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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잠깐 기다려 찾아줄께, 헉 10명이 넘었어_130113, 일

아침은 어제 주말르크즉의 활기찬 청년들로부터 산 빵과 토마토, 귤, 치즈에다가 전기레인지로 커피를 끓여 먹기로 했다. 늦게까지 자미 의식을 보느라고 목이 말라서 새로 산 물의 반은 어제 마셔 버렸다. 나머지 반을 끓였다. 간신히 커피 네 잔이 나온다. 커피믹스는 몸에 좋다는 것으로 샀더니 향이 싱거워서 두 개를 써야 하나의 맛이 나온다. 어제 따뜻할 때 먹을 때는 맛있고 고소했는데,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딱딱하고 맛이 떨어진다. 따뜻하게 해서 버터를 발라서 샌드위치를 해 먹으면 좋았을텐데.






아침을 먹고 어제 보지 못한 터키 전통 악기인 사즈(Saz)를 치며 노래하는 것을 들으러 갈 것이냐 말 것이냐로 잠시 논란을 벌이다가 일단 아침에 문을 여는지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우리 숙소 근처라고 했는데 우리는 보지 못했다. 울루자미 앞까지 내려가서 길가던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기 시작한다. 길을 가던 사람들까지 멈춰 서자 카페를 찾는 사람은 우리 식구 네 명까지 포함해서 열 명이 금방 넘어서 버렸다. 


영어를 제일 잘 하는 젊은 친구는 우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언덕길을 올라가서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그가 올라간 사이 또 다른 젊은이는 함께 가던 여자 친구를 먼저 보내고 우리를 직접 데리고 시장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러더니 시장 입구에 있는 찻집을 바로 찾아준다. 찻집에 잠시 앉아 있자니 젊은 친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찻집으로 들어온다. 바로 옆집이 우리가 찾던 집이란다. 나가 보니 과연 그렇다. 우리가 돌아다니는 사이에 열심히 차이집을 찾으러 다녔고, 처음 만난 장소로 우리를 데리러 갔다가 없으니까, 다시 한 번 우리를 찾으러 허겁지겁 다녔던 모양이다. 고맙다고 했더니 악수를 하며 양쪽 뺨을 비벼온다. 너무 고맙다. 차이 한 잔 같이 하자고 했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해 버렸다. 미안했다. 



우리는 예니 아쉬클라르 차이의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찻집에 들어갔다. 짧은 영어로 온화한 할아버지는 우리의 방문을 환영했다. 그가 들고 있는 사즈에 관심을 보이자 치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기타를 만져 보았으니 이것도 만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두 개의 줄을 한 쌍으로 해서 3쌍의 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방현은 레-솔-도로 조율된다고 한다. 한 쌍의 줄은 한 옥타브 차이가 나는 똑같은 음으로 조율된다고 한다. 사즈를 잡아 플랫을 집는 순간 한 쌍의 줄이 손가락 끝을 자극하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도저히 못 하겠다. 


할아버지가 오래된 목소리로 단조로운 멜로디의 연주를 하시며 노래를 부르신다. 마치 시조를 읊으시는 할아버지들의 목소리와 같다. 사즈 연주는 전주와 간주, 피날레는 화려하고, 시가 낭송될 때는 단조로운 화음으로 배경음악의 구실을 하게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그런데 뭔가를 열심히 보시면서 노래를 하신다. 나중에 설명을 하시는데 모든 노래의 시를 직접 쓰신다고 한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종이 꾸러미를 잔뜩 꺼내 놓으신다. 모두 지으신 시란다. 그 중에서 ‘아남(ANAM)’이라는 곡을 신청했다. 어머니라는 뜻이다. 노래는 방금 전 멜로디와 똑같이 흘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노래 중간에 아주 잠깐씩 노래를 멈추시고 살짝 눈물을 닦으신다. 이 할아버지는 아쉬크(사즈 시인으로 시를 지어서 사즈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사람)다.








또 한 분의 할아버지. 분명 지나다 들르신 할어버지다. 차상 위에다 우산을 턱 올려 놓으시고, 가벼게 사즈를 다루신다. 잘 치신다. 신나게. 다들 집시의 후예들이신가? 우리들에게도 뭘 하나 주신다. 일종의 캐스터네츠인데 세 개로 하니까 훨신 변화가 있고 리드미컬하다. 합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신다.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중국인 한 명이 온 이래로 한국인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이란다. 이메일을 적어 주시며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신다.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일어나야 했다. 5리라의 찻값만 내고 나오기가 미안할 정도로 따뜻한 시간이었다.




