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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 티베트의 죽음 이해_심혁주_15년 1쇄_모시는 사람들 ] 죽음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_251021

사실 오래전부터 하늘묻이에 대하여 들었고,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해 궁금하기도 했지만, 더이상 알아야할 까닭이 없다. 하늘묻이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장례를 치르는 하나의 길이다. 그것과 연결해 티베트가 무슨 신비로운 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티베트는 닫힌 엉터리 엘리트들의 나라였다. 그저 별것아닌 사람들이, 죄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기치고 착취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 돈이 너무 아깝다.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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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친구 깊은 소리가 권한 책이다. 티베트의 하늘묻이에 대해 살짝 관심이 있었는데, 지난번 심혁주의 논문을 읽고 궁금증은 없어졌다. '죽음을 마무리하는 일'에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구가 읽으라 했으니, 읽기로 했다.

 

지금 우리는 시신처리를 어떻게 할지 새로운 길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에 와있다.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길들을 걸었고, 지금 시대에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 뜻을 모으기가 쉽지는 않을것이다.

 

"대머리처럼 빛나는 설산"

 

눈덮인 산을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웃긴다. 대머리는 약간 우스운 느낌을 주는 말과 모습인데, 왠지 그럴싸한 분위기의 눈덮인 뫼를 웃기는 말과 나란히 놓다니. 사람의 글쓰기는 사람마다 달라서 재미있다.

 

마니차에 새겨져 있다는 6자 진언의 내용을 제미나이가 이렇게 정리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이렇게 새겨두기로 했다. 자비와 지혜로 생마룸이 하나되어 살기를 바라나이다.

 

* 생마룸 = 생각과 말과 움직임

 

음절 산스크리트어 문자적 의미 상징적 의미 상응하는 윤회처
옴 (Om) - 신성한 소리 몸, 말, 마음의 순수성 신(천상)
마니 (Maṇi) 보석(Jewel) 자비의 상징 깨달음에 대한 열망 아수라
팟메 (Padme) 연꽃(Lotus) 지혜의 상징 불순함으로부터의 해방 인간
훔 (Hum) - 깨달음의 성취 하나됨 (지혜와 자비의 합일) 지옥

 

 

아침에 일어나서 포탈라궁 앞에서 600회의 오체투지로 기도를 하고, 야차굼바를 찾아서 생필품을 마련하고, 노래하고 기도하며 사는 삶. 과연 그렇게 살수있을까 싶은데, 그렇다고하니 믿을수밖에 없다. 티베트 사람들의 삶이.

 

"야차굼바(동충하초)는 해발 4천~5천미터 고지대 설산 아래서만 자라는 최상의 약재 (중략) 평지로 가지고 가서 소금, 밀가루, 버터, 담요 등의 생필품과 맞바꾸어 올라오지. (중략) 놀랍게도 이곳 사람들은 황금을 발견하면 자기 것으로 기뻐하지 않고 그들이 숭상하는 사람신, 달라이라마라는 사람에게 갖다바친다는 것이야." (13~4쪽)

 

이미 셀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19쪽)

모르고 물으면 멍청한 것이고, 알고도 물으면 헛되다.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라마승들이 가장 집중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수양하는 화두중의 하나가 바로 죽음이다." (20쪽)

 

좋다. 죽음을 진지하게 깊이 알아보려는 노력이 헛되다고 할수는 없다. 그들이 수행하여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들어볼만할것으로 믿는다. 부디 이책이 끝나기전에 고끄할수 있기를 바란다.

 

* 고끄하다 = 고개를 끄덕이다

* 하늘묻이 = 천장

 

천장사가 사라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해야 할까? 하늘묻이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천장일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돈만 생각하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아무도 이일을 하려들지 않습니다. 간혹 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들은 철저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돈만 벌려는 사람들입니다." (25쪽)

 

이런 생각을 하면, 해야할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아무일도 하지 않을것인가? 뭔가를 할것이다. 마당에 풀을 뽑고 밭을 정리하게 될것이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정말 할것인가?" (26쪽)

 

제1부 죽음없는 사회

 

이런 생각은 나쁘지않다.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이 사람들이 갈구하는 것은 죽음의 부정이 아니다. (중략)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31쪽)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존경하고 따른다는 뜻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의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지금의 고통을 덜어주시는 보살이다.

 

"판첸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이고, 달라이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만 여길뿐이다." (37쪽)

 

티베트의 불교사원에는, 천장터-독수리-천장사가 있다. 천장사는 늘 긴장하고 민감하게 살수밖에 없어서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자유롭게 살수 있다고 한다.

