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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다사의 이야기를 읽고 묻다_251221

친구들의 반가운 댓글에 답하려고 써보는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와서 정리가 어렵다. 잘 몰라서 그렇지!
잘 모르면서 정확한 이해를 돕는 글은 못쓸 것 같고, 그저 내가 보고 있는 ‘초점’에 대해서만 쓰련다.
그래도, 다른 무미건조한 물리 설명을 읽을 때, 단어들에 강약이 생기는 효과는 있을거라 기대해 본다.

정밀한 연구는 짧은 시간에 될리 만무고 하니, 모르기도 하고 알기도 하는 상태로 그냥 죽 가는거지~ 
모르지만, 내가 이해한 또는 오해한 생각 그대로 말할게. 오해조차 다음 단계로 가는 징검다리!

양자역학이 말하는 건 상식에 너무 위배되어서 아인슈타인뿐 아니라 모두가 싫어할텐데,
양자역학이 말하는게 뭔지부터 확인하면,
양자역학 이전의 물리학은, 힘이라는 개념으로 운동을 설명한다.


존재는 질량이라는 개념에 담고, 존재의 궁극에 원자가 ‘있다’라고 믿고.


원자를 믿고 설명하는 중에도, 모두가 원자가 실재한다고 하진 않았다. 
처음 원자가 실재라고 주장하던 톰슨이라는 사람은 왕따가 되었고, 원자를 실증되었다 받아들인 때도 겨우 
백년 조금 더 지났을 뿐이고, 직접관측하여 사진 이미지를 만든건 80년대로, 50년이 안된다.

 

* 무일 : 원자가설의 지난 이야기 중에서 중요한 것을 정리해 보자.

 

① 존 돌턴 : 질량보존의 법칙(1789년 라브와지에 화학원론) - 하나의 화합물은 일정성분비의 법칙 - 두 화합물을 비교하면 배수비례의 법칙(돌턴) : 1803년 강연 - 1808년 저서 A new system of chemical philosophy

 

② JJ 톰손 : 음극선 실험으로 전자 발견(1897) - paddle wheel experiment로 입자인 전자를 증명 - 십자가 그림자가 생기므로 파동이 아니라 직진하는 입자인 전자  - 전자의 존재와 원자가 중성인 것을 섞어서 푸딩 모델을 제시했다.

 

③ 러더포드 : 알파입자 산란실험(1909 가이거-마즈든 : 두께 400nm / 2mmx2mm의 금박) - 1911년 러더포드는 원자핵이 있고, 크기를 추정했다.

 

④ 닐스 보어 : 1913년, 전자는 특정궤도에서만 안정해 있고, 에너지가 방출흡수되면 궤도 사이를 이동하고 스펙트럼이 나타난다.

 

⑤ 볼츠만 : 1872년, 기체의 압력은 기체분자의 운동 -> 기체분자가 있으려면 기체원자가 있어야 한다. 기체분자방정식(볼츠만방정식) - 열역학 제2법칙과 확률론(엔트로피)

 

⑥ 아인슈타인과 장 페랭 : 브라운운동 설명(1905년) / 아보가드로의 수 계산(1908년) -> 볼츠만의 이론을 입증하면서 원자의 존재를 모두가 받아들이게 되었다.

양자역학이야기를 쓰려는데 대뜸 실체가 없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러면, 
내가 쓴 단어가 통용되는 의미와 다르게 되면, 이게 맞다 저게 맞다 번잡해질텐데,,,
우선 단어에 내 생각을 먼저 말해놓고 하자.
(좀 길어져 버렸다. 정작 양자역학 이야기는 짧고….실체, 실재,,,번잡함을 줄이려다 서론이 너무 길어짐.


현상(착각상상포함) --> 실제(로 일어난 사건) --> 실재(하는 원인) --> (궁극의) 실체
내가 이 단어들을 쓰면서 뭘 표현하려는 생각해보니, 이대략 이런 식으로 개념이 잡혀있는 거 같다. 

현상과 본질할 때 현상인데, 현상만 남기고 본질이란 단어는 다른 단어들로 쪼갬.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 사건이 있고, 현상을 일으킨 ‘실재’ 원인이 있고, 원인의 원인이 또 있다고 
생각하면, 궁극의 원인이 ‘실체’. 이렇게 연결해봄.
 