안탈리야 사바흐 펜션에서 기분좋게 빨래를 하다가 그리미의 윗도리 하나가 유치원생용으로 줄어들어버렸다. 효빈이 가져다 주자고 했는데, 그리미는 기어코 사바흐에 두고 왔다. 그리고 오늘 부르사의 옷가게가 엄청나게 할인하는 기회를 틈타 대체품을 사기로 했다. 네 사람이 우르르 들어가서 사진 찍고 이것저것 고르니 가게 안은 초긴장이다. 가격과 사이즈를 물어대자 서둘러 상냥한 여직원을 부른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모양이다. 그 사이에 쇼핑 나온 가족을 만나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이구, 귀여운 것. 쇼핑을 마칠 무렵 그 상냥한 여직원이 오더니 매우 미안해 하면서 매장 사진은 찍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동안 찍은 사진 중에서 매장과 관련된 사진을 보여주면서 전부 지워나갔다. 참 고마워한다.



38번 버스는 일방통행인 울루자미 앞을 지나 다시 오토갈로 간다. 이즈닉으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가 문제였다. 2시에 출발에서 90분이 걸리면 3시 반이고 그 때부터 2시간을 관광하면 5시 반, 다시 얄로바로 가면 6시 반이다. 페리를 탈 수 있을까? 처음 해 보는 일이니 모든 것이 걱정이다. 만일 볼 것이 많아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이즈닉에서 자든가 얄로바 근처 온천에서 하루밤을 자는 것으로 했다. 일단 이즈닉으로 가는 버스를 끊었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사이에 오토갈 안의 쇼핑센터 안에서 맛있는 간식거리를 사온다. 꿀에 잰 밤과 밤을 갈아서 쵸코릿을 입힌 달짝지근한 과자(둘 다 '케스타네 쉐케르'라고 한다)다. 터키의 단맛은 그들의 뱃살만큼 정겹다.


9리라인데도 물, 커피, 과자까지 살뜰하게 챙겨주신다. 역시 고마울 따름이다. 부르사에서 이즈닉으로 가는 길은 거대한 올리브밭이다. 다른 작물들도 키운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산과 밭이 올리브 나무다. 이렇게 많이 올리브를 생산해서 도대체 어떻게 판매를 하는지 궁금하다.  







이즈닉은 니케아공의회가 열린 곳이라서 로마시대에는 엄청나게 번성한 곳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주 전형적인 시골동네다. 집들은 소박하고 거리의 아주머니들은 나무를 때서 빵을 만들고 있다. 이즈닉 타일로 유명한 이 동네는 주소와 거리가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심지어 쓰레기통까지도. 자세히 보니 타일 문양으로 페인트 칠이 되어있는 쓰레기통이다. 처음으로 문이 닫힌 자미를 보았다. 그 대신 예실 자미 앞의 아이는 오랜 만에 만나는 동양인 앞에서 자전거 묘기를 뽐내고 수줍어한다.













이즈닉에는 더 이상 타일 공장은 없지만 이즈닉 문양을 연구하는 공방들은 많은 모양이다. 이 공방들은 이즈닉 문양을 응용하여 많은 소품들을 만들어서 관광객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값도 저렴하다. 정말 많은 펜던트를 샀다. 심지어는 귀거리가 예뻐서 펜던트로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즉석에서 바꿔준다. 얌전하게 작업하고 있던 아가씨에게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했더니 엄청나게 반가워 한다. 부탁 안했으면 큰 일 날뻔 했다. 사진도 안 찍어주는 쫀쫀한 한국인이라고.











니케아공의회가 열렸던 아야 소피아는 벽돌로 예쁘게 지어졌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무일이 알고 있는 2명의 대제 이외에 또 한 명의 대제가 나온다. 테오도시우스다. 가톨릭파 기독교만이 정통 기독교이고, 아리우스파와 도나투스파는 이단으로 규정되면서 기독교는 다양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가톨릭은 테오도시우스를 대제로 추앙한다. 여기서 끝났다면 그나마 좋았지만, 가톨릭은 형제 교인들을 신앙이 좀 다르다고 해서 폭력으로 탄압하고 생명조차 빼앗게 된다. 외부의 적 보다 내부의 이단을 더 증오한다. 사투(사상투쟁)을 사투(목숨을 건 투쟁)으로 하는 20세기 좌파들과 닮았다. 안타깝다, 그 불관용의 모습이.


그런 아픈 역사가 시작된 곳이지만 사람들은 편안하고 교회는 겉모습은 깨끗하게 복원되었지만 내부는 아직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자미였다면 어떤 독지가에 의해서도 복원될 수 있었겠지만 성당이니 복원비용을 선뜻 출연하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로마 교황도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성당들의 운영 지원도 어려운 상황이니 이 역사적인 장소를 이렇게 방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공의회는 사제들과 몇몇 신학자들에 의해서만 연구되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곳에서 원죄 없으신 성모와 신의 아들 예수가 인정되었고,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설이 공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신성이 많이 훼손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고 나니, 예수님이 더욱 친근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어려운 시대를 살다 간 깨어있는 인간으로서 말이다. 이러다가 파문당할라. 이상의 내용은 다 무일의 추측이다. 잘 모른다. 가톨릭의 역사와 교리의 발전에 대해서 공부해 본 적이 없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만 받았기 때문이다.








