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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 4인칭의 아이들_김아나_다산책방_25년 10월 초판 1쇄 ] 글이 좋았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_260117

별로 읽고 싶지 않았다. 왜?

 

1) 끔찍한 이야기는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2) 끔찍한 이야기는 답이 없다. 위로조차 안된다, 나나 그들에게.

3) 답이 없다면 알 필요도 없는 것일까. 그냥 흐릿하게 알고 있으면 된다. 끔찍하다고.

 

그런데, 글이 좋았다. 아프면서 아프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드러내고, 어려운데 무릎 꿇지 않고, 사랑할수 없는데 사랑하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좋았다.

 

"분명 자신과 광지는 비슷한 비밀을 무의식 속에 공유할 텐데. 어쩌면 오로라는 자신의 상태가 광지보다 더욱 심각해서 고통을 넘어 무감각에 이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39쪽)

 

이런 책들 - 이야기책들을 많이 읽으면 어떻게 될까.

다정해질까 = 길들여질까 아니면 그렇고 그렇게 될까 = 나쁜길로 빠질까.

 

생각을 움직임으로 = 입과 몸의 움직임으로 드러내는 때부터, 생각이 무엇으로 만들어진다.

틀린 생각은 영원히 무엇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참 이상하게도 입술로 내뱉는 힘이란 신기한 것이어서, 어떤 생각을 말하는 순간 그것이 기정사실이 된다." (156쪽)

 

한숨 짓다. 한숨 쉬다.

 

한숨 짓다가 더 마음에 든다. 한숨은 앞의 삶들이 지어놓은 것이다.

 

"가끔 누군가 짓는 한숨이 식탁위를 맴돌다가 사라졌다." (189쪽)

 

잊어버려야 할만큼 커다란 괴로움이 모인다고 해서 = 모여서 서로를 바라본다고 해서

= 모여서 힘들다고 해서, 나와 우리를 지켜줄수 있을까.

 

'진실의 환각 상태에 빠진 아이들' (222쪽).

 

"나는, 나는, 나는.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이것은 나의 상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상처이니, 우리들은 서로를 지탱할 것이다." (219쪽)

 

쓸모없는게 있던가.

 

"그는 기껏 윤슬, 자연이라는 하찮은 존재가

 

(게다가 윤슬이라는 빛남이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있던가? 나처럼 말이다. 끽해야 기초 수준 동네 문화센터의 자칭 화가들의 그림 소재나 되겠지?) " (223쪽)

 

자연과 나는 같지 않은가. 정말로 같게 느껴지는가. 생각하는가.

 

"그는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 혹은 삶의 배경따위로 여겼기에, 자신이 자연으로 변했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가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225쪽)

 

모든 삶은 괴로움이다. 어떤 괴로움은 견뎌낼수 없을까. 오래된 나무는 커다란 구멍을 가지고도 살아간다. 우리가 휴머노이드의 몸으로, 자아를 깊이 간직한 채 끝도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도 커다란 구멍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어야 한다. 삶을 떠나지 말자. 그게 삶일것이다.

 

"우리를 찾아 헤매며 무지개색을 초월한 더 많은 색을 기분에 입히겠지. 세상엔 내면의 내면, 그 속보다 더욱 깊숙한 무의식 속에 악몽을 몰래 숨겨놓은 '우리'가 정말 많겠지." (244쪽)

 

다 읽고 하루가 지난 다음에 뭔가 다른것이 있음을 찾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슬픈 영화와 드라마를 봤을때,

슬픈 이야기를 읽었을때, 언제나 눈물이 났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왜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끔찍한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와 다른 것일까.

너무 말이 안되서 화가 나고, 끔찍해서 눈물도 나지 않는 것일까.

 

박찬욱식 복수도 덤덤하게 일어난다.

옳다 그르다 말할수가 없다.

고끄할수도 안할수도 없고, 그들을 말려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를 못하겠다.

그래서 슬프지 않은 것일까.

 

뭔가 답을 해야한다.

작가는 무엇을 느끼느냐고 묻는다.

두 종류의 범죄 피해자와 비교를 해봐야겠다.

 

1) 폭행을 당한 사람들은 왠만해서는 죽지 않는데,

성폭행을 당한 사람은 죽거나 심각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 그럴까?

피해자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들 모두 피해자가 돌이킬수 없는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폭행을 당해서 다리가 부러졌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

우리 모두가 = 피해자를 손가락질하지 않는 우리들이,

성폭행을 당한것은 너무 큰일이어서 돌이킬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2)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은 죽거나 심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고문은 한번의 고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랜시간에 걸쳐 여러번의 고문을 당한다.

 

성폭행도 한번으로 끝나는 경우와는 달리

여러차례 오랜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고문피해자와 같은 고통을 받을것이다.

 

그렇지않고 단 한번의 고문이나 성폭력의 경우는 어떨까?

사람에 따라 이겨낼수 없을수도 있다.

 

고문은 이겨내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성폭력의 경우는 어떨까?

단 한번의 성폭력의 경우도 죽거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을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

 

성폭행은 모든 고통에 더해서 사회의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낙인은,

피해자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 의한 2차 가해다.

 

우리 모두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성폭행은 가장 끔찍한 범죄다. 범죄자에게 극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를 또다른 피해로부터 구해내야 한다.

그러므로 성폭행 피해는 아무일도 아니라고,

다리가 부러져서 걷지 못하다가 수술을 받고 걷는것과 같은 일이라고,

우리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 사회의 인식을 바꿔야한다.

 

그래야 성폭행 피해자들을 완전하게 회복시킬수 있다.

정말 아무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