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부터 한 이사가기와 공사, 그리고 다시 이사오기가 어제(2월 13일) 오후에 마무리되었다. 지난 목요일부터 공사가 끝난 집을 청소하고, 40만원을 주고 청소를 맡기려다가 우리 둘의 힘으로 청소를 하고, 오늘도 하루종일 집정리를 했다. 많은것을 버리고, 깨끗하고 휑해진 집에서 넓은 서재를 얻었다. 그리고 이책을 읽는다.
배우는것이 즐겁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걷거나 여행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러면 아는것이다. 다만 같다는것을 모를뿐이다. 배우는것 = 여행하는것 = 걷는것이 모두 같고, 모두 즐거운 일이다. 왜?
처음에는 힘들지만, 시작하면 그때그때마다 즐겁다.
"배움을 전문 지식인들의 전유물로 한정하는 것은, 기업후원을 받는 산악인들만이 진정으로 자연을 즐긴다고 생각하는것과 비슷한 착각이다." (83~4).
1장 공부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사람사는 일은 돼지우리에서 뒹구는것과 같은 일인가?
사는일이 차츰차츰 좋아져서 사피엔스 30만년의 발자취에서 오늘날이 가장 좋을때라고 할수는 있지 않은가?
"누구도 분별있고 건전하고 올바른 행위를 하지 않으며, 함께 힘을 합쳐 정의를 구현하고 생존을 도모할 만한 아군도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국가나 벗들을 돕지 못하고 자신에게나 남들에게나 쓸모없는 존재로서 소멸할 운명이니, 짐승들 틈에 떨어진 사람이 불의에 가담하고 싶지 않지만 홀로 야만에 대항할 힘은 없는 것과 비슷하다.
바로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나는 생학자philosopher가 조용히 자기 앞가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모래 폭풍이나 거세게 날리는 우박을 피하기 위해 야트막한 벽 아래로 피신한 사람처럼, 그는 무법천지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이라도 부당하고 불경스러운 행위로부터 벗어나 현세를 살다가 부끄럼 없이 만족하여 희망을 품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기뻐할 것이다.
-플라톤, <국가> 6권" (91쪽)
아름다운 말이다.
우리는 알려진것을 아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세네카의 이말은 오만하기까지 하지만 멋지다.
알려진 것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소박한 한계지움이, 손에 닿을수 있는 더 멀고 큰 진리를 외면하고, 어리석은 믿음을 쫓게 한다.
"피고인 윤석렬을 무기징역에 처합니다 ~" (지귀연이 다정한 목소리로).
어리석은 자들의 그늘은 희미해서,
더 밝은 눈들이 =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 사람들이,
김의영 등 전현직 세계정치학회장들이
대한국민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한다.
"우리의 생각은 하늘의 성채를 부수고 나아가며, 알려진것을 아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세네카, 여가에 관하여)" (121쪽)
괴테의 미생=prediction은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8, 90년대에 분자세포사룸학 몰큘러 셀 바이얼로지 molecular cell biology이 발전하면서 ABC 모델에 의해 잎이 꽃의 원형 = 아르케일수 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괴테는 뿌리까지도 잎이 원형이라고 지나치게 주장했지만, 틀린것은 빼고도 뛰어난 직관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관찰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괴테의 생각도 관찰의 결과이고, 괴테의 생각이 받아들여진 것도 관찰의 결과이며, 괴테의 생각 중 틀린부분이 있다는 것을 안것도 관찰의 결과다.
위대한 사상은 아니고, 뛰어난 미생=prediction을 했을 뿐이다.
정말 깻잎한장의 차이다. 괴테 스스로도 수많은 관찰을 바탕으로 미생을 했다고 말하는데도, 다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감각 지각을 넘어서는 인지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짐작해야 마땅하다."
그게아니라, 감각지각을 바탕으로 알수없는 것을 미생했고, 넓어진 감각지각으로 미생한 것을 판단할수 있었다.
현실의 많은 부분이 표면 아래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다 보지 못한것이다.
