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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불행은 일부 사람들의 일인 모양이다_130101, 화

에어버스 380. 아주 조금 넓을 텐데도 앉아 있기가 편안하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둘이서 세 자리를 차지하고 편안하게 움직인다. 2013년의 첫 날을 한국에서 시작하여 중국 하늘을 거쳐 두바이에서 새벽을 맞다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점심을 먹고 네브세히르에서 노을을 본다. 단 하루의 경험치고는 대단하다. 




새해 첫 날을 비행기에서 보내니 뭔가 대단한 이벤트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기장이 투박한 영어로 ‘Happy New Year’를 말해 주었고,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소리가 났을 뿐 별 일이 없었다. 그리미와 뽀뽀 한 번 하는 것으로 새해를 축하했고, 저녁을 먹으며 백포도주 한 잔을 나눠마셨다. 




두바이 시간으로 새벽 5시에 도착했다. 열 시간이 걸렸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를 비몽사몽간에 보고, 포도주 두 잔을 마시고 모로 누워서 잤다. 한참을 앉아서 자던 그리미에게 무릎 베게를 해 주기도 했다. 두어 번 교대로 누워 잤더니 그런데로 피곤이 풀리는 느낌이다.




두바이 공항은 샤워실도 있고 누워 잘 수 있는 긴 의자도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용할 수가 없었다. 새벽 5시인데도 모든 게이트 앞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리저리 서성대다가 이라크 바그다드로 가는 게이트 앞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한다. 머리와 발바닥이 갑갑하다. 이라크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인데도 표정들은 밝다. 불행은 정말 일부 사람들의 일인 모양이다.




갈아타는 시간이 5시간이 넘으면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라운지 중앙에 있는 에미레이트 항공사의 데스크에 가서 바우처를 받아다가 그 중 먹을만 해 보이는 COSI라는 간이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가득해서 네 사람이 앉을 자리를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천재아들과 우주신이 바우처를 제시하니 치킨 샌드위치와 오믈렛을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너무 바쁘니 치킨 샌드위치로 먹어 달라고 한다. 음료수 한 잔도 곁들여 나온다. 그리미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100달러 지폐를 내고 한 잔을 달라고 했더니 거스름돈이 없다고 한다. 10달러 지폐로 계산을 치르고 나니 너무 바빠서 제대로 못해 준 것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음에 한가할 때 들려달라고 한다. 좋아.




모양은 형편 없어 보여도 샌드위치는 따뜻하고 고소했다. 살짝 풍기는 카레향이 입맛을 자극한다. 양도 적당해서 기분좋게 배를 채워준다. 간이 칸막이 너머로 꼬마 아이가 호기심에 우리 식구들을 들여다 본다. 과자 봉지 하나를 건네주니 좋단다. 얼굴을 차도르로 가린 아이의 엄마들도 재미있어 깔깔 웃는다. 수염을 근사하게 기른 아빠의 얼굴은 참 온화하다. 두 명의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시는지?!




식사를 하고 선베드형 의자 하나에 누워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몸이 근질거려서 수건을 챙겨 들고 샤워를 하러 갔다. B13 게이트 앞에 있는 화장실 안에 샤워 부스가 하나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샤워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샤워 부스에 비누가 없어서 종이 수건을 하나 꺼내 접어서 손 씻는 액체비누를 받아서 샤워실로 들어갔다. 평범한 샤워실이지만 깨끗이 청소를 해 두어서 맨발로 샤워실 바닥을 거닐어도 불쾌하지 않았다. 미지근한 물이 적당하게 쏟아져 내려주니 샤워도 편안했다. 핸드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릴까 하다가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나왔다. 개운하다. 9시 반이 넘어서자 공항이 조금 한가해진 모습이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승객들이 이렇게 많은 모양이다. 사람이 줄어드니 우리 가족 모두 편안한 침대 의자에 누워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컴퓨터 배터리가 40% 남았는데, 충전을 할 수 있는 코드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에스컬레이터의 잔잔한 소음이 살짝 잠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