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와아happy한 멋지고 평등한 여민동락-시민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는 세상을 살고 싶지만, 사람들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지금으로 충분하다는 사람이 많다. 그다지 많이 둘러보지 않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네 개의 성문을 전부 나서보고 나서,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차 있으니 그것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배를 두들기며 술 마시고 노래부르며 노예를 부리고 있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내가 좋으니, 주변에서 쓰레기가 썪는지 알 수가 없다. 망조가 든 나라는, '일하는 척하면서 세금으로 배 채우는, 어려운 말로 국곡투식하는 사람들의 부패'가 판을 치고, 그밑에서 떡고물을 먹으려는 사람들의 욕심 또한 활개친다. 부패한 것을 도려낼 책임은, 예나 지금이나 시민에게 부여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지금도 여전히 30%가 넘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모든 잘못은 시민에게 있고,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은, 권리를 누릴 수가 없다. 선택의 결과로 고통을 겪게 된다. 조국은, 검찰과 재벌의 카르텔에 의한 과두제라고 하지만, 결국 시민들이 선택한 정부이기에, 그런 용어에 동의할 수가 없다.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 모습이다.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노예가 된 시민들이 문제이지, 쓰레기 냄새가 나거나 말거나 '노예 부리기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무슨 죄가 있나. 그들의 집권을 저지하지 못한, 내가 죄인이다.
"검찰과 재벌이라는 두 카르텔에 의한 과두제 oligarchy를 해결하는 것이 21세기 민주공화국 주권자의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28쪽)
성공한 쿠데타 처벌불가론을 펴며 전두환을 불기소했던 장윤석은 2004년 17대부터 12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호의호식하다가, 후배 검사인 최교일에게 밀려났다. 검사시절부터 따지면 거의 40여년을 잘 먹고 잘 산 것이니, 전두환을 사랑한 대가치고는 제법 괜찮다. 후배 검사들이 본받을만 하다.
"군사독재 시절 회자되었던 '육법당'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육사 출신 군인들과 법대출신 검사들의 유착은 끈끈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후 검찰은 전두환-노태우가 주도한 12.12 쿠데타와 5.17 군사반란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불기소처분을 했다.
(중략) 이 결정의 주임검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장윤석 부장검사는 후일 참여정부 시절 검찰 게시판에 정부 비판 글을 올리고 사직한 후 국민의힘의 전신인 하나라당 국회의원이 된다. 물론 이 '성공한 쿠데타 처벌불가론'은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고, 그 여파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지시와 군사반란 주모자들에 대한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5.18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32쪽)
검찰은, 정의와 공평으로 힘센 집단에 오른 것이 아니라, 권력들이 개처럼 쓰기 위해 부여한 (불)기소독점권을 통해 손쉽게 자리를 차지하였다. 검찰의 힘은, 법 조항 몇 줄 고치게 되면 사라지는,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사라져야할, 법률이 부여한 권력이다. 그들이 지금 보이고 있는 무소불위의 작태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기소권, 영장청구권 등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엘리트 집단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중략) 이즈음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무한하다'라는 건배사가 검찰내에서 공유되었다. (중략)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시대가 끝나가면서, 법이 주먹같은 역할을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33쪽)
역사발전은 시민에서부터 황제에 이르기까지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링컨도 공화당원이었다. 좌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사욕을 자제하고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려는 사람들에 주목해야 한다.
"권위주의체제에서 형사절차상의 인권은 유명무실했다. (중략) 이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 (중략) 이러한 법리는 1960년 얼 워런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이끈 '형사절차혁명'의 성과다. (중략) 워런은 공화당원이었지만 아이젠하워에 의해 연방대법원장으로 임명된 후에는 진보 판결을 연달아 이끌어내 임명권자를 배신했다. (중략 / 아이크는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멍청한 실수였다고 했지만) 인종차별 금지, 표현의 자유 보장등이 이루어지고, '미란다 권리' 등 형사절차상의 인권도 확고히 정립됐다." (128~9쪽)
아테네 공항과 뉴욕 공항의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도대체 왜 이런가 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아테네 공항은, 오스만제국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한 베니젤로스의 이름이었고, 뉴욕은 라 과르디아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뉴욕시장을 세번이나 연임했던 피오렐로 라과르디아 Fiorello La Guardia가 떠올랐다. (중략 / 대공황기에) 그는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어느 노파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중략) 배고픈 사람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도시시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10$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방청객 모두에게 각각 50센트 벌금형을 선고 (중략) 방청객들은 순순히 벌금을 냈고, 라과디아는 이렇게 걷은 57달러 50센트를 노인에게 (중략) 공화당원이었지만,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지지했다. 이후 뉴욕공항의 그의 이름을 따 라과디아 공항이 됐다." (133쪽)
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