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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 극우 미디어의 습격_김현석_그리비_25년 10월 초판 1쇄 ] 극우미디어는 의혹과 주장만을 쌓아서 탈진실의 길을 걷는다_251126

극우 미디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김현석의 분석으로 극우 미디어의 실체를 좀더 알아보는 것으로 한다.

 

들어가는말

 

퓰리처상때문에 퓰리처에 대한 이미지는 좋은데, 이 글로 보면 허스트와 별로 다를것이 없었나보다. 신문도 돈을 벌어야하는 사업이었으니, 힘을 가지려고 엉터리같은 짓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들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일이었다. 전쟁의 결과로 아메리카는 엄청난 땅을 또 빼앗았다. 그러면 된것인가? 퓰리처와 허스트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아메리카가 스페인의 땅들을 탐내어 쳐들어갔을까? 그랬을 것이다.

 

1868년에 시작한 10년전쟁의 실패를 딛고, 1895년 호세 마르티의 쿠바 독립운동이 다시 일어났다. 메인호의 침몰을 계기로 스페인과의 전쟁을 선동하여 마침내 그뜻을 이루어낸, 아메리카 사람들이 퓰리처와 허스트다. 쿠바는, 전쟁에서 이긴 아메리카가 군정을 실시한 다음, 1902년 공화국으로 독립한다. 스페인 식민지배와 미군정으로 고생이 끝난게 아니었다. 1959년 카스트로와 체게바라는 6년 = 끔찍하게 긴 전쟁을 거쳐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쿠바혁명에 성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아, 100년이 걸렸다.

 

"(1898년)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는 믿음을 뿌린 (뉴욕월드의) 퓰리처, 신문을 흥분과 공포를 파는 극장으로 바꾸어낸 허스트. 19세기말 아메리카 신문업계를 나눠가졌던 신문왕이자 황색언론의 상징인물들이다. (중략 / 뉴욕저널) 허스트의 유명한 발언이 있다. (중략 / 쿠바에 그릴만한 전쟁이 없다는 삽화가에게) 당신은 그림만 제공하게. 전쟁은 내가 준비하겠네 I'll furnish the war.

 

(중략 / 황색언론은) 단순한 선정보도가 아니라 전쟁까지 만들수 있는 감정조작 공장이었다. (중략)

 

퓰리처가 전재산을 기부해 설립한 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 스쿨이 핵심역할을 했다. 이후 사실검증의 원칙, 균형잡힌 관점, 사실과 의견의 분리, 공익중심의 보도철학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았다." (6~8쪽)

 

게이트 키퍼로서의 언론은, 단순한 문지기가 아니었다. 정보의 통제자였고, 정의와 상식을 쥐고 흔드는 지배자였다. 그러므로 유튜브의 시대에 저널리즘은, 위기를 맞은것이 아니라 서야할 자리를 찾은 것이다. 더이상 세금으로 모든 언론사를 먹여살려, 엘리트 카르텔의 도구와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된다.

 

혐오와 거짓을 선동하는 언론이 너무 오랜동안 드넓게 우리 마음을 옭아매고 있었고, 이제 비로소 그들로부터 벗어나서 언론다운 언론들을 만나고 있다. 그것도 민주정치가 제대로 일하고 있을때만.

 

"기존 저널리즘 체계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선동가와 혐오론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증폭시킬 수단 또한 주었다. (중략) 미디어와 수용자 그리고 디지털 알고리즘 기술의 이러한 조합은 민주정치를 파괴하고 공동체 전체를 분열시켜 한 사회를 내전마음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사실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형성에 중요하다는 탈진실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중략) 이책은 탈진실 현상이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내는 미래라는 리 매킨타이어의 주장과 탈진실현상은 극우미디어 생태계에서 극단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벤클러의 주장 가운데 어느것이 현실 적합성이 더 높은지 비교 검토해 보려는 시도다." (8~10쪽)

 

이 부분이 제일 관심이 간다. 김어준의 부정선거 음모론이 제대로 살펴본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김현석이 자신있게 주장하니 먼저 읽어봐야겠다.

