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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 카리스마 개인숭배_손관수_선인_25년 초판 1쇄 ] 체제가 아니라 민주정치가 정치의 성공을 가른다_251210

취미활동을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서 뭐든지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런데, 어떤 정치가를 숭배하여 신처럼 받드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무현을 좋아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친구처럼 좋아하지 신처럼 받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국가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정치가를 믿고 따른다는데, 믿기지가 않는다. 손관수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제1장 서론

 

민주정치의 고갱이는 권력의 분산이다. 권력을 한번 가져본 사람은 둘로 나뉜다.

 

1) 열심히 일하기가 힘들어서 홀가분하게 권력을 내려놓는 사람이거나

2) 권력을 놓기가 싫어서 개인숭배에 이어진 독재로 나아가려는 사람

 

이것은 공산당 1당 독재국가나 다당제 민주정치 국가가 모두 비슷하다. 손관수는 1당독재 국가도 개인숭배와 독재로 나아가지 않을수 있다고 말한다. 류샤오치-후야오방-덩샤오핑이 그런 중국과 공산당을 만들었는데, 시진핑에 이르러 흔들리고 있다고 본다.

 

"(덩샤오핑은 1978년) 개인숭배로 인한 민주집중제의 훼손 (중략 / 개인숭배의 가장 큰 죄악은, 봉건의 부활을 피할수 없다는 후야오방의 경고) 이같은 중국공산당의 반성과 회고는 1956년 흐루쇼프가 행한 '스탈린의 개인숭배 비판' 연설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략) 개인숭배로부터 중국과 북한의 엇갈린 운명의 길" (22~4쪽)

 

유물론을 말하면서도 1) 실제로는 사상을 중시한 주체사상과 2) 물질에 기초한 유물론을 추구한 마오사상이 서로 다른길을 걸을수밖에 없다고 비드웰은 주장한다. 물질도 - 사람도 - 사상도 모두 중요한 요소들인데, 어느것 하나를 중심에 두느냐가 눈에 띄는 차이를 만들어낼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사람을 중심에 두면 = 사상을 중심에 두게 되고 = 결국에는 유물론이 관념론으로 흐를수 있다. 프로바둑기사들이 두는 바둑에서 단 한수의 판단착오가 가져오는 결과와 같다. 모든 일이 사람을 위한 일이지만, 올바른 길은 물질의 세계에 있다.

 

"(비드웰은) 마오쩌둥의 모순론은 '물질의 상호작용, 자연안에서의 모순과 변증법'이라는 엥겔스의 논지를 수용해 물질에 기초한 생학philosophy 이론을 구축했는데, 김일성은 '사람이 모든것을 결정한다'라는 사람중심의 주체를 제시하면서 유물론의 관점에서 이탈해갔다" (28쪽)

 

제2장 이론검토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는 혁명을 이끌수 있는 반면에 위기에 처했을때,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권위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전쟁과 혁명 시기의 리더들은 그 상황을 돌파함으로써 카리스마를 얻었지만, 이것을 승계하려면 혈연이나 은총이 필요하다.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이다. 야만의 시기에 리더는, 왕족과 귀족의 피가 흐르거나 자민당이나 공산당 소속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시민들을 우롱하는 어리석은 논리다.

 

"베버는 똑같이 혁명이었던 이성의 작용과는 달리, 카리스마는 급격한 행동과 태도변화를 유발하고 세계의 구조문제에 완전히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혁명의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략 / 계시, 영감, 의지에 기반해) 기존의 관습과 법률, 전통을 뒤엎는 것이다. (중략 / 그러나 베버의 논지와 리베이의 사례분석으로 볼때) 카리스마 리더는 자신의 이익과 정체성이 침해될때 변화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고, 전통 권위와 결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 (63~8쪽)

 

