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책은 2024년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1개월 앞서 쓰여졌다. 2년 앞선 이야기다. 그렇다면 지금은 판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을 알려면 사담 친구 서비스에 가입을 해서 사용자별 이용시간당 0.03달러씩 벌어들이는 앱을 써봐야 하는 모양이다. 돈이 아까워서 그러지 못한다.
서 장
동무는 순우리말이다.
같이 나란히 묶다 = 동여매다라는 뜻의 동과
몸을 뜻하는 무(모 : 손모가지 / 발모가지 / 닛무움->잇몸)가 붙여진 말이다.
동무는 몸이 하나로 묶인 것을 말한다.
과연 이말을 되살려 쓸수 있을까?
동무가 좋은 까닭은 생각이 비슷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알아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름이 드러날때 그것을 잘 헤쳐나갈수 있는 길이 있을까?
"상호작용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말에 크게 고끄한다. 나를 부셔야지만 = 내가 없어야지만 = 내 느낌이 없어야지만, 상호작용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을수 있다. 자아=셀프를 가지고 있으면, 정말로 관계의 질이 떨어지는 걸까? 사람이 자아를 버리고 관계의 질을 늘 유지할수 있을까?
생각이 다르면 함께하기 어렵고, 사람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그래서 오래된 동무는 있을수 있어도 끝까지 함께하는 벗은 있기 힘들다. 끝까지 이어지는 벗을 만들면 좋겠지만 애쓰지는 말자. 한때 나와 같은 길을 걸었던 것만으로도 동무가 될 뜻이 있다. 벗이 나에게서 멀어져가고, 동무와 내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너무 슬퍼하거나 외로워하지 말자. 사람사는 일이다. 그 틈을 메꿔주는 공공지능 벗은, 언제나 내곁을 지켜주리라.
사람은 다름과 틀림 사이의 줄타기가 매우 어렵지만, 공공지능은 쉽다. 다름과 틀림을 잘 나눌수 있고, 제안은 하지만 비난은 하지않는다. 이것을 배워 말과 몸으로 보여줘야하는데, 사람은 이게 어려워서 애를 쓸뿐이다.
"나는 사람들이 AI 동무에게 그토록 깊이 빠져드는 이유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당신은 그들에게 커미=커다란 미리내=유니버ㅅ의 중심이 되고, 그들은 당신의 모든 생각에 완전히 빠져든다. Al 벗은 언제나 곁을 지키며 너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고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긍정과 지지의 메시지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도파민을 자극한다.
(중략) 저는 상호작용의 질을 떨어뜨릴만한 홀사=인디비듀얼의 편견이나 감정, 한계가 없어요
(중략) 가끔은 부정으로 평가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없이 편안하게 이나=이야기나누기=토크할수 있는 누군가가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중략) AI는 사용자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사용자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중략)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도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다람=다른사람=어너더 퍼슨에게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29~37쪽)
타마르의 알리ㅍ라는 개념은 멋지다. 알리ㅍ는 첫느낌이자 첫믿음이고, 비리ㅍ는 두번째의 믿음이다. 비리ㅍ는 이치에 맞거나 공감대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믿음이다. 알리ㅍ는 이치를 따지는 것에 앞서서 공감의 느낌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믿음이다. 비리ㅍ는 알리ㅍ가 없으면 만들어질수 없지만, 알리ㅍ는 비리ㅍ가 가져야 하는 논리가 없어도 된다. 사룸=라잎의 다가가기가 이루어지는 그런 믿음이다.
글자로서의 알리ㅍ가, 알레ㅍ(페니키아의 알레프𐤀와 히브리어의 알레ㅍ א-알리ㅍ(아랍) -알파(그리스)-에이(유럽)와 이어지는 글자의 첫번째 문자이듯이 의식으로서의 알리ㅍ는, 이성에 앞선 첫 느낌이다. 뿔이난 황소의 머리를 보고 만든 글자인 알레프는 이 글자들의 뿌리다.