‘실제’라는 단어는 착각이나 상상과 대비해서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실제'일까?  
사건이 있으면, 작용하는 원인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귀신이 돌아다니면서 역병이 돈다.
귀신이 실재의 자리에 들어간다. 귀신이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과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 
모두에게 실재의 개념은 같다. 다만, 물리적 실재를 믿는 사람들이 기어코 찾아낸 전염병의 
실재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귀신은 바이러스였다!

영혼이 있는가? 신은 있는가? 원은 있는가? 있는게 뭐지? 이런 실재에 대한 생각들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실재는 다양하다. 귀신도 심리적 실재이다.  바이러스는 물리적 실재이다.
심리적 실재, 물리적 실재, 둘다 있다. 다만 심리는 물리에 따라나온다.(이원론은 아니고 물리주의)
통용되는 유물론은 심리적 실재를 부정하지 싶다. 물리적 실재를 실체로 여기기 때문에,,, 실체?

실체를 말하기 전에, 몇가지 문장들을 남김.

- 신은 있다. 다만 있다고 믿는 마음 속에’만’ 있다.
-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표현’은 실재가 아니다. 그러나,  표현이라는 다른 사건이 생긴거다.
 문학이 표현한 내용은 실제로 일어난 현상도 아니고 실재도 아니다. 
 그렇지만, 표현이란 현상은 실제로 있고, 표현된 것은 문학작품으로 실재하고 심리적 실재를 만든다.
 문학 예술 수학,,,
- 실재는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 중, 재현되고 반복되는 것. 
- 실재를 어떻게 확인하는가. 대상(객체)화 해서 측정(객관) 
- 신은 심리적 실재이다. 신은 있다. 다만 각자의 마음 속에’만’ 있다. 신은 심리적 현상이고, ‘실제’
로 작용한다. 다만, 물리적 실재는 아니다. 신의 실재를 idol로 형상화하는데, 이렇게 마음 바깥에 
내 놓는 순간 실재가 아닌 허상이 된다.
- 심리적 실재에 대응하는 물리적 현상은 측정할 수 있다. 
- 마음을 실체라고 여길수도 있고=유심론 유아독존, 물리를 실체라고 여길 수도 있다=유물론, 

실체는 ‘궁극’의 실재, ‘영원불변’한 무엇, 
영원불변한 실체에 이름을 붙일 수는 있지만, 실체는 없다.
원자에 대해서 백년전에는 원자라는 실재는 이름만 있다는 유명론이었다. 
지금은 쿼크나 플랑크상수가 그런 거다. 실재한다고 믿지만, 측정은 안되고 이름만 있는 실체 

그것의 실체가 뭐냐? 실체는, 현상을 일으킨 원인, 실재에 대한 물음을 반복하는 과정의 종착점.

물리적 실재에 대해서 말해 본다. 
마음 바깥에 있는 물리적 실재 = 물건, 건물, 흙, 물, 불, 공기, 사람, 동물, 생물, 미생물, 화학분자, 
원자, 양자,,,, 
물리적 실재를 믿는 쪽에서는, 원자를 발견하고, 양자 현상(상태)을 발견하고, 쿼크라는 존재도 상상
한다.
물리적 실재는 믿는 쪽은 감각으로 확인(측정)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다. 
원자는 실재인가? 측정했다.
전자도 측정했다. 현대의 기술은, 원자 단위의 물건도 만들고 있다. 중력파를 측정하는 기술은 10의 -21승 수준이라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플랑크 단위 10의 -34승의 존재도 실재로
상정되어 있다. 현재는 이게 물리적 실재의 궁극, 실체가 되겠다. 플랑크 단위, 쿼크 이런 것은 물리적 실재라고 
상정하지만, 측정되는 것은 아니고, 실체가 뭔데?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만든 이론, 계산의 결과이고, 수학적 믿음이다. 믿음이라해도 근거가 남다르긴 하다.  수학적 존재는 실재인가? 
실재를 반복 지속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실재이다. 그럼 수학적 실재의 궁극, 수학의 실체는 
무엇인가? 원은 실체인가?
물리적 실재에서 생각하는 실체는 측정되어야 한다. 
측정은 근사값이고 물리의 답이고, 참값은 계산이고 수학의 답이다. 
원은 그릴 수 있는가? 우주 어딘가에는 완전한 원이 있는가?  있다면 수학적 실재는 물리적 실재가 될 수 있다. 
없다면 수학적 실재는 물리적 실재와 다른 것이다. 
수학적 실재가 물상으로 있는가? 없을 것 같다. 물리적 실재는 아니다.
수학적 실재는 완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이 간다.
완전한 것이 있다할 때 있는 것이 수학적 실재.  

