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시 알람에 뒤척이다
간신히 눈을 뜨고 아침을 준비한다.
어제 사다 놓은 햇반을 돌리는 것이
무일이 맡은 아침 준비.
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햇반 4개를 전자렌지에 한꺼번에 넣고 돌리니
설명서에 나온 2분이 아니라 7분을 했는데도 덥혀지지 않는다.
알고 봤더니 한 개씩 넣어서
2분(나중에 다시 해보니 5분)을 돌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사실을 알아 가면서 아침을 먹고
김영갑갤러리로 간다.
스마트폰의 공짜 네비가 길을 헤매어
교차로를 두어 바퀴 돌고 제대로 길을 잡았다.
페교된 삼달국민학교를 가꾸어 만든 갤러리는 소박하다.
입구에 외진 곳까지 찾아와 주어 고맙다는
겸손한 인사말이 인상깊다.
사진기 한 대 덜렁 메고 제주도로 내려와
돈이 없어서 필름과 인화지를 사지 못하면서도
제주도의 오름 특히 용눈이 오름과
다랑쉬 오름의 아름다움을 성실하게 기록한
김영갑의 짧은 삶이 안타깝다.
사진 작가는 성실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매시간 매일 변하는 똑같은 피사체를 찾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인내하며 변화와 항상성을 보아야 한다.
전시된 사진 중에서 아들 오름을 품에 안은 듯한 용눈이 오름의
파노라마 사진이 정말 아름다웠다.
구도며 색이며 분위기가 정말 완벽하다.
인터넷으로 그 사진을 찾아 다시 보고 싶은데
올라 오지 않는다. 안타깝다.
갤러리 입장권은 김영갑의 사진작품으로 만든 엽서다.
우리는 이런 효율과 낭만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예술작품과 입장권의 만남.
게다가 집이나 친구에게 엽서를 보내면 그 기쁨이 또한 크다.
무인카페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엽서를 쓴다.
루게릭병으로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한
김영갑 작가의 일생을 동영상으로 감상하고,
그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잠깐 읽어 보았다.
하루하루 고맙고 즐겁게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산 평화로운 분이었다.
비록 아내와 자식이 없고, 가난하기는 했지만.
필름과 인화지를 사기 위해 새 카메라를 전당포에 맡겨야 했던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지만 그는 행복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아름다운 탐구의 대상을 찾아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다희연으로 가는 길에 성읍민속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초가집들 앞에 커다랗게 무료로 구경하는 집이라고 해서 들렸다.
굉장히 영리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와서
무일을 '왕발'이라 부르며 똑부러지게 설명을 해 준다.
가로막대 3개가 가축들의 침입을 막고자 설치되어 있는데,
3개가 모두 막아져 있으면 아주 먼 곳을 가서 언제 올 줄 모른다는 표시이고,
2개가 막아져 있으면 하루 내에 돌아올 거리에 갔다는 표시이고,
1개가 막아져 있으면 곧 돌아온다는 표시라고 한다.
그렇게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표시해 놓으면 위험하지 않냐고 했더니,
어차피 가난하게 살아와서 가져갈 것도 없다는 것을 서로 알기 때문에
제주도에는 도둑이 없다고 한다.
참, 서글픈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없는 섬이니
한편으로는 저축이 필요없을만큼 풍요로운 섬이라는 이야기다.
간혹 구멍이 4개인 집은 여자 혼자 사는 집임을 표시하는데,
젊은 처자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든 할망들이 사는 집을 표시한다고 한다.
땅바닥을 발로 세게 밟으면 옆사람들이 진동을 느낄 정도로
송송 구멍이 뚫린 제주도 지형의 특성 때문에
물이 우물 형태로 저장되어 있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에 새끼를 묶어 항아리로 연결해
빗물을 모아 식수로 활용하였다.
이 때 항아리 속의 물을 깨끗하게 보관하기 위해
개구리를 넣어 두면 벌레들을 잡아먹어
깨끗한 물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생활의 지혜다.
바람이 많은 지역 특성 때문에 집들의 지붕이 낮다.