"이탈리아에서 괴테는 식물원을 방문했고, 야생 나무와 농경법을 관찰했으며, 견본과 흥미로운 사례들을 수집했다. 파두아의 한 식물원을 방문한 뒤에 적은 글에서 그는 모든 식물이 단 한 종류의 식물에서 기원했다고 추측했다. 이탈리아에 체류한 2년 동안 그는 자신이 찾아낸 증거들을 바탕으로 좀 더 소박한 새로운 이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1790년에 쓴 에세이 《식물변형론The Metamorphosis of Plants》에 한해살이 식물의 근원이 잎이라는 이론을 담아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식물의 부위와 형태의 기원 및 속성을 연구하는 식물학 분야를 '형태학morphology'이라고 한다.
괴테는 각종 한해살이 식물의 성장과 발달을 관찰했고, 꽃의 가장 바깥에 위치한 꽃잎의 적어도 일부는 잎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연구 결과 그는 꽃받침이 작은 줄기잎들이 모여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한때 잎이었던 꽃잎은 수축하여 생식기관(꽃밥, 암술대, 암술머리)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생식기관이 다시 꽃잎이 되기도 한다.
(중략)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괴테는 한해살이 식물의 원리를 발견했던 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팔레르모의 공공 수목원을 거닐다가 불현듯 우리가 흔히 잎이라고 하는 식물의 기관에 어떠한 식물의 형태로든 자기 모습을 숨기거나 드러낼 수 있는 진정한 프로테우스가 깃들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식물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저 잎일 뿐이다. 잎은 훗날 식물이 새로이 틔워 올릴 싹과 뗄 수 없는 관계라서 둘을 따로 생각할 수 없다.
괴테와의 첫 만남에서 그의 식물론을 들은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는 탄복했다. "그건 한낱 관찰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입니다!" 하지만 괴테 본인은 현실의 많은 부분이 한눈에 보이는 사물의 표면 아래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중략) 우리는 현실이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며, 감각 지각을 넘어서는 인지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짐작해야 마땅하다.
(중략) 이탈리아 여행 초기에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식물은 다른 익숙한 사물들과 비슷하다. 결국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예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고 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127~9쪽)
알맞게 잘 살아야 한다. 너무 잘살려고 하면 안된다. 그런데, 거짓말은 어떻게 하지? 알맞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면 된다.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을 자고 오천원짜리 밥을 먹으며 폼나게 여행을 즐길수 있다고 할수 있을까? 말하지 않는 것으로도 거짓을 말할수 있고, 지나치게 말함으로써 거짓을 말할수도 있다. 그러니 알맞게 하자. 사막에 버려진 사람까지는 되지 말자.
"남들과 달리 자신은 거짓과 허위의 힘에서 자유롭다고 믿는 만족스러운 자기기만에서 벗어난 사람은 "사막의 나라"에서 고립되고 길 잃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시몽은 경제 상황의 불운한 변동이 아닌 사람의 조건에 의한 가난, 즉 사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진실과 존엄을 포기해야 하는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가난은 지성의 삶이 요구하는 고독과 내향성과 물러남의 귀결인 소외라고도 할 수 있다. 시몽은 진실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어떠한 희생을 요구하고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139쪽)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지혜를 거부하지만 가혹한 은총으로 누구나 지혜롭다.
"지혜를 주시되 괴로움을 통해서만 그것을 얻는다.
지혜는, 원치않는 자에게도 가혹한 은총으로 내려온다." (140쪽_본문의 이야기를 무일이 다시 고쳐썼다)
파스칼의 이야기를 읽으니 좋다. 사람의 생각하는 힘을 너무나 사랑하여 생각하는 갈대라고 쓴것이다.