각각의 실재를 실체라고 생각하면, 다른 실재는 허상이 된다.
허상을 규정하게 하는 실체에 대한 논쟁은 무용하다. 철학을 쓸모없는 것으로 이끄는 길이 된다.
실체에 대한 궁구는 다양한 실재를 하나로 궁극으로 환원하려는 절대에 대한 동기가 작용해서, 헛된 노력이 된다.

한편, 실재를 다투는 건 유용하다. 과학이 쓸모 있어진 길.

예를 들어 마음은 뭐지? 마음은 있나? 실재하는가? 심리적 실재를 그냥 믿어버리기도 하지만, 
물리적 실재를 찾는 사람도 심리적 실재를 물리적으로 찾아본다. 마음은 뇌 안에 있다. 뇌가 있는 
동물은 다 마음이 있다. 뇌는 큰 신경절이고, 신경절에 마음이 있다. 벌레에도 마음이 있고, 등등,,,, 
심장에도 따로 신경절이 있으니 심장에도 마음이 있을거다.. 등등..
심리 경험에 대응하는 물리화학 상태를 측정하는 도구도 만들고, 데이터도 열심히 모으고,,,
고래에게 신호기를 붙여 오래 데이터를 모은 후, 고래의 대화를 읽어냈다는 걸 유튜브에서 봤는
데, 사실 확인은 못해봤지만, 그렇게 될 거 같아서 사실일거라고 받아들인 상태임.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면, 조만간 동물과 대화할 날도 올 거 같다. 
의식은 실재하는가? 인공지능이 물질이 의식을 지어내는 거를 보여준다면(나는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하는 쪽), 의식은 실재가 아니고 물질만이 실재한다. 라고 할 수 있을까?
궁극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 설명되기도 전에 미리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건 내키진 않는다. 
귀신은 없다고 해도, 박테리아, 바이러스만으로 설명이 다 되지 않는, 면역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
고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그 계기에는 환자의 의지가 작용한다. 유물론으로 의지는 실재하는가? 
생명은 실재하는가? 는 질문은 유용한 면이 있지만, 생명의 동인을 찾으려면, 귀신을 담고 있던 
마음, 심리적 실재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생기론등으로 실체를 왜곡하지만 않는다면, 
신비주의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의식에 대한 물리적 설명이 가능해지더라도, 인공지능이 자기가 
실재고 인간의식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날이 올지라도, 인간인 한 인간의 의식은 실재로 
여겨야겠지? 실체는 없고, 다양한 실재가 유효한 동안 실재한다. 
(허상들로 보이는 여러가지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볼 때의 부조화 감정을 풀기 위해서, 실효가 
있는 모든 건 실재한다라는 생각을 해보는데, 현실 수용이란 면에서 잘 맞는 거 같다. 그러나 하
고 보니, 물리적 실재만 실재같다는 내 느낌이 도로 강하게 일어난다. ㅠ )
그러나 다시, ‘다양한’ 실재라는 논리로 마저 말하게.

현상에 대비해서 본질이란 단어를 쓸 때, 현상의 원인을 생각하는 거라면,
원인을 심리에 두면 개성이 실재이고, 인간관계에 두면 사회성이 실재이고, 사회제도에 두면 정치
가 실재이고, 물질 환경에 두면 지리경제가 실재이고, 물리에 두면 힘이 실재이고, 생물 환경에 
두면 생태가 실재이고,,,

실재 라는 단어를 쓰는 각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실재만 실재하고 다른 존재는 실재가 아닌 부수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싶다. 
나에게는 물리적 실재로 충분하다. 다만, 현실을 보면, 오히려 설명되지 않는 존재를 믿는 사람들
이 많고, 실제로 반복지속되는 현상을 만들고 있는데, 그런 건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쓸모
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또 역지사지, 입장을 뒤집어 놓고, 물리적 실재도 궁극에 가면 실체가 없
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 이제 어쩔 수 없이, 실재는 각자가 실재라고 믿는 것이라고 해본다.

