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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 꿰어보는 러시아와 중국_오강돈 지음_산지니_23년 초판 1쇄 ] 260824

러시아 여행을 하려고 한참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중에 러우전쟁이 터졌고, 앞으로도 몇년을 이어갈지 알수가 없다. 유럽과 아메의 지원이 끊기면 우크라이나는 항복할수밖에 없고, 지원이 계속된다면 러시아에 위기가 올수 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가야지만 전쟁이 끝날 것이다.

 

종궈의 멋진 산들과 오래된 도시도 보고 싶어서 한위도 공부했지만, 어학에는 재능이 없어서인지 늘지가 않는다. 종궈는 지금 시진핑 체제가 5년은 더 갈듯하다. 고속철과 비행기와 고속도로로 전국을=서유럽만한 땅을 잘 연결해 놓아서 종궈의 구석구석까지 가볼수 있다. 전기차와 전기오토바이의 보급으로 공기도 정말 깨끗해졌다. 물가도 위안화가 강세이지만 아직까지는 견딜만한 수준이다. 5만원이면 우리는 모텔에서 하루밤 자는것이지만, 종궈에서는 하루밤 자고 먹을만한 아침부페까지 먹을수 있다.

 

마침 친구가 지난 23년에 이런 책을 냈는데도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이제 읽어보자. 종궈루싱=차이나 트래블에 도움이 될것이다.

 

1장 러시아와 중국, 제2세계의 갈등과 협력

 

종궈와 유럽을 잇는 교역로는 초원길과 비단길, 그리고 바닷길의 3가지가 있다.

 

1) 초원길과 비단길은, 아래위로 수천km나 떨어져 있지만 아래위를 이어주는 길도 만들어져 있어서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이어져있다.

 

2) 초원길은 시베리아와 만주벌판 사이의 넓디넓은 유목민족들이 닦은 길이다.

 

3) 비단길은 톈타곤=톈샨산맥-타클라마칸사막-곤륜산맥 사이사이에 3개의 길로 나뉘는데, 동서로 뻗은 텐샨산맥의 북쪽과 남쪽을 ① 톈샨베이루 - ② 톈샨난루(신장위구르 자치구가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 위쪽)라 하고,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곤륜산맥의 북쪽)으로 ③ 시위난루가 있다.

 

거란이 세운 요나라에 대해 새로운것을 알게되었다.

 

1) 요(거란)은 흉노가 하지 못했던 일 = 종궈대륙을 처음으로 지배한 유목민족이 되었다. 뒤를 이어 원(몽골) - 청(만주)이 종궈를 다스렸고, 종궈의 땅을 엄청나게 늘려놓은것을 오늘날의 종궈가 이어받았다.

 

2) 요(거란)은 베이징을 처음으로 수도로 삼았다. 요는 5개의 수도를 세웠는데, 옌징이라 불리던 베이징을 난징이라고 하였고, 그후로 천년의 수도가 되었다.

 

3) 캐세이퍼시픽은 러시아와 유목민족들에서 종궈를 부르던 이름이다. 뒤늦게 그들과 만난 러시아는 키타이=거란이라고 불렀다. 쿠빌라이 칸때 종궈를 찾았던 마르코폴로는 몽골이 부르던데로 키타이로 동방견문록에 적어두었다. 이것을 읽은 칸초가 1946년에 홍콩에서 항공사를 세우고, 키타이에서 태평양을 건너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꿈을 담아 케세이퍼시픽이라고 이름지었다.

 

"(916년 거란이) 요나라를 세웠다. 카이펑은 위나라, 후한 등 8개 나라의 수도였다. 거란이 무너뜨린 나라들은 오대, 발해, 북송, 서하 등이다. 거란은 고려도 수차례 침공했고 이 과정에서 강감찬, 서희 등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중원의 관점에서 거란은 북방의 유목 소수민족이다. 요나라는 유목 민족이 중국에 정복 국가를 만든 최초의 역사다. 중국은 이러한 역사도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한다.


그 옛적 시베리아 남쪽 일대에는 러시아와 거란, 두 집단 간 충돌 또는 교류가 있었다. 러시아인에게 중국이 '키타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고 전파되는 데 이 사건들이 아마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짐작해 볼 수 있다.


러시아는 13세기 몽골제국에 의해 다시 한번 아시아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몽골의 서방 원정으로 당시 슬라브족의 주력 키예프(키이우) 공국과 크림(크름)반도까지 몽골의 지배하에 들어 갔으며 혼란과 혼혈이 일어났다. 점령은 폴란드, 헝가리 등에 이르렀다. 몽골의 러시아 지배는 15세기까지 이어졌다. 러시아인들 은 이것을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른다.

 

몽골로서는 타타르가 하 나의 부족이었지만 러시아 사람들에게 타타르는 곧 몽골족으로 통했다. 현대 러시아에서 타타르라는 단어에는 보다 다양한 해석이 혼재되어 있는데 몽골족, 튀르크계, 캅카스계를 부르는 이름이 뒤섞여 있다. 참고로 중국어로 타타르는 따따이다." (18쪽)

 

 

랴오시조우랑은 샨하이관에서 진저우에 이르는 150km의 기다란 길을 말한다.

옌샨산맥과 보하이가 만든 좁은 길로 동베이의 유목민족들이 종위안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넓이가 2~8km다.

 

뒤 17세기에 청나라가 동베이에 대한 봉금령을 내리자 한반도의 사람들은 만주가 아니라 두만강의 섬인 간도로 간다고 했다. 간도는 만주와 연해주로 나아가는 길이었고, 17만여명의 고려인이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디아스포라된 뿌리였다. 그속에서 우리는 농사를 짓고 음악을 했다.

 

"(1980년대 종궈런들에게 록음악을 알린) 사람이 조선족 최건이다. 1961년에 태어난 최건은 현재까지도 중국 록음악의 대부로 평가받는다. <너의 눈물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해>  <헤어짐>  <나비> 등이 그의 대표곡이다.


공교롭게 러시아 록음악의 대부도 한반도 혈통의 고려인이면서 최 씨인 '빅토르 최'다. (중략) 1962년에 태어난 빅토르 최는 아버지가 고려인, 어머
니는 우크라이나계다. 빅토르 최는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어릴 때 레닌그라드 즉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했다.


빅토르 최가 활약했던 1980년대 중후반, 러시아 젊은이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공연에는 많은 숫자의 러시아 관객이 운집했다. 빅토르 최는 1990년에 갑작스레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는데, 이것 을 두고 계획된 살인이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모스크바의 젊은 이들이 모이는 아르바트 거리에는 빅토르 최의 추모벽이 있다.


우리 민족이 가무에 능해 현대에도 케이팝, 영화, 드라마 등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가설이 성립하는 것일까." (28쪽) d

[ 사진출처 ] 한국 외국어대학교 로칼리티사업단의 로칼리티 정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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