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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치악산둘레길] 꾸엉뫼둘레길 열흘길_고행없이 어찌 깨달음과 발견의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_231016 lunes, dieciseis de octubre_phohedelhnk, wectbhadchatb OktyaBpb

9시가 다 되어 일어나서 씻고 식사 준비를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고사리 육개장 분말을 처음으로 사용해 본다. 쌀뜨물을 받아서 국물을 내었더니 먹을만했다. 건더기가 매우 부족한 국이었지만, 우리나라를 오래 떠나 그리울 때 한포씩 쌀뜨물에 풀어 먹으면 괜찮겠다. 시원한 나주배와 주먹밥도 준비해서 아흐레길의 끝부분과 열흘길(열번째 날 걷는 길)을 연결해서 약 15km 정도를 걸을 예정이다. 열한 시가 다 되어 출발한다.

 

숙소인 황토방 바로 위에 숲속의 집(고라니)가 있고, 아흐레길(아홉번째 날 걷는 길)의 마지막 5km를 걸으면 열흘길과 연결된다. 아흐레길과 열흘길 총 25km 구간 중 아흐레길의 시작 2km(석동마을종점부터 보림사까지) + 열흘길 시작 3km(금대삼거리에서 구암사까지) + 마지막 5km(아흔아홉골 숲길을 나와서부터 당둔지까지), 총 10km 구간의 포장도로를 제외하고는 걷기에 좋았다. 예쁜 길들을 걷느라 피곤해진 몸을 쉬기 위해 열흘길 마지막 포장도로 4km는 조금 걷다가 지나가는 차를 잡아 타고 큰 길까지 나왔다. 무임승차를 허락해 준 도로공사를 하던 젊은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15km를 걷는 동안 원주에 사시는 부부를 만난 것이 유일하다. 친구들로부터 두 통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면, 평화로운 가을길을 5시간 걸었을 것이다.

 

오늘의 주요 과제인 구절초 구별해내기. 쑥부쟁이와 벌개미취도. 구절초는 완전히 흰색에 꽃부분보다는 뿌리부분에 잎이 많이 나있다. 쑥부쟁이는 500원 동전 크기 정도로 꽃의 크기가 작고, 잎에 톱니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구분할 수 있다. 벌개미취는 구절초처럼 꽃이 커서 5cm 남짓 된다.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예쁜 이름들을 많이 만났다. 일본 제국주의가 없애버린 우리 고유의 이름들이 이런 산골에는 살아 있다. 한반도 전체를 두고 보면 똑같은 이름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구분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아름다운 옛이름들을 살려내어 우리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사용해 온 한반도의 정통 한자도 아니고, 왜놈들의 한자어까지 빌어다 쓸 정도로 문화의 뿌리가 없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바람골. 바람골에 들어서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등짝의 땀을 식혀 주었다. 바랑(스님이 매는 배낭)일 수도 있다. 

뒷들이골. '뒤에 넓은 들이 있는 골짜기'로 추정되는 이름. ▲ 뒷들  : 함박골 남쪽, 봉천을 따라 나 있는 들을 말한다.

곰네미교. 곰 + 넘이 -> 곰너미 -> 곰네미 : 곰이 넘어간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

일론골 : 1) 골짜기 논이 있는 마을 : 실(계곡) + 논 -> 실논 -> 실론 -> 일론

               2) 의병대장 김제갑이 왜놈들을 많이 죽여서 피가 흥건하게 흘른 -> 흘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열흘길은 경사가 제법 있어서인지 어제보다 힘이 들었다. 그리미가 준비해 온 작은 주먹밥은 물론이고,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나주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세번의 휴식시간을 갖는 동안에 갈증과 체력을 제대로 보충해 주었다. 값이 싸고 영양이 좋은 오이보다도 훨씬 좋았다. 값이 너무 비싼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판부화덕피자로 가서 이른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평일에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휴식 시간이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서 씻고 나오기로 했다. 1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꾸엉뫼휴양림 입구에 내렸다. 각오는 했지만 꼬박 2km의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라서 숙소에 도착해야 했다. 그래도 선명한 동자꽃을 오는 길에 만났다. 고행없이 어찌 깨달음과 발견의 기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리미는 밥도 있고 하니,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하자고 하는데, 이 먼곳까지 와서 18km의 산길을 걸었는데, 좋아하는 화덕피자를 먹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손님은 우리 둘을 포함해서 다섯 명. 도우를 직접 만들어 작은 화덕에 구워내 주는 고르곤졸라는 정말 맛이 있었다. 배가 고파서였는지 평소에는 두 조각 정도면 더 이상 손도 대지 않았을 피자를 세조각씩 먹었다. 그리고 즉석 떡볶이. 고추가루향이 너무 강한 것을 제외하고는 양도 많고 맛이 좋았다. 22,000원(작은 고르곤졸라 + 작은 떡볶이 : 두사람을 위한 상차림). 

 

잘 먹고 숙소로 돌아와 조금 쉬다가 맥주 한 잔을 먹었다. 실수였다. 너무 배가 불러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다음 날(17일) 아침 8시에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남은 밥으로 주먹밥을 만들고, 남은 샐러드와 다시 한 번 가루로 만든 육개장으로 아침을 먹고, 용소막 성당으로 갔다. 공세리 성당처럼 예쁜 성당인데, 주변에 요란한 건물들이 없어서 아늑하고 좋았다. 성당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삼봉의 모습, 거대한 느티나무가 모두 멋졌다. 거대한 바위 위에 평화를 새겨 놓았다. 가자지구에서 이슬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다. 서로를 악마라고 부르며 싸우고 있다. 평화는 너무 비싸서, 너무 많은 사룸life을 대가로 요구한다. 예수님도 자신의 피로 더 이상 약자들이 괴롭힘과 죽임을 당하지 않으시기를 바라셨다. 우리의 꿈과 희망은 정말로 머나 먼 유토피아에 있다. 흔들리지 말고 한 발씩 그리로 나아가야 한다.

 

성당에서 한 시간을 달려 음성에 있는 유리원에 도착했다. 가을 저수지가 시원하여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다. 

 

동자꽃
구절초. 하얀꽃이 코스모스처럼 크면서도 예쁘고, 뿌리 근처에 잎이 많다.

 

유리원에서 바라본 저수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