"사람은 자연에서 가장 약한 한 줄기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부수기 위해 온 커미universe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줄기의 수증기, 한 개의 물방울이면 충분히 그를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커미가 사람을 으스러뜨린다 해도 사람은 그를 죽인 커미보다 존귀할 것이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커미가 자신보다 훨씬 힘이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미는 아무것도 모른다." (151쪽 / 파스칼의 팡세)
놀라운 일을 해낸 사람도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
"사람됨이란 결코 높은 성취를 이뤄낸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163쪽)
배우지 못하면 = 배우려하지 않으면, 사랑하지도 못한다.
"만일 사람이 배우지 못하는 존재라면, 사랑하지도 못하는 존재이다." (176쪽 /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무일이 고쳐쓰다)
2장 배움의 상실과 발견
별로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데도 뭔가 답답한 글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관심이 없는데, 자꾸 이야기를 하니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정리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에 마니교에 빠졌다. 마니교는 뭐고 배화교=조로아스터교는 뭔가.
"마니교와 배화교(조로아스터교)는 모두 고대 페르시아에서 발생했으며, '빛과 어둠의 대결'이라는 이원론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배화교는, 세상은 선신 '아후라 마즈다'가 창조한 본래 선한 곳이다. 악신 '아리만'이 침입하여 세상을 오염시켰을 뿐이며, 사람은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함으로써 악을 몰아내고 세상을 정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마니교는, 세상은 빛과 어둠이 뒤섞여버린 '비극의 감옥'입니다. 영혼은 빛의 파편이지만, 육체와 물질은 악한 어둠의 산물이라고 본다. 따라서 사람의 목표는 금욕을 바탕으로 이 더러운 육체(물질)로부터 빛의 파편(영혼)을 해방시켜 다시 빛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배화교는, 페르시아의 전통 신앙을 바탕으로 세워진 종교로, 사산조 페르시아의 국교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천국과 지옥, 최후의 심판 개념에 깊은 영향을 준 '뿌리'와 같은 종교다.
마니교는, 창시자 마니(Mani)가 조로아스터교 + 기독교 + 불교를 하나로 합쳐서 만든 혼합 종교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 빛의 부처 광명마니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수"를 언급하기도 하며 매우 빠르게 전파되었다. 어둠의 세력은 자신들이 삼킨 빛의 파편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작전을 짠다. 그들은 빛의 파편들을 아주 잘게 나누어 육체라는 감옥에 가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다.
사람의 몸 안에는 아주 미세한 빛의 조각들이 갇혀 있으며, 어둠은 우리가 끊임없이 번식(성관계)하게 하여 빛을 더 잘게 쪼개고 영원히 가두려 한다고 믿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의 '이원론'에 매료되어 9년이나 보냈지만, 결국 두 가지 이유로 실망하고 떠난다.
마니교는 천문학의 현상(일식, 월식 등)을 신화로 설명했는데, 당시 발달한 실제 천문학 지식과 맞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의 지도자 파우스트Faustus를 만나 토론했으나, 그의 무지함에 큰 실망을 느꼈다.
마니교는 내 안의 어둠(육체)이 죄를 지은 것이지, 내 영혼이 지은 게 아니다라고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처음엔 이 논리에 안도했지만, 점차 이것이 사람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의감을 느꼈다." (제미나이와 정리한 내용)
SNS를 바탕으로 이나를 하려는 것도 지나치지 않도록 해야한다. 유튜브와 카톡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것은 이미 병든 상태이다. 배움을 사랑하려면 구경거리에 빠져서는 안된다.
삶과 죽음 /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구경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다. 어떤 멋진 생각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보다 쎌수는 없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구경거리에 대한 사랑이 배움에 대한 무질서한 사랑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케케묵은 훈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생각만큼 낯설지않다. (중략) 우리를 끝없이 초대하는 인터넷은 무한한 유혹의 사원이다. (중략) 우리는 다람이 전시된 모습을 보았듯이 우리를 전시하는 일에 이끌린다.
