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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우리는 워커홀릭이 아니야_120807, 화 말복 입추



새벽 6시, 막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200평 검정쌀 논에서 피를 뽑아 던지기를 했다.

좀 더 일찍 피뽑기를 했다면 한줌도 안 될 피와 풀들이

이제는 한포기도 한아름이 될 정도로 무럭무럭(?) 잘 자랐다.


고추밭에 식초액 뿌리랴 참깨 거두랴 들깨 심으랴

김장 배추 심을 둑을 내고 비닐 씌우고 등등 밭일에 매달리는 한편으로

벌통도 보아야 했다.

이렇게 바쁘면 논은 오리 농부들이 책임을 져 줬어야 했는데,

더위에 지친 오리들은 일은 안하고 그늘로 그늘로

피서를 다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새벽이라 날도 시원하고 투구 연습이라 생각하고 신나게 했다.

역시 농사가 내 체질에 맞다고 흐뭇해 하면서.

이런 식으로 연습을 하면 전성기때의 구속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를 하면서, 피든 풀이든 거침없이 던져댔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흘러갔더니,

어깨에 기운이 빠지면서 두 팔을 질질 끌고 다녀야 했다.

산처럼 뽑혀지는 피더미와 풀더미를 어깨에 간신히 둘러메고

본드처럼 달라붙는 논흙을 철벅거리며 논둑으로 옮겨야 했다.

아직 농부가 되기에는 멀었나보다.

한 시간만에 지쳐 버리니.

그래도 피는 이제 골라낼 수 있다.

그러면 진일보 한 거지, 뭐.


11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하는데,

어깨와 팔이 시원찮으니 시원해야 할 샤워가 귀찮을 뿐이다.

지친 몸을 매트리스에 눕히고 프랑스와즈 사강의 '브라암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며

사랑을 생각하느라 집중력을 발휘했더니 한 낮의 더위가 잊혀진다.




6시가 가까워 올 무렵,

페북을 통해 오늘이 말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심현께 말씀드렸더니,

매우 반가워하시며,

말복을 핑계로 우리는 일중독자가 아니라 선언해 버리신다.


저녁일은 접고 밥하기도 귀찮으니

오랜만에 중국집으로 외식을 나가서 탕수육에 고량주 한 잔 하자고 하신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신나게 차를 몰아 손짜장의 명가 칭다오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 칭다오가 여름휴가로 문을 닫았다. 

터미널 앞 선유관으로 이동을 했는데,

너무 더워 에어컨을 계속 켜 놨더니 고장이 났다고 한다.

이곳도 오랜 단골이라 그냥 나올 수 없어서 

요리는 안 시키고 짜장면만 3그릇을 시켜 놓고

선풍기 바람을 쐬며 덥게 너무나 더웁게 먹었다.

그래도 쫄깃한 면발이 제법 맛이 있다.


더운 어둠이 깔려있는 터미널을 지나 오는 길에

하필이면 역시 에어컨이 시원찮은 통닭집에서

양념반 후라이드반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며 30분을 더위와 싸웠다.

시원한 얼음물과 튀밥을 서비스로 내오지 않았다면

단골이 아닌 통닭집을 튀어 나올뻔 했다.


차안이 제일 시원하다 하며 집으로 돌아와서,

소주잔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원한 거실에서

통닭 한 마리로 복달이를 했다.


'태평농법이 될까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흑미논 피하고 풀보고 자신이 없어진게냐.

 걱정하지 마라. 된다.'


정농의 자기확신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가끔 대화가 잘 되지 않아 안타깝기는 하지만,

80평생 불의나 편법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정도로만 걸어오신 분이다.


'아, 그래도 안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