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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콘얄티 해변, 다 벗고 들어가고 싶었다_130107, 월

새벽에 일어나 히팅기를 꺼버렸다. 조용하고 좋았다. 담요 한 개를 더 덮었더니 춥지도 않다. 배낭 한 가득 싸가지고 온 침낭을 꺼내지 않고 계속 이렇게 따뜻하게 여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제법 멋스러운 레스토랑의 아침이라 기대를 하고 내려갔다. 


똑같았다. 카파도키야의 비좁은 사무실 겸 식당과. 하기는 저렴한 숙박비로 아침 식사까지 차려 내려면 이 정도 이상은 힘들 것이다. 그래도 신선한 오이와 토마토, 빵이 있으니 아침이 즐겁다. 


카를로스를 빼고 카파도키아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이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묘하게도 모두 비슷한 호텔을 예약한 모양이다. 부킹닷컴의 놀라운 힘이다. 이제 한 팀은 예루살렘으로 또 한 팀은 로마로 날아간다. 우리는.






파묵칼레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 매표소를 찾으러 나섰다. 햇볕은 화창하고 좋은데, 아나톨리아 고원으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마중을 나온 개가 반갑게 맞아준다. 해변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안내해주던 녀석이 갑자기 짓기 시작한다. 무슨 일일까? 


경찰차다. 계속 쫓아다니면서 짖는다. 어디나 경찰이 문제인가, 개도 알 정도로. 아무리 따뜻한 지중해라고 해도 겨울은 겨울인 모양이다. 어제까지 즐거운 주말을 보냈던 안탈리아 시민들도 모두 일터로 나가셨는지 안탈리아 해변에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우리의 산책길을 개들만이 안내한다. 








트램길을 따라 끝까지 갔는데도 매표소는 보이지 않는다. 택시 기사 분에게 물었는데도 모르겠다 하시고. 터키항공 사무소에 들어가 물었더니 길을 따라 올라가면 버스 회사 사무실이 많을테니 가서 알아보란다. 한참을 가도 나오지 않기에 다시 길을 가던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아주 조금만 가면 된다고 하신다. 


매표소는 반지하로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었다. 차편은 많았다. 11시 30분 차를 예약하고 10시 20분까지 매표소로 오면 세르비스가 있다고 한다. 30리라.


이제 안탈리야 고고학 박물관으로 가는 트램을 타면 된다. 버스 티켓을 사려고 두리번거렸더니 아저씨가 정류장 저쪽에서 동전을 내면 된다고 하시며 1리라 동전을 보여 주신다. 트램이 도착하고 운전기사에게 물었더니 4명이 5리라라고 한다. 좁은 좌석에 터키 아저씨와 끼여 앉아서 천천히 여유있게 박물관으로 간다. 하아드리아누스 문도 지나고, 시계탑도 지나고, 첫 날 신세졌던 커피숍도 지나고. 지중해안을 따라 작은 트램은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잘도 간다. 종점에 내렸다. 바로 앞이 박물관인데, 트램 운전기사가 앞쪽으로 이동할까 하고 쳐다보고 있으려니 둥그렇게 회전해서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




신나게 박물관 입구를 들어섰더니 매일 문을 열지만 월요일만 논다고 한다. 다행이 정원에 있는 유물과 실내 전시실은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 잘 됐다. 앞으로 계속 볼 텐데 꼭 여기서 보지 않아도 되겠지.











박물관을 나와서 트램을 타고 하아드리아누스문으로 가려고 했는데, 언뜻 눈으로 콘얄티 해변이 들어온다. 멀리서 바라보니 회색빛 모래인 줄 알았던 해변이 가까이서 보니 몽돌해변이다. 야, 바다나 해변이나 색깔 참 좋다. 내려가자. 오늘도 개 한 마리가 길 안내를 해 준다. 팔자 좋게 자고 있다가 우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 길 안내를 한다. 머리 몇 번 쓰다듬어 주었더니 매우 좋아한다.


발아래 밟히는 자갈 소리도 기분 좋고 바닷색 또한 시원하다. 한 겨울인데도 수영을 하시는 분이 있다. 시원하시단다.








다 벗어 버리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리미가 간곡하게 말리는 바람에 참았다. 대신에 종아리까지만 지중해의 세례를 받기로 했다. 물이 얕은 곳은 따뜻했다. 종아리까지 잠기고 멀리서 새 물결이 밀려오면 시원하다. 해안이 조금만 들어가도 깊어져서 더 들어가지를 못하겠다. 


옆에서 낚시를 하시던 할머니께서 아예 들어가서 놀으라고 하신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호응이 없네요. 젖은 옷도 말리고 햇살도 쬘 겸 자갈 위에 드러누웠다. 편안하도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여유 있게 쉬는 여행이라고 좋아한다.









조금 누워 있으려니 답답해서 낚시하는 할머니한테 갔다. 커다란 빵을 찢어서 낚시 바늘에 걸어서 푸른 지중해 바닷물에 던져 놓으시고 물고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관심을 보이니 주섬주섬 비닐봉지를 여시더니 딱 한 마리 잡아놓은 물고기를 보여 주신다. 가끔은 팔뚝만한 숭어도 잡아 올리신다고 하시면서 저쪽 바닷가에서 펄쩍 펄쩍 뛰는 놈들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르키신다. 


