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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햇살이 비추며 눈이 내리다_겨울 제주 여행(임진년 1/4, 수)

간신히 눈을 떳는데 창밖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통나무집이 좋은 것은 역시 이런 운치를 즐기는 것이다.

하루 저녁에 7만원이면 5명이 지내기에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오늘 아침은 누룽지다.

마트에서 산 친환경 쌀로 만든 누룽지다.


값이 비싸도 되도록이면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부모님께서 그리고 금년부터는 무일까지 달려들어

온 몸으로 농사를 지어 가족들에게 좋은 농산물과 꿀을 공급한다.

그것과 함께 가능한 모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몸에 좋고 자연에 가까운 것으로 먹고 쓰려고 한다.

물론 라면이나 치킨도 먹지만 최소로 하려고 노력한다.



아침 식사를 잘 끝내고, 

혹시 눈이 쌓였으면 위험할 수도 있어 원래 가려던 14코스는 포기하고,

3코스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멀리 왔다 갔다 하느니, 숙소와 가까운 곳을 다시 걷기로 했다.

어디를 걸은 들 좋지 않겠는가?


눈 쌓인 모래사장을 걸으니 새로운 재미다.

일단 뽀드득거리는 눈밟는 소리가 더 잘 들리고,

신발에 밟혀 올라오는 모래가 없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눈오는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이 또한 큰 기쁨이다.




걷기 좋은 길이 나타나면, 식구들 모두를 내리게 하고,

무일 혼자 또는 걷기 싫은 사람을 태우고  2, 3 km를 가서 차를 세워놓고,

무일은 식구들이 걸어오는 방향으로 걸어가서 중간에 만나 함께 차가 있는 곳으로 온다.

그러다가 너무 추우면 다시 차를 타고 천천히 이동을 하며 몸을 녹인다.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했더니 걷는 것도 편안하고 추위도 피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따뜻한 남쪽 나라의 진수를 보았다.


먼저, 펑펑 내리는 눈이 쌓이지를 않는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14코스를 갔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뻔 했다.

두번째로, 눈 속에 패랭이꽃, 용설란, 제비꽃, 수선화 등등

        꽃들이 피어 있었다. 삭막하기만 할 겨울 바다를 작은 꽃들이지만

        소박하게 장식해 주고 있었다.

세번째로, 주황빛 고운 귤나무들이 아주 싱싱하고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아, 이래서 따뜻한 남쪽나라로구나.


선배에게 이렇게 보냈다.


    따뜻한 남쪽나라가 뭔가 했는데,

    우박이 내리는데 제비꽃이 피어 있고,

    바람은 찬데 귤나무의 열매가 달고,

    눈이 쏟아져도 길 위에는 흔적이 없더군요. 




땅 위에는 눈이 내리는 데도,

해녀들은 물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신년을 맞아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제주를 찾으니

물질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하얀 등대 앞에 점점이 떠 있는 해녀들의 부표가

바다와 융화된 은근과 끈기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어제 써 두었던 엽서를 부치기 위해서 위미우체국에 들렸더니

직원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무슨 부탁을 해도 다 들어줄 것같은 분위기로 환영을 해 주시니

마음이 편안하였다.

따뜻한 커피도 한 잔 얻어먹고 엽서도 부치고 나니

좋은 일을 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2년 전 허리가 굽은 두 할머니가 잘 차려주셨다는

올레5코스 검은모래 해변앞 공천포 식당을 다시 찾아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당 가운데에 삼십년 넘은 탁자들이 늘어서 있다.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30년을 지난 골동품 위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도 기쁨이다.

두 분은 이곳에서 젊음을 다 보내고 계신 것이다.

이 탁자들과 여행객들과 함께.


원래 소라물회를 먹고 싶었는데,

지금은 소라가 나지 않는 철이라고 해서 한치물회와 

자리물회를 시켰다.


5명이지만 여자들의 배가 작아

4인분을 시켰는데 공기밥을 5개나 주시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하신다.


나중에 계산할 때 공기밥 값으로 천원을 더 드렸더니

안 받으신다고 화를 내신다.

주겠다고 하고  안받겠다고 하는 싸움이라니~


할머니의 인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를 뒤따라 가족 6명이 들어왔는데,

5인분을 시키자 그러면 남길지 모른다고 걱정을 하신다.

음식 남기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허허, 참.


맛은 시골밥상 맛이다.

자리물회는 약간 비리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인심에 힘입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렸다.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바람, 눈과 우박을 골고루 즐기며

실컷 산책을 했다. 올레 3코스에서 6코스까지를 핵심만 뽑아 즐긴 기분이다.


너무 늦기 전에 다빈치 뮤지엄을 방문하기로 했다.

5시면 해가 지는데, 이미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잡은 박물관은 규모가 제법 크고,

해설 시간도 마련되어 있어서 좋았다.

다만, 좀 더 재미있는 해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에 발견한 것은 모래주머니를 이용한 운동기구와 자전거다.

참 다양하게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워낙 흥미거리가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가면과 망토를 이용한 포토존을 마련해 놓았다.

눈이 더 내리면 차로 이동이 불가능해 질 것을 두려워하여

정신없이 옷을 갖춰 입고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보니 근사한 그림이 되었다.


또 한가지 체험은 통나무를 이용해서 쉽게 건설하는 다리를 만드는 것.

레오나르도가 실제 전쟁에서 사용했다고 하니

정말로 유용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시골집에 연못을 만들게 되면

온 식구가 모여서 통나무 다리를 지어 볼 만 하겠다.



눈이 제법 쌓인 중산간 지역은 차가 슬슬 밀린다.

다행이 지나가는 차들이 거의 없어서

훨씬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서귀포 시내로 들어오니 역시 눈의 흔적은 없다.

저녁으로 갈치조림을 먹는데,

이곳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보리 막걸리가 있다고 해서 저녁을 먹으며 한 병을 시켰는데,

알콜도수가 5도라는데 거의 맹보리물을 마시는 기분이다.

취기도 전혀 오르지 않는다.


부지런히 먹고 나서 이중섭 거리를 걸었다.

요절한 천재들은 삶 자체가 안타까워서 그런지

남겨진 예술품들에 대해 애착이 유난히 많이 간다.

이중섭 거리에는 그의 작품들을 부분부분 발췌해서

가로등도 만들고, 벽화도 그리고, 보도블럭도 만들었다.

그중에서 보도 블럭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벽화는 그 원색의 화려함 때문에 사진이 잘 받았다.





이중섭 거리의 끝 부분에 있는 일식집 앞에는 진달래까지 피어 있었다.

정말 따뜻한 나라다.


오늘은 통나무집의 마지막 날로

복층식 통나집으로 숙소를 옮겼다.

집에서 이 곳을 예약할 때에는 복층이 훨씬 좋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2층이 넓기는 했으나 아래 층이 좁아서 답답하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니 불편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다락방의 즐거움을 주기로 했는데,

애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락방에 관심을 갖기에는 벌써 너무 커 버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