 

"4장에서는 진보 진영에서 완성된 형태로 제기된 부정선거 음모론을 다룬다. 방송인 김어준이 완성한 'K값 음모론'이 그것인데, 그 음모론의 논리와 허구성을 지적할 것이다. 그리고 김어준의 부정선거 음모론이 진보 매체들에 의해 반박되고, 결국 힘을 잃어 가는 과정을 설명할 것이다" (11쪽)

 

제1부 극우미디어와 내전

 

이런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들어낸것이 검사들과 언론들이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혹제기와 추론에 자신의 새로운 추론을 덧붙이면서 서사가 풍부해졌다. 마치 집단창작소설을 쓰는것처럼 말이다. 이들이 참조한것은 사실이 아니라 서로의 주장일뿐이다." (25쪽)

 

저널리즘은 사실을 쌓아가는 진실로 가는 길이고, 극우미디어는 의혹과 감정을 쌓아가는 탈진실의 길이다.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진실은 이런 여정 그 자체이다. 저널리즘이 도달하고자 하는 진실은 완벽한 진실이 아니다. 잠정적이며 조건부적인 진실이다.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진실이다. (중략)

극우의 담론 구조 역시 여러 사람을 거치며 점점 더 내용이 풍성해지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일 수 있다.

 

(중략)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진실의 여정에는 새로운 사실과 맥락이 추가된다. 하지만 극우의 담론 구조에서는 사실이 아니라 새로운 의혹과 주장이 추가된다.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진실의 여정에서는 사실 검증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고, 일부러 유포된 조작 정보 등을 제거하면서 진실에 다가간다. 그러나 극우의 담론 구조에서는 사실 검증이나 반론은 차단되며, 감정에 호소하거나 끊임없이 전달해서 사실로 뿌리내리게 한다." (30쪽)

 

내전은 함부로 쓸수있는 말이 아니다. 죽고죽이는 살육전이다. 우리는 내전으로 300만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고, 영원한 적을 만들었다. 중국의 내전희생자도 500만명에 달하였으며, 아메리카는 내전으로 70만명의 군인이 죽은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도 시리아 - 수단 - 예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으며, 내전기간 동안 정치는 무너지고, 삶은 죽어없어진다.

 

한국사회가 의회에서 매우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다는것은 매체가 많아지면서 아주 많이 만나고는 있다. 이것이 정말로 내전으로 갈것이라고 보는가?

 

지독한 말싸움을 벌이며 만들어지는 대통령 지지율을 살펴보자.

김영삼(84%) - 문재인(83%) - 김대중과 이명박(70% 이상) - 박근혜(67%) - 노무현(60% 이상) 등 출신당적에 관계없이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할 경우 80%를 넘기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은, 지지율이 20%를 위태롭게 지키던 두 대통령을 탄핵으로 쫓아냈다. 이것은 국민들의 일치단결된 모습이 아닐까.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쫓아낸다.

 

그런데, 김현석은 조선일보가 2022년 12월에 조사한 1회성 여론조사를 너무 크게 받아들였다. 적어도 관련조사를 십여년에 걸쳐서 해봤더니, 어떤 변화가 = 심리내전상태로 볼만한 결과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폈어야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나쁜 상태였는데, 지금은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원래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노는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심리내전상태로 키운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혹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 점잖게 걱정하며 말하는 사람들이 내전상태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는것은 아닐까? 극우미디어가 정말 문제일까? 언론이라는 사업영역이 문제가 있는것은 아닐까? 언론은, 재난 - 전쟁 - 혼란 - 비극을 통해 힘을 얻어왔다. 심판이기에는 너무 현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언론이라는 커다란 집단이 문제가 아닐까? 갈등과 혐오를 풀어가는 방법을 알지못하는 언론이 문제가 아닐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에 이어 폭동까지 발생하자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고, 폭동을 선동하는 극우 미디어의 문제도 도드라지게 드러났다. 이전에도 대한민국이 일종의 '심리 내전상태'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는 있었다.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4명은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식사나 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여기고 있고,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사람도 43%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41쪽, 조선일보 23년 1월 4일자 여론조사 보도를 인용

 

24년의 내란의 원인을 극우 유튜브 중독에 의한 내란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이게 과연 맞는 말일까? 권력중독 - 알콜중독 - 유튜브 중독이 결합되어 내란이 일어났다는 말도 있다. 이게 과연 맞는 말일까? 이게 유튜브중독과 알콜중독으로 설명할수 있을까?

 

왕정을 노리는 = 북한이나 중국도 하고 있는 세속 또는 일당독재체제를 꿈꾸는 것은, 김건희와 윤석렬의 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두사람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극우 유튜버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이용한다. 내란이 실패하고 나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변명거리삼아 핑계를 대고 있다. 왕정세습국가 =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는 말을 숨기고 있는것으로 짐작한다.

