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루한 책이라서, 뭔가를 하면서 지루해진다. 읽기를 그만둠으로써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은데, 다 읽기로 한 약속이 있어서 어쩔수없이 지루함을 견디며 읽어내야했다. 삶에 대한 통찰은 없고, 새로운 의견이나 편견도 없다. 굳이 읽어야하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옮긴이 김상운의 정리가 오히려 원본을 읽는것보다 도움이 될텐데, 원본이 지루해서 옮긴이의 이야기를 너무 대충 읽었다. 조만간 김상운이 정리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 마무리해야겠다. 그때 가서 생각이 바뀐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이책을 아무에게도 읽으라고 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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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되는데, 선입견을 벗어나기 어렵다. 잘 풀어낼 힘이 이 사람에게 있을까?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려면, 신을 믿으라는 파스칼의 해결책에는, 코웃음칠 사람이 많을테니, 뭔가 다른것을 보여줄 모양이다.
지루함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사람이 가장 와아한=happy 상태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아들러는, 열심히 하고 싶은일 하다가 돈과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공동체에 헌신'해 보라고 했다. 나도 그 결론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허무하기도 했었다.
"지루함이란 사람이 결코 떨쳐낼수 없는 병 (중략) 이 피하기 어려운 병은 (중략) 열중할수 있는 것이 있기만 하면 쉽게 피할수 있다. 여기에 사람의 비참함의 본질이 있다. 사람은 매우 쉽게 자신을 속일수 있는 것이다. (중략) 학자들은 지금까지 아무도 풀지못한 대수문제를 풀었다고 다른 학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서재에 틀어박힌다. (중략) 사람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파스칼의 해결책은 (중략) 신에대한 믿음이다." (48~51쪽)
열중하기는 나를 속이는게 아니다. 몰두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기분전환을 하기 위한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할때, 또는 다칠지도 모르는 일을 할때, 몰입과 열중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주변에 널려있는게 즐거운 일이었고,
돈과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쾌락을 추구하게 되느나고?
이게 과연 질문이라고 할수 있을까?
어떻게해야 즐거움을 추구할수 있을까?
즐겁지 않은 상태가 좋다는 말인가?
"문제는 어떻게 즐거움과 쾌락을 얻느냐가 아니다.
어떻게해야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할수 있게 되는가이다." (67쪽)
사람이 지루해진것은 정주생활때문이란다. 비어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힘든 일인가? 399만년 동안 이동하며 진화했다가, 1만년 사이에 정착생활을 한것이, 사피엔스가 지루함을 못견디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지루하다.
"살기 위해 잇달아 과제를 수행하는 유동생활. 그것은 고단한 생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서 충실한 생활일 것이다. 거기에서는 살아가는 것과 자신의 활동이 단단히 조합되어 있다.
반면 정주생활에서 사람은 여유를 가진다. 석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조리법도 궁리하고, 식사 후에는 감사 기도도 한다. 이 여유가 지루함으로 이행하는데는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느 쪽 생활이 좋았다느니 나빴다느니 하는 말이 아니다. 이 혁명은 인류에게 큰 과제를 안겨 준 것이다." (113쪽)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 다루어지는 과시소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냥 그렇다고만 알면 되는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논리를 만든 베블런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위해 한번 따라가 본다. 베블런은, 제작자본능에 따라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많은 것을 갖게 되면, 스스로 잘 살았다고 칭찬하기 위해 과시소비를 한다고 봤다. 과시소비는, 열심히 살아서 잘나가게된 유한계급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어떤 노동자들은 힘들게 일해서 번돈을 길거리의 포장마차와 경마장에서 써버리고 마는것일까? 아마도 노는법을 몰라서 그럴것이라고 추측했다. 맞을까? 아니다,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다. 쉽게 접근할수 있고, 너무도 빨리 즐거움에 도달하는 방법에. 음주, 흡연, 도박 등등. 노는법은 모를수가 없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제작자 본능instinct of workmanship은 유용성이나 효율성을 높이 평가하고 낭비 혹은 무능함을 낮게 평가하는 감각 (중략) 아도르노는 베블런이 유한계급을 질투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중략) 모리스는 산업혁명이후 조악한 공산품이 사람들의 삶을 뒤덮어 버린것을 한탄하며 아츠앤크래픗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략 / 베블런은) 문화는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술가치만 거론하며 공산품을 비판하는 모리스가 마음에 들지않는 것이다.
