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는 로봇 3원칙에 아이와 부모를 넣는 문장을 만들었다. 즐거운 생각이다.
나도 바꿔봤다. 남편과 아내를 넣어봤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집 '아이, 로봇'에는 유명한 '로봇 3원칙'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제1원칙: 로봇은 사람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모른 척해서도 안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은 사람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로봇은 제1원칙과 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자신의 존재를 지켜야 한다." (27~8쪽)
부부 3원칙
제1원칙: 남편은 아내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아내를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남편은 아내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남편은 제1원칙과 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남편자신의 존재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 원칙이라는 것을 뜯어보면, 그냥 삶을 지켜나가라는 것이다. 그게 로봇이든 사람이든, 남편이든 아내든, 부모든 아이든. 삶을 지켜나가는게 삶의 원칙이다. 그게 삶이다. 이게 맞는 말인가? 같은말만 되풀이하고 있지 않나?
내가 또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그것이 도덕이든 종교든 이념이든 상식이든,
나의 결단일 뿐이다=논리가 아니다=진리도 아니다=집단의 결단에 복종하는 것일수 있다=나의 결단은 나의것이 아닐수 있다.
삶의 이유가 나의 결단이 아닐수도 있다. 태어나는 것이 우연이듯이, 삶도.
이건 다름이다. 문제는 다름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아버지는,
1) 매우 좋으셨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2) 오타는 눈에 걸려서 드러낼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1) 칭찬과 격려를 받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
2) 지적한 내용도 큰 문제가 아니었고, 지적 자체도 틀렸다
이 다름을 어떻게 해야할까?
아버지는 오랜 전통에 물들어 좋다는 표현을 못하고,
아들은 자기의 업적이 너무 자랑스러워, 가장 어려운 다사인=다른사람인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다음에 고치도록 하고, 그러려니하고 넘어갈수는 없을까?
내가 느끼는 것을, 그냥 조용히 이야기해도 된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새로운 윤리를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첫 책을 냈을 때 아버지에게도 사인을 해서 한 권을 보냈다.
며칠 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책을 다 읽었는데 몇 군데 오자가 있더라며 하나하나 불러주었다. 일부는 오자가 맞았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고맙다고는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첫 책을 낸 아들이 듣고 싶어할 말이 고작 오자 지적일 리가 없지 않은가. 살아생전 아버지가 바란 것과 내가 바란 것은 언제나 달랐고, 우리는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50쪽)
네자리마다 자리점을 찍으면,
큰수를 빨리 읽을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좋은일이 있을까?
오늘 아침, 잠깐 생각하다가 이 생각이 났다.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km다.
빛이 1년동안 방해받지않고 날아가면,
9.5조km를 날아간다.
자, 9.5조km를 달리 표현할 방법은 뭘까?
9.5x10의 12곱km로 표현할수 있다.
네자리점 찍기를 알기 전에는,
나는 1조가 10의 12곱이라는 것을 바로 알지 못했다.
이제는 바로 알수 있다.
즉, 만억조경해가 만진법이기 때문에
4-8-12-16-20으로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10의 20곱인 해를 중심으로
10의 23곱까지는 거듭제곱을 자유롭게 쓸수 있게 되었다.
10월 23일은 내생일이다 -
10의 64곱은 불가사의다.
나는 64년 10월에 세상에 나와서 이 수를 좋아한다.
세땅=어ㅆ에 있는 모래알의 수는,
대략 10의 20곱개이다.
즉 1해라고 학자들이 미말=프레딕트한다.

남기기 위해 쓰다가 -> 농사짓는 법을 알기위해 쓰다가 -> 외로워서 쓰다가 -> 잘난체 하려고 쓰다가 -> 즐거워서 쓰게 된다. 텍스트가 남아있으면, 언젠가 다시 읽게되고 그 순간 즐거워진다. 마땅하다. 스스로 좋아하는 스타일로 글을 썼을테니, 훗날 읽어도 즐거운게 마땅한 일이다. 글쓰는 시간이 좀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써두면 즐겁고, 쓸모가 있다.
"텍스트가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어떤 의미에서 더이상 저자와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텍스트는 독자에 의해 무한히 재생산 재창조될 대상이다." (94쪽)
어려움을 두려워하고, 힘듬이 스캔들이 되는 것 =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는 손걸이=어포인먼ㅌ. 없어져야 할 사회의 아픔이다. 어려움을 이겨낼줄 알아야 머리가 기뻐하고, 머리가 기뻐야 우리가 기즐하다 = 기쁘고 어렵고 즐겁다 = 해피하다.
"(우리 시대를) 한병철은 '모든 고통스러운 상태가 회피되는 고통공포=알고포비아로 진단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랑의 고통조차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그는 아메의 통증 전문가 데이비드 B. 모리스의 이 흥미로운 발언을 가져온다. "오늘날의 아메인들은 아마도 고통없는 삶을 하나의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처럼 생각하는 지구상 첫 번째 세대에 속할 것이다. 고통은 스캔들이다." (114쪽)
김영하가 너무 이른 나이에 자서전을 쓴게 아닌가해서 살짝 거슬렸다.
읽으면서 생각을 해보니, 정신 멀쩡할때 삶을 정리해두는 것은 좋은 일이다.
유언장을 2020년부터 쓴 내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이다.
익숙한 곳에서 떠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가는 것은 박수받을 일이다.
120여년의 삶을 작은세계 속에만 갇혀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넓고 더깊고 더많은 기쁨과 어려움을 겪어나가는 것이,
사람의 기즐=기쁘고 어렵고 즐거운=해피한 삶이다.
다만, 자기가 몸담았던 곳을 족쇄처럼 말하는 것은 거슬렸다.
나와 맞지 않은 동아리가 굴레이거나 나쁨은 아니다.
떠나되, 서로의 어려운 기쁨을 바라며 떠나는 것이 멋진 일이다.
나이가 들어야 아는 일이니까, 삶이 운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힘써서 일하면 뭐든 이룰것이라고 믿는게 젊음이다.
그러다가 미말하지=프레딕트하지 못한 것들로 일이 뒤틀리면서 잘되기도 하고 잘못되기도 하는 일들이 싸이면서,
삶은 우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김영하는 한발 더 나아간다. 바르게 사는것도 운이라고 한다. 그럴싸한 삶이라는 것도 마땅히 운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좋은 환경-좋은집-좋은부모-좋은차가 좋은운은 아니다. 어려운일이 꼭 나쁜일이 아닌것은, 실패한 실험으로부터 뜻하지않은 멋진것이 만들어지는 것에서 잘알수 있다. 이재명처럼 어렵게 큰 사람이, 여유로운 사람들을 따돌리고 대통령이 되고, 권력과 명예가 컸던 사람이 지배하던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를 만들수 있다.
바르게 사는것도 우연이다. 그러나 좋은 환경이=먹고 살만한 환경이 반드시 좋은 운은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아서 권위를 따르거나 권위에 매혹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중략) 1930년대 독일에 살게 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치의 악행을 방관하거나 그에 가담 (중략) 착한뜻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략) 상황이 나쁠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168~70쪽)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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