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면서 떠난다 -
내 몸동아리가 부지런 떨며 일해도
소나무에 부딪치는 바람만도 못하다.
아무 것도 바꿔내지 못한다.
흥이 나지 않는다.
다들 그리 살고 있으니
오르지 못할 산 때문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끈 살아 움직이는 곳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고맙기도 하다.
지난 임진년은 언제나 처럼 참 험했다.
크게 이루어 낸 일도 없는 것을
이렇게 위안하며 마무리 한다.
그건 그렇고 마지막으로 쇼핑센터를 가서
8기가 마이크로 sd 카드를 샀다.
9,900원 -
왜 이렇게 싸지?!!
마지막 쇼핑이 기분 좋다.
내년부터 이 쇼핑의 기세대로
기분 좋은 일만 생기면 좋겠다.
좋은 일들이 새벽 종소리와 함께
성큼성큼 걸어서 왔으면 좋겠다.
아랍에미레이트 항공 23시 55분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를 거쳐 이스탄불로 간다.
천재는 출발하기 전에 피아노를 한 번 치고 가야겠다고 한다.
우주신은 여행 중에도 피아노를 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부지런하게 짐을 쌌다. 틈틈이 튜브 고추장이나 컵라면, 순두부 찌개 양념, 무말랭이 김치 등을 사놓았고, 처제가 여행가서 먹기 좋다는 미소된장국과 김을 선물로 후원해 주어서 짐싸기는 수월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전기밥솥은 짐을 다 싸고 났더니 50키로가 안되기에 침낭을 싼 배낭에 넣어 가져가기로 했다. 두 주 전에 사놓은 전기레인지와 함께. 캐리어 3개와 배낭 하나다. 4만원을 주고 산 카메라 다리도 가지고 가지 않기로 했다. 카메라에 달고 다니기도 무겁고, 챙길 것이 많아서 잊어버릴까 두렵기도 하고. 한반도 여행에서나 쓰자.
우리나라를 떠나기 전에 무엇을 먹고 갈까 했더니 다들 순대국이 좋단다.
김치와 깍두기를 듬뿍듬뿍 썰어 넣고 펄펄 끓는 순대국에
부추와 마늘, 새우젓을 넣고 맛있게 만찬을 즐긴다.
날은 쌀쌀했지만 출발하는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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