중국은 반대파를 전부 숙청하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북한은 반대파를 완전히 숙청할수 있을만큼 작은 나라였다. 그래서 중국은 반대파들이 회복할수 있었지만, 북한은 일할수 있는 사람조차 드물어졌다. 큰나라와 작은나라의 어쩔수없는 다른점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앞으로도 달라질수 없을까. 달라질수밖에 없다. 북한을 둘러싼 세계가 너무 많이 달라졌고, 북한도 원하지않는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개혁으로 나아갈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생각과 달리 손관수는, 마오와 김일성의 정치투쟁과정의 다름때문이라고 말한다. 글은 편안하게 쓰여있고, 주요한 글들은 반복되고 있어서 도움이 되는데, 서너번이 넘는 반복은 지나치다.

 

"새로운 국가건설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에서 마오는 반대파를 숙청하면서도 최후의 활로를 막지는 않는 타협의 자세를 취했다. 덩샤오핑이 대표사례다. 반면 김일성은 반대파 제거에 가혹한 숙청의 방법을 사용해 제거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중략) 결국 중국에서는 마오의 반대파가 문화대혁명 실패이후 개혁파의 모습으로 부활했으나, 북한에서는 갑산파 숙청 이후 반대파가 완전히 소멸했다.

 

(중략) 카리스마체제 구축과정에서,

1) 정치분파가 통합을 지향하면 반대파의 숙청도 타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2) 정치분파가 통합되지 못하고 분산되어 있으면 반대파 숙청도 타협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73~5쪽)

 

제3장 카리스마의 기원과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

 

마오의 혁명 성공의 길을 간단히 돌아보면,

 

1918년 리다자오의 소개로 베이징대학 도서관 관리원으로 취업. 맑시즘 공부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마오, 후난성 대표 창당멤버

1924년 1차 국공합작

1927년 장제스의 상하이 군사정변. 마오,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

1934~1936년 10월 대장정 마오, 준이회의에서 군사 지도력 장악

1945년 옌안정풍운동 마오, 중국공산당의 지도자로 옹립

1949년 10월 1일 마오, 중국내전에서 승리  

 

김일성 영웅만들기의 과정

 

1931년 김일성, 중국공산당 가입 - 항일유격투쟁 시작
1937년 보천보 전투 승리 - 동아일보 보도

1938년 김일성, 일제의 대토벌에 맞서 고난의 행군으로 만주 빨치산의 지지 확보

1945년 김일성, 평양시 위수사령부 부사령관의 신분으로 소련군과 함께 입성

1945~1948년 소련, 김일성을 항일투쟁의 영웅이자 민족의 영웅으로 창조

 

문혁 이전 마오는 민주정치를 실천했고, 토론과 현실에서의 승리로 입지를 세워나갔다.

 

"마오 카리스마체제는 정치분파들의 동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당내의 권력투쟁은 치열했지만, 그 과정은, 각종 회의와 토론, 사상투쟁등을 거치며 책임자를 선출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절차의 정당성 등 최소한의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는 막스 베버가 언급했듯이 카리스마 리더십에도 필요했던 권위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116~7쪽)

 

마오가 정권을 잡아가는 길은, 죽음과 맞닿아있던 가시밭길이었다. 그렇기에 반대파를 죽이는것이 아니라 살려서 써야만했다. 마오가 노망이 들기전까지 겸손과 관용으로 반대파를 껴안을수 있었던 이유다. 그와 달리 김일성은 한반도와 중국대륙에 흩어져있던 항일세력들을 통합하며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결국 피의 숙청을 피할수 없었던 김일성은 개인숭배로 더 나아갈수밖에 없었다.  

