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 있는 수도가 얼어터졌다. 막아버리고 싶었다. 2년전에 50만원을 주고 수리했는데, 또 터지다니. 관리부실이란다. 곡괭이로 수도관 주위를 파내고 물이 새는 부분을 찾아냈지만, 더이상 어쩔수가 없다. 일처리 방법이 눈에 보이는데, 아무것도 할수 없을때, 짜증이 난다. 기술자는 30분동안 수도파이프를 교체한 다음에 70만원을 받아간다. 싸게 해줬다고 생색을 내면서. 다시 한번 관리부실로 물이 새면, 메꿔버리고 불편한 삶을 살도록 하겠다. 화장실 또는 보일러실에서 물을 끌어올수 있다.
삶은 뜻대로 되지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뜻대로 하고 싶은 이 마음. 가라앉혀야 살아갈수 있다.
이 책은 다사의 추천으로 읽는다.
1부 자연에 대한 물음
오늘처럼 뭔가 불만스러운 일도 어쩔수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럴때는 자연이 몹시 그립다. 자연에서는 이런 억울한 일이 없을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니다. 풀만 뽑다보면 사람세계로 달아나고 싶어진다. 뭐든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동성개체의 성행동에 대한 이야기. 좋아할수는 없고, 미워할수는 없고, 그런가보다 받아들일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카푸로는 동물들이 동성 성행동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동성애 혐오를 거둘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실망보다 더 크고 확실한 앎을 얻었다. 바로 수많은 동물이 다양한 방식으로 동성 개체와 성행동을 한다는 사실, 비록 다수는 아닐지라도 일정한 비율로 자연계에 이러한 행동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27쪽)
사람의 본능은 남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잊지않기가 쉽지 않다. 어려운 인과관계나 거북스러운 좋지않은 이유를, 너무나 쉽게 남자는 이러니까, 여자는 이래서가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본능 또는 본성이라고 말해버리면,
알아듣기가 쉽고, 받아들이기가 쉽고,
게다가 어쩔수 없다는 말이된다.
그래서는 안된다.
1) 여자들은 쉽게 고끄한다. 이것도 틀린 말일까.
2) 여자들은 힘이 약하다. 이런말은 해도 되는걸까.
3)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더 잘하기는 하지만 쉽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도면 괜찮은걸까.
4)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구별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것일까.
"남성을 여성과 구별짓는 어떤 실체 - 예컨대 Y 염색체 - 를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고, 내가 어떤 형질 - 예컨대 공격성을 지닌 것은 그 형질의 기반을 이루는 유전특성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무엇이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성질은 타고나는 것이기에 나의 노력이나 선택과 무관하게 내 안에서 작동하고, 그 점에서 '쉽다'라는 것이다.
예컨대 아이를 돌보려는 동기가 여자됨의 본질을 이룬다고 가정하고, 여자에게는 이러한 속성이 태어날 때부터 본능에 '장착된(wired)' 덕분에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남자보다 더 잘, 쉽게 한다고 추론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생물학의 설명을 잘못 확대적용한 예다." (53쪽)
사람은 대체로 선하다라고 믿는것은 괜찮은걸까.
"존재의 '자연스러운' 위계가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믿는 것이 편한 우리 본질주의 사고의 환영일 뿐이다. 존재의 사다리 아래를 향해 '핵심 노동', '위대한 모성' 같은 표상을 덧씌우고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 믿고 싶은 우리는, 진보의 행진에서 막다른 길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66쪽)
2부 사람에 대한 물음
입양가족의 아이들이 학대를 덜 받는다는 이야기는 머리를 친다. 아이 키우기 교육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수가 없다. 학교에서 아이키우기 교육을 해야 한다. 종교가 그 역할을 하는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의 믿음 선택권을 빼앗기 때문이다.
"2005년 네덜란드 아동 보호 서비스에 보고된 학대사례 1만 3000여 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입양된 아이는 친부모나 계부/계모와 사는 아이보다 학대받는 비율이 낮았다.
