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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버스표가 없어졌다?!_130108, 화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긴 하루(1월 1일)를 보내고 나니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지나가고 있다. 이제 파묵칼레 – 셀축 – 부르사 – 이스탄불 – 아테네 – 산토리니 – 이스탄불 –두바이를 거치면 귀국이다. 여행 일정 세 쪽 중 한 쪽이 끝나가고 있다. 이제 두 쪽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노는 시간은 잘도 간다.






정원의 레몬트리를 오래도록 쳐다 보는 것이 즐겁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가방을 메고 끌고 파묵칼레 세르비스 버스를 타러 간다. 지중해의 햇살이 참 따사롭다. 파묵칼레는 영하 10도가 넘는다고 하는데, 안탈리야는 어제보다 더 따뜻하다. 지중해는 더 아름답다. 벌써 사흘째 보는데도 질리지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다르면서 여전히 좋다. 여전히 개가 우리의 길을 안내한다. 그동안 친해진 놈들을 전부 한 번씩 안아주고 기념촬영을 했다. 언제 다시 이 녀석들을 만날 수 있을까? 정말 다시 보고 싶다.







아침부터 어제 산 티켓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느라 온 가방을 뒤진다. 없다.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할까? 어제 티켓을 산 사무실로 일찍 가기로 했다. 네 사람 이름을 모두 기록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째서 아무도 티켓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좀 껄쩍지근했다. 사무실의 아주머니는 어제와는 달리 영어를 거의 못 알아듣는다. 아마도 티켓을 끊는 아주 단순한 영어만 익힌 모양이다. 대충 알아듣기는 했는지 컴퓨터를 조회해 보더니 문제없다고 한다. 그래도 믿을 수 없었던 우리는 여행 안내서를 뒤져서 티켓을 잊어버렸다고 다시 물었다. 역시 문제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정말 심약한 여행자들이다. 







세르비스 버스가 오기까지 시간이 20여분 남아 있어서 트램 정류장으로 한 정거장 반을 걸어가서 시티은행에서 1,000리라를 인출했다. 전부 100리라 짜리라서 바로 옆의 악은행(AKBANK)으로 가서 50리라와 20리라로 바꾸었다. 물론 수수료는 없다.






저 멀리 한 처녀가 수레를 끌고 있다. 도착할 때도 보았던 그 수레는 이제 보니 종이와 병을 줍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단순히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 인줄 알았는데, 그 보다도 더 험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한창 멋을 부릴 나이의 처녀 아이였다. 세상에는 언제나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파묵칼레 버스는 듣던 대로 와이파이 빵빵하게 잘 터진다. 기념으로 아침 일정을 기록한다. 좌석이 좁아서 내 커다란 노트북은 무릎 위에 올려놓을 수 없다. 다행이 냉장고 뒷좌석을 예매해 두었더니 유용한 테이블을 제공해 준다. 조금 높기는 하다. 그래도 쓸 만하다.







안탈리아를 출발해서 거의 30여분을 아나톨리아 고원을 향해 올라간다. 엄밀히 말하면 뭔가 다른 이름이 붙은 산이나 산맥이겠지만 무일로서는 알 수 없으니 그저 아나톨리아 고원의 끝머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저 황량한 산이었으나 제법 많은 올리브와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햇살과 푸른 하늘이 황량한 산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고원을 다 오르고 나자 광활한 밭이 펼쳐진다. 일 하는 농부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저 많은 농토가 유지될 수 있을까?






버스에서 제공되는 터키 대중음악을 듣는데 가사만 터키어이지 음악의 분위기와 색깔은 완전히 우리나라 통기타 음악이다. 남녀 가수 모두 듣기에 좋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부담이 없다. 11시 반 출발이니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제공한다. 아침 식사를 충분히 해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 않아 샌드위치 하나를 뜯어 그리미와 반쪽씩 먹었다. 안내하는 분은 독일에서 공부했는지 자꾸 독일어로 이야기 한다. 허 참.


데니즐리를 100km를 남겨두고 큰 산을 넘고 있는데 갑자기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버스는 전혀 동요 없이 잘 가는데, 화물차는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뒤로 밀려 버린다. 아마도 짐은 무거운데다가 바퀴들은 낡아서 마찰력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한 편에서는 눈 속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으며 논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 무일에게. 아침에 일어나 7시 반 쯤에 샤워하고 화장실에 다녀왔으니 현재 시간 오후 2시로 네 시간 째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서서히 아랫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고작 90분인데 참을 수 있겠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밖에는 눈이 쏟아지고, 아직도 50km는 더 가야 한다. 친절한 안내원에게 언제 쉬냐고 물었으나, 매우 자랑스럽게 논스톱이라고 한다. 씨바. 화장실은 데니즐리 오토가르에 가면 널려 있다고 한다. 이런, 씨바.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마을에 내리겠다고 하는 사람은 다 내려준다. 아, 나 급하다니까.


