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테르 cheter 왕관 ]
1 - 2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을 주었다. 힘을 내어라. <지혜> 같은 것은 생각지 말라. 오로지 <세막 science>에서 도움을 구하라." (26쪽)
science를 국내 학자 누구도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았다. '과'자는 이미 고려시대 말기 과전법科田法에 흔히 사용했다. 벼를 말로 된다라는 뜻이다. 친구 다사에 의하면 science를 적절하게 표현한 단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지식의 독립을 위해서는 우리 말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이 번역한 말 대신에 처음에는 지학으로 바꿔봤다. 앎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지금은 셈학 -> 세막으로 다시 제안한다. 과가 재고 나누고 분류하는 것이라면, 셈하여 재고 나누고 세상을 이해한다. 셈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셈학에서 연음법칙을 적용해 세막으로 나아갔다. science는 세막이다. [230729 ]
푸코의 진자 때문에 한참을 돌아다녔다. 벌써 두 번째다. 그래도 지구 위에 붙어있는 내가 레옹 푸코의 진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3차원 입체의 움직임에 대한 상상이 잘 안된다. 천체의 움직임이나 황도 12궁, 일식과 월식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다. 중력에 갇힌 몸이라, 중력을 벗어나서 먼 우주 공간이라는 제3의 장소에서 각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된다. 조금 진전은 있다. 언젠가는 천체의 돌아가는 모습이, 지구가 자전하여 푸코의 진자가 그려내는 그림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지혜는 과학의 산물이다. 왜 에코는 지혜와 과학을 나누었을까?
지혜는 머나 먼 길을 걸어오며 쌓인 것이라 과학과 배치되기 때문이리라.
과학의 산물이 아닌 지혜는 버리자.
[ 호흐마 chochma 지혜 ]
3 - 6
카소봉은 그들의 대화를 떠올리며 온갖 '지혜'를 끌어모아 야훼에서 지혜로 이어지는 암호들을 신중하게 선정하였으나, 틀렸다. 지혜는 추정일 뿐이다. 과학은 밝혀진 사실 또는 찾아낸 진실을 따른다. 암호를 모르면, 지혜를 통해 추정할 것이 아니라, 그냥 진실을 말하면 된다. 모른다고. 그것이 과학의 대답이다. 지금 현재 나는 암호를 모른다.
"야코포 벨보에게는 아불라피아를 소유하는 데 필요한 암호뿐만 아니라 로렌차를 사랑하는 데 필요한 암호, 아불라피아의 심장을 뚫고 들어가는 데 필요한 암호뿐만 아니라 로렌차의 가슴을 열고 들어가는 데 필요한 암호가 있어야 한다. (중략) 나는 <소피아 SOPHIA>를 두드려 넣었다. 기계는 정중하게 물었다. <암호를 아십니까?> (중략) 몹시 짜증스러웠던 나는, <아니 NO>를 두드려 넣었다. (중략) 나는 기어이 아불라피아의 방어망을 꺠뜨리고 들어간 것이었다. (중략) 벨보는 어느 순간, 나는 이제야 알아차린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던 것임을 나는 안다." (84~5쪽)
[ 비나 Bina 지성]
7 - 22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시대에 태어났으니 제대로 된 시대를 만들려면, 미래를 움직일 수 있는 기술과 힘이 필요하다. 현재의 기술과 힘에서 나오는, 떠오르는 기술과 힘에서 미래 시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떠오르는 기술과 힘을 갖기 위해서, 현재의 기술과 힘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항상 제대로 된 시대를 그리면서.
"(1968~72년의 파리) 나는 오전에는 혁명이 소용돌이 치는 1층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문제를 토론하고 오후에는 전통 문화가 꽃피는 2층에서 부즈주아에게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는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두 세계는 나란히, 아주 유쾌하게 공존했다. 나는 아무 모순도 느끼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평등 사회가 오고 있음을 예감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런 평등 사회일수록, 가령 열차 운행 같은 것은 더 효율 좋게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98쪽)
책을 누워서 읽으면 집중이 안된다. 소설책인데도 말이다. 엉덩이가 피곤하고. 적당히 읽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라는 말이다. 68혁명과 성전기사단에 대한, 세상을 제대로 바꾸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누워서 읽었더니, 에코가 원하는만큼 진지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든다. 다시 종교 이야기다. 굳이 더 알지 않아도, 신앙을 존중하고, 신을 믿으며, 신이 필요하고, 아름다운 신을 천박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것은, 신을 천박하게 만드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다.
"디오탈레비는 산수를 종교로, 혹은 종교를 산수로 환원시키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산수를 종교로 환원시키는 동시에 종교를 산수로 환원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디오탈레비는 천국의 찬란함을 가지고 장난치는 무신론자였는지도 모른다." (259쪽)
히틀러가 성배와 무한한 에너지원을 찾아 헤매었다는 영화는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한 모양이다. 유대교가 바빌론의 유수를 통해 대홍수라는 개념을 빌어왔다는 것에서부터 동정녀 잉태와 삼위일체설에 대해 고대 종교들과의 연관성을 공부해 보는 것은 재미있겠다. 에코가 삼위일체설을 아리안족, 동정녀 잉태설을 켈트 신화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해 본다.
"우리는 (중략)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종교에서 나온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전 기사들은 예수의 신화가 사실은 켈트 신화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중략) 삼위일체가 아리안족의 개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266쪽)
성전 기사단에 관한 조사와 기록을 했던 아르덴티 대령은 나치 부역자였으며, 살해된 듯 사라져 버렸다. 카소봉은 성전기사단의 핵심에 이미 발을 담갔으며, 암파루와 사랑에 빠져 2년 동안 브라질 리우 대학교로 갔다.
[ 헤세드 Hesed 사랑 ]
23 - 33
믿음이 집안의 습관이라는 도킨스의 무례해 보이는 언급과 달리 암파루의 이 말은 그럴듯하다. 신은 믿지 않지만, 나를 위해 기도했던 사람들은 진실하다.
"우리 할머니는 이따금씩 나를 이 해변으로 데리고 나와 여신에게 기도했어. 내가 예쁘고 착하게 자라도록 해달라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달라고. (중략) < 이것은 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믿는다 > 고 했지? 나는 이 여신을 믿지 않아. 그러나 이것은 참이야. " (302쪽)
세상은 이렇게 달라졌는데, 과연 권태라는 것이 존재할까? 사람에 대한 희망은 존재할까?
"두 세기만 살아봐라. 그러면 치유 불가능한 권태가 불사의 운명을 타고난 비참한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중략) 인간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오직 그전 세대의 오류와 악몽을 되풀이한다." (330쪽)
야만인의 어원은?
"그리스인들이 이방인들을 <야만인 : barbaroi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어원은 barbaros로 알아듣지 못하게 구시렁거린다는 뜻이다>이라고 부른 것은, 지나치게 교육을 많이 받은 그리스인들 귀에는 그들의 언어가 개 짖는 소리처럼 들렸고, (중략 / 야만인들은) 당시의 그리스인들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오." (337쪽)
dk
(to be continued like reading a testa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