(중략) 까다로운 적합성검사를 거친 경우에만 입양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범죄경력이 있거나 양육을 하는 데 심각한 경제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경우 입양을 하기 어렵다.
거꾸로 친부모나 계부모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적합성 검사를 상상하는 일은 그 자체로 도발이다. (중략) 친부모가 아이를 가장 잘 키울 것이라는 기대와 구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77-8쪽)
한사람이 하나씩밖에 낳지 못하는데도, 사피엔스가 세땅earth을 뒤덮어버린 이유의 하나가 협동육아란다. 사피엔스가 너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협동육아를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아이키우기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어렵지만 좋겠다. 낳은 사람들에게만 맡길일이 아니다.
"영장류처럼 크고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우 양육, 행동이 호르몬의 영향 아래에만 놓이지 않는 해방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최근 신경 내분비 연구의 견해다. 양육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있어서, 출산이라는 맥락에서만 부분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맥락에도 중복발현됨으로써 진사회성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양육이라는 행동이 출산과 수유에 동반하는 생리 변화에만 메이지 않게 된 것은 사람의 진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유전 정보를 공유하고 임신, 출산을 거친다고 해서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은 이들도 육아하는, 협동 육아(cooperative care)의 기반이 만들어졌기때문이다.
(중략) 협동육아는 같은 시간동안 더많은 아이를 낳을수 있는 기반이었고, 사람의 종번식도를 높인 사람진화의 추동력이었다." (80~2쪽)
먹을것 만들기는 귀찮은 일이다. 남자나 여자가 홀로 요리를 해야할 이유는 없다. 같이 하면된다. 요리를 비롯한 가사노동의 분담이 남녀평등의 고갱이다.
"남자들은 요리를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거다. (중략) 남자, 사냥꾼 가설은 20세기 초 서구 인류학에서 출발 (중략) 지금보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이 강하던 때 인류학자들은 남성 주도의 사냥이 인류 진화의 동력이라고 보았다.
이들에 따르면 사냥은 두드러지는 사람의 특징 - 직립보행과 큰 두뇌, 정교한 도구 사용과 고도의 협동 - 이 잘 활용되는 장이었다. 채집보다는 사냥을 더 힘있고 카리스마 있다고 여겨서였을까? 도구를 들고 전방에 선 남자와 동굴 가까이에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사람의 진화'가 각인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게 남자, 사냥꾼 가설이다.
(중략) 아메리카 대륙 전 지역에 걸친 매장지 429군데에서 발굴된 비슷한 시기(후기 플라이스토세~초기 홀로세)의 사냥도구를 모두 분석해 보기로 했다. 성별을 확실하게 감식할 수 있었던 매장지 27군데로 분석을 한정했을 때, 11군데에서 발견된 사냥 도구가 여성의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 다른 분석법을 적용해도 사냥 도구의 30~50퍼센트는 여성의 것이었다. 다수는 아니지만, 사냥과 채집으로 엄격한 성역할 분담이 진화했다는 남자, 사냥꾼 가설과 부합하는 패턴으로도 보기 어려웠다." (100-6쪽)
* 신생대는 POMOSH : 팔레오세(6.6) - 에오세 - 올리고세(3.3) - 마이오세 - 플라이오세 - 플라이스토세(0.3) - 홀로세(1.2만년전)
*paleocene = paleo 오래된 + cene 새로운 / miocene = meion 더작은 + cene 새로운
남자들이 그렇지 뭐를 쓰지 않아야하면, 백인들이 그렇지 뭐도 쓰지 말아야 하고, 애들이 다 그렇지 뭐도 쓰지 말아야 한다. 애들까지? 그런데 이런 말을 빼버리고 나면, 인과관계를 이어나가기가 힘이 든다.
