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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 적과 흑_스탕달_민음사 ] 그녀는 지옥문 앞에서 사랑을 했다_241111

17살부터 나폴레옹과 함께 이태리 원정에 참여했던 스탕달은, 어린 시절 가족들의 이해를 받지 못해 우울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1814년 나폴레옹의 추락과 함께 같이 은퇴를 해야 했는데, 이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태리의 밀라노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프랑스 브루고뉴의 산간지방 사람들이 스페인 지배 시대에 노예처럼 살았었고 그래서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말은 도대체 뭔가. 이집트의 농부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니. 이집트 농부들을 프랑스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몹시 만족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산간 지방 주민들이 교묘하게 속마음을 위장하는, 그 불만스럽게 침울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시장의 말을 들었다. 스페인 지배 시대의 노예였던 그들은 아직도 이집트 농부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외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1권 30쪽)

 

줄리앙의 이 비뚤어진 생각은 계몽의 시기와는 전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계몽의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정의가 골고루 분배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홀사들이 모두 한두가지의 한계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줄리앙의 생각속에 도대체 어떤 계몽의식과 근대의식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찾아봐야 한다.

 

"아이들은 그를 숭배했으나 그는 아이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다른데 있었던 것이다. (중략) 그는 자기가 받아들여진 상류사회에 대해 증오감과 혐오감밖에는 느끼지 않았다. (중략) 어쩌면 저렇게 청렴함을 찬양해댈수 있단 말인가! (중략) 하지만 빈민의 복지를 관리하게 된 이후로 명백히 제 재산을 두세배나 불린자에 대한 경의와 치사한 존경의 꼴이라니! 놈은 다른사람들보다 그 비참함이 더 존중되어야 할 고아들을 위해 마련된 기금까지도 착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60~1쪽)

 

상스러운 남자들과 무지한 여자들의 결합. 또는 부유한 상속녀들과 계몽의식을 갖춘 자유주의자들의 결합. 그것이 계몽시대의 남녀관계였다.

 

대혁명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사회분위기와 왕정복고로 싸늘해진 분위기를 스탕달은 이렇게 전한다.

 

다정다감한 면모가 추방되었다.

 

"레날 부인은 수녀원에서 배웠던 것을 모두 불합리한 것으로 여기고 곧 망각해 버릴만큼 분별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자리를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중략) 베리에르의 남편들이 자기 아내에게 본보기로 치켜세우며 또한 레날 씨를 우쭐하게 만들기도 한 부인의 습관 행동은, 실상은 더없이 오만한 기질의 결과였다. (중략) 줄리앙이 올 때까지 그녀는 실제로 자기 아들에게만 관심을 가져왔다. 아이들의 사소한 질병, 괴도움, 작은 기쁨만이 브장송의 성심 수녀원에 있을 때 하느님을 경배한 경험밖에 없는 이 영혼의 모든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었다.

(중략 / 남자들의) 상스러움, 금전이나 지위나 훈장의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모든 것에 대한 짐승같은 무감각,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일체의 논의에 대한 증오심 같은 것이 (중략) 남성에게는 자연스러운 일로 보였던 것이다. (중략)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레날부인은 돈만 아는 그런 사람들에게 아직 익숙해질수 없었다. 하지만 부인은 그들 가운데서 살아야했다.

 

(중략) 집에 드나드는 친구들이 새롭고 빛나는 생각으로 그녀를 즐겁게 해준적이 없었기 때문에 레날 부인은 줄리앙의 지성의 섬광을 감미롭게 즐기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로 일체의 다정다감한 면모는 지방의 풍속에서 엄격히 추방되고 말았다." (64~75쪽)

사랑의 열병은 다스리기가 쉽지 않지만, 레날부인은 자신을 잘 제어할 것으로 보인다.

 

"레날 부인은 눈을 감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때까지는 진정으로 살아온 것 같지가 않았다. 쥘리엥이 자기 손에 불같은 키스를 퍼붓는 것을 느끼던 순간의 행복에서 그녀는 헤어날 수가 없었다.