(중략) 어째서 닭사움에는 우리로 하여금 고상한 생각을 그만두고 구경하는 즐거움을 택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가? (중략) 구경거리에 대한 사랑에 잠시 굴복하더라도 그 경험은 생학하기의 재료가 된다."(212~5쪽)
돈을 벌어서, 돈벌이를 멈추고 무엇을 위해 돈을 다쓰고 난뒤에, 다시 돈을 벌수 있다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것이다. 돈벌이를 그만둔 다음에 나를 위해 살아가다가 필요한 때에 돈벌이를 언제든 할수있는 길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는것에서 벗어날수 없다.
"우리는 돈을 위해 일하고, 번돈으로 계속 일한다.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지만, 그돈으로 일을 계속하는 것외에 다른걸 할 시간은 없다." (222쪽)
이성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 몸이 편안하면 이성이 잘 뛰어논다. 몸이 불편하거나 욕망에 시달리면, 이성은 누워버린다. 이성을 좀더 달리게 하려면 몸을 잘 달리게 하는길 말고는 없다.
"몸에는 저만의 정신이 있어서 홀사individual이 지닌 신의 파편 = 이성으로 통제할수 없다는 마니교의 믿음이 그에게 요긴한 핑곗거리가 되어준다." (228쪽)
진리를 얻으려고 하는것과 얻어진 진리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다르다? 무엇이 다른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게 없다. 비슷하게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로 그럴듯하게 뭉개버린다. 코파는 과정과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과정을 거쳐 어떤 상태에 이르는 것이므로 이어져있는 이야기다. 과정이 없으면 상태도 없을것이므로, 진리를 얻으려 힘쓰지 않으면, 진리에 파묻혀 기뻐할 틈이 없을것이다.
신이 없거나 나쁜 신이라면 진리가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 이런 말을 하려면 신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게 빠졌다. 그러므로 이 말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것은 믿음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이치에 맞게 이야기를 할수는 없다. 믿고 싶으면 믿으면 되는데, 모든 진리의 바탕에 이 믿음을 두어서는 아무런 진리에도 닿을수 없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_ T.S. Eliot
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일까?
죽은땅에서 라일락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는데, 4월은 새로운 잎과 줄기를 키워내게 한다.
라일락의 삶은 햇빛과 바람속에서 고단할 것이다. 고요에서 고단함으로 가게했으니,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삶의 기억과 욕망은 겨울속에 죽은듯 잠들어 있었는데, 따뜻한 기운이 이들을 흔들어 깨웠다.
기억과 욕망이 들끓는 삶은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4월은 잔인한 달이다.
무디어진 뿌리는 얼어붙은 땅속에서 평화롭게 쉬고 있었는데,
차가운 봄비를 맞아 고통스럽게 먹이를 찾아 어둔 땅속을 헤매야 한다. 그러므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키케로는 카이사르를 비판했으나 살아남았고, 카이사르가 죽고 안토니우스를 비판하다가 붙잡혀 죽음에 이른다. 그는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수호자였지만 원로원 중심의 귀족 공화정을 지지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집중을 비판한 것은, 놀라운 용기였다고 할수 있다.
가난이 우리를 잔인하고 난폭하게 만들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니? 신이 우리에게 사랑과 평화를 준다고? 신에게서 사랑을 배울수 있지만, 신의 뜻으로는 단 한순간도 우리 모두가 부유해질수 없고, 신이 쫓아내지 못한 가난으로 우리들은 지독해졌다.
"레누, 아직도 그런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니? (중략) 우리 모두를 잔인하게 만드는 가난도 있어. 네가 눈물이 마를만큼 괴로워질 일이 매순간 일어날수 있는거야." (248쪽)
말은 맞는데, 어디에도 이 말을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없거나 있어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는데, 왜 이렇게 빙빙 둘러가는지 아직은 알수가 없다. 구슬은 모두 모았는데, 잘 꿰지를 못했다.
"배움에 대한 사랑은 심오하게 진지한 것이자 인생을 변혁할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알고 사랑하고 있는 힘껏 온전한 사람됨을 펼치려고 하는, 우리의 가장 고귀한 포부의 원천이 배움에 대한 사랑이다." (251쪽)
3장 찬란한 무용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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