 

"법력이 높은 스님(천장사)는 죽은 시체를 보고 만져보면 전생의 업을 느낄수 있다. (중략) 생전에 쌓아놓은 선업 또는 악업을 분별하여 거기에 맞는 장례방법과 형식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중략) 홀로 몰입을 할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의미를 부여할수 있고, 더불어 사람들로부터 존중과 신뢰를 받을수 있다면, 그것은 즐겁고 기쁜 일이다." (53쪽)

 

작은것에서 즐거움을 찾을수 있다. 작은것을 보면서 더큰것을 알아낼수도 있다. 그런데 사물의 바깥은 본질이 아닐까? 사물의 안과 밖이 다르다는 것은 알겠는데, 겉으로 드러난것이 속에 숨겨진것보다 더 본질이라는 말에는 선뜻 고끄하기가 어렵다. 드러난것의 이유를 찾다보니 속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맞다. 겉과 속이 맡은 일을 할뿐이고, 우리가 보는것은 겉이고, 속에 숨겨진것을 알려면 큰힘을 들여야 한다고 해야 맞다.

 

"작은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작은것에서 큰것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안목이란 사물의 외형이 아니라 내면(본질)을 들여다 볼수 있는 힘이다." (77쪽)

 

세상 어디에도 기즐=기쁨과 즐거움은 있다. 이렇게 말하는게 편안하다.

 

"경허 스님은 깨달음을 얻고 난 후,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기셨다. “세속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으냐, 봄볕 비추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世與青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花).” 이 시의 의미는 '세속과 청산을 따져 무엇 하겠는가. 봄볕이 비추면 꽃피지 않는 곳이 없지 않는가. 봄볕이 비추는 곳을 찾아가면 그만이지 굳이 세속과 청산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75쪽)

 

제2부 하늘위의 장례

 

이런 말에 고끄한다. 그때 무엇을 느끼는지 알수 없지만.

 

"누군가의 시체를 돌보는 것은 수양이자 동시에 저주입니다." (81쪽)

 

이런 말은 믿겨지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일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고,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만들어진다. 다람=다른사람이 하지못하는 일이면서도 다람에게 좋은 일이니, 베푸는 것과 같다.

 

"하늘묻이를 하면서 유족의 기분과 바람을 이루어 주려고 애쓸때 나의 고통이 사라짐을 느낍니다. (중략) 돈을 벌어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늘 다람=다른사람에게 건네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보시라고 할수 있습니다." (82쪽)

 

가끔 그런 생각도 들지만, 삶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말은 다 받아들이면 안된다. 어떤 맥락에서만 그렇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삶 자체가 고통인데 왜 우리는 삶에 집착하는걸까, 또다른 인연과의 만남을 희망하는 것일까" (86쪽)

 

천장사의 요건 중 티베트 의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에 눈길이 간다. 사람몸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몸을 알고, 해부를 하다보면 어느덧 표정이 사라질수 있을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그렇게 훈련을 받는다.

 

"첫째는 시체를 더럽다고 생각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것이고, 둘째는 재물에 욕심을 내서는 안되고, 세번째는 티베트 의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시신을 해부할때는 어떤 희로애락의 표정을 보여서는 안된다." (118~120쪽)

 

독수리라는 커다란 새. 흔하지않으니 신비롭다. 왜 이 새들은 썩은고기를 먹을까? Himalayan Vulture들은 강한 위산을 가지고 있어서 오염된 썩은고기를 먹는것에 뛰어나다. 진화의 결과다. 

 

"고원의 독수리는 각종 시체를 날것으로 먹을뿐만아니라, 뼈까지도 씹어삼킬수 있는 동물이다. 독수리는 강한 소화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글고 독수리는 수천미터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배설을 한다. 티베트에서 그 배설장소는 환생할 장소를 의미한다." (128쪽)

 

당태종의 딸 문성공주가 토번의 왕 송첸감포에게 시집을 간 641년에 티베트에 불교가 전해졌다고 한다.