누워도 보았다. 혁대를 느슨하게도 해 보았다. 팔 운동을 해서 일부러 땀을 내 보려고도 노력했다. 몸을 덥게 해서 온 몸의 세포를 늘려 참아 보려고 노력했다. 따뜻하게 하기 위해 벗어놓았던 옷도 다시 입어 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두 개의 옵션이 있었다. 싸서 말리거나, 물병을 이용하거나. 흠, 아무리 그래도 선비 체면에 싸서 말리는 것은 좀.


먼저 1.5리터 물병을 꺼냈다. 아껴 먹다 보니 아직도 반 병이 넘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물이 원망스러웠다. 고맙게도 우주신과 천재가 물을 먹어 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들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한 번 끝까지 참아 보라고 한다. 물론 그래야겠지.


아직도 물병에는 한 컵의 물이 남아 있었는데, 우주신이 그리미에게 물병을 넘긴다. 안된다. 그리미도 무일과 같은 연배다. 아직은 괜찮지만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바깥에는 눈이 내리면서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가 없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수세식 물병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이 버스는 많이 비어 있었고, 무일이 누워서 경치를 감상했던 맨 뒷좌석에는 아무도 없다. 다만 그 바로 앞자리에 이어폰을 끼고 열심히 드라마를 보는 아가씨가 한 명 앉아 있었다. 괜히 오해 받아서는 곤란했다. 이곳은 아무리 터키지만 이슬람 국가이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게 되면 온 남자들이 달려 들어서 명예 살인도 서슴지 않는 곳이다. 그 생각을 하니 등골에 식은땀이 좌악 흘렀다.


또 다른 대안은 가운데 문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문 옆 좌석에는 한 사람의 백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이해해 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그가 한국에서 일을 했던 경험 덕분에 한국어를 잘 한다면 문제없었을 것이다. 혹시 영어라도 잘 한다면 천재에게 5리라를 주고 부탁해서 상황 설명을 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내원과 터키어로 자유자재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호텔과 가이드를 제외하고 영어를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 안 돼.


신이시여 ~






결국 우주신과 함께 뒷좌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우주신의 큰 덩치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앉아서 자세를 잡아 보았다. 왼손에는 물병을 들고 뚜껑은 우주신에게 맡겼다. 오른손은 혹시 용량이 부족할 것에 대비해 비닐봉지 하나를 펼쳐 들었다. 드디어 시작이다. 과연 잘 될까? 정말 잘 될까? 최악의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막상 끝내고 나니 아무 일도 아니었다. 제법 주둥이가 큰 물병 덕분이었다. 용량도 문제가 없었다. 가지고 간 검정 비닐봉지로 겹겹이 감싸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감염에 대비했다. 


이 고원의 풍경은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스페인 고원의 풍경과 닮았다. 그런데, 높은 산에는 눈도 쌓여 있고, 태양은 강렬하여 버스 안은 냉방을 해야 했으며, 올리브 나무와 소나무, 빨간 기와지붕을 얻은 이층집들, 미나레로 시선을 끄는 작은 자미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스페인의 고원은 사람이 없는 밭과 황무지였다면 이곳에는 똑같이 밭과 황무지여도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정말 오래도록 풍경을 즐기며 간다. 


그동안의 강행군으로 입술이 부르트기 시작했다. T 침을 꽂아 다스려본다. 쉬어야 하는데, 쉬지 않으니 쉽게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데니즐리에 도착했다. 돌무쉬로 갈아타고 파묵칼레로 들어가야 한다. 아무도 없이 우리 가족 넷만 돌무쉬에 오른다. 비너스 호텔로 가자고 당당히 외쳤다. 모르겠단다. 왜지? 그 순간 번개처럼 새로운 발음이 또 올랐다. 베누스(VENUS). 기사가 알았다고 한다. 우리만 모시고 가는 줄 알았더니, 웬걸. 시내로 시내로 뱅뱅 돌면서 사람들을 태우는데, 한 차 가득해진다. 차가운 바람에 두터운 옷을 걸친 모습이 다정하지 않다. 그냥 조용히 그렇고 그런 도시의 모습을 보았다. 저 멀리 희끄무레하게 허연 것이 보인다. 설마 저기가?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바로 그곳이었다. 허 참, 그렇게 아름다웠던 목화의 성 파묵칼레가 정말 저 모습이라는 말인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베누스 호텔로 들어가는 길은 마치 70년대 동해안 민박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음,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실수가 따르게 마련이지. 그랬다가 프런트 데스크 옆 넓직한 대기 공간을 보니 깔끔해서 다소 마음을 놓았다. 워낙 럭셔리하게 안탈리아의 2층 빌라를 사용하고 나서인지 4인실이 좁게 느껴졌다. 그래도 깨끗하고 뜨거운 물도 콸콸 나왔다.






