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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빗살무늬 신공_ 낙안읍성에서 송광사

낙안 읍성의 작은 초가집 귀퉁이방에서 네식구가

빗살무늬 신공으로 잠을 청했다.


밤새 에어컨을 켰다 껐다하다가

27도로 세팅해 두고 잠이 들었는데

약간 추워서 누가 감기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침을 국밥집에서 소머리국밥과 돼지국밥으로 해결.

딱 삼만원. 음 가격 대비 품질은 약간 부정적.

읍성이 더 관광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좀 더 성의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작은 도서관을 가 보니 초가집이라 시원한데
책을 너무 형식적으로 둔 것은 아닌지

거기서 읽은 일화 한토막

간디가 열차를 타다가 신 한짝을 철로에 떨어 뜨렸다.
차는 출발하여 신을 줍지 못하니?
나머지 신 한짝을 얼른 그 쪽으로 던진다.


대장간 아저씨는 제일 힘드신 일이라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내던지듯 하시는 말씀이 안스럽다.


이 더위에도 관광객은 많다.
특히 젊은 아가씨들끼리 온 일행이 주류다.

남학생들은 어디 공사판 아르바이트를 갔는가?


할머니가 밥을 해서 떡메를 직접 찧어 만든
삼천원에 한 봉지 찹쌀떡이 고소하다.

새벽부터 가마솥에 찰밥을 해서 떡을 만드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이제는 우리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어머니도 이런 자리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자리를 펴실 것이다.

도시라면 당장 휴지 주으러 나가셨을 것이고.

그나마 시골에 우리가 의지할 집과 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빠블로가 글로리아에게 창 넓은 모자를 선물한다.
단돈 이만원의 선물이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는 큰아들의 모습이 대견하다.

싸면 싸서 싫고,
비싸면 비싸서 싫은 무일.

귀한 아내에게 조차 제대로 선물을 할 지 모른다.
비싸고 사치스러운 명품이라고 왜곡시킨 사치품들은
우리집에는 결코 발을 붙일 수 없다.


송광사로 가는 산 길.
백일홍 가로수가 너무 근사하여
빠블로가 선물한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글로리아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 둔다.


송광사에 도착해서도 무조건 그늘과 계곡을 따라 이동했다.
그러다가 스님들이 공부하는 엉뚱한 곳으로 진입.

다시 대웅전으로 길을 잡았다.

올 여름 휴가는 참 많이 걷는다.


근사하게 기와로 지어진 화장실이 있다.
신발까지 벗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손 씻는 물도 버리지 않고 연못으로 떨어뜨려
수련을 키우고 잉어를 기른다.


빠알간 배롱나무가 회색 기와와
단청 무늬와 잘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
고요한 절집에 수수하지만 강렬한 아름다움
벽앞에는 위로는 배롱나무가 바알갛게 자라고
아래로는 껑충 꽃대만 자란 상사화가 분홍빛으로
엷지만 역시 강렬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강렬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풍경.


더위에 지칠무렵 찾아간 찻집. 송광사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아래 팥빙수와 시원한 오미자를 마신다.
산국화의 꽃잎을 얼음에 얼려 띄워낸 오미자 차는
빨간 색이 입맛을 자극하고
단듯 신듯 쓴듯 떫은 듯 짜기까지 한
참으로 오묘한 맛을 전한다.
그래도 그 맛이 항상 찾기 어렵고
찾지 않으면 그리울 듯한 매력적인 맛이다.


송광사를 나와 여수로 갈까 벌교를 갈까 하다가
벌교가 가까워 그쪽으로 차를 돌렸다.

온통 연예인 사진으로 도배된 벌교 읍내.
연예인이 날라리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지식인들은 진지하다고 하지만 재미가 없고
지혜롭다지만 유연성이 없어서
이 시대의 주인의 자리를 그들에게 빼앗겨 버렸다.
인텔리겐짜는 가고 엔테테이너만 남은 세상.

꼬막정식은 정말 훌륭한 맛이다.
뻘이 씹히는 꼬막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진한 초고추장 양념에 비벼 먹으니 비린 맛도 없고 좋다.

다만 여름이라 먹는 내내 장이 약한 가족들이 걱정했는데,

마지막까지 맛있게 먹고 여행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은
그리크지 않은 기념관에서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키높이로 쌓인 만년필로 쓰인 원고 뭉치와
그것을 필사한 아들과 며느리의 원고뭉치가 같이 전시되어 있다.

조정래 선생의 필살의 글짓기가 상상이 된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잘 정돈된 등장인물의 구성도와
작가 자신이 직접 그린 벌교의 지도가 또한 인상적이다.


소설 태백산맥과 작가 조정래를 빨갱이로 만들기 위해 위해
동원된 여러 의혹을 해명하는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선생은 소설의 모든 내용을 당시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출판된

신문, 잡지, 책을 참고하여 창작하였고,

용공이라고 지적된 모든 부분에 대해 공개된 자료들을 제시하였다.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자료들이었다.

우리 검사님들이 꼼꼼하시다 보니,

작가 조차도 창작 근거를 꼼꼼하게 챙기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박물관의 구성을 갖추게 되니

그 또한 웃지 못할 역사다.


그와 출판사 가족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편지들도 전시되어 있다.
편지와 시위와 협박 전화에 저항하며
매일같이 유서를 써서 자신을 협박한 실체들을
정확하게 기록해 둔 작가의 처절하면서도 평화적인 모습이 뭉클하다.


그리고 재판도 아니고 검찰에 의해
단 두줄로 처리된 무혐의 처분통고서도 허탈하기 짝이 없다.

이 두 줄을 위해 유수 언론들이 그 많은 기자들을 동원하여

공중파와 신문지를 낭비하였다는 말인가?

책의 내용만큼이나 비극적이며 고통스러운 작가의 생활이었다.


순천 시내로 돌아와 외곽의 조용한 모텔에 방을 잡고
시내의 술집 두 곳과 노래방 한곳을 돌면서
논술면접을 처음 접해보는 천재아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