가끔 그 물을 세차게 튀게 해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허름하고 작은 오텔로 들어갔다. 5인실을 100리라에 주겠다고 한다. 방은 넓었다. 80년대 여인숙의 모습 그대로였다. 침대가 5개 있고,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만 다르다. 좌변기 없고 샤워실도 오래된 수도꼭지 그대로다. 청소를 한 것 같은데도 샤워실에는 머리카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청소가 끝난 직후에 샤워를 했나 보다.
어떻게 하겠느냐고 해서 일단 80리라로 협상했다. 흔쾌하게 '타맘'. 그러면 가족들과 이야기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다른 오텔로 갔다. 역시 100리라인데 80리라로 가능하다고 한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4인실인지 2인실 두 개인지 도저히 확인이 안 된다. 그분은 너무 답답하지만 오후 1시에 오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없다.
방을 보러 갔다. 2인실은 너무 좁아서 답답했다. 결심이 선다. 그래 아까 거기로 가자. 맥카페 맥모닝을 시켜서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하고 가방을 끌고 오텔로 갔다. 가면서 이름을 확인했더니 그 유명한 '귀네스 오텔'이다. 가지 않으려고 했던 곳이다. 이 오텔은 한국 사람을 끌어들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귀네스 오텔은 아침인데도 체크인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런 화끈한 호텔은 처음이다. 호텔이라 할 수는 없다. 잠자는 곳이다. 먼저 씻을 사람은 씻고 자고 싶은 사람은 자기로 했다. 눈이 아프고 몸이 무거워서 일단 자야겠다.
바로 머리맡에 라디에이터가 있는데,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약간 따뜻한 정도로 과연 난방이 되는지 궁금할 정도다. 어쨌든 차가운 것은 아니니 위안이 되었다. 뜻밖에도 두 시간 정도를 아주 잘 잤다. 정말 따뜻했다.
샤워를 했다. 혹시 중간에 찬물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니었다. 갈수록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파란색 수도꼭지를 틀어서 찬물을 섞어야 했다.
졸라 땡큐 귀네스.
수건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낡은 벽걸이에 걸려 있어서 빤 수건인지 누가 사용하고 걸어놓은 수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냥 믿고 써 보기로 했다.
물이 깨끗하게 잘 닦였다.
귀네스에 대한 선입견과 현장 상황으로 불신이 팽배하다 보니 무료 와이파이가 된다고 하면서 알려준 비밀번호를 잘못 이해해서 한참이나 씨름을 했다. 된다 안된다. 결국 천재가 내려가서 말 잘 통하지 않는 할머니와 열심히 대화를 나눠서 해결책을 가지고 돌아왔다.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아니라 패스워드가 그렇게 길었던 것이다. 참, 의심이 많은 여행자다, 우리는. 믿고 살아보자. 우리가 이렇게 된 데는 동호회의 일부 귀네스 이용자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이곳에서 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귀네스를 가격 대비 최선의 호텔이라고 치켜세워 놓았으니, 막상 우리 의견을 믿고 투숙을 결정한 이용객들은 많이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하자. 우리는 5인실을 4명이 인당 20리라로 저렴하게 묵었다. 아침 식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밥도 마음대로 지어먹을 수 있는 전기가 공급이 되고, 무료 와이파이, 공용 욕실이기는 하지만 따뜻한 물이 충분하게 나오는 것에 만족한 것이다. 게다가 방이 넓어 답답하지 않았고, 라디에이터가 약하게 작동하지만 걸어놓은 빨래가 잘 말라서 고마웠다. 아주 소박한 만족감이다.
15세기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전통 가옥이 아름답게 늘어서 있다는 주말르크즉은 멀고 먼 오지는 아니었다. 울루자미 앞 일방통행 길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표를 24리라에 8장을 사서, 4장은 갈 때 쓰고, 4장은 올 때 쓰면 되는 대도시 부르사의 한 동네이다. 부르사가 서울이라면 주말르크즉은 재개발되기 전의 서울 강북구의 삼양동이다.
울루자미 앞에서 이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는 한 대이고 배차시간이 좀 길다 뿐이다. 우리는 운이 좋았는지 5분도 기다리지 않았는데 버스가 도착했고, 오전에 움직여서 여유가 있었다. 그렇지만 오후에 움직이는 사람들은 막차 시간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노선버스 외에도 부르사 시내에서 돌무쉬가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주말르크즉에서 부르사로 출발하는 돌무쉬를 보았다.
