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기심천국/유럽캠핑카여행

지붕을 찢어버리다_060804, 금

로텐부르크의 새벽은 쌀쌀하지만 상쾌하고 아름다웠다. 

유럽의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낮은 건물들이 빽빽이 둘러싸여 있는 

이 아름답고 작은 도시는 

30년 전쟁의 시기에 구교에 패배해 

온 도시가 쑥대밭이 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마치 지어낸 이야기처럼 한 판의 술내기가

잿더미로 변해 버릴 도시를 구해냈다고 한다.

무려 3리터의 포도주를 한숨에 마셔버린 시장님 덕분에 

승리한 장군의 아량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구교라 함은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을 대표로 하는 가톨릭인데, 

어찌 그리 잔인했을까?

패배한 신교도들을 몰살시켰을 뿐만아니라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모든 평화의 이론이 종교이론에서 출발한 것인데,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은 끔찍했던 모양이다.

종교지도자들이 항상 반성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포용력이 없는 일원론이나 결정론은 어느 순간 폭력을 부른다.

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라 하고,

나 이외의 진리가 없다 했으니,

성직자라 칭하여 지는 어리석은 백성들 중 누군가가 잘못 지명되어 버리면

성스러운 십자가는 너무도 쉽게 핏빛으로 물들어 버린다.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판매하는 가게는 규모도 대단하고,

화려하고 값 비싼 장식들로 가득했다.

1년 365일을 오직 크리스마스 장식만을 전시하고 판매한다고 한다.

작은 마을인데도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둥근 구슬 하나도 그 크기가 다양하고, 색갈 또한 맑고 깨끗해서

한 번도 이런 물건에 욕심을 내지 않던 무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일일이 그 물건들을 설명하고 싶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가게를 둘러보는 순간 마음이 즐거워진다.





다연발 고무줄 총이 단 3유로라고 해서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샀다. 

아이들과 장난감 고무줄 총 하나로 잠깐이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유로의 10배 이상의 기쁨을 그 잠깐 사이에 누릴 수 있었다. 


이 도시는 물론이고 유럽 곳곳에서 대형 해시계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앙부일구처럼 절묘하면서도 단순하고, 

모든 절기까지 복잡하게 표현된 정밀한 과학기기는 아니었지만, 

건물 벽이나 분수대 앞에 장식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읽을 수가 없다. 엉터리는 아니겠지? 





자전거도 많지만 개성 있는 탈거리들이 많은 유럽이다. 

왠만한 소형차보다도 큰 세발 오토바이가 주인을 잃고 서 있기에 

슬쩍 올라타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잘 들여다 보면 오른손에 3유로를 주고 산 다연발 고무줄총이 들려있다. 


이런 자유로운 모양의 탈 것들이 허용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인허가 기관에서 융통성을 갖고, 안전성과 환경성 등을 고려하여 승인해 준다면,

새로운 것들이 많이 만들어져 탈 것들의 모습에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다.


탈 것들에만 제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자유로운 생각들이 표현되고 실현됨으로써 문화는 풍부해진다.

풍부한 문화를 가진 나라가 선진국이다.

정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처럼 느껴지는 정치 후진국에서 벗어나

더 이상 정치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사고는 항상 그렇지만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맥카페 앞까지 잘 찾아간 무일은 

캠핑카가 너무 커서 일반 주차장에 도저히 세울 수가 없다는 사실에

후진을 할까 고민하다가 눈앞에 작은 도로를 발견했다. 


그리미에게 그곳으로 우리 차가 지나갈 수 있는지를 묻고 

천천히 전진을 했는데,

그 순간 와장창 전구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지붕이 10센티미터 정도 찢어져 버렸다. 


망연자실. 마음 한 구석이 덜컥 내려 앉은 것 같은 기분이다. 

한참을 둘이 앉아 티격태격 다투다가 - 엎지러진 물 -

마음을 진정시키고 난 후에야 관광에 나설 수 있었다. 

그래도 정말 아름다운 뒹켈스뷜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사진기도 차에다 두고 내려 버렸다.

나중에라도 다시 이곳을 방문하라는 뜻인 모양이다.

이렇게 큰 사고는 시간이 좀 흘러야 잊을 수 있다.





아우구스부르크는 브레이트의 고향이라고 한다. 

시대의 절망과 고통을 노래한 그의 시는 김남주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하이네와 함께 참여시인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노래했다. 


입구에서 너무 길이 막히는 바람에 바로 뮌헨으로 향했다. 

뮌헨에서 조금 못 미친 곳에 아주 저렴한 캠핑장이 있어서

단돈 36유로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앞에 캠핑을 한 중년의 부부가 캠핑카에 물 채우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전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드라이버도 빌려주어 

오랜만에 돼지고기, 쇠고기, 베이컨으로 고기 파티를 할 수 있었다. 


그저께 하이델베르크에서 산 전기선도 말을 잘 들어주어 전기도 잘 돌아간다. 

무전기, 면도기를 충전하면서 노트북으로 일기도 쓸 수 있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일이 더디다. 

설거지를 해도 한참이 걸리고 밥 준비를 해도 한참이 걸린다.

식사를 마치고 세탁을 하려고 세탁실에 갔더니 별도의 샤워코인이 있는데,

리셉션 데스크는 문을 닫았다. 옆의 문의 초인종을 한참 누르니까 

나이 드신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끝났다고 하면서 인상을 쓰신다.


하기는 9시까지 일해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오랜 만에 깔끔하게 샤워를 했다. 

3일만에 머리를 감고 비누로 샤워를 했더니 매우 기분이 좋다.


우주신을 맨 구석에서 재우고 무일이 가운데에 

그리미가 가장 자리에서 자는 것으로 자리를 정했다. 

3일치 일기를 쓰려니 양도 많고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낮에 겪었던 사고의 후유증으로 심신이 피로하다.

그대로 곯아 떨어져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