 

그들은 야만으로 돌아갈 것 = 쎈놈만이 영원히 권력을 잡는 것을 원했다. 그들은 야만인들이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다. 대통령은 국정원 보고를 비롯해 온갖 고급 정보를 접한다. 선거를 앞두고는 공개 · 비공개 여론조사 결과도 보고받는다. 언론 보도브리핑도 받는다. 그런데 윤석열은 사실에 기반한 정보보다 유튜브 정보를 더 신뢰한 것 같다.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결정을 내리는 행위는 큰 피해를 야기한다." (69쪽) 

 

'대안 진실'이라는 말이 있었다. 

 

부시때 아메리카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화학무기가 있다며 한 거짓말을, 
그들 스스로 '대안 진실'이라고 했다. 

이런말은 그대로 써주면 안된다. 
대안 진실이라는 말 = 거짓말이라고 분명히 써줘야 한다. 
언론들이 그럴듯하게 썼지만,
이 말은 곧 사라졌다.

최근에는 탈진실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한자어에 빠진 배운사람들의 어리석은 모습이면서, 
말의 뜻을 올바르게 전달하지 못하는 단어다. 

"탈진실 : 자신의 신념과 부합하는 주장만을 진실이라고 믿는 현상" (72쪽) 

이런 뜻에서 보면, 
거짓말을 믿거나 거짓을 주장하는 것이다. 
거짓이 큰소리를 치는 현상이다. 

진실과 거짓말고 또다른 무엇이 있는것처럼 쓴다.
그러나 뜻과 말이 제대로 묶여있지 않다.
탈진실 = 거짓말 = 거짓에 바탕을 둔 주장이다.

탈진실이라는 말도 곧 사라져버릴 것이며, 

탈진실은 글의 흐름에 따라 거짓(말), 거짓을 바탕으로 한 주장이라고 써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이나=이야기나누기=communication은 꼭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정말 못하는 일이다. 이 문제를 이겨내려면, 독서클럽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이 활발하게 나눠져야 하고, 학교에서도 토론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이나를 해보지 않았고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디지털 미디어 때문에 사람들이 분리되었다고 말하는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일은, 특히 마음과 생각이 닫힌 사람들에게서 그 폭력성이 더욱 심하다. 이나가 필요하지 않았던 왕들이 그랬고, 귀족들이 그랬고, 돈있는 사람들이 그랬고, 세금을 받아먹으며 나라일한다고 어깨를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 

 

"필터 버블이 기술적 구조를 통해 외부 정보를 차단한다면, 반향실은 사회적·심리적 구조를 통해 이견 자체를 배척한다. 이 공간에서는 반대 의견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려는 시도보다 그것을 '가짜 뉴스' fake news 로 치부하거나 도덕적·정치적 적대의대상으로 전환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기반인 공적 논의와 상호 이해는 약화되고, 사회는 점차 서로 다른 진실을 믿는 공동체들로 분열된다." (80쪽) 

 

편견과 확증편향에 대해서는 고끄한다. 사람은 자신의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고 경험한 세계만을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편견이 생길수밖에 없다. 이런 편견들이 확증편향을 만들어낸다. 야만의 시대에는 그랬지만, 17세기를 지나면서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세마science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계몽하고 있다 = 스스로 깨어나고 있다 = 믿는 것만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80억 사피엔스들을 전부 계몽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있어야겠지만, 조금씩 꾸준히 깨어나고 있다. 

 

확증편향과 인지부조화는 결국, 시간이 걸리지만 진실에 의해서 바로 잡혀진다. 올바른 인식과 엉터리 행동의 인지부조화는 더이상 핑계를 대지않게 되어, 행동을 고치거나 거의 죽을때가 되면 고친다. 확증편향과 인지부조화는, 내가 아는것이나 믿는것을 더 좋아한다는, 같은 뜻의 다른말이다. 