22번 버스가 도착해서 기사 아저씨에게 '주말르크즉'을 외쳤더니 버스 안의 많은 사람들이 '주말르크즉 타맘'으로 화답한다. 모두들 신나게 웃는 얼굴로 외쳐대니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웃어야 한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라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주말르크즉을 가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차창 밖으로 도시 외곽의 을씨년스러움이 지나가고 있지만, 버스 안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이방인을 힐끗거리며 남녀노소 모두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마구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참았다. 우리 가족은 주목받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에피소드를 만들어야 여행이 즐거워진다는 무일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포근한 분위기 속에 20분 이상을 달려서 산동네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접어들면서 작은 돌들이 촘촘히 박힌 방식으로 광장이 꾸며진 것을 보니, 이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관광안내소도 없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관광객 몇 분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노점상이 빙 둘러 열려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대충 전경 사진 몇 장을 찍으면서 분위기를 느껴 보았다.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래 시골 마을이 그렇지 뭐, 쉬린제 마을에서도 이미 느꼈지 않은가. 그냥 골목길을 따라서 집과 사람 구경하며 돌아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밥을 먹어야 했다. 맥모닝을 하나씩 먹고 나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으니 허기가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 일단 식당부터 찾아보자.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골목길을 접어들자마자 오래된 문 앞에 식당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무작정 들어갔다. 쉬린제 마을의 그 집 보다도 덜 진화했다. 실내 공간도 없이 한쪽은 부엌이고, 한쪽은 테이블이 깔린 손님들의 식사 공간이며, 저쪽 벽은 오래된 포도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고, 그 벽의 앞은 정원 겸 빨래 말리는 장소 겸 장독대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만한 이 집은 할머니 세 분이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셨다. 우리가 들어가니 무척이나 반가워하신다.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어온 듯한 기분이기는 했지만 할머니들의 반가워하시는 모습을 내치기 어려워 그냥 식사를 하기로 했다. 대화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국말로, 할머니들은 전통의 터키어로 마구 웃으며 대화를 했다. 손짓 발짓까지 더하니 그 자체만으로 즐거웠다.
가격도 이름도 모르고 그냥 되는대로 시켰다. 그리고 애플티까지. 병에 담긴 고추와 오이절임도 달라고 했다. 메인 메뉴와 애플티를 챙기시느라 금방 잊어버리셔서 메뉴가 다 나온 뒤에 한 번 더 말씀을 드렸더니 요즘 기억력이 자꾸 떨어진다고 하신다. 어떻게 아냐고? 절인 오이 가지고 오시면서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시면서 계속 뭐라고 말씀하셔서 그런 줄로 이해했다.
속에 감자가 들어 있거나 치즈가 들어있는 부침개다. 담백한 맛이다. 따뜻한 애플티와 함께 먹으니 따끈한 것이 고소하다. 그렇다고 배가 터지게 먹고 싶을 만큼 맛있는 것은 아니다. 한 끼 식사로 적당했다. 절인 오이와 야채도 신 맛이 강했지만 먹을 만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리나라 부침개 같은 이 음식은 괴즐레메다. 터키 음식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했는데, 현장에서는 몰랐다.
나중에 들었지만 제법 괜찮은 레스토랑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깔끔하고 고소한 식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말르크즉의 어떤 식당도 먹을만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할머니들의 구수한 손맛을 느끼고 왔다. 할머니 한 분이 자기들은 사진을 찍으면 얻어맞아서 안되니 우리 가족사진을 찍어 주시겠다고 한다.
과연 이 할머니가 우리 사진을 제대로 찍어 주실 수 있을까? 걱정 말라고 하신다.
정말 잘 나왔다.
식사를 잘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마을 구경을 나서야겠다. 그런데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내리니 구경하는 재미가 떨어진다. 사진을 찍기도 힘들다.
그러다가 어느 집 이층에서 창밖을 내다보시는 할머니 한 분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열심히 무슨 말씀을 하신다. 손가락으로는 저쪽 어디를 가리키면서. 못 알아듣겠다.
아하, 날이 개었다는 것이구나. 아직까지 손에 들려 있는 우리의 우산을 걷으라는 말씀이셨다. 아이고, 고마우셔라. 사진이나 찍어둘 것을.
조만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계획이라고 하니 점점 더 세련되게 리모델링은 될 것이다. 색칠도 하고, 무너진 흙벽도 다시 손을 보고, 아예 새로 짓는 집들도 제법 눈에 띈다. 비가 내리는 데도 진흙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다. 거푸집 지어서 시멘트 부으면 간단하게 끝날 일을, 일일이 삽과 손으로 진흙을 개어 힘들게 공사를 하고 있었다.