(중략 / 부르조아 즉) 새로운 유한계급은 한가함을 살아가는 기예를 모른다. (중략) 20세기 대중사회는 더 큰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부르주아뿐 아니라 대중도 한가함을 손에 넣게된다. (중략 / 유한계급은) 한가함 속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지루해하는 것은 아님을 가르쳐준다." (129~137쪽)
그런 세상이 되었다. 바쁨을 소비하는 사회.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나간다. 삶의 보람이라는 생각을 소비하기 시작한다. 한가함을 즐기는 것은 소비한다고 할수 있지만, 애국활동을 소비하고, 공동체의 기여도 소비하고, 뜻깊은 가치들을 소비에 갖다붙이는 것은 지나치다. 바쁨을 소비함으로써, 훌륭한 사람이고 돈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즐기는것까지는 받아들일수 있다. 그러다가 스스로를 헤치게 되는곳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경고하는 뜻이 크기때문이다.
"(보드리야르 / 생각의 소비는 끝나지 않으며, 일하는 것조차) 노동은 이제 바쁨이라는 가치를 소비하는 행위가 되었다 (중략) 노동하는 것은 삶의 보람이라는 관념을 소비하기 위해서이다. " (183~4쪽)
마르크스의 소외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정리해둘 필요가 있겠다.
1)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은, 이윤에 달려있다.
2) 이윤은 지불하지 않은 노동이다.
3) 노동자는 노동의 결과인 상품에 대한 지배권이 없다 -> 상품으로부터의 소외
4) 노동자는 스스로 노동할 수 없다. ->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노동자의) 결핍과 (자본가의) 유용성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원하는 부문에서 자신의 솜씨를 갈고 닦을수 없다. (중략) 자유의 영역이란 노동일의 단축에 의해 초래되는 한가함에서 비로소 생각될수 있다." (236~7쪽)
지루함에 대해서 하이데거가 생학=지혜를 생각하는 학문=philosophy을 바탕으로 이야기했다고 정리한다. 뭘까?
1) 무엇인가에 의해서 지루해진다 : 그리 깊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억지로 뜻깊게 만들어보면, 사람이 할일이 있는데, 시공간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세계가 내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조건이 만들어질때까지 방치되어 있는 상태와 그때의 느낌을 말한다. 그럴때 지루하다.
"(하이데거) 무엇인가에 의해 지루해진다는 현상의 근원에는 사물과 주체 사이의 시간 간극이 존재한다. 그것에 의해서 붙잡힘이 생기고 공허방치된다. (중략) 일상의 일에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지루해진다.)" (270/300쪽)
2)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데, 지루하다 : 지루하지 않기위해 무엇을 하는데, 그 움직임이 몰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하니까 하고있는 상태 또는 그때의 느낌을 말한다. 뭔가를 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않은듯한 느낌.
"자신안에서 공허가 자라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중략)자신을 내던져버리는 태도가 되어 더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284쪽)
3) 아무튼 그냥 지루하다 : 이유를 알수 없는 지루함이다. 이 지루함으로 나를 돌아보게 한다.
"모든 가능성을 거부당하고 있기때문에, 스스로가 가진 가능성에 눈을 돌리도록 되어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하는 것이다. (중략) 아무튼 그냥 지루하다라는 목소리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일의 노예가 되고, 그 결과 첫번째 형식의 루함을 느끼기에 이르는 것이다." (298/301쪽)
지루한 내 몸과 마음은, 자유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답답했지만, 결론은 마음에 든다. 지루한 상태이니 마음대로 하라는 이야기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지루하지 않은 상태, 쫓기거나 얽매이는 상태보다는 지루한 상태가, 내가 무엇을 할수 있는 상태다.
"하이데거는 지루해하는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으니, 결단에 의해 그 자유를 발휘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루함은 당신에게 자유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결단하라." (304쪽)
윅스퀼이 1934년 지은 '생물이 본 세계'에서 말하는 둘레세계=움벨트umwelt. 진드기는 세가지 신호의 세계이외의 다른세계를 정말로 전혀 알지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머리속으로 모든 생물이 던져져있는 세계라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어떤 생물도 그런세계를 살지는 않는다. 모든생물은 그 생물나름의 세계를 살고있는 것이다. 진드기가 세가지 신호, 즉 1) 부티르산냄새 2)섭씨37도인 온도 3) 털이 적은 피부조직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살고있는것처럼. (중략) 로스토크의 동물학연구소에는 18년동안 아무것도 먹지않은 진드기가 살아있는채로 보존되어있었다." (324~6쪽)
사람은, 커미의 모든 것을 볼수 없다. 모든것을 듣고 느낄수도 없다. 할수있는것만 하고있다. 진드기나 동물들이 할수있는것만 하는 것처럼. 그래서 동물의 움벨트가 있다면, 사람에게도 움벨트가 있을 것이다. 움벨트속에 산다고해서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이유도 없어보이고, 자유를 갖지 못할 이유도 없어보인다.