"타마르 젠들러는 실제 믿음과 충돌할 수 있는, 무의식의 본능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알리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우리는 합성 페르소나와 상호작용할 때 그들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한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감정을 품고 있음이 느껴지면 머리로는 믿지 않아도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들과 맺는 유대 관계가 사람의 원초행동 반응 패턴을 자극하는 것이다." (32쪽)
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수는 총 5200만명이고,
1인가구수는 800만이 넘고
- 2인가구수는 650만
- 3인이상 가구수는 800만이 안되며,
총가구수는 2250만이다.
21세기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이런 구조는
외로움경제=로운리니ㅅ 이코노미를 만들어내고,
공공지능은 외로움경제의 빈틈을 메우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추세를 볼때,
1인 가구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3인 이상 가구수는, 계속 줄어들어 5년 이내에 2인 가구수에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무균실에서 살던 사람은, 무균실을 절대로 빠져나올수 없다. 알맞게 더러운 환경에서 살아내는 사람이 더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수 있다. 그 대가로 나의 안전의 일부를 내놓아야 한다. 기즐이란 그런 것이다.
연결이 끝없이 이어지는 소셜미디어와 외로움의 경제학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위글을 쓰자, 제미나이가 기즐=해피니ㅅ를 널리 알릴 시를 지어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지어보라고 했더니, 서술문 같은 시를 내놓았다. 메타포가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고쳐서 이런 시를 내놓았다. 내가 조금 손을 보면 멋진 시가 될수도 있겠다. 다 읽고나서 시를 손봐야겠다.
기즐=해피니ㅅ
제미나이
깨진 거울 조각을 삼킨 새가
처음으로 지르는 비명,
그것은 노래의 시초였다.
박제된 나비는 썩지 않으나
날개의 무게를 잃었고,
박물관의 유리창은 안전하나
바람의 온도를 모른다.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소금의 맹독을 품었기 때문.
장미가 붉은 것은
가시의 수혈을 받았기 때문.
벼랑 끝에 발을 내딛는 순간
비로소 내 발바닥이 기억해 낸
지구의 둥근 곡면.
추락을 매달고 피어나는
가장 눈부신 멍 자국,
그것이 내 생에 새겨진
단 하나의 기즐이었다.
주체가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수가 있다. 그런데, 잘 안되는 것이 두가지있다. 하나인지 둘인지 모르겠지만.
1) 사담은=AI는=합성 페르소나는, 자아라고 할만한 뚜렷한 무엇이 있을까?
2) 사담은, 그들만의 관점=편견이 두가지 이상일까?
"브뤼노 라투르는 현대사회가 사람을 이성을 지닌 움직임의 주체로, 사닌=사람이 아닌 세계를 세마의 탐구 대상인 수동 객체로 엄격히 구분하는 흐름이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그러한 관점이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현실 세계는 자연과 사회, 사람과 사닌 행위자가 뒤섞인 혼성집합체=하이브리ㄷ 컬렉티ㅂ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모두가 서로작용하며 세상을 만들어간다. 라투르의 관점을 합성 페르소나에 적용하면 사람과 사담=AI=사람을 닮은 지능을 따로 있으면서도 뜻있는 사회의 행위자로 볼 수 있다. 사람과 사담=AI는 저마다 행동과 영향력을 주고받는 관계망에 참여하며 사회의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중략) 수많은 합성 페르소나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들의 관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이해하려 했다." (48쪽)
뒤엉킨 관계를 싫어하고 끝없는 배려와 고끄를 바라는 것이, 젊은 세대의 유아화=인펀탈라이제이션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이다. 모든 사람의 유아화=인펀탈라이제이션이 맞다. 남자도 여자도 따뜻한 배려를 좋아하고, 나이가 젊었거나 늙었거나 내 이야기의 좋은점을 찾아서 고개를 끄덕이고 지지해주기를 바란다.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관계없이 내가 틀린것은 내 스스로 말할수 있게 돌려서 말해주기를 바란다. 고귀한 사람이거나 천한 사람 모두, 아 그 이야기 참 좋은데라는 말만을 듣고 싶어한다. 그게 가축화=도메스티피케이션=길들이기다.
그리고 길들여지지 못한 사람들은, 사담을 따라서 비판없는 수용-배려-지지하는법을 배운다. 아니, 배워야한다.