 

"토번의 군대가 막강해서 당시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까지 쳐들어갔(다 / 중략) 당시 문성공주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는데, 이 때문에 티베트로 들어갈때 유독 불교서적과 불상을 많이 가지고 갔던 것으로 역사는 전하고 있다. (중략) 송첸감포왕은 티베트 역사상 처음으로 티베트문자를 만든 현명한 통치자였으나, 아쉽게도 불과 서른네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당시 그의 묘는 거대하게 축조되었다." (134쪽)

 

티베트에서 유목을 했다는것과 말을 키웠다는 것이 잘 와닿지가 않는다. 고원지대의 척박한 땅에 풀은 제대로 자랐던 모양이다. 유목이라는 삶의 한길은 평지가 아닌곳에서는 흔한 일이었다고 알아두어야겠다. 소나 양이 먹을 풀이 있었다면 말도 기를수 있고, 말은 예나 지금이나 꽤 비싼 짐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굴. 힘센 세력들이 살아있을때는 도굴이 힘든 일이었지만, 어지러운 때에 어떤 사람들은 무덤을 파헤치는것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나보다. 귀신이든 윤리든 얼마든지 눈감을수 있었나보다. 게다가 땅에 묻는 장례가 가장 불명예스럽게 변하였다는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토번왕실은 사후에도 그 권위와 법통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왕이 죽으면 왕릉을 거대하게 건설했다. 그러나 이러한 토장의 풍속은 기원전 9세기 중엽, 토번 왕조가 멸망하는 시기와 더불어서 급속도로 사라지게 된다. 토장은 왕실에서는 선호하는 장법이었으나 일반 티베트 유목민에게는 불가능한 장법이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유목민들이 천막을 치고 풀과 물을 찾아 이동하는 생계형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토장은 그들에게 불편하며, 근심거리를 남겨 두는 셈이었다.

(중략) 토번 왕조의 마지막 왕인 랑다마가 독살된 이후로 토장의 장법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왕이 피살된 후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노예들이 봉기하였는데, 그들은 많은 금은보화가 순장되어 있는 왕실의 무덤을 마구 파헤쳤다. 성스러운 왕묘가 보기 흉하게 변하자 일반 티베트인들의 토장에 대한 인식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따라서 이 시기 이후부터 토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중략) 전염병, 천연두에 걸려 죽은이들이나 살인범 및 살인미수범은 다시 태어나지 못하도록 토장시켜버리는 풍속으로 일반화되었다. 티베트는 땅이 매우 넓기 때문에 외진 산기슭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일정한 장례절차없이 간단하게 매장시켜 버리면 끝난다. 따라서 토장은 토번왕조시대 이후에는 티베트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장례의식으로 변천되었다." (141쪽)

 

티베트 사람들은 가진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가진것이 없는것이 아니라 모든것을 빼앗겼기 때문에 가질것이 없다. 그런 상태에서 머리속까지 온통 빼앗겨서 그럴듯한 종교로 도배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자살률이 낮은들,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들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정말 한심한 논리다. 하늘묻이라는 장례풍습을 바탕으로 하여 뭔가 멋진것이 티베트에 있다는것을 말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혀를 끌끌 차게된다. '티베트의 통치시스템을 현명하게 운영'하고, '티베트의 민중들은 그러한 제도와 문화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존중하고 받아들였다'고. 웃기는 소리다.

 

5%의 그들. 그렇게 좋으면 가난을 받아들이며 기쁘고 즐겁게 살아라. 훌륭한 티베트의 민중이 되어 살아라.

 

"(티베트인 다걸재단의 견해) 실제로 불교사원, 정부관료와 귀족 등 3대 영주가 티베트의 95% 이상의 경작지와 목장, 목축 등 주요 생산수단을 점유하는 동시에 농노의 인신을 점유했다. (중략) 이는 티베트 경제자원의 대부분을 이들이 독점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중략 / 아들이 없으면 데릴사위) 중요한건 가족의 세습을 위하여 토지장원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지 순수한 혈통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략) 관료출신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중시하였(다 / 중략) 티베트 유목사회가 경제 목적을 위하여 일처다부제를 선택하였다면, 귀족가정에서 정치권력과 경제실권을 모두 장악하기 위해서 일처다부제를 운영하였다.

 

(중략) 불교의 핵심논리인 업과 윤회에 의거하여 발생하는 현상이므로 귀족계층의 권력과 신분의 특권은 티베트 사회구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았다. (뭇사람들을 얼마나 쥐어짰을까? 웃기는 소리다! / 중략) 귀족가문에서 성장하는 티베트의 어린아이는 가문의 우월성에 대한 가치관을 일찍부터 학습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신분에 부합되는 언행을 배우고 실행하려고 노력하였다. (지들끼리 잘먹고 잘살면 된다고 세뇌당했다는 이야기다. 역시 웃기는 소리다! / 중략) 티베트는 물질과 몸이 다스리는 사회가 아니고 정신과 영혼이 모든 질서를 규명하고 순환하게 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아, 정말 마지막까지 웃기는 소리다)." (17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