갑자기 간통이라는 끔찍한 말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더없이 추잡한 방탕이, 관능을 따르는 사랑이란 개념에 안겨줄 수 있는 역겨운 모든 것이 그녀의 상상에 무더기로 떠올랐다.

 

(중략) 그녀는 모순되고도 괴로운 상념에 되는대로 이끌려 들어갔다. 때로는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내일 당장이라도 군중에게 자기의 간통을 설명하는 게시판을 메고 베리에르 광장의 공시대에 서야할 형편이기라도 하듯 끔찍한 죄책감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112~3쪽)

 

사랑인지 욕망인지 모를 사람의 감정은, 파멸에 이르기까지 멈추기가 어렵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명예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에 느낌을 제어할수 있을것으로 보였던 레날부인은 사랑에 깊숙이 빠져버린다. 그래야 이야기가 되겠지.

 

그녀는 지옥문 앞에서 사랑을 했다.

 

"나는 저주 받았어요. 확실한 표시로 나는 그것을 알아요. 두려워요. 지옥을 눈앞에 보면서 두렵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렇지만 나는 속으로는 전혀 참회하고 있지 않나 봐요. 그럴 기회가 되면 또다시 죄를 저지를지도 모를 거예요. 다만 이승에 살아 있는 동안만은, 그리고 자식들에게만은 하늘이 벌을 내리지 마시기를 빌 뿐이에요. (중략)  내 사랑이 모자라지는 않나요?

(중략) 우리가 함께 지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동안이라도 당신을 아주 와아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서둘러야 해요. 내일이면 나는 당신 것이 아닐지도 몰라요. 만약 하늘이 나 대신 아이들을 빼앗아가기라도 한다면 아이들을 죽인 것은 내 죄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중략) 이제 그들의 와아에는 때때로 죄의 그림자가 얽혀드는 것이었다.

 

(중략) 아! 어쩌나! 지옥이 보여요." (1권 193~4쪽)

 

*와아하다 = be happy ; 모든 기쁨과 즐거움의 순간에 사람은 와아라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것이 happy한 상태다.

 

신앙 즉 검은옷에 대한 줄리앙의 고민. 스스로 생각하고 믿음의 길을 가야하는데, 현실은 면죄부를 파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동료들이 보기에 그는 권위와 모범을 맹목으로 추종하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다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나는 일생동안 무엇을 할것인가? 신자들에게 천국의 한자리를 팔게되겠지. 어떻게 신자들에게 그 천국의 자리가 보이게 할것인가?" (1권, 298~301쪽)

 

대혁명과 공화정, 왕정복고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대에, 내 의견이 폭군이 되는 그런 시대에, 나를 지키는 것은 이런 유연한 자세일 것이다. 

 

"(샬베 백작) 왜 사람들은 나보고 6주일 전과 똑같은 의견을 지금도 가지라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내 의견은 내 폭군이 될것입니다." (427쪽)

 

세상은 늘 부패해 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그런데, 그래도 1997년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세상의 변화를 실감한다. 부패보다는 부패를 쓸어버리는 힘들을 더 느낀다. 그래서 살만하다. 19세기의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죽음보다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이 우리를 이 낡은 부패로부터 해방시켜 주는날은 언제인고?" (431쪽)

 

* 호라티우스 : 로마 공화정 말기의 시인,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친구

* 얀센 : (위키백과)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예수회의 교의와 도덕에 관한 비판을 하였다. 이 때문에 예수회로부터 공격을 받고 이단으로 지목되는 등 수난을 받았는데, 블레즈 파스칼은 이 얀세니즘을 주장한 아르노를 옹호하고 예수회를 비판하기 위해 《시골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19세기 동안 얀센주의는 계몽주의와 결합하여 예수회, 절대왕정, 교황지상주의에 맞선 투쟁을 벌였다. 
* 르네 데 카르트 : 카르트 집안의 르네. 1628년부터 20년간 네덜란드에서 연구활동. 

 

dk

(to be continued like readig a testament)

 

그림 : 레카미에 부인(1800)_자크루이 다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