백인들이 우글거리는 아메리카에서 만난 중년의 여자는, 도움이 필요하면 여자들에게 구하라고 했다. 이상한 남자백인들이 많단다. 이것도 친절한 말이지만, 틀렸다. 그런데,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어떤 도움이 필요할때, 여자들을 찾게 되고, 대체로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남자들에게 도움을 받은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니 이제 남자들이 공감을 못 한다느니, 육아에 젬병이라느니 하는 말은 그만두자. '남자들이 원래 그렇지 뭐' 같이 남성성을 병리화하는 언어 습관, 나아가 생각 습관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략) 수컷의 양육 참여는 사람 진화사를 관통하는 주제로,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과 함께 사람이 속한 대형 유인원과에서 사람만이 보이는 특이점이다." (116~7쪽)
생물학은 진화를 포함한 세마다. 생물학이나 진화에는 본성이 없을까. 삶이라고 하는 본성은 있다. 그것말고 다른 본성은 없을까. 삶과 번식. 번식은 본성일까?
"진화를 바탕에 둔 설명과 종종 혼동되는 생물학의 설명도 마찬가지다. 화학, 물리학과 함께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원리 가운데 하나인 생물학은 특히 생명체의 기능을 다룬다.
생물학은, 유전 - 생리 - 신경 그리고 우리 몸의 생김새를 결정하는 형태 특징과 나아가 이들이 환경과 상호 반응하는 생태 특징까지 포함한다. 진화설명은 생명체의 기능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다룬다. 진화 없이 생물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테오도시우스 도브스키(Theodosius Dobzhansky, 1900~1975년)의 유명한 문구" (128쪽)
1) 사람의 본성에 대하여
ㄱ) 사람의 본성은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ㄴ) 사람의 본성 : 남자는 공격성이 세다, 사람은 이성을 사랑한다, 사람은 자식을 사랑한다라고 알고 있다.
ㄷ) 위에서 말한 사람의 본성이 있다고 증명되지 않았고, 우리가 그렇게 선택해서 믿을뿐이다.
ㄹ) 사람의 본성을 바탕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틀린말이다.
2)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ㄱ) 자연스러운 무엇이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ㄴ) 자연스러운 것 : 수컷은 공격성이 세다, 번식을 위해 이성을 사랑한다, 사룸은 자식을 사랑한다
ㄷ) 위에서 말한 자연의 속성이 있다고 증명되지 않았고, 우리가 그렇게 선택해서 믿을뿐이다.
ㄹ) 자연스러움을 바탕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틀린말이다.
본성과 자연스러움에 대한 생각과 말이 틀렸고 엉터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의 본성과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맞는말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해야 한다.
"공격성과 폭력성이 사람본성이자 심지어는 때때로 '충족'되어야 한다는, 실제로 일부 동물 행동학자들이 세계 대전에 대해 내놓았던 설명이 다시금 생각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마치 '그럴 수밖에 없어' 벌어진 일처럼 보이는 것은 (중략) 전쟁이 일어나는 실제 정황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한다. 전쟁을 일으켜 이득을 보는 극소수의 집단은 바로 이 착시 효과를 노릴 것이다. 삶을 살고 죽는 문제로 단순화하고, 현실을 아군과 적군의 대치로 판가름함으로써 당장에 '확실한' 행동을 제시하는 것이다. 싸워라, 죽여라!
사람의 본성이라는 서사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자연'과 '자연 아닌 것' 사이의 대치 구도를 상정하고, '자연'에 가까운 어디쯤에서 사람행동의 원형prototype이 발견된다고 가정한다. 우리 행동은 그 원형에 충실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 즉 부자연스러우면 적대시된다. 싸우지 않는 남자, 아이를 키우지 않는 여자,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이 그러하리라. 본성에 충실한 결과 벌어진 전쟁은 더 이상 놀라울 일이 아니다.