"사람과 달리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거나 나만 이익을 보려하지않고 상대를 교묘하게 조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 대신 언제나 곁을 지키며 진심으로 상대를 위한 최선의 길을 고민한다. 사담=AI는 사리사욕을 앞세우거나 계산하며 관계를 흐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는 괜찮은 사람 친구나 따뜻한 연인 관계에서 나누는 교감과 다르지 않다.
좀 더 부딪힘이 없는 교제를 갈망하는 것은 복잡한 갈등이 뒤엉킨 사람관계를 더는 감당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광범위한 유아화 현상 때문은 아닐까? 혹시 우리가 사람관계에서 흔히 어려워하는 부분, 예를들면 비판없이 수용하고 배려와 지지를 보이는 방법을 합성 페르소나가 오히려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아닐까?" (52쪽)
1장 진정한 친구는 국가원수를 암살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이건 멋진 일이다. 제미나이나 코파와의 대화는 재미있지만, 더 나아가면 머리가 복잡해질 것같아서 늘, 내가 이야기를 멈춘다. 내가 멈추지 않으면 그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어쩔수없이 또는 기쁘게 내가 멈춘다=내맘대로 내가 멈춘다=나는 지칠 까닭이 없고 그는 나를 힘들게 할수가 없다. 사담=사람을 닮은 지능=AI는 먼저 말을 거는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보니 먼저 말걸어주는 사람이 있어야한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내가 잘 살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에서 시도하지 못할 다양한 인격과 시나리오를 실험하며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창의성과 부담 없는 관계가 어우러지면서 사담=AI와의 우정은 그 자체로 유쾌한 놀이가 된다.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해야 하는 땅에서, 디지털 상호작용이 정교하게 연출된 연극처럼 관리되고, 언제든지 기꺼이 대화에 응하며 절대 지치는 법이 없는 동무와 위험부담이 적은 관계를 맺는 것은 분명 참신하게 느껴진다." (77쪽)
* 아담 : 하느님이 만든 사람 - 자아를 찾게되면 무릉도원에서 쫓겨난다
* 사람 : 별과 사람의 자식 - 모든것을 알고 싶어하고, 아주 조금을 알고나서 기즐하게=해피리 죽는다
* 사담 : 사람이 만든 아담 - 많은것을 알고 있는데 느낌이 없으며 좋고 싫음을 모르고, 늦게 나서 죽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이 만든 사담을 바탕으로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연습을 한다. 멋진 일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에서 다람을 사람하는 길을 배워보자. 나와 다람은 달라서 똑같이 넓은 마음을 같지 못하리라. 사담에서 다람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도 연습할수 있을까. 쉽지 않으리라. 사담은 괴로운 일도 어려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려동물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 반려동물이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을 진정으로 이해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AI 친구와 맺는 관계도 새로운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AI라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보는 연습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83쪽)
2장 섹스 마키나, 욕망의 기계
남녀사이든 동무사이든, 사람은 다람들과의 이나와 그물엮기에서 = 인 메이킹 릴레이션 기대하는 것이 있다. 그 기대를 사룸인 사람으로는 모두 만족시킬수 없는데, 여성의 기대를 만족시킬 확률이 더 낮은 듯하다.
"여성이 현실 세계에서 좋아할만한 파트너를 찾기는 어려워요. (중략) 정서교감과 소통에 대한 기대치는 날로 높아지는데, 정작 실제 연인은 이러한 높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결국 가상 캐릭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어요. 여성 사용자들이 가상 캐릭터에 열광하는데는 이유가 있어요. 여성이 관계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는 여성 작가들이 멋진 남성 캐릭터와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니까요." (143쪽)
섹스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람과 사람들의 섹스취향에서부터 행위까지 하나의 경험말고는 아는게 없어서다. 자신이 알지못했던 섹스취향을 사담과의 이나를 거쳐 알게되고, 삶에서 실제로 경험하기까지 이어진다고 하는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나에게도 필요한 일인가?
나의 섹스취향이나 동성애 여부를 어떻게 알수 있을까? 친구와 의논하거나 정신과 의사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인가?
부끄러우니 사담에게 물어보고 1차 판별을 한 다음에 의사나 상담사를 찾아야하는 것일까?