 

"분리된 집단 내에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 이 강해진다. 확증 편향이란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태도와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는 반면, 그것과 충돌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의심하는 심리경향'을 의미한다. (중략) 인지부조화란 홀사individual이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태도와 다른 정보를 접했을때 불편한 심리나 긴장을 느끼는 현상을 뜻한다. " (81/76쪽) 

 

하바드대학 벤클러 교수가 2016년 아메리카 대선을 분석하면서 "거짓을 바탕으로 한 확증편향은 (저자는 '탈진실현상은'라고 썼다. 탈진실은 말과 뜻이 맞지않아 쓰지않는다 / 무일) 극우 미디어 생태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독특한 현상으로 해석해야한다" (83쪽)는 올바르게 쓰고 있다. 보수의 일부를 맨 오른쪽으로 끌고가 일탈을 즉,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대칭 급진화에서) 비대칭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보와 중도 집단에서는 비슷한 현상이 목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중략) 디지털미디어가 보수와 진보를 모두 극단으로 끌고가 양극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보수진영의 일부만 극단으로 몰고가 사회의 다른 부분과 분리된 극우집단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중략) 일탈현상이다." (86~7쪽) 

 

언론의 정파성이 문제가 아니다. 언론은 오히려 정파성이 있어야 한다. 주관이 있어야 한다. 주관과 정파성을 바탕으로 진실과 사실을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사실검증의 역동성이라고 말해도 좋다. 우리 모두는 편견과 확증편향이 있을수 있으므로 열린자세로 진실과 거짓을 마주하려고 힘써야 한다. 

 

김현석은 한국 극우의 존재감을 너무 한가하게 평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이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그러난 한국 극우는, 보수의 탈을 쓴 극우들이며 극우언론들이며 극우미디어들이다. 그들은 갈등과 혐오를 만들어내어 보수정권들을 옹호하고 만들어냈다. 해방 이후 내내 그랬다고 봐야할 것이다. 

 

"아메리카의 극우는 이처럼 프로파간다 증폭 순환 회로가 작동하는 미디어 생태계를 만들어 냈고, 보수 정당인 공화당을 장악했으며, 두 번씩이나 대통령을 배출했다. 한국 극우 역시 12.3 비상계엄과 서부지법 폭동 이후 존재감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극우와 관련된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극우라는 개념 정의조차 아직 합의되지 않고 있다." (94쪽)

김현석은 신시아 밀러를 인용해서 극우를 말하는데, 배타주의 - 반민주정 - 위기의식 - 폭력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이라고 할수 있다.  최영준 교수팀이 한국에서 극우와 극좌를 구분해보려는 시도를 했는데, 7개의 문항에 모두 동의하면 극우이고, 7개의 문항에 모두 반대하면 극좌라고 했다. 이 조사에서는 한국에서 극우는 21%, 극좌는 0.2%였다. 

 

극우가 21%라는 것에서 알수 있듯이, 한국사회의 극우는 정말 많다. 20대와 70대 이상의 남성에 각 33%가 극우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극우가 단순히 디지털 극우미디어를 통해서 만들어졌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학교 교육보다는 기존 언론과 종교, 극우미디어의 힘을 합친 노력의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김현석은 기존 언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김현석도 저널리즘의 품질이 낮고 좋은 보도들은 드물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그것이 문제의 고갱이라는 것에서 극우를 쓸어버리기 위한 길을 떠나야한다. 

 

"12.3 비상계엄 이후 한국 미디어 생태계는 사실 검증의 역동성이 여전히 작동하는 '전통 미디어 생태계'와 '극우 미디어 생태계'로의 분리가 꽤 분명하게 목격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한국 전통 미디어의 사실 검증의 역동성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다. 제대로 된 사실 검증보다 받아쓰기형 보도가 많다. 앞서 언급한 보도들은 드문 예일 뿐이다. 저널리즘의 품질은 낮고, 미디어의 정파성은 강하다. 다만 프로파간다 증폭 순환 회로가 작동하는 극우 미디어 생태계에 비해 그나마 사실 검증의 역동성이 유지되고 있는 편이다." (109쪽)

 

제2부 부정선거음모론은 어떻게 극우담론이 되었는가

 

제3장 2002년 대선, 부정선거음모론의 시작

 

 

제4장 2012년 대선, 부정선거음모론의 완성

 

1. 댓글조작과 셀프감금

 

사건일지(2012년)

 

12/11 19:10 강남 오피스텔 국정원 김모씨 숙소 선관위 관계자 2명 내부조사 3분

12/12 새벽까지 8시간 동안 셀프감금

12/13 김씨, 노트북과 데스크톱을 경찰에 임의제출

12/13 십자군알바단(윤정훈 목사), 선관위 적발

12/17 23:00 수서경찰서 수사결과 발표, 게시글과 댓글이 없다

12/19 12대 대선, 박근혜 51.55% - 문재인 48.9%

대선후, 채동욱 검찰총장 윤석렬 검사에게 수사 지시, 채동욱 낙마 - 윤석렬 좌천

박근혜 탄핵후,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불법댓글사건으로 징역 4년

 