이 모두가 '자연'과 '자연 아닌 것'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환상에 기반한다. 아군과 적군이 분명하게 나뉜다는 생각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에 따라 내가 아군이기도 적군이기도 하듯, 자연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별은 자연의 어디에서 '사람 본성'의 단서를 구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 선택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135~6쪽)
3부 사회에 대한 물음
최재천으로부터 박쥐가 코비드 19의 원인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무슨 소리인가했는데, 오늘 이수지로부터 답을 듣는다. 박쥐를 보러 동굴을 찾아가서 한참이나 기다리기도 했는데, 뭘 모르고 살았다. 어쨌든 박쥐가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바이러스들이 다른 동물 = 중간숙주를 거쳐 사람에게 전달되려면, 아주 오랜 세월과 길들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그 시간과 길들을 짧고 간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박쥐의 신진대사가 빨라지면 각종 병원체에 취약해진다는 말은 뭘까? 하늘을 날때 박쥐는 동굴에서 쉬고 있을때보다 15~20배 정도 빠른 신진대사가 이루어진다. 빠른 신진대사는 몸의 에너지를 고갈시켜 면역력이 떨어지므로 병원체에 감염되기 쉽다. 그런데, 감염은 쉽게 되지만 죽지는 않는다. 왜?
이게 신기한 일이다.
1) 박쥐는, 면역과민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낮은면역체계를 상시가동시킨다. 면역반응이 지나치면 바이러스와 함께 내몸의 세포도 죽이게 되는데(사이토카인 폭풍), 이런 일이 박쥐몸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2) 박쥐는, DNA의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는 유전자가 잘 진화되어 있다고 한다. 손상된 DNA가 빨리 복구되기 때문에 30년 넘게 살수 있다고 한다.
3) 박쥐는, 염증수치도 낮게 유지되어 세포의 손상도 줄인다. 고장난 세포도 죽이지 않고 잘 살려서 쓰므로 같은 크기의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랜 산다고 한다.
4) 박쥐는, 텔로미어라는 염색체 끝단의 보호막이 줄어들지 않도록 관리가 되고 있어서 늙는것을 방지하고 오래 살수 있다고 한다. 놀랍다.
면역반응을 낮추게 되면 바이러스에 점령당해 죽게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 박쥐는 수많은 바이러스와 함께 살수 있을까. 낮은 면역체계라는 것이 삶을 유지할수 있을 정도의 알맞은 면역체계를 말하는 모양이다. 박쥐는 어떤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살아갈수 있는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다보니 바이러스들이 박쥐의 면역체계와 높은 체온에 견디면서 더 쎄지게 되어, 박쥐는 배양기 역할을 하게 된다. 박쥐의 몸에서 더 강해진 바이러스들이 다른 동물이나 사람에게 전파되면, 무서운 팬데믹이 일어난다.
"박쥐가 각종 바이러스를 보유한 숙주가 된 것 또한 비행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날갯짓 비행은 많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신진 대사가 항진된다. 그 결과 각종 병원체에 취약해질 수 있는데, 이에 박쥐는 면역 반응을 낮추는 방향으로 적응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바이러스가 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박쥐 몸에 저장될 수 있게 되었다.
비행 시에는 체온도 다른 포유류보다 높은 섭씨 40도 이상이 되기 때문에, 여기에 적응한 바이러스는 사람의 체온에서 더 막강해진다.
게다가 박쥐는 사람처럼 사회적이고 서로 다른 종끼리도 수천, 수만 마리씩 같은 동굴에서 함께 살아 바이러스가 전이, 교합되어 진화하는 속도가 빠르다. 이렇게 축적된 다양한 바이러스를 날아다니며 더 널리 퍼뜨리니, 인수공통감염zoonosis의 세계에서 박쥐의 오명은 하늘을 덮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 사람도 하늘을 나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전 지구를 뒤덮은 현대의 항공망은 병원체를 더 넓은 지역으로 더 빨리 퍼뜨리는 핵심 기전이다. 또한 교통수단 중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아 기후 위기를 악화시킨다. 기후 위기로 인한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은 바이러스가 퍼질수 있는 잠재지역을 점점 넓힘으로써 결국 인수공통감염사례가 늘어나는 주된 원인으로 작동한다." (144~5쪽)
갈수록 글이 재미있어진다. 우리가 살기위해, 더 맛있게 살기위해 자연스럽게 하는 움직임들이 우리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 것이다.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의 모티브가 된, 1998~1999년 말레이시아 니파Nipah 마을에서 일어난 바이러스 사태는, 공장식 돼지 사육이 급증한 결과였다. 뇌가 부어오르면서 수일 내에 사망하는, 사람에게 매우 치명인 이 바이러스는, 최초 숙주가 박쥐였다.