사람은, ‘실재한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 ‘운동’하기 때문에, 실재는 ‘유용’하다.  
심리적 실재, 사회적 실재, 물리적 실재, 역사적 실재 등등, 
나는 수학적 실재 또는 확률적 실재를 궁극의 실재, 실체라고 봄. 
동시에 이 것들은 물리적 실재가 아니다. 그럼 있는건지 없는건지

동양철학에 빗대면 실체는 ‘도’에 해당, 득도는 실체를 아는 것, 도통에 대해서 노자는 가도 비상
도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수학적 실체가 상도에 해당되고, 확률적 실체는 가도에 해당된다고 봄.

신은 심리적 실재 / 왕, 국가, 법, 화폐 등은 사회적 실재 / 물질 물체 생물 등은 물리적 실재 /  

무엇이 진짜인가? 따질 때는 무엇이 실재인가를 다투는 건데, 진짜라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 존재
하는가를 따진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상대가 말하는 실재의 증거는 충분하지 않아서, 설득할 
수 없기 마련이고, 논쟁은 점점 더 심층의 증거를 찾게 한다. 궁극엔 뭐가 있는 것일까? 실체는 
무엇인가? 심판을 찾지만, 실체는 닿을 수 없는 채로 남아, 역시나 믿음을 설득할 수 없다.

     --> 실재라고 여기면 믿는다  ?
     ?     믿으면 실재한다.    <--

기독교를 기반으로 신을 전제로 사회를 꾸민 유럽사회는 
물리학의 발견으로 실체를 고민하게 된다.
궁극에 신이 있다고 믿던 마음은, 궁극의 존재, 실체가 있어야 부조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면 동양사회는 진작에 궁극의 존재, 실체가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광대무변무궁무진(시작도 끝도 없다. 반면, 궁극의 실재는 시작을 의미한다. 신, 빅뱅) 
태극(음양이 생기는 근원인데, 무다. 없다. 무에 신이란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없는 것은 없고, 있는 것은 있다. --> 없는 것으로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있는 것으로 없는 것
을 설명할 수 없다. 물리에는 0이 없다. 척도(1)가 있는 것만 실재한다
없는 것이 있다. 0 이 있다. --> 수학에는 0이 있다. 0을 도입해서, count헤아린다. 0도 실재한다.

횡설수설이 길어져서 각설하고, 
궁극의 실재, 실체는 삶과의 부조화에서 비롯된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찾는 북극성이 아닌가 싶

양자역학에서 비롯된 철학적 이야기에 대해서 내가 생각한 결론은  
? 실체는 없다. 또는 실체에 대응할 물리적 실재는 이름으로만 있다.
(양자역학은 철학이 아니니, 이런 식으로 아는 척 하는 걸 사이비라 한다...ㅠ)

나를 사이비로 이끄는 현대과학의 두 축은 상대성원리와 양자역학이다.
특수 상대성은 시간 속도 거리의 관계에서 시간과 거리가 영원불변이 아니다는 증명이다. 시간과
공간=’우주도 실체가 아닌게’ 되지. 그렇지만 상대적인 관계는 불변이다. 물리적 실재의 궁극은 물
리법칙(수학)이 되겠다. 그런데 수학적 실재(체계)는 완전하지 않다. (모순을 일으키는 자기 참조를 
벗어나려면 또 다른 계층을 만들어야 한다. 곧 궁극이 될 수 없다는 말. 불완정성 정리)
일반 상대성 원리에선, 질량과 에너지가 시공간 자체를 휘어지게 만든다. 중력은 힘이 아니라 휘
어진 시공간의 기하학적 현상이라는 말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중력을 시공간의 곡률(불변이 
아닌)일 뿐이라는 말은 질량을 가진 ‘물질이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또, 시공간은 전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시공간을 실체라고 하면, 전부가 하나다 로 된다. (모나드). 전부가 하나라면 실체
가 있거나 없거나 구별할 일도 없다. 그런데, 시공간이 하나라고 말하려면 시공간이 연속이어야 
할텐데, 시공간을 양자화해서 시공간의 불연속성을 밝히려고도 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시공간
의 실체는 시공간의 양자가 되겠다. 양자가 실체라면, 이 실체는 뭐지?

양자는 실재인가?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반대할 때 이유는
확률로 존재한다는 말은, 이건지 저건지 모른다가 아니라,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이니, 뭐가 있다
는 말같지 않다. (비결정론)
관측적엔 파동, 관측하면 입자다 라는 말은 역시 실재가 없다는 말로 들린다. 
(정해져 있지 않고, 입자이기도 파동이기도 하다 = 언어 인식의 한계, 언어도단)
입자의 상태가 멀리 있는 다른 입자에 ‘매개없이’ 즉시 작용한다는 말(양자 얽힘)은 말이냐 방구냐 
혐오할 수 밖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니까!