"사람만이 지루해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유롭기 때문이다. 동물은 지루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물은 얼빠짐의 상태에 있고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둘레세계를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하이데거의 생각으로는, 둘레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동물 같은 얼빠짐의 상태, 일종의 마비 상태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347쪽)
안내견을 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움벨트를 넘어섰다는 것 때문일까. 부모자식사이를 빼고는, 사람은 다른사람을 위하여 저렇게까지 봉사할수 없다. 우리가 할수없는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이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어떤 교육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룸=살아움직이는 것=life를 만들어낼수 있을까?
"안내견은 훈련을 받음으로써 개의 둘레세계에서 사람의 둘레세계에 가깝게 이동한다. 그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안내견은 훌륭하게 둘레세계의 이동을 성취한다." (350쪽)
하이데거와 움벨트를 가지고 지루함에 생학philosophy를 부어넣으려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루하다는 것을 왜 생각해야하는지를 모르겠다. 지루한 시간이 좋으면, 그것을 즐기면 된다. 지루한 시간이 싫으면, 지루함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일들을 하면된다. 그런데, 왜? 지루함에 대해 이렇게 긴글을 쓸까? 아직도 이 이야기의 바탕을 모르겠다.
* 생학=생각하는 학문=생각을 생각하는 학문=philosophy
사람은 둘레세계umbelt를 새롭게 만들어간다. 삶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왔다. 생각이든 물질이든. 사람의 주변에 공동체와 힘을합쳐 만든 시공간을 배치하고, 그 시공간 너머에 자연을 떨어뜨려놓고 즐긴다. 그러면서 점점 더 오래살고, 평화롭고 안전해져 온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지나쳐서 일찍 삶을 마감한 사람들도 많지만 무리의 숫자가 엄청 늘어났으니, 대체로 성공해 왔다. 이제 기후변화 또는 핵전쟁으로 모두가 같이 몰살당할 위기를 느끼고 있다. 어떻게 새로운 둘레세계umbeld를 만들어 나갈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고, 그저 지켜볼 따름이다.
"사람이 생존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안정된 둘레세계를 획득하는 과정으로 생각할수 있다. 아니 오히려 나름대로 안정된 둘레세계를 엄청난 노력으로 창조해가는 과정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394쪽)
생각한다는 것은 뭔가 다른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뭔가 생각하는것을 좋아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틀린말이다. (들뢰즈는) 사람은 좀처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중략)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떤 충격이다. (중략) 둘레세계에 뭔가 새로운 요소가 불법침입해 와서, 많든 적든 습관의 변경을 강요당하는 그러한 때일것이다. (중략 / 사람은) 기분전환과 지루함이 뒤얽힌 채로 살아간다.
(중략 / 그런다가) 어떤 충격에 의해 자신의 둘레세계가 파괴당한 사람이 거기서부터 생각하기 시작한다. (중략) 둘레세계umbeld에 불법침입해 온 어떤 대상이 그 사람을 붙잡고 놓지않는다. 그때 사람은 그 대상에 의해 압도되어,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할수밖에 없게 된다." (398~쪽)
세땅earth를 거대한 땅덩어리로 생각한 것과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 커다란 충격이었을까? 매우 궁금하다. 어떤 사물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을때 사람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하얀 눈송이를 맨눈으로 바라볼때와 현미경으로 볼때는 다르다. 아, 이렇게 아름답고 정교하다니. 빛을 프리즘으로 분광시켜 무지개빛으로 바라볼때도 다르다. 이건 뭐지?
"하이데거는 말년에 커미=universe에서 찍어 보낸 지구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중략) 하이데거에게 대지terre란 모든 것이 그위에서 생겨나고 소멸하는 삶의 조건 그자체였다. (중략) 그때까지 대지(라는 조건)이었던 것이 세땅earth(란 사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400쪽)
바깥쪽에서 아무런 자극이 없는 편안한 상태가 되면 = 지루하고 한가한 상태가 되면, 사람의 기억속에서 자극을 일으키는 샐리언스가 나타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럴수도 있겠다. 이것은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알수 없다. 지루해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이 살고있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가 힘들다.
"사람들은 샐리언시=불법 개입한 돌출물을 피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샐리언시가 없는 안정되고 편히쉬는 상태, 즉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이상생활환경으로 여긴다.
(중략) 주변에는 샐리언시가 없지만 마음속에 가라앉았던 아픈 기억이 샐리언시로서 작용해 안쪽에서 사람을 괴롭힌다. 이것이 바로 지루함의 정체가 아닐까. 끊임없는 자극을 견딜수 없지만 자극이 없는것도 견딜수 없는 까닭은 바깥쪽의 샐리언시가 사라지면 아픈 기억이 안쪽에서 샐리언시로서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이 아닐까." (45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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