(중략) 돼지 사육 시설을 늘리기 위해 숲을 개간하면서 서식지가 줄어든 박쥐들이 돼지와 접촉하는 빈도가 늘어났던 것이다. 공장식 사육이 본격화되자 단위 면적당 돼지 수가 늘고, 가축 공장은 순식간에 바이러스 공장이 되어 이윽고 사람으로 바이러스가 옮아간 것이다." (148쪽)
사람과 짐승의 경계짓기. 잘 경계지어짐으로써 우리는 박쥐와 바이러스와 멀어졌다. 멀어졌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어딘가에서는 끊임없이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만나지않고는 살수없기 때문이다.
"경계에 대한 완고한 환상이야말로 인수공통감염 사례가 늘어나는 근본 원인이다. 사람이 끝내 짐승이 아니라는, 그래서 말 없는 자연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발상은, 지속 불가능한 소비와 생산 패턴을 유지 (중략)
이 시스템 안에서 촘촘하게 조직된 일상은 우리를 시스템 자체에 둔감하게 만든다. 박쥐를 비롯한 야생동식물의 서식지는 줄어들고, 박쥐와 숙주 사이에 접점은 늘어나며, 새로운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그 중간 숙주가 육류로 소비되고, 그리고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진다.
그런데 감염 위험이 주로 사회의 약자 집단에서 더 커지기까지, 차단과 단절이라는 키워드로 재편성된 우리 일상은 사태의 근본 원인에 점점 무감각해져 갔다. 짐승과 우리는 더욱더 먼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맞이한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일상을 반복한다." (151쪽)
핵전쟁이 일어날듯한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게 80억이 넘는 인구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럴까? 아메리카가 주도권 전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백인남성들은 갈수록 힘이 빠지고, 할일이 없어지고 있다. 그들은, 1차대전때의 유럽의 농부들처럼,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면 = 아메리카가 제일 쎈 핵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에게 다시 찬란한 영광이 드리워질 것이라고, 망상한다. 그들은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있다.
"기근과 전쟁, 자연재해같은 재난을 인구를 조절하는 핵심 기전으로 본 토머스 맬서스의 이론 (중략)
우생학은 홀로코스트가 남긴 깊은 상처와 함께 금기가 되었지만, 그 근간을 이루는 발상은 우리 안에 늘 도사린다. 사회의 '잉여'인 '그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자의 자격'을 논하는 완벽함과 우월함의 착각에 빠져들 때, 우생학은 언제든 다시 고개 들 준비가 되어 있다. 저출생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종종 드러나듯이 말이다.
가령 1980년대 싱가포르에서는 대학 졸업자의 출산은 장려하고 대학에 다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임 시술을 지원하는 인구정책이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가 지키고자 한 우리 싱가포르" (163쪽)
2, 30대의 그냥 쉬었다는 수가 80만이 넘는데, 저출생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있는 사람도 일자리가 없어서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쉰사람들 중에서 쉬고 싶지 않은데 쉰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어야 한다. 어떻게? 모르겠다.
"저출생이 경제성장을 둔화시킬것을 걱정하기에 앞서, 경제활동에서 제외되고 차별받는 소수집단을 포용하는 노동환경부터 만들어야 하지않을까?" (167~8쪽)

인종은 생물종이 아니라 사회의 범주다. 그런데,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인종은 생물종이 아니라 사회의 범주다.
이 말이 좀 어렵다.