정말 이곳은 볼 것이 없는 데다가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으니 금방 기운이 빠져 버렸다. 그런데, 누군가가 빵 봉지를 들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살펴보니 저 위에 빵가게가 있었다.
쭈뼛쭈뼛 빵가게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일단 큼지막한 빵 한 개를 사면서 말을 붙여 보았다. 매우 친절하면서 호기심을 갖고 우리를 대한다. 내친김에 주방까지 밀고 들어갔다. 한쪽에서는 기도를 하고 계신다. 조금도 경계의 빛이 없다. 사진 찍자고 했더니 좋단다. 젊은이들이 활기에 넘쳐있다. 사람들이 꾸준히 빵을 사러 오는 것도 좋았다. 역시 흥겨운 사람들을 만나야 여행이 즐겁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오래된 마을의 빵을 굽는 가게의 유쾌한 청년들을 만나고 기분이 상쾌해졌다.말은 통하지 않았어도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하여
얼굴 표정이 살아나면서
7살도 채 안된 어린 소녀가 다가와 손을 잡고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러고 나서 걷는 내내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손을 흔들며 웃는다.
평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
비가 내려서 그런지 따뜻한 버스에 앉았더니 몸이 노곤해지면서 졸음이 온다. 부르사 입구에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4, 5명 타더니 의자에서 졸고 있는 천재를 보며 뭐라 뭐라 하고 웃는다. 무일이 인사를 했더니 좋아라고 답을 한다. 부르사의 날라리 여중생인 줄 알았더니 17살이라고 한다.
한참이나 천재의 멋진 모습에 자기들끼리 좋아서 난리 더니 우리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는 버스 정류장에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손을 흔들어 댄다. 천재도 터키에서도 자신의 멋진 모습이 통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서 그랬는지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준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주고 싶었는데, 그리미가 날라리들 한테 잘못 걸리면 시끄럽다며 무일의 손을 찍어 누르는 바람에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철없는 아이들의 설렘은 시끄럽지만 즐거움이다.
울루자미 앞길이 일방통행이라 아래길로 비잉 돌아서 처음 차를 탔던 곳에 다시 내려준다. 물론 안내방송이 없어서 우리가 알아서 내렸다. 어렵지 않다. 울루자미 앞은 금방 눈에 익고 사람들이 아주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비가 그친 듯하더니 또 내린다. 자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나오고 있었다. 비도 피해야 하고 해서 얼른 들어갔다. 관광객들을 위한 별도의 동선도 없다. 이슬람 신자거나 아니거나 그냥 신발을 벗어서 나눠주는 비닐봉지에 넣어서 들고, 여자는 머리에 모자를 쓰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그리미는 외투에 붙어있는 모자를 쓰거나 미리 준비해 간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들어갔다.
자미 안은 참 포근하고 편안하다.
어느 분의 여행기에서 울루자미의 칼리그라피(calligraphy ; beautiful handwriting / 다음 어학사전에서)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자미 안에는 특별히 대단한 장식이 없다. 하얀 회벽(?)에 칼리그라피로 모양을 낸 문양들만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 무일에게 이 칼리그라피를 읽고 해석해 준다면 고마운 일이겠다.
생각해 보니, 그 수많은 친절한 터키인들에게 왜 한 번도 저 아랍어가 무슨 뜻인지를 묻지 않았을까 의문이 든다. '하나이신 알라를 믿어라' '알라 외에 신은 없다' '알라의 이름으로 평화를' '알라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뭐 이런 뜻일 것이라고 그냥 믿어버린 모양이다. 다음번에 누군가를 만난다면 꼭 물을 것이다. 이 결심은 여행이 끝나고 한 것이니 아마도 다음 번 터키 여행이 될 것이다.
울루자미를 나와 비가 내리는 속에서 코자 한이라는 실크로드 시대의 상점가(울루자미 바로 옆이다)도 지나고, 저녁을 먹어야 할 이스켄데르 케밥 집도 지나고, 예쉴 자미를 찾아 정처없이 계속 걸었다. 꽤 걸었다. 15분에서 20분 정도. 그런데, 이 귀여운 녀석이 그리미를 바라보며 계속 따라왔다고 한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데도 우산도 없이 계속 따라온다.
결국 우산을 씌워서 어디 사는 누구냐를 물으며 반갑다고 사진을 한 장 찍고 잠깐이지만 함께 걸어주는 영광을 주었다. 사탕도 두어 개 집어주고 어서 가라고 했더니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밝게 웃으며. 참 귀여운 녀석이다.