아직 해가 다 넘어가지를 않았으니 파묵칼레로 가 보자. 석양이 멋있다고 하니 잘 하면 장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집 채만한 개가 애정 표현이 과하다. 놓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쩔쩔 매는 동안 가족들은 저 멀리. ‘싯다운’ 허, 놀랍게도 갑자기 내 목을 감싸 안았던 앞발을 내리고 저쪽으로 돌아간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입장료 20리라인데 한 번 들어가면 끝. 적어도 세시간은 보아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한 시간이면 끝이다. 혼자 들어갔다. 허겁지겁 촬영 포인트를 찾아 헤맨다. 발이 시려서 주저 않고 싶었으나 온통 물바다여서 그러지도 못하고 언덕을 하얀 언덕을 계속 오른다. 저 위에서 경비원이 소리치며 팔을 양 옆으로 휘젓는다. 어디로 가라는 거야? 아래쪽의 경비원도 똑같이 소리친다. 내려오라는 소리는 분명 아닌데 팔을 양쪽으로 휘젓는다. 한쪽만 가르쳐야지 어쩌라구. 왼쪽으로 갔다. 아, 발시려. 해는 자꾸 넘어가려 하고. 포인트는 보이지 않는다.








아, 따뜻하다. 아무도 없는 석회절벽을 홀로 오르는데, 갑자기 발바닥을 감싸는 물이 따뜻해진다. 이제 살았다. 꼼짝없이 동상 걸리는 줄 알았다. 오른손에는 카메라 왼손에는 양말을 구겨넣은 구두를 들고 비틀비틀 오르다가 따뜻한 물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상이 가까워져 오니, 대량의 한국인들이 보인다. 아이들, 어른들, 연인들, 여대생들. 아, 반갑다. 꼭대기의 물은 정말 따뜻했다. 찰랑찰랑. 아, 좋다.








볼 것 다 보았다. 저쪽 편 웅덩이들은 물을 채우지 않았다. 사진 속으로 보던 그 파물칼레가 아니었다. 흐음. 실망이다. 뭐, 그래도 매우 독특하기는 하다. 어떻게 할까? 신을 신고 돌아서 내려갈까 다시 저 물을 따라 내려갈까. 혹시 석양이 갑자기 아름답게 빛날 수도 있으니까 다시 내려가 보자.


바보 같은 결정이었다. 마지막에는 온천물이 없다. 차가운 물이 발바닥의 피를 얼려버린다. 으악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으나 여학생들도 ‘추워 추워’ 하면서 잘 견뎌낸다.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가족들은 무일이 내려오기를 떨면서 기다렸다. 미안했다. 아름다운 사진을 건져 왔으면 당당했을 텐데. 수퍼에 들려 커다란 빵 두 개와 물 두 병을 사서 저녁을 먹으로 호텔로 들어갔다. 된장국을 끓이기 위해 전기레인지를 연결하고 얼마 있지 않아 전기가 떨어져 버린다. 허 참. 아래층 계단을 보니 멀쩡하다. 우리 방과 연결된 전기만 떨어졌다. 뭔가? 전기레인지와 밥솥 때문에. 일단 모든 것을 원상회복하고(일명 숨기고), 천재가 프런트에 가서 전기가 떨어졌다고 했더니 복도에 있는 박스의 스위치를 올린다. 흐음.


이번에는 전기밥솥만 써 보자. 또 떨어졌다.

이번에는 전기레인지만 써 보자. 또 떨어졌다.


비치된 전기주전자로 물을 끓여 햇반 3개를 데우고 밥솥에 남아있던 밥까지 더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일단 햇반을 데워놓고 다시 물을 끓여 된장국을 탔다. 미소 된장국인데 야채 프레이크와 된장 소스로 구성되어 있고, 냄새도 거의 나지 않으면서도 맛은 제법이다. 벌써 두 번째다. 일제라는 아쉬움이 있다. 곧 씨제이에서 나오겠지 뭐. 밥이 부족하다고 해서 다시 물을 끓이고 햇반 두 개를 더 덥혀 주었더니 비로소 배가 부르고 머리가 정상으로 돈다고 한다. 그리미는 밥을 거의 먹지 않고 세 마리 굶주린 짐승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느라 빵만 뜯고 있다. 그나마 빵 속에 살라미를 찢어 넣어 먹으니 먹을만 했다.


저녁을 먹어 치우고 후식으로 터키 디라이트와 홍차를 마셨다. 괜찮다. 와이파이가 빵빵하다. 오랜만에 끊기지 않는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여행기나 올려볼까. 오늘도 참 사고 많이 쳤다.


김광석의 ‘그대 잘 가라’를 듣는다.

같이 있고픈 사람들이 참 많구나.






그리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버스 티켓은,

그리미의 가방에서 곱게 잠자고 있었다.

우리도 푸욱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