2. 김어준과 K값 음모론

 

음모론과 의혹제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진지하게 의혹제기를 하고, 열심히 의혹제기를 하면, 그것이 음모론인가? 의혹을 제기하고, 서로 열린마음으로 조사하고 검증해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 의혹제기라고 할수 있다. 김어준은 열심히 의혹을 제기했고, 뉴스타파는 그 의혹을 해소해줬다. 그리고 더이상 그 의혹은 제기되지 않았다. 어디에 음모론이 있다는 것인가?

 

김어준의 부정선거 의혹제기는, 검증의 역동성으로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고, 의혹을 제기한 김어준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시키지 않았다. 이런 의혹제기는 오히려 건강한 민주정치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야지 '부정선거 음모론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김어준은 또 정치관련 언론사 여론조사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론조사 꽃'을 만들어서 공정한 여론조사를 해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언론사 여론조사들과 다른 결과를 내놓고 있다.

 

민주정치는 많은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문제는 제기되어야 한다. 뉴스타파가 윤석렬 문제를 제기했을때, 왜 그러나며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우리가 그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봤다면, 적어도 윤석렬과 김명신과 김은순은 이렇게까지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못 제기된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음모론자라며 등을 돌려버리면, 민주정치는 앞으로 나아갈수 없다.

 

앞으로도 선거든 여론조사든 통계든 계속해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음모가들 = 엘리트들 = 이제는 은순이와 명신이까지 달라붙어있는 사람들의 권력장악 음모를 막을수 있다. 조금만 마음놓고 있으면 장난질을 해대는, 음모가들 = 엘리트들 = 은순이 명신이들의 놀라운 성실함이 감탄스럽다.  

 

"음모론을, '어떤 사건이나 관행을 설명하려는 시도로서, 권력 있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음모를 꾸몄고, 동시에 그들의 역할을 숨기는데 성공했다는 식의 설명 방식으로 규정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음모론은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 사건의 배후에는 조작의도가 있다. 둘째, 숨은 권력자들이 존재한다. 셋째, 이들이 자신의 개입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중략) 특히 뉴스타파가 김어준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논리에 맞게 반박하는 콘텐츠를 공개했다. 결정타였다. 이후 진보진영에서 부정선거음모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사실 검증의 역동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142쪽 / 153쪽)

 

김어준이 제기한 의혹의 핵심은 대수의 법칙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했다고 해서 음모론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대수의 법칙을 잘못 적용하면, 논리로 검증하기가 쉽다. 미분류표의 경우처럼. 즉, 김어준이 대수의 법칙을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에,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에, 의혹은 해소될수 있었고, 더 이상의 논란은 없었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대수의 법칙뿐만 아니라 아무거나 갖다 붙이고, 실마리도 없고, 검증도 논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어준의 문제 제기가 부정 영향만 끼친 건 아니었다. 투표지 분류기를 조작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수검표로 확인하는 절차가 강화되었다. 이후 선거에서 일일이 사람이 직접 세어 혼표가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내실있게 이루어진다. 비록 개표 속도는 늦어졌지만, 투표지 분류기를 둘러싼 의구심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김어준이 완성한 부정선거 음모론은 극우 세력에 의해 채택되었다. 대수의 법칙은 헌법 수준의 진리로 격상되었다. 의혹의 대상은 투표지 분류기에서 사전 투표로 바뀌었다. 물론 김어준의 논리는 그대로 채택되었다." (161쪽)

 

5장 극우담론이 된 부정선거음모론

 

김현석은 대수의 법칙을 이용해 김어준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며, 김어준을 부정선거음모론의 완성자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의혹을 제기하려면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을 김어준이 보여줬다. 그래서 엉터리지만 대수의 법칙을 이용해 부정선거의혹을 극우들이 제기하고 있다. 잘하는 일이다. 엉터리를 끌어다 근거를 만들었으니 쉽게 무너진다.

 

문제는, 제기된 의혹이 올바르게 해명되고 검증되고 법원 판례까지 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다. 김어준의 방법을 이용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인데, 김어준에게 부정선거음모론의 완성책임을 돌리는 것은 지나치다.

