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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_ 최재천, 다윈 지능

인용된 모든 내용의 쪽수를 기록해 두지 않아서 아쉽다 _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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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다윈의 '종의 기원'을 직접 읽지 않았고, 중학교 생물 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는 진화론에 대해서만 들었다. 너무 단순해서 그저 당연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재천 교수의 말에 의하면, 다윈 이론이 모든 삶에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위대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학문을 통해서건 과거와 현재에 대한 해석과 함께 미래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설명하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은 과연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일까?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중략) 훌륭한 학술 이론이 갖춰야 할 속성으로 단순성(simplicity), 응용성(robustness), 그리고 직관적 아름다움(intuitive beauty)을 든다. (중략)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엄청난 생명의 다양성이 진화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  어쩌면 이렇게도 단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 같다. 생물학자들이 '물리학자들의 천재성' 공세에 밀려 한참 절망했던 시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학문하는 즐거움으로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주목받고 싶은 것인가.  "잔뜩 주눅이 든 생물학자들 사이에는 한때 '물리학 선망(physics-envy)'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물리학은 운동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니 위대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 과학기술의 발전에 물리학이 많은 기여를 했으니 더욱 더 그렇다. 그렇다고 물리학이 나는 누구인가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런 차원에서 생물학은 또다른 무언가를 제공한다. "진화의 필요충분 조건은,  1) 변이(variation)   2) 유전(heredity)   3) 경쟁(competition)   4)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진화의 조건을 가지고 사람 사는 모습을 돌아보자.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피할 수 없는 경쟁에서는 승리의 영광과 함께 가혹한 죽음이 따르는데 어떤 것의 죽음이 결국은 다른 어떤 것의 생존 바탕이 된다. 그래서 '죽음이 생명을 허락한다'로 멋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의 희생과 죽음이 자본의 성장과 생존에 기여한다거나 노동자의 죽음이 자본가의 번영을 허락한다가 되어버리면 이 얼마나 끔찍한 생각인가? 나찌들이 이용했고, 일본 군국주의자와 친일파들이 주장한 우수한 인종과 민족들의 전성시대가 자연법칙인가?

 

이런 문제 때문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많은 지식인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최재천은 이미 충분하고 엄정하게 검증되었기에 '자연선택설(natural selection hypothesis)'이 아니라 '자연선택론(natural selection theory)'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 치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의 설명을 다시 들어본다.

 

"자연 선택은 개체군에서 변이를 제거하는 과정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떤 변이가 선호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변이는 어떻게 생성되는 것인가?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전적 변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분명 돌연변이(mutation) 밖에 없다.  돌연변이란 유전 물질에 마구잡이로 발생하는 유전 가능한 변화를 뜻하는데,  그런 마구잡이 변화가 언제나 생명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발생하리라고 기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중략)  진화가 만일 바람직한 변이의 출현을 기다리며  돌연변이에만 목을 맸다면 지금과 같이 현란한 생물다양성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진화의 요인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 경중의 정도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돌연변이가 중요하지만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최재천의 설명은 알겠는데, 완전히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종의 분화나 유전자 변이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돌연히 나타난 것이라 증명할 길이 없는 모양이다. 돌연변이를 알지 못했음에도 논가에 옥수수를 심어서 벼의 변종을 유도하여  재생산이 가능한 좋은 벼품종을 얻으려 노력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참 놀랍다. 다윈처럼 이론으로 체계화하지 못했지만 벼의 생장과정에서 옥수수와의 수정을 통해 수확량도 늘고, 맛도 좋으며, 병충해에도 강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통찰하시다니.

 

계속해서 최교수는 또 조류독감에 대해서도 유전적 다양성이 제거된 상태의 양계 산업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동감이다. 한가지 설명은 필요하다. 왜 다양성이 살아남는 개체군을 남길수 있나?

 

1) 지구의 모든 사룸life과 물질material은, 지구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빠져나갈수 없다.

2) 지구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지각운동, 대류, 태양, 대기, 소행성 충돌 등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3) 지구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4) 사룸들은, 그가 존재할 때의 환경에 맞춰, 지구에 존재하는 것들로 만들어진다.

5) 지구에 대변화, 즉 눈덩이 지구나 소행성 충돌, 현무암분출 등의 변화를 맞이하면,

생존할 수 있는 것과 화석으로 묻히는 것으로 나뉜다.

6) 무수한 특성을 지닌 사룸들 중에서, 지구의 대변화에도 살아남는 개체들이 존재한다.

7) 그러므로 풍부한 변이를 갖춘 개체군들의 일부는 지구의 어떤 변화에도 살아남을수 있다.

8)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 사룸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9) 왜냐하면, 지구의 변화는 우리가 제어할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Q.E.D.

 

"야생 조류의 개체군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그들 중 한두 마리가 감염되어도 좀처럼 전체로 번지지 않는다. (중략) 도대체 자식을 하루에 하나씩 낳는 동물이 이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닭은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괴물'이다. (중략)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개체군은 바로 유전적 변이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진정 섞여야 건강하다."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려 살처분 매몰되는 닭들을 유전적 다양성이 빈곤한 복제 닭이며, 알을 낳는 기계이고, 괴물이라고 한다. 고작 감기에 걸려서 몰살될 정도로 허약한 기계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닭, 오리, 돼지, 소, 우유는 물론이고, 고추, 쌀, 고구마, 땅콩, 밀 등등 현대 과학에 의해 탄생한 모든 농축산물들은 생산 기계이고 괴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자연농법에 의한 것이 아니고는 대부분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번식(reproduction) 기능이 없이 생존(survival)하는 것들에 의해 농축산업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자연농법과 통한다는 것이 매우 반갑다.

 

"복잡한 생물들도 등장한 것이지 결코 모든 생물들이 좀 더 복잡하게 변화하는 방향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다윈의 일기에는 이 세상의 온갖 생명체들을 논할 때) 나는 결코 어느 것이 하등하거나 고등하다고 쓰지 않겠다"

 

  다짐했다고 한다. 

 

"진보라는 말 속에는 목적 또는 목표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성이 없다."


최교수는 다윈의 진화론이 이데올로기 논쟁에 빠지게 된 것은, 스펜서가 정리한 "적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이 알게 모르게 최고나 일등을 향한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화론의 잘못된 이해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들도 이러한 사고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