 

"30년 가까운 시기는, 대장정이라는 절체절명의 생존 위기와 장제스의 토벌, 일본 제국주의와의 대결, 국민당과의 내전 등 한 번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한치 앞의 미래도 내다보기 어려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마오는 인재와 군사력을 중시하면서 '숙청'의 방식에서도 매우 '타협하는' 방침을 세우게 된다. (중략)

중공은 (1945년의) 역사결의에서 천뚜수와 리리싼 개인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당시에 지나쳤다며, '이전의 과오는 뒷날의 경계로 삼고, 병을 고쳐 사람을 구한다'라는 원칙아래, 앞으로는 '자기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기 시작한 사람은 편견없이 환영'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더이상 잘못을 범하지 않으면 동지의 태도로 그가 잘못을 고치는데 도움을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중략)

 

국내외로 흩어져 분산 투쟁을 해 오던 세력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되기에는 초기 김일성의 지지 기반은 너무 좁았다. 바로 이러한 불안한 상황을 보강해 주기 위해 소련은 '김일성 영웅 만들기'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김일성은 이를 기반으로 단기간 내에 최고 지도자의 지위에 올랐으나 통합리더십을 구축하기는 어려웠고, 그 결과 이후 권력투쟁 과정에서 반대파에 대한 대응이 매우 비타협의 방식으로 표출된 것으로 분석된다." (118~124쪽)

 

 

제4장 도전받는 카리스마의 반격

 

펑더화이는 무장이면서도 경제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펑더화이와 류샤오치는 공산당원이면서도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다. 마오가 있었지만, 이들이 있어서 오늘날의 중국이 있다. 그런 그들은 문혁으로 고통을 받다가 죽게 된다. 체제가 아니라 민주정치가 체제의 성공을 가른다.

 

착취유공론을 펼치며 중공 성립 후 인민들의 먹을 것을 책임졌던 류샤오치가 문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기 직전 가족들에게 남긴 유언은 비장하면서도 자유롭다. 마르크스주의자 이전에 자유주의자다. 자유주의자다운 청렴한 공직자의 모습이다. 이 땅의 공무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엥겔스처럼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라. 5대양을 떠돌며 전 세계를 보고 싶다. 나는 평생을 무산계급으로 살았다. 너희들에게 남겨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김명호, 중국인이야기 1권 5%)

 

"펑더화이는 애초 대약진운동에 찬성했었다. 그러나 이후 옌안지역 등 전국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인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등 식량 사정이 매우 좋지 않고, 과장풍과 공산풍이 심각해지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생각이 변해갔다. 펑은 “강철 제련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많은 돈을 쓰면서도 이익이 남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며 대약진에 대해서도 비판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중략 / 후야오방은 마오가) 만년에 자신을 과신하면서 실제 상황과 군중으로부터, 특히 집체 영도에서 갈수록 벗어나게 됐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정확한 의견도 억압함으로써 결국 수많은 착오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문화대혁명'이라는 전국적인, 장기간의 엄중한 착오를 직접 발생시키는 원인이 됐다 " (196~204쪽)

 

처음보는 자료도 있다. 한국내전에 대해 마오가 추궁하는 내용이다. 수십만명을 희생하는 결정을 내렸으면서도 전쟁에 대해 제대로 알지못했다니. 정말 큰일날 사람들이다.

 

"최용건과의 면담에서도 마오는, '조선전쟁도, 그(김일성)에게도 말했었는데, 이 전쟁은 시작해서는 안되는 거였다'라며 책임을 추궁하듯 거론했고, 이에 배석했던 한국전쟁을 이끌었던 펑더화이와, 휴전 협상을 이끌었던 리커농(李克)도 함께 나서서 '조선전쟁은 도대체 누가 시작한 거냐? 미국 제국주의가 시작한 거냐? 아니면 당신들이 시작한 거냐?'라고 거칠게 몰아부쳤다. 그러자 동석했던 북한의 이주연 부수상은 '왜 이 문제를 지금 꺼내는지 정말 모르겠다'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222쪽)

 

나라는 무엇인가? 
내가 다람=다른사람과 고끄하여 만든 
나와 다람을 지키려는 울타리다. 

나는 두개의 나라를 가질수 없는가? 

독재자들은 무엇이든 
자기입맛대로 써먹는다. 

