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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대만 선거결과와 반도체 산업_권석준

어제 실시된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민주진보당)의 후보 라이칭더가 선거에서 승리하여 차기 총통으로 당선되었다고 한다. 라이칭더는 민진당의 노선인 '친미, 대만독립, 반중' 정강을 그대로 따를 것으로 전망되며,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는 앞으로는 대만에 대한 통제가 점점 경화되는 국면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그간 해 온 무력 시위나 침공 위협 뿐만 아니라, 대만에 대한 직접적인 경제적 제재를 위해 여러 카드를 준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그 카드는 대만이 가장 믿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 될 것이다.

사실 대만이 글로벌 무대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다름아닌 반도체 산업이고, 그 중심에는 TSMC가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TSMC는 이른바 대만의 Silicon shield 정책의 핵심이고, TSMC 자체도 사실 대만 정부가 지분을 상당 부분 소유하고 있는 semi 공기업이나 마찬가지다. 

TSMC는 2019년 미국의 대중 반도체 기술-무역 제재가 본격화된 이후, 중국 기업들과의 거래를 대폭 자의반타의반 줄여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화웨이의 자회사인 팹리스 하이실리콘의 CPU, AP 등의 생산 위탁 물량을 2020년 하반기 이후 거의 받지 않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TSMC는 중국 난징에 12인치 팹 두 개를 운영 중이긴 하나, 그것은 대만의 타이중 팹에 비해서는 세대가 많이 뒤쳐지는 레거시팹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TSMC로의 접근이 어려워지니, 자국의 SMIC 같은 파운드리를 민간과 공공의 투자를 집중하여 키워왔고, 작년에는 화웨이의 메이트60프로 같은 스마트폰의 AP인 기린 시리즈가 공개되기도 했기에 (이는 최근 2년 간 화웨이의 대 SMIC 직접 투자 120억 달러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중국과 대만 사이의 반도체 커플링, 즉, 중국의 반도체 팹리스와 대만의 파운드리 사이의 연결고리는 상당히 약해져 있는 셈이다. 만약 2019년의 대중 제재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TSMC의 최대 고객은 애플이 아니라 아마 화웨이가 되었을 것이다. 

TSMC와 대만 정부의 초기 셈법은 2019년에 시작된 미국의 대중 제재가 몇몇 회사나 기술에 국한될 것, 그리고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므로 급한 바람만 지나가면 다시 중국을 대형 고객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TSMC는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파운드리는 미국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믿었다. 거대한 집중 자본 투자 외에도 (*높은 CAPEX 비중), 여전히 수십 년 쌓인 노하우와 전문인력 집중도, 숙련도가 중요한 산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미국의 대중 제재는 중국 반도체 산업 전체로 확전될 정도의 실효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이러한 판단은 경제적 논리, 산업 구조의 논리만 따른다면 정확한 판단이다. 애초에 미국이 자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반도체 생산 비중을 계속 동아시아로 이전시킨 주 동인도 결국 경제적 요인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에는 일본이었으나, 1990년-2000년대에는 한국과 대만, 그리고 2010년대 이후에는 중국으로 계속 생산 거점의 무게중심이 서진하게 된 것은 경제적 논리와 산업의 구조적 특징이 서로 양의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TSMC가 1987년에 처음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에 뛰어들 때의 위상은 지금과는 당연히 달랐다. 그 당시의 TSMC는 그야말로 위탁 생산 업체로서, 흔히들 생각하는 저가의 산업용 반도체 chip의 OEM 생산 기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TSMC의 본격적인 성장은 창업 후 15년 간 집중적으로 chip의 scaling-down phase에서 잔뼈가 굵고, 노하우가 쌓이면서 시작되었다.