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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일을 할 수 없어야 일이 끝난다_120808, 수

가뭄이 심해서 논에 물을 대어 놓아도 하루만 지나면 물이 말라 버린다.

벼꽃이 피고 지면서 열심히 이삭이 패기 시작하고 있으니

물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우리 관정의 물이 부족하여 공동 우물에 호수를 설치하여 물을 대야 한다.

정농과 함께 30분을 끙끙대며 호수를 설치하고 나니

읍내에서 출퇴근으로 농사짓는 분이

논에 물을 대야 하는데 어쩌면 좋겠냐고 의논해 오신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가 대고 내일 새벽에 그쪽으로 물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잘 합의가 되어서 물싸움이 나지 않아 다행이다.


고추 2차 따기에 들어가신 심현을 돕기 위해 밭으로 향했다.

작년에는 한 달 내내 내린 비에 고추밭이 박살이 나서

일년 먹을 고추가루를 얻지 못했다.

올해는 꼭 고추를 제대로 수확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풀관리 탄저병 관리까지 열심히 했으나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고추를 따기 시작했으나

1차에 비해 상당히 많은 양의 고추를 딸 수 있었다.

해가 저물도록 고추밭에서 일을 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다.


땡볕에서 고추따는 농부들을 보면서

생명이 더 소중한데 왜 저리 무리하실까 생각했다.


아침을 늦게 먹는 바람에 2차 고추따기를 7시에 시작했는데,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땡볕에 머리와 등이 익어버릴 것 같은 데도

빨갛게 익은 고추를 하나라도 더 얻어야겠다는 집념으로

따고 또 땄다.


다행이 세 사람 모두 생명은 건졌다.

살살 불어 준 늦여름 바람 때문이다.




그렇게 목숨 걸고 딴 고추를 건조기에 넣으려고 알아 보았더니,

한 광주리 넣을 공간만 남아 있었다.


생명도 건지고 고추도 잘 땃으나

과연 썩히지 않고 말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점심을 먹고 심현께서 비엔나 커피를 만들어 오셨다.

건조기에 빈자리가 없어서 소리 소리 지르시느라

열통이 났던 속을 가라 앉히시려고 타 오셨단다.


시원한 비엔나 커피를 마시면서 의논들이 오간다.

마을에서 4년 된 중고 가정용 정미기를 20만원 주고 구입했다.

작년에 삼자회담이 엉망이 되었던 문제의 정미기는

제대로 사려면 150만원은 주어야 했으니,

130만원은 남긴 셈이다.


고추 건조기는 겨울에 사면 값이 약간 떨어져

1단 짜리를 90만원이면 살 수 있다고 하신다.

정미기 한 대 살 돈으로 중고 정미기와 신품 건조기까지 마련할 수 있으니

이참에 의논을 맞춰 보자고 하신다.

심현은 아예 통장 잔고까지 확인해 보신다.


건조기에 넣지 못한 고추는 결국 하우스에서 말리기로 했다.

태양초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고추 말리기에만 매달릴 수가 없어서

5년 전부터 태양초 만들기를 포기했다.

눈 앞에서 애써 수확한 고추들이 썩어가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하우스에서 말리다가 자리가 나면 다시 건조기로 넣어서

올해는 꼭 우리 먹을 100근의 고추는 따야 한다.


농사는 산 넘어 산이요,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없어야 일이 끝난다.


그나저나 비가 와야 땡땡이도 치고 놀 것 아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