이중국적자는 애국자가 아니고, 
기회주의자다. 

웃기는 소리다. 

나는 한개가 아니라 세개의 나라를 갖고 싶고, 
그 나라들을 바탕으로 
나의 자유를 짓누르는 독재자들과 
썩은 폭력에 맞서고 싶다. 

 

"(1957년) 소련과 「이중국적자의 공민권 조절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는데 대부분 이중국적자였던 소련계는 1년 이내에 어느 한쪽의 국적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수의 숙청된 사람들을 제외하고 상당수 소련계는 숙청의 폭풍우를 피해 소련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중략) 김일성은 그간 다져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 적용에 바탕을 둔 주체노선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그 기둥작업이 바로 김일성 중심의 역사서술이었다." (236 / 258쪽)

 

제5장 문화대혁명과 정치 반대파의 운명

 

사람은 아무리 기억하려고해도 컴퓨터보다 더 잘 기억할수 없다. 생각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친구에서 적으로 돌아선다면, 그게 친구인가? 친구는 그렇더라도 나라는 다르다. 국제정치는 다르다.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친구나 적이 없다'는 말이 옳은 말이다.

 

"중국의 대약진은 사실상 60년 겨울을 기점으로 실패를 자인하고 정지되는데, 소련의 전문가 철수, 경제합작 파기는 공교롭게도 중국이 가장 어려울때, 가장 아픈 결정을 한셈이 되어버렸다. 결국 중소동맹은 갈등을 넘어 분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267쪽)

 

갑산파가 이윤보장 방식의 가화폐제도를 도입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코파에서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맞는 답으로 보이지 않는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갑산파가 실험 도입하려고 했던 것은 소련에서 제기됐던 이윤을 도입해 노동 효율성을 제고해 보려고했던 '리베르만 방식'을 빌려쓴 것이었다. 이는 이윤 추구를 보장하는 물질자극을 강화하는 방법을 통해 기업소를 운영해 보자는 것으로 일부 시행이 됐던 ‘가화폐 제도’이다. (중략) 김일성 정권이 정치안정과 경제불안을 동시에 나타내던 1960년대 초반" (321쪽)

 

읽다보니 반공산당 - 반북한을 설명하는 책을 읽고 있다. 개인숭배라는 주제를 설정함으로써 가지는 한계다. 민주정치의 시대에 개인숭배와 독재체제가 받아들여질수 없다. 똑같은 개인숭배라도 무엇이 달랐는지를 살피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식의 북한연구가 쓸모있는지도 모르겠다. 3대세습이라는 왕조정권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것이 과연 개인숭배만으로 가능했다는 말인가? 배울것은 없고 욕할것만 있는 기록들을 가지고, 조선과 이나=이야기 나누기를 할때, 우리가 할수 있는것들이 없다. 다른 연구가 필요하다. 이나의 마당으로 김정은이 나올수 있도록 해야 한반도에 평화가 이루어질수 있다. 

 

"기억으로 만들어진 역사가 후계구도, 혈통승계라는 정치배경과 결합하며 더욱더 확실하게 실제역사로 자리잡아간 것이다." (359쪽)

 

분서갱유.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지가 않다. 사람은 어찌 이리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갑산파 주장에 동조현상을 보였던 지식인들을 혁명화하는 작업, 즉 숙청이 진행되고, 전 사회의 대규모 도서정리 작업을 통해 김일성 개인숭배에 장애가 될만한 책자는 규제하거나 폐기하는 분서갱유급의 '책의 말살' 정책이 단행되었다." (385쪽)

 

제6장 반개인숭배의 제도화 vs 개인숭배의 제도화

 

마오는 살아서 천안문에 초상화로 남아있다. 그리고 중국은 개혁 개방되어 아메리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얼마나 더 나아갈지 알수 없지만 말이다. 조선에는 그런 힘이 있을까? 30년안에 생기기를 바란다. 대한민국과 조선이 비슷한 말을 쓰는 두개의 나라로 같이 손을 잡고 일어날수 있다면, 중국이 한반도를 무시하지는 못할것이다. 