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MOSFET-FINFET 으로 이어지는 칩의 물리적 스케일 축소, 그에 의한 트랜지스터 집적도의 지수함수적 증가 기조는 2010년대 초반까지 글로벌 반도체 공정과 양산을 지배하는 바이블 같은 존재였고, 이 흐름을 가장 잘 탄 업체 중 하나가 바로 TSMC다. 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 이후, 무어의 법칙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았고, 이는 둘 중 하나의 돌파구가 필요함을 의미했다. 무리할 정도로 높은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칩의 스케일을 더 작게 만들든지, 칩의 스케일은 좀 천천히 축소시키더라도 비용을 확실히 더 절감하든지에 대한 것이었다. TSMC는 이 두 마리 토끼를 기묘한 모양새로 잡는 것에 성공했는데, 두 마리 토끼가 사실은 두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로 수렴될 수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물론 TSMC가 칩을 설계하거나 새로운 트랜지스터 소자를 개발하는 기업은 아니었기 때문에, 원천 기술에서의 비용 절감에서 이러한 노하우가 쌓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공정, 그중에서도 설계와 공정이 동시에 최적화되는 DTCO (design-technology co-optimization), 나아가 이를 업그레이드한 STCO (system-technology co-optimization)에서 그간 쌓인 노하우가 2010년대의 무어의 법칙 붕괴를 맞아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TSMC의 강력한 경쟁력은 단순히 파운드리 수율만 좋다는 것에 있지 않다. 설계부터 칩 테이프 아웃, 오류 검증부터 양산을 위한 전공정 최적화, 그리고 패키징을 포함한 OSAT에 이르기까지, 즉, 거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반도체 생산에 관한 한, 전주기적 기술 완성도를 높여 왔다는 것이 TSMC가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자 경쟁력이다. 이 경쟁력은 무어의 법칙에 브레이크가 걸린 2010년대 들어 오히려 TSMC의 성장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주된 엔진이 되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반도체 대기업들이 출현하고, 같은 중화권 파운드리인 TSMC에 이들의 대형 물량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TSMC는 돈놓고돈먹기 게임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그야말로 수익, 수율, 매출규모, 기술 수준, 고객 생태계 전반적인 측면에서 지배자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자신감을 믿고 TSMC는 미국의 대중 제재가 오래 갈 수도 없고, 간다고 해도 오히려 TSMC의 위상과 중요성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측했다. 어쨌든 10 nm 이하급 시스템반도체 양산이 가능한 파운드리의 80%는 TSMC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미개척 영역인 2 nm 이하급, 나아가 옹스트롬급 초미세 공정의 기술 역시 대부분의 솔루션은 TSMC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TSMC, 그리고 대만 정부에 있어, '대만이 무너지면 TSMC가 무너지고, TSMC가 무너지면 글로벌 반도체 생산은 그 즉시 마비되며, 그렇게 되면 AI고 ICT고 뭐고 다 죽는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그렇지만 TSMC와 대만 정부가 간과한 것은 반도체 산업은 이제 더 이상 경제 논리, 산업 논리만 통하는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90년대 이래, 30년 간 동아시아 지역으로 부지런히 생산의 거점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놔둔 것은 그야말로 반도체 산업의 비용 절감이 IT산업이 이끄는 세계 경제 성장 엔진이 되게 만드는 핵심 절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동아시아 지역은 일부 불량 국가 (북한 등)을 제외하면 나름 안정되고 경제성장률이 높으며 과학기술 발달이 안정적으로 배후에 깔리는 특수한 지역이었다. 그렇지만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중국의 GDP는 유래 없는 속도로 팽창하였고, 그 내실 역시 최근 10년 간 가파르게 채워지며 산업 분야 대부분의 영역에서 중국 기업들의 약진은 더 이상 내수용 기업으로 낮춰볼 수 없는 수준이 이르게 되었다. 