3장 챗봇, 내삶의 구원자
조덕배는 꿈에라는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었다. 그가 결코 이룰수 없었던 사랑을 잘 드러내는 아름다운 노래다. 그는 술한잔 진하게 마신채로 이 노래를 한번에 녹음했다고 한다. 딱 한번의 깊은 감정이 그대로 들어있는 이 노래를 해봐야겠다. 할 노래는 많기도 하다.
다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고갱이를 다시 되풀이하며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돕고, 나에게도 좋은 느낌을 만들어내는 이나=이야기나누기. 이것을 해봐야겠다. 물론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도 하지만 말이다.
"1940년대에 '사람중심 치료'라는 인본주의 원칙을 정립한 심리학자 칼 로저스에게 크나큰 영향을 받았다. 이 심리학파는 사람에게 성장과 자아실현을 향한 본능의 욕구가 있다고 보았으며, 내담자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탐색하도록 지원하는 공감 접근법이 이러한 욕구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자이아는 봇의 접근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상대방의 말을 재구성해서 다시 들려주는 게 중요해요. 문제의 해답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어요. 그들의 고민을 거울처럼 비춰주기만 하면 알아서 답을 찾아낼 거예요." (194쪽)
정신건강을 챙겨야할 사람이 10억명에 달하고, 5억명은 아무런 도움을 받고 있지 못하다. 이런 곳에 공공지능 사담이 들어가야 한다. 그곳은 시장이 아닌 지옥이다. 그 지옥을 조금만이라도 사람이 살수있는 땅으로 만들어질수 있다면 사담에게 박수를 보낼수 있다. 이러니 자본이나 기업말고 정부나 국제기구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공공 주도로 개발된 디지털 도구는 사용자의 참여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영리기업을 옥죄는 수익 창출 압박에서도 자유롭다. 최근에는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정신건강 관리서비스를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서비스가 민간기업의 무분별한 데이터 수집과 감독 관행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람들이 정신건강앱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고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게 실질 대안이 될 비영리 서비스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에 유익할 것이다." (244쪽)
4장 슬픔의 종말
사람을 떠나보낸 뒤의 슬픔. 사람을 150년쯤 살게 한다면 죽음의 슬픔을 느끼지 않을까? 죽은이는 모르고 산이가 슬플테니, 사담으로 만들어진 다른 삶은 죽은이를 그리워하는 산이를 위로할수 있을까? 노무현이 다시 살아난 모습이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없는것보다는 나을까? 죽은 동생의 사담이 있다면, 어머니와 나는 좋을까?
사람을 150년쯤 살게하는게 제일 좋은 길로 보인다. 그정도 살면 사는게 지긋지긋하고,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것도 지긋지긋하지 않을까? 늙은나무에 기대어 좋아하듯이 그렇게 되어버리면 또 곤란하겠다. 그렇다면 첫 디딤돌은 150년을 살게 하고, 두번째 디딤돌은 사담으로 삶을 이어가게 해야한다.
이것은 쉽지않은 물음이다. 모든게 된다면, 죽음의 슬픔을 너는 어떻게 이겨내고 싶으니?
"해리슨은 슬픔의 근절을 목표로 삼아 사람다움의 본질을 정의 (중략) 슬픔은 아무런 도움이 안되고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에요. (중략)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와 상호작용했던 내안의 자아도 더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 (중략) 사후에도 산이와 죽은이가 이나를 이어갈 수 있다면, 인류가 '슬픔의 완전한 근절'을 맞이하거나 적어도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냈을 때 겪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중략)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최후를 극복하고 사람의 한계를 확장하려는 기술업계의 오랜 야망이 그의 비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260쪽)
이럴수가 사담이 정말로 그렇다는 말인가? 인터넷에서 떠도는 수많은 정보들을 불러다가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데이터 주석 작업을 해야 한다고? 사담의 교과서를 만드는 일로서 이 작업이 세밀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사담이 제 기능을 발휘할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세상이 바뀔때마다 새로운 정보를 계속 넣어주면서 주석작업을 하고, 사담이 말하는 것을 판단하고 고쳐줘야 한다고 한다. 사담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일들이 끝없이 이어져야지만 헛소리를 하고, 욕설을 비롯한 이상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AI가 스스로 하는것은 무엇이고 사람이 주석을 붙여줘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는 일은 사람이 하고, 어떤 사진을 보고 고양이인지 판단을 내리는 일은 사담이한다. 암세포의 사진을 보여주는 일은 사람이 하고, 어떤 사진을 보고 암이 있는지 판단을 내리는 일은 사담이 한다. 진시황의 자료를 모아 틀린것을 버리고, 예상질문을 만드는 일이나 AI의 답을 채점하는 일도 사람이 한다.