 

"덩샤오핑 등 개혁파가 '개인숭배 타파'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며 강력히 밀고 나간 것은, 문화대혁명 때와 같이 한 사람에 대한 개인숭배로 '당내 민주'가 질식된 상황에서는 어떠한 개혁정책도 불가능하다고 절감했기 때문이다. '개인숭배 타파'로 곧 '개혁·개방'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개인숭배 타파'가 제일의 필수 조건이라고 본 것이다." (433쪽) 

 

개인숭배 금지를 당헌으로 정한 중국 공산당. 14억의 거대한 중국을 민주정치로 이끌수 있을까? 1당독재의 한계는 분명한 일이다. 공산당도 헌법과 법률의 범위내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것도 처음으로 안 사실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덩샤오핑 세력이 당을 확실하게 장악한 1982년 9월의 12차 당대회에 와서야 그 정신이 회복된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개인숭배를 금지한다는 규정을 넣었다는 점이다. 수정된 당헌은 제2장 당의 조직제도 부문 제10조 6항에서 “당은 어떠한 형식의 개인숭배도 금지한다”라고 확실하게 규정했다. 중공이 이처럼 당헌에 '개인숭배 금지'를 명문화한 것은 처음이다. 

 

(중략) 당은 반드시 헌법과 법률의 범위내에서 활동해야한다. (중략) 국가주석, 부주석, 총리 등 국가지도자들은 두차례 이상 연임할수 없다." (436~7쪽)  

 

제7장 결론

 

이상하다. 조선이라는 이상한 나라가 어떻게 나라를 지켜갈수 있었을까?

 

중국은 개인숭배를 버리고 민주정치를 끌어다 씀으로써 세계로 문을 열어나갔다. 이 길이 바른 길이라면, 개인숭배와 혈통승계, 3대 세습체제의 조선왕조가 어떻게 21세기에도 살아남아 있을까?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 너무나 철저해서? 5호담당제 등 철저한 주민통제가 가능해서? 그럴싸한 이유들이 있지만, 3대세습왕조가 유지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틀로는 조선을 이해할수 없다. 조선은 존재할수 없는 나라다. 그렇다면, 이책의 분석은 틀린게 아닐까?

 

중국의 민주정치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고끄할 것이다. 주석직 2연임 초과금지라는 헌법이 2018년에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비대하고 나이든 시진핑이 중국공산당의 민주정치를 목졸라버릴지도 모른다.

 

"(2018년) 국가주석 연임금지조항 삭제를 가볍게 볼수 없는 이유는 (중략)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중략) 중화문화와 중국정신의 시대정수로 맑스주의 중국의 새로운 도약을 이뤄냈다. (중략) 사상해방이 없으면 개혁개방도 없다. (중략) 중미간의 대결이 오래갈 것이란 전망속에서 시작된 시진핑 중심의 강화가 아메리카와의 대결에서 체제 결속을 위한 전략차원에서 나온것인지 (중략) 중국의 카리스마 리더십은 다시한번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483~4쪽)

 

이글을 통해 중국과 조선의 공산당사를, 손관수가 반복해서 설명해 줌으로써 여러번(?) 읽게 되었다. 다른 이야기와 어지러운 이야기들이 더 많겠지만, 이 정도로 정리하면, 조선노동당에 반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중국 공산당은 민주정치가 작동하고 있는한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

 

중국과 조선 중에서 어느 나라가 먼저 정치변혁이 일어날까? 조선이다.

그렇다면, 아메리카와 중국 중에서 어느 나라가 먼저 정치변혁이 일어날까?

하아, 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독재체제로 나아갈 틈이 보이는 중국일까,

국민 모두가 총을 들고있는 아메리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