5시차를 놓치고 나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생겼다. 50분이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면서 지나쳤던 커다란 식당에 사람이 많아서 맛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로 가기로 했다. 푸드코트였다. 앉자마자 커다란 바구니에 따뜻하게 구운 빵을 한가득 가져온다. 고기가 한 접시에 9리라 샐러드 큰 것 두 개와 요구르트 한 접시까지. 44리라로 식탁이 하나 가득이다. 차이나 티나 커피를 무료로 준다는 것을 알았으면 먹으면서 시킬 것을. 다른 음료를 하나라도 더 팔려고 나중에 주는 모양이다. 한 잔만 시켜서 찬 물에 타서 얼른 마셨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식탁 위의 접시들은 줄지를 않는다. 샐러드 한 접시와 요구르트는 포장해 달라고 했다. 언제 먹을까? 느긋하게 먹고 있는 우주신과 무일은 두 사람이 초조하게 바라본다. 5시 40분이 넘어서자 두 사람은 차를 잡으러 가겠다고 일어선다.


나머지 음식들을 꾹꾹 눌러서 목 안에다 밀어 넣고 45분이 넘어서 일어서서 팁 박스에 2리라를 밀어 넣고 오토갈로 달렸다. 51분에 무사히 도착해서 먼저 도착해서 짐을 실어둔 두 사람의 비난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얄로바로 온 오토뷔스는 승무원까지 동승해서 서비스  받으며 멋있게 왔는데, 얄로바에서 출발하는 돌무쉬는 동네 구석구석 손님들을 태우고 가면서도 냉수 한 잔도 안 주고 똑같이 9리라를 받는다. 재미있는 요금 체계다.









이즈닉에서 얄로바로 가는 돌무쉬가 신호등에 멈춰설 때 마다 달려오는 오렌지 봉투를 든 젊은이들이 그냥 장사꾼들이 아니라 동네의 농민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기에 안타까웠다. 얄로바 페리 터미널에 도착해서 7시 30분 배를 예약했더니 학생은 15리라, 어른은 19리라 합계 68리라. 꽤 비싸다. 터미널은 매우 크고 사람들도 적당하게 붐볐으며 이스탄불로 넘어가는 차량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거대한 페리에 수도 없이 차가 들어간다. 케리어 3개를 끌고 저 높은 객실로 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 어떻게 할까 했는데,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저 옆에도 보관해 두면 된다고 한다. 얼마나 고마운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겠다. 옆에 앉은 학생에게 우주신이 유창한 영어로 묻자 못 알아듣는데, 그리미가 arrival time?을 쓰자 학생이 20:30을 쓴다. 역시 필담이 가장 정확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와이파이가 있으면 항구 근처의 숙소를 예약하려고 했는데 무료 와이파이가 뜨지 않는다. 역시 터키는 버스가 최고의 이동 수단이다.


그 학생이 가르쳐 준 시간은 틀렸다. 

21시가 넘어서야 예니카프 항구에 도착했다.


여유를 부린다고 제일 늦게 내렸다. 그 많던 차들도 거의 다 내려 버리고 승객들도 없다. 우리 가방을 둔 곳으로 갔다. 가방이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 여기는 이스탄불이구나. 함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믿으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혹시 우리가 짐을 둔 곳을 착각했을지 모른다. 건너편에도 짐 보관 장소가 있었다. 온 식구가 부리나케 그곳으로 달려갔다. 역시 없었다. 아, 이스탄불이여.


침착해야 한다. 먼저 피해규모를 생각해 보았다. 다행이다. 옷과 전기레인지와 반찬거리를 제외하면 비싼 물건과 여권은 전부 우리가 메고 있는 가방에 들어 있다. 오, 알라여!


배에서 내리니 택시기사들이 마구 달려든다. 무섭다. 카메라도 벗어서 배낭안에 꼬깃꼬깃 쑤셔 넣었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았으나, 정신은 초롱초롱했다. 일단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두 대의 버스에 술탄 아흐멧을 가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걷든지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무서운 택시기사들에게 다가갔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15리라라고 한다. 일단 저렇게 시작을 해서 어떤 바가지를 씌울지 궁금하다. 일단 탔다. 이리저리 빙빙 돌고 있다. 여전히 거리의 사인은 술탄 아흐멧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제일 유명한 지명이니 어디를 가도 저렇게 표시되어 있지 않을까.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무사히 도착했다. 지갑을 열어보니 잔돈이 없다. 50리라를 내면 들고 튀어버릴텐데 어떻게 해야지? 문을 닫지 않고 한 쪽 어깨를 문에 걸친 채 50리라를 냈더니 아주 천천히 주머니를 살핀다. 어깨와 두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 덕분인지 다행이도 정확하게 35리라를 내어주고 인사를 한다. 