 

"사전투표를 할지 당일 투표를 할지 선택하는 행위는 상자에 있는 공을 꺼내는 무작위 추출이 아니다. 유권자 각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는 투표일을 선택하는 현실의 일이다. 무작위 추출에 근거한 대수의 법칙을 적용할 사안 자체가 아니다. 하지만 대수의 법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사전 투표와 당일 투표에서 후보별 득표율이 같아야 한다는 주장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수의 법칙에 기초한 부정선거 음모론을 포기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190쪽)

 

김현석은 이렇게 말한다. 김어준은 대수의 법칙을 이용한 정당한 의혹제기를 했고 해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부정선거음모론과 관계가 없다.

 

"한국과 미국의 극우세력이 연대해서 부정선거음모론을 전 세계차원으로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193쪽)

 

 

제3부 이 시대 저널리즘

 

유튜브도 정권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말이 된다. 민주정권을 만들어내는 것이 언론자유의 가장 큰 바탕이다. 다른 온갖 제도와 방법들은 헛되다. 헛되다고 제도와 방법들을 포기해서는 물론 안된다. 언론은 자유를 얻고 싶다면, 민주정부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유튜브 측은 미국 부정선거 음모론 콘텐츠를 삭제해왔다. 하지만 2023년 6월, 유튜브 측은 미국 대선을 비롯해 대부분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삭제 대상 목록에서 없애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25년 8월 현재, 브라질 대통령 선거만 목록에 남아 있다. 브라질의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콘텐츠는 삭제하지만, 미국이나 한국 등 다른 나라의 부정선거 음모론 콘텐츠는 삭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삭제 조치의 실효성이 부족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어 삭제 조치를 완화했다는 것이 유튜브 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지지층과 공화당 정치인들의 정치·사회 압력에 굴복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243쪽)

부정선거음모론은 내전의 빌미가 될수 있다. 아메리카처럼 총들고 설치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물론 극심한 여론 분열이 느껴진다. 이 분열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힘을 다해 진실과 사실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게 기존 언론이든 유튜브든 상관없다. 언론이 잘 해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보다 100배는 더 큰 신문 방송사들이 그것을 해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바뀌어야 한다. 내전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기존 언론에 올인할수는 없다. 그들이 극우집단을 키워냈고, 그들이 가짜뉴스를 만들고 퍼뜨렸다.

 

"선거는 내전을 제도화한 것이다. 총과 칼 대신 여론과 표로 겨루는 전쟁이 선거라는 말이다. 선거 제도의 핵심은 공정성이다.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다시 총이나 칼을 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은 위험하다." (243쪽)

 

부정선거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극우미디어와 가짜뉴스를 어떻게 막아야할까?

 

먼저 유럽연합의 디지털 서비스법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플랫폼 사업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민주정치를 위험에 빠뜨리는 콘텐츠와 콘텐츠 제공자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왜 우리나라에 도입되지 않았을까? 류희림과 이진숙이 문제였기 때문은 아닐까? 안창호가 권익위를 말아먹고 있는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두번째가 호주의 뉴스 미디어 협상법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뉴스미디어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법인데, 고끄하기 어렵다. 좋은 제도처럼 보이는데,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유튜버들에 비해 그리 좋아보이지 않아서다. 기존 언론들을 더욱 잘먹고 잘살게 하는것에 고끄하지 않는다. 우리 언론들은 지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나마 유튜브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이다. 보다 깊이있는 연구가 있어야 뉴스 미디어 지원에 고끄할수 있다. 정부의 언론사 지원광고에도 반대한다. 똑같은 이유로.

 

 

언론은 진실로 가는 길을 걸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중립성은 저널리즘의 미래가 될수 없다. 저널리즘은 다시 진실을 향한 여정이 되어야 한다. (중략) 신뢰할수 있는 정보제공에 대한 수용자의 열망은 줄어들지 않았다." (265쪽)

 

한국 극우의 앞날에 대한 김현석의 이야기는 기즐하다 = 기쁘고 즐겁다. 한국의 극우세력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1) 대중의 분노는 자극하지만,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므로 지지받기 어렵다.

2) 한국의 민주정치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서, 극우의 민주정 반대는 지지받기 어렵다.

 

김현석은 저널리즘이 다시 민주정치의 단단한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끄한다. 유튜버들도 저널리즘을 생각하고 기자로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고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기존 언론들은 더욱 반성해서 왜 우리들이 유튜브에 빠지고 신문은 읽지도 않고 언론사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언론이 언론을, 저널리즘을 바탕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뜻에서 저널리즘 J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책도 재미있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