예쉴 자미는 녹색의 교회라는 뜻이라고 한다. 예쉴 부르사에 어울리는 예쉴 자미다. 넓고 소박한 실내에는 두툼한 양탄자가 깔려 있다. 비속을 정신없이 걸었더니 막상 자미에 도착해서는 그저 앉아서 쉬고 싶을 뿐이다. 발도 주무르고 몸도 덮이고 마음껏 기도도 드리며 엎드려 쉬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대단한 건축학적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교회이니 그 속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기도할 뿐이다.
아니 그저 신의 보호 아래 피곤한 여행자로 편안하게 쉬는 것이다.
볼 것 다 보았으니 먹으러 가자. 오늘 저녁은 외식이다. 귀네스 오텔에서 식사를 준비할 수도 있지만 부르사의 명물이라는 이스켄데르 케밥을 먹어야 한다. 크게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싶기도 했다. 오면서 발견했던 케밥집이 원조인지 아닌지는 두세 번 물어서 확인했다. 'yes'라고 했다. 좋다.
뭐 특별히 많이 시킬 필요도 없다. 울루다으 사이다와 코카콜라, 케밥 3개와 우주신용 1.5인분(일종의 곱빼기다) 케밥 1개로 충분했다. 맛도 터키의 모든 식당에서처럼 맛이 있다. 실내 장식도 좋고, 오는 손님들도 약간 부티가 나지만 분위기 차분하고 좋다. 현금은 한 푼도 뽑아낼 수 없는 그리미의 카드로 계산했다. 계산은 된다. 참 다행이다.
실크로드 상점을 구경하고 길거리 악사들의 연주를 들으며 숙소로 휴식을 취하러 들어갔다. 따뜻하다. 편안하게 누워 있다가 세마 의식을 보러 갈 시간이 되었다. 저녁 9시 반부터 한다고 했으니 지금쯤 출발해야 한다. 먼저 내려가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세마의식을 볼 수 있냐고. 밖에 비가 쏟아지니 우산을 가져오라고 하신다.
우산을 들고 온 가족이 출동을 하자 할아버지는 아무 소리 없이 앞장서신다. 한참을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시더니 부르사 문화원에 우리를 내려놓으신다. 교회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는데, 얼마나 사람이 많이 왔는지 비를 피해 신발을 놓을 틈도 없다. 안내를 맡으신 듯한 분이 오시더니 다른 쪽 문으로 안내를 한다. 약간 여유가 있지만 여전히 신발들이 많다.
이 많은 신발들을 나중에 제대로 찾아 신을 수나 있을까? 무일을 제외하고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산도 하나 가득 꽂혀 있다. 우산도 4개나 되는데 다시 찾아 나올 수 있을까? 안내하시는 분이 편안한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그리미는 여자들이 예배를 보는 2층으로 올라갔다.
대금 비슷한 옆으로 부는 피리와 북으로 단조로운 음을 계속해서 연주한다. 날카롭거나 클라이맥스가 없는 고요한 음악이다. 그렇게 삼십 분을 앉아 있다가 이맘이신지 한 분이 나오셔서 무려 1시간을 터키어로 강론을 하신다. 무척 재미있게. 조용히 눈을 감고 쉰다. 잠깐 졸기도 했겠지만 거의 깨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평화로운 열기로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끝났다. 안내하시는 분이 오시더니 사진 찍기 좋은 위치로 안내를 해 주신다. 허, 이런 환대를 받다니. 다들 '웰 컴'이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저 구경온 것인데.
음, 놀랍도다. 똑같은 자세로 침묵 속에서 계속해서 빙빙 돈다. 고개를 먼저 돌리고 발로 자세를 잡은 뒤 몸을 맨 뒤에 돌려야 하는 그런 개념이 없이 그냥 돈다. 끊임없이 땀이 흐르고 약간씩 비틀거리면서도 흔들림 없이 돈다. 15분쯤 지나서 많은 수도자들이 조용히 교대를 하는데도 한가운데의 젊은 수도사는 멈추지 않고 흔들림 없이 돈다. 정말 무아의 경지인 것일까. 하여튼 의심도 많다.
삼십 분 이상을 그렇게 무아의 경지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더니 조용히 자리에 앉아 묵상을 하고 의식을 끝낸다. 우리도 경건한 마음으로 가족의 평안과 건강을 빌며 잠자리에 들었다. 낡은 침대가 삐꺽 거리는 소리가 귀에서 점점 멀어진다. 세찬 빗방울 소리도 사라진다. 까만 옷을 입은 수도자의 동심원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는 모양이다. 온갖 어려움들까지.
아 참, 신발도 쉽게 찾아 신었다. 우산도 4개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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