이는 미국의 전략가들에게 가장 먼저 감지된 신호였고, 이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2030년 정도가 되었을 때, 적어도 반도체 제조업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최소 20%, 그리고 대만과의 커플링이 더 강해지면 중국-대만의 점유율 합은 45%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싱크탱크에 있는 분들과 첨단 산업에 대한 여러 사안이 있을 때 의견을 주고 받는다. CSIS에 있는 연구원 한 분은 2년 전 어떤 국제 워크샵에서 인연이 되어 계속 의견도 주고 받고, 작년에는 직접 한국에 방문했을 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 연구원의 주된 분석 영역은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다. 작년 방한 때 나는 이 연구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2030년 45% 점유율 전망에 수정된 사항이 있는지 물어 봤다.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45%는 3년 전에 추정한 수치일 뿐, 이 수치는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며 중국과 대만을 떼어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중국의 점유율이 결국 대만을 앞지르게 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의 시나리오에서 전망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재차 물었는데, 그의 답은 간단했다. 대만의 현재 모델은 지속하기가 이제는 쉽지 않고, 대만의 모델은 오히려 중국 반도체 산업이 따라하기에 적합하므로, 대만의 자리를 조금씩 중국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대만에 있어 과거의 Silicon Shield 정책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끝난지 오래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대만이 그토록 중시하는 반도체 산업, 그리고 그 영향력은 이제 더 이상 경제적, 산업적 논리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대만이 업데이트해야 하는 부분은 '안보적 관점'이다. 이 관점은 대만 자국의 안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산업이 갖는 각국에 대한 안보적 관점, 글로벌 스케일의 안보적 관점이다. 이는 대만이 앞으로는 적어도 자국의 반도체 산업 영향력을 온존하기 위해서라도, 반도체 산업을 들여다보는 필터를 대만이라는 섬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전체, 그리고 글로벌 스케일의 필터로 바꿔 끼워야 함을 의미한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계속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의 고삐를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며,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이 산업은 중국에게 있어 당분간 가장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이 될 것이다. 적어도 시진핑 정부가 정책의 주도권을 쥐는 한, 2030년까지의 중국 산업 집중 정책, 자강 정책, 중국제조 2025 등의 정책의 핵심에는 늘 반도체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제재는 중국의 자립화 속도를 한 편으로는 늦췄지만, 한 편으로는 가속시켰다. 첨단 제조, 특히 10 nm 이하급에 대해서는 꽤 유의미한 감속 효과를 가져 왔지만, 그 정책은 마치 풍선효과처럼 중국의 눈길을 10 nm 이상의 영역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즉, 중국은 시간을 벌기 위해, 수익을 내기 위해, 노하우를 쌓기 위해, 자국의 반도체 업체들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이 레거시 공정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더 집중적인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는 CSIS 연구원과 나눈 대담에서, 중국의 반도체 제조 점유율이 오히려 대만을 앞지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의 핵심 내용에 해당한다. 기술적 수준은 2030년이 되어도 중국이 세계 최정상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은 낮지만, 전체적인 점유율, 특히 파운드리에서의 점유율은 중국의 회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가져갈 가능성은 도리어 높아졌다.