양자는 궁극의 실재, 실체인가?
양자는 입자가 아니다. 입자가 아니면?  입자라면 1인 존재. 
여기서 파동은 뭐지? 원래 파동은 물질의 요동인데, 궁극의 물질이 파동이라는 말은 이해가 선듯 
이해가 안된다. 다만, 파동은 연속을 전제한다. 
양자는 이전에 연속으로 여기던 에너지를 입자처럼 생각하는 건데, 그런 식으로 연속으로 여기는 
것을 불연속 양자로 보는데, 이게 또 입자는 아니라네? 측정되기 전에는 연속이었다가, 측정하면 
1(불연속)이 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이게 뭔 말이람. 
얽힘이라는 개념은 양자가 멀리 있어도 ‘매개없이’ 연동한다니 두개냐 하나냐. 연속은 원래 파동
으로 설명하는데, 파동으로 입자를 설명하려니, 자가당착하는 언어. 확률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실
재는 확률이다. 이렇게 언어를 짬봉을 만듬. 사실 동양철학에서는 흔했던 화법!

미적분이 유로서 무를 표현했다면, 양자역학은 무로써 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미적분은 ‘무’한급수의 합은 ‘유’한 값을 가지는 걸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양자요동은 무(입자-반입자 쌍)에서 대칭이 깨지면서 물질이 시작한다는 생각) 

태극음양중용, 색즉시공공즉시색, 도가도비상도 등등 유불선에 나타나는 동양철학의 관념에서는 
실체를 상대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동양철학적 사유를 해봤다면, 절대를 생각해온 유럽의 물리
학자들이 실체 개념에서 겪는 고충을 백프로 알기는 어려울거다. 
Count 하지 않는 문화에서, 물리의 문턱은 높기만 하지만, 그 끝에 나온 인식은 오히려 쉬울수도, 
그래서 동양철학자들이 신비주의로 물리학을 이해한 듯이 설명하려드니, 물리학자들이 기겁을 함.


여차저차…나는 실체에 대한 관심을 그만두었다, 모른다 하고 해방. 
실용으로 귀의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상식적 삶을 이해?하게 되는가?
어떤 길을 가보고 나서는, 맨날 어 여기가 아닌가벼~ 반복하고 있다. ㅋ

내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삶은 좋아보이기도 하고 나빠보이기도 한다.

상식적인 삶은, 진위보다 이익를 따르고, 미추보다 호오로 결정한다. 이익이 되는 것이 옳고, 싫은 
것은 추하다. 이건 싫다. -
다른 면에서 좋아보이는 건, 정체나, 진위를 따지기 보다, 목적에 맞는지 따지는 거다. 목적에 맞
는 길=방법=기술=유효하다=의미있다

상식=집단지성, 현대는 집단지성이 실재한다고 발견? 발명? 중



역사적 존재라는 말.

조선시대에 오대조 제사를 지내는 이유를, 20살 전후로 출산하는 그때의 한 세대는 20년 정도로 
보고, 5대조 제사는 백년을 기억하고, 현재의 삶과 연결한다. 유효하다. 의미있다. 이런 식으로 생
각해서, 태어나기 전 백년 죽은 후 백년, 그렇게 인간의 일생은 삼백년 동안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인간사회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원인은 개체의 일생보다 긴 시간(삼백년) 걸려서 만들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비롯되고, 당대의 삶에서 하는 행동은 긴 시간의 변화에 유효한 결과를 낼 때 의미있다
는 뜻으로, 삶의 의미는 당대에 있다기 보다, 역사(삼백년)에 있다.

실재는 다양하고, 각각의 마음이 믿는 것은 그들의 실재가 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면,
나는 유학자들은 인간을 역사적 실재로 여겼다고 생각함. 
인간의 ‘실재’는 삼백년시공간에 ‘있다’ (개체도 아니고, 일생도 아니고) .

실재라 믿는 것을 실재라 할 수 있다 해도, 궁극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실체는 없다.

유는 유고 무는 무다. 
유는 유가 아니고 무는 무가 아니다.
유는 무고 무는 유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유는 유고 무는 무다.

아 몰라~ 끝!!!


dk

[ 그림 출처 : VGraph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