옆에 서서 할머니가 다시 한 번 낚시에 성공하시는 모습을 보려고 지키고 있었지만, 실제로 할머니의 낚시 바늘 앞으로 커다란 물고기가 움직여 오는 모습도 보였지만, 낚시줄은 조용하기만 했다.


안탈리아 해변에는 간이 샤워시설이 있어서 누구나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나와서는 물을 틀어 샤워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점심 먹고 오후에 우리도 수영을 하러 오자고 했더니 그리미는 오지 않겠다고 한다. 겨울바다의 수영. 낭만적인데 말이다.






내려올 때 좋았으나 다시 오르려니 언덕은 까마득하게 멀다. 손짓만 하면 달려올 택시가 있었지만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개들의 인도를 받으며 간신히 다시 언덕을 오른다. 


언덕을 다 올라 100여 미터 앞에 하아드리아누스 문으로 가는 올드 트램이 서 있는데, 아무도 달려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작전을 바꿔서 앞에 가는 아줌마를 기점으로 해서 천재, 무일, 우주신, 그리미가 징검다리 순으로 도착하게 되면 혹시 트램이 출발을 하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을까 싶어서 과감한 작전을 전개했다. 


실패였다.


길거리 매점에서 과자를 사 먹으며 30분 후에 도착할 트램을 향해 한 정거장을 터벅터벅 걷다가 공중전화를 발견하고 서울의 외할머니댁에 전화를 하기로 했다. 전화통을 붙들고 한참이나 씨름하던 우주신이 포기하고, 천재가 마침내 통화에 성공했다. 다들 좋아하시는데 그리미는 혼자만 놀러 다니는 것이 너무 죄송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천재만 통화에 성공했을까?


징검다리 방식으로 트램을 타려던 우리의 전술이 실패했던 것은 첫 번째 병사인 처음보는 아줌마가 트램을 이용하려는 의사가 없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뭘 제대로 하려면 물어봐야 한다. 분명히 트램을 보고 걸으셨는데, 흠. 트램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타고 내렸다. 


전 세계 모든 낮 전차가 그렇듯이 나이 드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장을 보러 가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극소수의 관광객이 전차를 채우고 있다. 결국 아무도 바쁜 사람이 없었고, 운전기사도 배차 시간에 쫓기지 않아서 트램은 우리를 선도하던 개 마냥 여유 있게 지중해변을 누비고 간다.


천재는 더 이상 해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신호가 갈 때까지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국제전화카드라는 것이 몇 개의 전용회선으로 연결된 것이라 대기시간이 길 수도 있는데, 성질 급한 우주신은 일찍 포기해 버렸고, 천재는 참을성 있게 기다린 모양이다. 안내 멘트가 무난하게 흐르는 것을 들으며.


시계탑 앞의 Mjet라는 편의점에서 닭고기와 물 5리터, 맥주 4병, 과자를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닭고기를 삶아 미역국을 끓일 국물을 내고, 삶아진 닭고기의 8할은 다시 양념을 해서 닭볶음탕을 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케밥이 맛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한국 음식의 우수성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미역국과 닭볶음탕으로 천재는 4공기의 밥을 얼른 먹어 치워 버린다. 혹시나 그리울까 해서 챙겨온 맥심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안탈리아의 상징인 하아드리아누스문을 향해 나아간다. 남들은 수십 번도 더 간다는 그곳을 우리는 삼일 만에 처음으로 사진을 찍으러 간다. 그리고, 천재의 노트와 생선을 사서 저녁 만찬을 준비하기로 했다. 애초에 50유로였던 방을 65유로로 업그레이드했으니 최대한 즐겨야 한다는 그리미의 생각이었다. 


시내를 돌고 돌아 몇 개의 마트를 갔는데도 노트는 살 수 없었다. 도미와 숭어도 사고, 스테이크용 쇠고기도 사고, 헤어로션까지 물어물어 다 샀는데, 노트만 사지 못했다. 포기하고 돌아오는데 하아드리아누스 문 바로 앞에서 문방구를 발견했다. 터키 냄새가 풍기는 노트를 사서 일기를 쓰고 싶어하는 천재의 바램이 7일만에 이루어졌다. 참 힘들었다.


앗, 큰일났다. 안탈리야의 생오렌지 쥬스를 카파도키야와 아스펜도스에서 일단 맛을 보았다. 그런데, 막상 오늘 안탈리야에서 먹으려고 하니 바람이 불고 쌀쌀해서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군밤장수 아저씨의 군밤도 오늘 먹으려고 했는데, 이분도 보이지를 않는다. 주말 장사 잘 하시고 오늘은 쉬시는 모양이다. 그래, 편히 쉬셔야지요.


이곳의 생선은 참 싱싱하고 맛이 있다. 아무 양념 없이 후라이팬에 구워 소금에 찍어 먹었다. 참, 정원의 레몬트리에서 레몬 하나 따다가 살짝 뿌렸을 뿐이다. 쇠고기도 구워서 먹었다. 덜 익혀서 먹었더니 도저히 질겨서 먹을 수 없었는데, 바짝 익히니 좀 덜 질기고 먹을 만했다. 세 덩이 남은 것은 파묵칼레로 가서 먹기로 했다. 


포도주 반 병과 맥주 네 병을 마시며 편안하게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다. 괴뢰메에서의 사냥개의 습격은 그리미가 여행하며 겪은 가장 공포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개만 보면 그 날의 공포가 생각난다고  한다. 다 있었는데 식탁이 없던 것이 아쉬운 사바흐 펜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