너무 안심이 되어서 아저씨를 불러 팁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뒤쪽으로 아야 소피아가 조명을 받아 예쁘게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내린 광장의 뒤쪽에는 블루모스크가 있었다. 앞쪽에서는 물담배를 열심히 피고 있고, 안쪽에서는 세마의식 공연을 하는 넓은 카페다. 벌써 10시가 넘었다. 거리의 카페들이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 예쁘다. 그러면서도 왠지 우리를 속아 넘길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둔 하루밤 300리라에 부엌과 2개의 침실을 갖춘 아파트 호텔을 찾으러 가야 한다. 그런데, 저 앞에서 천재가 왠 커다란 백인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저쪽에서 또 삐끼에 걸린 모양이다. 이스탄불의 첫 날은 왜 이렇게 헤쳐 나가기가 어려운가? 다른 곳에서 너무 편안한 시간을 보냈었던 모양이다. 


그는 호주에서 여행을 온 대학생이라고 한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대학을 다닌다고? 어디서 쌩까고 있지? 게다가 이슬람을 공부하기 위해서 이집트와 남아공의 남부와 터키, 말레이시아를 돌고 있다고 한다. 말은 그럴싸하군. 이슬람을 공부하려면 사우디 아라비아를 먼저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천재가 이곳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사람을 쉽게 믿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신도 그런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다. 자신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우리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호텔의 명함을 보여주고 원하는 데로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저 아래로 내려간다. 


뭐 좋다. 일단 그가 사라졌다. 우리는 길거리 레스토랑에 두 사람을 남기고 우리의 호텔을 찾으러 나섰다. 나서자마자 그가 다시 따라 나섰다.


그는 정말 친절한 호주인이었다. 그가 데리고 간 호텔은 정말 깨끗하고 고급스러웠다. 가격은 더블룸 가격이 59유로인데, 트리플룸을 59유로에 주겠다고 한다. 5일을 묵을 계획이라고 했더니 트리플룸에 엑스트라 베드를 넣어서 79유로에 줄 수 있다고 한다. 한 가지 문제는 밥을 해 먹기가 미안할 정도로 깨끗했다. 고맙다고 하고 다른 호텔들을 찾아 나섰다. 


정말 깨끗하고 좋았다. 100유로가 넘는다. 호스텔을 찾아가 보았다. 지하방의 2층 침대 두 개가 놓여있는 답답한 도미토리가 60유로다. 5일을 묵는다면 52유로에 해 주겠다고 한다. 음, 과연 이스탄불답게 비싸구나.


시간은 1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검색해 둔 아파트 호텔을 찾기 어려워서 제법 근사해 보이는 호텔에 들어가 이 아파트가 어디냐고 물었다. 이곳에서 1km 이상 가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런 곳에서 묵으려고 하냐고 되묻는다. 이 근처에도 숙소가 많단다. 시설도 좋고 움직이기도 편안하다고 한다. 누가 모르나 밥도 해 먹어야 하고 비용도 아껴야 하니까 그러는 거야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 친구의 자신 있어하는 모습을 보니 충분히 이 근처에서 우리의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안되면 호주인이 소개한 호텔로 가도 되지 뭐. 두 세 개 쯤 호텔을 더 알아보았는데 큰 차이가 없다. 마지막으로 론릿 플래닛에서 추천하는 호텔 두 곳이 마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호텔벽에 론리 플래닛 어쩌고 써 있어서 알았다.


그는 김기덕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영화들을 줄줄 읊는다. 협상도 잘 풀려갔다. 4인실이 원래는 80유로인데 70유로로 해 주겠다고 한다. 5박을 할테니 얼마까지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65유로가 마지막 가격이라고 한다. 타맘. 방을 보러 올라갔다. 훌륭하다. 식사하는 테라스는 더 전망이 좋다고 한다. 


방 안에서 간단한 요리를 하거나 통닭을 사다 먹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돈을 내고 들어오면 그동안은 우리 방이니 우리 맘대로 쓰라고 한다. 오 세상에, 이렇게 화끈할 수가. 그리미와 우주신이 기다리는 카페로 가서 거금 18리라를 주고 6잔의 차이를 마시고 팁박스에 2리라의 팁까지 넣어주며 기분 좋게 호텔문을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