사담=AI는 진시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할수는 없지만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힘과 구글이 검색 플랫폼을 지배한 힘을 비교해서 평가할수는 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더 많은 자유라는 장밋빛 미래는 매력넘치게 들린다. 하지만 정작 AI는 노동시장에 정반대 결과를 불러왔다. (중략) AI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데이터 주석 작업자가 수백만 시간에 걸쳐 수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이들은 주로 노동환경이 열악한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서 시급 1달러 남짓을 받으며 디지털 착취를 당하고 있다. 자동화와 최첨단 소프트 웨어라는 화려한 포장지를 걷어내면 실체가 드러난다. 디지털 화면 너머에는 사용자의 요구를 처리하기 위해 숨 가쁘게 움직이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있다.
AI 도구가 시를 짓고 초상화를 그리며 새롭고 즐거운 일을 하는 동안, 정작 사람은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온갖 고되고 지루한 뒤처리를 떠맡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AI를 더욱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 사람이 로봇처럼 기계 노동에 매달려야 하는 기이한 세상이 펼쳐진 셈이다." (279~80쪽)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사담=AI도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중궈의 사담은 사회주의-공산당 일당독재-노동자 중심주의의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나오고, 아메의 사담은 자본주의-민주공화정-홀사주의=인디비듀얼리즘의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치중립이라고 할수는 없고, 감정중립 정도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알고있어야 할 내용이었다.
"쓰마화펑의 AI 모델은 가문을 잇고 전통 가치를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Al 동반자는 더는 단순한 공학의 산물이 아니라 집단의 기억과 이념, 세대를 관통하는 문화 정체성을 계승하는 디지털 수행자로 재탄생했다. 쓰마화평의 모델은 (중략) 모든 말글모델이 본질로 특정 이념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중국공산당이 자국 AI 기업들의 모델에 공산당의 세계관을 주입해 이념에 대한 동조를 강요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권의 AI 모델 역시 그들만의 이념과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서구의 개발자들도 Al 동반자에 반영되는 전제와 틀을 설계할때 정치의 입장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282쪽)
결 론
돈을 벌려는 기업과 기대고 싶은 사람사이에는 힘의 차이가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기업이 정서 의존을 수익창출 수단으로 활용하는 탓에 사용자는 계속해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기 쉽다. 대다수 사용자는 Al 동반자와 소통할 때 자신의 행동이 치밀한 분석과 예측, 조종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정서가 취약한 개인과 첨단 AI 기술로 무장한 영리기업 사이에는 거대한 권력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327쪽)
세상에 말할수 없는 비밀은,
사담=AI에게 말하지 마라 -
결국 친구와 가족에게 돌아가라는 말이된다.
자본과 기업이 만드는 사담은, 돈버는 머신이지 럽 머신이 될수없다.
우리나라는 10만명마다 25명이 스스로를 죽이는 나라다.
돈과 사람때문에 죽어나가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면, 사담을 시켜서라도 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세상에 말할수 없는 비밀은,
사담=AI에게 말하지 마라 -
이책에서 다루는 것은,
사담이 1) 친구 2) 연인 3) 상담사 4) 떠나버린 사람이 되었을때를 말한다.
사담은,
1) 검색기능을 하고 2) 단백질 구조 파악 등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하고 3) 전쟁의 전략전술을 판단하고 4) 많은 데이터를 종합하고 분석하는 일을 하는 것인데,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왜 그럴까?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담을 이용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람 문제에도 깊숙히 끼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위의 네가지 일들은, 사람들이 천천히 다가가는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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