이 상황에서 파운드리 올인전략을 취하던 대만과 TSMC는 이제 그 전략이 오히려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 라이칭더 신임 총통은 취임 일성에서 미국과의 관계 강화는 물론, 일본, 한국과의 관계에도 더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쳤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 본다면 라이칭더 총통은 급박한 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의 반도체 제조업 수성 전략은 화무십일홍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오히려 대만 입장에서는 글로벌화시켜야 하는 시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TSMC의 전략가들이 아무리 계산기 돌리고 시나리오 게임 돌려봐도 결론은 하나로 나왔을 것이다. 미국 아리조나 팹은 짓자마자 밑빠진독에 물붓기라는 것을. 이들의 계산은 냉철하다. 일본 정부가 소니의 구형 구마모토 팹을 헐값에 인수하라고 제안했을 때도 일본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TSMC는 구마모토 팹을 첨단 팹으로 개수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저 소니가 일본 국내 자동차 산업, 산업용 반도체 수요 산업에 대응하던 물량을 더 개선시켜 수익을 내는 방향으로 개조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TSMC가 실제로 쓴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던 일본 정부만 괜히 주변 전문 대학에 TSMC 계약 학과를 설치하고 온갖 SOC를 퍼다 주는 등의 변죽만 울렸을 뿐이다. TSMC의 냉철한 계산은 아리조나 팹에도 적용될 것처럼 보였다. TSMC는 최대한 미국 노동자, 엔지니어 안 쓰고 자사의 엔지니어들로 버텨보고자 했다. 그래서 처음에 계획했던 규모도 이 정도 수준에서 감당 가능한 최대치였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했든 세상은 바뀌었고 미국의 시선도 바뀌었다. 미국은 더 이상 첨단 반도체 제조의 주력이 동아시아에 쏠려 있기를 바라지 않으며, 대만의 실리콘 방패 정책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TSMC는 급기야 초기 120-150억 달러 정도였던 팹 투자를, 420억, 최근에는 450억 달러까지 팽창시켰는데, 미국 전략가들은 이마저도 불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즉, TSMC는 아리조나 팹 하나로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산업 개편안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을 매조지하려던 정책을 수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TSMC의 전략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대만에서 만드는 원가에 비해, 미국 팹은 최소 1.5배, 최대 2.5배까지도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비용 증가의 측면은 세상에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물가가 비싸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TSMC의 강점은 자체적인 문제 해결력 뿐만 아니라, 자사 주변의 생태계 형성이 다층으로 튼튼하게 이루어진 것에 있다. 디자인하우스부터 패키징까지 모두 TSMC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DTCO를 통해 원가 관리에 매진했고, 파운드리 주변 생태계 형성을 통해 지배력의 저변을 확대해 온 TSMC의 전략의 근간이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생태계가 거의 없고, 있어도 사실 미국 정부의 정책을 따르는 업체들과 상생하여 뭔가를 이루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고물가 외에도 이러한 보이지 않는 저변 구조의 특징이 고비용의 주된 원인이 되며, 이러한 고비용을 그대로 감내하면서까지 파운드리를 해야 하는 상황은 그간의 TSMC 전략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렇지만 이제 선수를 둘 수 있는 권한은 TSMC에 있지 않다. TSMC의 주요 고객은 어느새 대부분 애플, 메타, 엔비디아, 구글, AMD, 심지어 인텔 같은 미국의 대형 팹리스 혹은 반도체 업체들로 채워진지 오래고, 이들의 주문이 10%만 감소되어도 TSMC는 다음 세대의 기술 개발 로드맵이 최소 6개월 뒤로 밀리는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의존도가 심해졌다. 대형 고객이 주문을 물밀듯 밀고 들어올 때는 파운드리 산업의 고유 특징인 고 CAPEX 구조를 감당할 수 있으나, 주문량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는 오히려 선행 투자가 발목을 잡는다. 실제로 TSMC의 2 nm 파운드리 원가는 예상보다 1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주요 고객인 애플의 매출 전망이 보수적으로 다시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든, 랩탑이든, 패드든, 이제 고객들은 예전만큼 비싼 제품을 자주 바꾸지 않는다. 고물가에 코로나 보복소비 효과가 이제는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TSMC와 대만 정부는 그간 강력한 전략적 advantage를 보장해 왔던 반도체 기술력, 매출 지배력, 공급망에서의 핵심 노드로서의 포지션이라는 강점을 재해석할 시점이 되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TSMC로 하여금 더 많은 투자를 종용할 것이며, 중국과의 커플링을 더 끊으라는 압박을 할 것이다. 중국은 민진당의 3연임을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고, 대 대만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비즈니스를 여러 방식으로 통제하면서 대만의 경제에 고통을 가할 것이다. 