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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백두산 셴양 따롄

[ 셴양_랴오닝 박물관_장쉐량 집_북릉공원 ] 놀랍구나, 중궈렌들이 장쉐량을 이렇게 받들고 있다니_260711

빨래까지 하느라고 거의 12가 다되어 자는 바람에 간신히 8시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한시간 가까이 이것저것 천천히 밥을 먹으니 놀러온 재미가 느껴진다.

 

백두산 관광을 하느라 너무 새벽부터 설쳐댔다. 다음부터는 완다랜드 같은 좋은 숙소에 머물면서 날씨 좋을때만 예약해서 = 모두 예약을 해놓고 날씨 좋을때를 골라서 하루 정도만 올라가면 된다. 시포나 베이포의 입구에는 호텔과 리조트들이 많아서 트립닷컴에서 원하는 숙소를 고를수 있다.

 

백두산은 예약해놓고 올라가지 않으면, 미사용으로 환불이 된다. 시포만 올라가도 좋다. 쓸때없이 택시비를 쓸 필요가 없고, 1442개의 계단을 걸어올라가며 들꽃들을 보는 즐거움이 매우 크다. 그러고도 날씨가 좋으면, 시포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난포를 가거나 얼따오바이허로 가서 버스를 타고 베이포로 가면, 대중교통으로 백두산을 이용할수 있다. 

 

짧은 영어라도 이나가 되는 호텔리어들을 만나니 너무 좋다. 커피를 담아갈수 있는 컵을 달라고 했더니 찾아서 주는데, 한마디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기쁨이 참으로 컸다. 하루도 힘들지 않은날이 없었다. 파파고 돌리고 손짓발짓으로 뭔가 하는일은, 한번은 재미있지만 자주 그러면 힘들다. 9시 반이 넘도록 밥을 먹고 난 다음에 10시 반까지 뒹굴거리다가 비옷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셴양 북역의 홀리데이인 익스프레ㅅ인데, 잘 골랐다.

 

2호선을 타러 걸어갔다. 애플지도가 아주 잘 쓰이는데, 날이 흐려서인지 자꾸 흔들린다. 처음에 방향을 잘 잡아서 가야겠다. 비가 쏟아지고 있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흐리기만 해서 정말 걷기에 좋았다. 칭다오에서는 60세 이상은 모두 거져였는데, 이곳은 65세 이상만 전철이 거저다. 14개의 정류장을 가는데 5원이다.

 

10:55에 전철을 타서 11:30에 셴보우관에 내렸다. 랴오닝박물관은 거저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게 장사가 될까 싶다.

 

[ 꼭 알아야 할 것 ] 애플지도는 전철을 탈때 어느 방향이라는 것까지 잘 표시되고

                                 어느 출구로 나갈지도 잘 안내하고 있는데, 그것을 몰랐다.

* 랴오닝 박물관 : 2호선 타오시안지창행을 타서 14개 정류장을 간다음에 D출구로 나가면 된다 ]

 

 

 

동베이에 랴오닝-지린-헤이룽장이 있는데, 그중에서 랴오닝의 고대 유적들부터 근대에 이르는 문물을 전시해두고 있는 모양이다. 입장료는 거저이고, 외국인은 여권만 보여주고 들어간다. 안내데스크에서 한글 브로슈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어로 없다고 한다. 3층부터 보는게 좋단다. 우리가 보려고 왔던 중궈의 그림들은 전시가 끝난 모양이어서 매우 아쉬웠다. 뗀돌에서부터 간돌 - 온갖 항아리 - 실만드는 가락바퀴까지 없는게 없다. 돼지모양의 용모양 장식이 있는데,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무슨뜻으로 만든것인지는 알수가 없다. 매우 아름답고 모던하다.

 

고대의 편경을 걸어놓았는데, 어느 시대에 만든 것인지를 밝혀놓지 않아서 알수가 없다. 흙으로 만든 그릇과 항아리들도 화려한 색이 살아있다.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는 멋을 낸것인지 폼을 잡으려던 것인지는 알수 없지만,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낸다. 제미나이에 따르면, 조개는 신석기 솽투즈문화에서 매우 좋은 재료였고, 값나가는 것이었다. 땅안에서도 이런 조개가 많이 보이는 것은, 그만큼 서로 만나는 일이 많았다고 미말하는 것의 뿌리라고 한다.

 

갑골문자는 점을 치면서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랴오닝박물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1) 구리 드릴(동찬)을 사용하여 거북이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 뒷면에 깊고 둥근 구멍을 뚫는다.
2) 뚫어놓은 구멍 한쪽 면에 대추씨 모양의 홈을 판다.
3) 불타는 나뭇가지나 금속 막대로 홈이 있는 부분을 지지면, 뼈가 갈라지면서 ト모양의 쪼개짐이 나타난다.
4)  나타난 균열의 형태를 보고 길흉을 판단하며, 점을 친 원인과 결과를 균열 근처에 새겨 넣었다.


갑골 점은 고대 사람들이 신령의 도움을 받아 길흉을 미말하던 방법으로,

상나라때 점복 활동이 틀을 잡았다.

 

 

 

 늘어서 있다. 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