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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 아버지의 해방일지_정지아_창비_22년 10월 초판7쇄 ] 어떤 개인은 역사의 굴레에서 스스로 해방되지 못한다_240605


역사는, 개인의 삶속에서 쉽게 잊혀진다.

 

1910년의 식민지, 1945년의 해방, 1950년의 전쟁, 1960년의 4.19혁명, 1980년 5월의 광주와 87년 6월항쟁의 역사는, 역사가 되어 잊혀져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어떤 개인은 역사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산다.

 

고상욱과 그의 아내는,

1948년에서 51년 사이의 역사가 규정한 데로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를 역사의 굴레에서 해방시키지 못한 것인지,

스스로가 그 역사를 사랑하고 지키기 위한 것인지도 알수 없다.

 

그들의 삶은,

 

1단계 : 패배한 혁명에 대한 처벌

2단계 :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더불어사는 삶에 대한 변치않는 실천

3단계 : 해방, 곧 죽음으로 규정된다.

 

사실 2단계의 삶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어도 대부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따라서 고상욱 부부의 삶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이다.

소설속에서 우리 모두의 삶을,

한사람으로 응축시켜서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이 소설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한사람속에 녹아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리 각각의 홀사람은,

소설속의 좌와 우의 사람들, 신의를 지키거나 배신하는 사람들, 강함과 약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 모든 소설속 사람들의 행동이 녹아있는,

종합된 한사람이다. 

 

나이 60이 지나서야 감옥에서 풀려난 아버지가 동지에게 한 말. 국졸의 민중이 사회주의자로서 가졌던 자부심이 이렇게 컸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던져버릴수 있는 시대였다.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 (12쪽)

 

민중 사회주의자의 자기인식은 무엇일까? 고운 마음과 웃을줄 아는 얼굴이 보기에 좋다는 것일까? 내딸이 예쁘지 않은것을 인정하지 말아야하는 것일까? 무엇을 놓친것일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하의 상이라는 아버지 평가에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을뿐이다. 그런데도 두고두고 아버지말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그날, 아버지와 내가 무언가를, 사람살이에 아주 중요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놓친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다." (32쪽)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참는 사람이다." (68쪽)

 

소설 속에는 아름다운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떡집 언니가 유난스레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말때문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현명한 사람이 말조차 잘한다. 정말 쉽지않은 일이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비판해야 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날카로워야 하며, 그러다보니 날카로운 생각이 칼같은 말을 뱉어내게 하여, 늘 후회스럽다.

 

"언니는 말을 참 예쁘게도 한다. 내가 저런 말을 할줄 알았다면 지금쯤 정교수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말에는 칼이 숨어있다. 그런말을 나는 어디서 배웠을까? 아버지가 감옥에 갇힌 사이 나는 말속의 칼을 갈며 견뎌냈는지도 모르겠다." (192쪽)

 

지상낙원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사람 한사람의 노력과 헌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는 겨우 세금 몇푼 더 내는것도 버거워하므로, 지금 세상에 낙원은 만들지 못한다. 세금 72%를 기꺼이 내고,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깊은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이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평등세상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들 나라들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극우 정치세력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해서 안타깝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자본주의는 지상낙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서두르지 말자. 할수 있는 것을 조금씩 하자.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삶이 부러워 미웁기도 했던것이다." (196쪽)

 

일단 가족을 우선으로 살자. 수신제가도 못하면서 대의에 목숨을 거는 일은 삼가자.

 

"그 아버지를 이데올로기가, 국가가 빼앗아간 것이다. (중략) 아버지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볼수 없다." (20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