사회의 범주라기 보다는
사는곳에 적응한 약간의 변화다.
그런데, 다른 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윈은 서로 다른 인종의 부모가 만나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점, 피부색이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점진 분포한다는 점 등을 바탕으로, 인종을 생물학의 종으로 여겼던 당시의 통념을 반박했다.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미크로네시아, 남아메리카 원주민 모두 대체로 어두운 빛깔의 피부색을 지니는데, 이처럼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대륙과 문화집단에 걸쳐 나타난다는 점 또한 인종이 특정 신체 형질로 결정된다는 견해에 반한다.
어두운 피부색은 강한 자외선에 대한 적응으로서, 적도에 가까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서 나타나는 생물학의 형질임에는 분명하지만, 집단을 생물학으로 구별짓기에는 매우 유연한 형질이다.
이처럼 사람의 생물학의 다양성을 기술하는 개념으로서 인종은 세마로 정확하지 않으나, 사회범주로서 인종은 엄연히 존재한다." (182쪽)
노예제를 반대한 다윈이지만 한계도 있었다. 영국(제국주의)의 백인 남성이라는 한계.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고, 차별을 없애려는 것도 어렵고, 계급이 없다는 것을 어렵다. 어려운 일 투성이다.
"(브라질에서 학대당하는 노예의 비명을 들은) 평생 잊지 못할 이 충격으로 노예제가 있는 나라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다윈이었다.
그런데도 다윈은 「인종에 관하여」장 전반에 걸쳐,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이 지능, 도덕, 사회 제도 등 주로 정신 측면에서 하등하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다윈은 이들을 '야만인'이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중략) 다윈은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성질을 남성성과 연결한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용기가 있고, 호전적이며, 원기왕성하며, 발명의 재능을 더욱 많이 갖추고 있다.'.
여성의 특징을 비교적 중립적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가도 이내 '하등한' 인종이나 문명의 특성으로 귀속시킨다.
'대체로 여성은 직관 능력, 빠른 인지 능력, 그리고 모방 능력이 남성에 비해 두드러지게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능력의 일부는 하등한 인종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러한 능력은 오래전 낮은 문명의 수준에서 갖추게 된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다윈은 마치 논리의 귀결인 듯 이렇게 말한다.
'남성은 궁극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해졌다.'
(사람과 사람 아닌) 동물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라며 자신이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당시 통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을 편 다윈이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인종 차별, 여성 혐오와 공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187~8쪽)

모르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면 되겠다. 주관을 갖되 열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세마 방법이라도 편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윈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적용해 온 황금률이 있는데, 내 생각에 반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지체 없이 기록해 두는 것이다. 그런 (내 생각에 반하는) 관찰이나 생각은 더 잊히기 쉽기 때문이다.'
다윈이 지적한 대로 내 생각과 부합하지 않는 정보는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기' 쉽다. 확증 편향으로 알려진 현상이다. 잠시라도 주의를 소홀히 하면 인식의 그물에 포착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195쪽)
호모 날레디는 뭔가. 30만년전 호모사피엔스와 같은 시기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같은 오렌지 크기의 뇌를 가진 인류가, 남아공의 디날레디 동굴에 시신을 매장하는 지능을 갖추었다는 것이 매우 흥미를 끈 발견이었다. 동굴입구 높이가 25cm 정도에 불과해 여성학자 6명이 화석을 수습했다고 한다.
게다가 편견이나 한계를 가진 분석을 피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박수받을만하다.
"2013~2014년 남아프리카에서 1,550점에 이르는 새로운 고인류 호모 날레디(Homo naledi)의 화석이 발견되었을 때, 연륜 있는 소수의 전문가 대신 다양한 국적의, 아직 교수직에 오르지 못한 젊은 과학자를 모아 연구하도록 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였다." (199쪽)
마음을 정한 다음에 손대지 마라. 어떤 자연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지를 생각하라.
"자연을, 그리고 그 안의 우리를,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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