부엌에는 굴뚝이 없고 아궁이도 없는 엉성한 구조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생활의 지혜라고 한다.
제주도는 여름이면 습기가 많을 뿐만 아니라
물일을 하는 해녀들의 몸도 습기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밥 지을 때 발생하는 연기가
굴뚝으로 배출되지 않고 방이며 부엌에 그대로
고여 있게 되면서 제습과 소독을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태평농법에서도 연기를 피워 소독을 하면,
병충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배웠다고 한다.
말 한쌍을 양쪽에 묶어 방아를 돌리는 것은
제주도만의 기술이라고 한다.
영리한 말들은 한 번 방아를 돌리는 것을 가르쳐 두면,
지켜보지 않아도 하루 종일 방아를 돌린다고 한다.
그것이 정말 영리한 것인가?
육지와는 다른 말도 여러가지 들어 재미있었는데,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조로 담근 술의 이름이 '조깐술'이라고 한다.
마지막은 오미자 액기스와 말뼈 가루로 만든 환을 파는 영업코스.
시원한 오미자 효소와 말뼈환을 먹고 나서
지루하게 이어지는 설명을 다 듣지 못하고 일어서야 했다.
참 똑똑하게 이야기 잘하는 아주머니다.
박수를 쳐 주고 구경을 끝냈다.
워낙 값이 비싸서 사주고 싶기는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희연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단 점심을 먹으며 상황을 보기로 했다.
차밭을 가꾸고 녹차 관련 제품들을 판매하는
이곳은 꽤 큰 규모의 빌딩이다.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투자라고도 보여진다.
이층에 자리잡은 레스토랑에서
똥돼지 돈까스와 해물 뚝배기를 먹었다.
쿠팡에서 할인권을 가져갔으니 망정이지
가격에 비해 맛이나 품질은 썩 좋지는 않았다.
다행이 비가 그쳐 카트를 타고 녹차밭 구경에 나섰다.
보성의 대한다원에서 올여름에 녹차밭 구경은 잘 했는데,
제주도의 녹차밭도 규모있게 잘 꾸려져 있었다.
그리미와 사진도 찍으며 재미있게 도는데,
갑자기 아이들로부터 SOS가 왔다.
초보운전도 제대로 못한 누나의 카트가 방향을 못 돌려
녹차밭으로 돌진해 버리고 만 것이다.
개천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아무리 힘을 써도 무거운 전기차를 빼낼 수 없어서 사무실에 구원 요청.
결국 봉고차가 와서 밧줄을 묶어
네사람이 달라붙어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나무 두 그루가 손상되었다.
다친 나무에게도 미안했고,
열심히 가꾼 정원사들에게도 미안했다.
동굴까페로 가서 녹차와 커피, 쿠키로 간식을 먹었다.
자연 지형을 잘 활용한 아이디어가 좋다.
겨울이라 약간 추워서 오래 머물지 못한 것은 아쉽다.
손상시킨 녹차나무 대신에 녹차 화장품을 사서
다희연을 떠났다.
함덕해수욕장 앞 바다.
거친 바람에 해가 지는데도
옥색의 바다가 참 아름답다.
얼마나 바람이 심한지 모래 사장에
덮개를 덮어 놓았다.
해가 질 때까지 날려버릴 듯 불어대는 바람과 함께
바다 구경을 실컷했다.
누나 선배가 운영하는 제주시내의 양고기집에서 저녁식사.
어제 흙돼지고기 집도 손님이 넘치더니
이곳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바쁘다.
장사가 잘 되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참 좋은 일이다.
'사는이야기 > 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촌 산책_130224, 일 (0) | 2013.02.24 |
---|---|
대포항을 내려다보며 귤을 따다_겨울 제주 여행(임진년 1/5, 목) (0) | 2012.01.12 |
햇살이 비추며 눈이 내리다_겨울 제주 여행(임진년 1/4, 수) (0) | 2012.01.12 |
평화가 소중하다_겨울 제주 여행 1(1/2, 월) (0) | 2012.01.08 |
빗살무늬 신공_ 낙안읍성에서 송광사 (0) | 2011.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