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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월남쌈은 이리 만드는거지?_120821, 화

새벽밥 해 먹고 비가 내리는 데도

4시간 동안 열심히 고추를 따신 심현께서는 

이번에도 역시 몹시 실망하셨다.


점심을 드시고 나자 마자 돋보기를 챙기시더니

토지를 붙잡고 읽기 시작하신다.

바깥에는 비가 오다가 해가 비치다가 난리가 아니고,

거실에서는 대금을 삑삑 불어대는 무일과

열심히 코를 골며 주무시는 정농에 전혀 개의치 않으신다.

책 속에 빠져들 듯 고개를 잔뜩 수그리시고

간간히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시는 자세가 범상치 않다.


두어 달 전에 밥을 먹으면서 뭐 하고 싶은 일 없으시냐고 물었더니,


조씨 집안 며느리들 데리고 나가

좋은 데 가서 맛 있는 것 사먹고

좋은 호텔에서 하루밤 자면서 고생한 것 풀어줄 겸 놀고 오고 싶으시단다.


또 없으시냐고 물었더니,


박씨 집안 며느리들 데리고 나가

시원한 콘도에서 밥 한 끼 해 먹으며

고생한 것 풀어줄 겸 놀다 오고 싶다고 하신다.


어제 오후는 비가 오락가락해서

고추나무에 식초액을 뿌리려고 준비하는데,

부쩍 큰 들깨잎이 아주 싱싱했다.



쌈싸 먹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일흔 일곱살, 77의 심현께서 다다닥 다다닥 하시더니

깻잎과 고추 양파, 쇠고기 조림을 주재료로 하는

월남쌈을 내 오셨다.


놀라웠다.


심현께서는 3년 전에 한 번 드셔 보신 이 음식을

오직 기억과 상상력으로 더 훌륭한 음식으로 재탄생시켜 놓으셨다.


한 서너 달 전에 라이스 페이퍼를 사다 놓으셨는데, 

자신이 없으셔서 망설이다가 

아들의 말 한마디에 시작해 보셨다고 하는데, 완전 대박이다. 

상품으로 내 놔도 될 정도다.


가는 세월이 아쉬울 뿐이다.




심현의 오랜 소원을 또 하나 알고 있다.

장사 잘 되는 길목에 작은 가게 하나 내서

신나게 돈 벌어서

세상에 먹고 살기 힘든 사람에게 펑펑 나눠 주면서 살고 싶으시다.


이 소원은 어떻게 할거냐고?


그런 방법이 있으면 무일이 먼저 시작하지

아무리 엄마라도 심현께 양보하겠어요? 헤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