대만이 전략을 수정해야 할 부분은 자국 중심으로 최적화되었던 첨단 반도체 생산 비용 절감 및 생태계 구성의 바운더리를 넓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일본의 구형 팹 인수나 R&D 센터 등의 보여주기식 투자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적어도 미국과 전략적 협력이 가능한 한국, 일본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겉보기에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는 직접적인 경쟁 관계이므로 어떤 방식의 협력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반도체 산업은 경쟁사라고 해도 언제든 협력이 가능하다. 사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현재 기정학적 긴장 국면이라는 상황과 별개로, 기술적으로도 점점 가까워지는 한계를 목전에 두고 있다. 스케일링 다운은 속도가 느려지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물리적 한계는 변함이 없다. 새로운 소재와 공정 기술은 바닥나고 있고, 전반적으로 반도체 제조 선진국들은 전문인력의 중장기적 부족 현상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AI 기술은 날로 증강되는데, 그것을 뒷받침할 컴퓨팅 하드웨어를 구성하는 반도체의 성능에는 한계가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지금 소모되는 전력량을 1/10 이하로 줄이지 않으면 탄소중립은 고사하고, 극악의 전성비로 인해 전력 공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트랜지스터 설계 로드맵도 2030년대까지, EUV lithography도 2030년대까지의 전망 밖에 없으며, 그나마도 불확실하다. 기술적, 물리적 한계를 공통적으로 눈앞에 두고 있는 업체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협력하여 솔루션을 만들 수 밖에 없다. 그 산물의 대표 기관이 바로 IMEC이다.

결국 대만, 한국, 일본, 미국은 chip4 동맹 같은 의뭉스러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더 협력하여 이 솔루션을 만들어나가는 전략적 구상을 같이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 한-미-일은 지난 2년 간, 이 구상을 적어도 정상 회담 의제 하에 구체화 해왔으며, 실무그룹들은 세부 정책들을 입안하여 작년부터 실행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이 실무 그룹에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포함되어야 함은 마땅하며, 이는 대만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기도 하다. 원래대로의 자유무역주의, 평화로운 산업 생태계 분위기 였다면 여기에 당연히 가장 큰 고객이 될 중국 반도체 산업이 들어와야 정상이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이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그러한 평화로운 산업 무대가 아니다. 고래들의 전략이 불꽃 튀며 맞부딪히는 전장이며, 이 전장은 당분간 휴전 국면으로 접어들 기세도 아니다.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 없이, 이제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를 위시로 한 여러 첨단 산업에서의 경쟁력이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것을 근거로 계속 맞부딪힐 것이며, 양국은 각 첨단 산업에 참여하는 주요 키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선택과 집중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대만의 민진당 정부는 더 늦기 전에 한국과 일본에 외교 특사를 보내어, 적어도 첨단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동아시아 3국의 전략적 포인트를 극대화할 수 있는 협의체 구성에 적극적 참여 의향이 있음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분야 협력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한 패키징 분야에서의 협력, 대만이 상대적으로 약한 메모리 반도체에서의 협력 같은 상호보완적 협력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경쟁 무대인 옹스트롬급 시스템반도체 생산 공정 최적화를 위한 소재, 공정, 구조 기술 공동 개발 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회사간의 전략적 판단도 중요하지만, 국가 간의 거시적인 합의 기조가 깔려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이러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상정하여 대 대만 반도체 협력 준비를 할 필요가 있고, 필요하다면 한국 정부와 산업계도 민진당 정부 관계자들, TSMC 관계자들과 더 자주 만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 복잡도와 경제 민감성, 그리고 이제는 경제 안보적 맥락에서의 중요성은 어느 한 나라, 한 회사가 감당할 정도를 벗어난지 오래며, 동아시아 3개국은 이 중요성을 앞으로도 국가의 글로벌 영향력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피봇으로 삼아야 한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의 반도체가 2030년 이후 세계 최대의 영향력을 갖게 되는 시점 쯤 되면 이러한 논의 조차 무의미해질 수 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권석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