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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열흘 남짓만에 가뭄이 들다_230606~08_seis de junio martes_шесть Июнь Вторник

6일(화) 오후에 농원에 도착했다. 고추와 고구마가 물이 부족해서 피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늘밭도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작물들의 상태가 좋아서 호스를 전부 철거했는데, 나흘 만에 다시 설치해야 할 모양이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자. 5월 달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비가 내려서 뿌리가 충분히 내렸으니 더 이상 가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다.

 

고추밭에 진딧물 약과 영양제를 섞어서 뿌렸다. 첫 농약 살포다.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참 신기한 것은 농약을 치고 나면 확실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저 액체일 뿐인 약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진딧물이 사라지고 나방이나 나비의 알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알고 보면 간단하겠지만, 왠지 알고 싶지는 않다.

 

약을 뿌리고 나서, 양말목 묶은 것이 풀어졌거나 다시 묶어줘야 할 것들을 50개 정도 손을 봤다. 더 많이 하고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가 부탁하신 일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이랑을 돌아다니며 풀을 뽑다가 참깨 모의 뿌리를 한 두 개 건드렸다. 풀 뽑으려다가 괜히 참깨모에게 해를 끼칠까 싶어서 제초매트 위로 올라온 풀들만 제거하고 돌아다녔다. 마늘밭 가에도 풀이 제법 올라와 있어서 눈에 띄는 것은 뽑아냈지만, 눈의 추적을 벗어난 풀들은 한참 뿌리를 내리고 기지개를 활짝 켜고 있다. 멋진 삶이다.

 

7일(수)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더 잘까 하다가 일어나서 천천히 작업준비를 했다. 2주 연속 그리미와 일찍 일어나기를 연습하고,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생긴 변화다.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습관으로 자리 잡기를.

 

양파를 캔다. 제법 양이 많다. 야구공만 한 것들이 평균 크기고, 자잘한 것들도 꼼꼼히 수확을 했다. 처음에는 양파의 파 부분까지 전부 수확을 했는데, 가지고 나온 4개의 바구니가 이미 차고 넘친다. 안 되겠다. 파 부분을 과감히 제거해 버리고, 알맹이만 수확했다. 양파 하나가 나올 때마다 건강한 모습에 기분이 좋다. 흰 양파처럼 껍질이 있는 느낌이 아니라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자색양파다.

 

시간이 흘러도 일이 끝나지 않는다. 양파를 뽑고 나서 쪽파까지 수확하려고 했는데, 의외로 양이 많다. 한 판 반을 심으면서, 쪼개서 심은 것도 있어서 거의 두 판을 심었고, 비닐하우스를 두 겹으로 잘 싸주었더니 죽은 것이 거의 없이 다 잘 살아난 모양이다. 전체 양은 신경 쓰지 않고 양파 하나 캐고, 풀 제거하기를 반복했더니 마침내 일이 끝났다.

 

9시가 넘어가면서 해가 뜨기 시작했는데, 날이 흐려서 뜨겁지는 않다. 다행이다. 보관해 두었던 제초매트를 끌어다가 양파 수확한 부분을 덮었다. 원래는 햇볕을 쏘여서 일광 소독을 해야 하는데, 가을에 양파와 마늘을 심기 전에 일주일 정도 먼저 열어서 일광 소독을 한 다음에 밭을 만들기로 했다. 수확한 양파는 하우스에 보관해 두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치과와 마트를 다녀와서 고기를 구워 먹고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바이올린도 했어야 했는데. 오후 5시가 넘어서 쪽파 밭으로 갔다. 10분이면 끝나겠지.

 

천만의 말씀. 딱딱한 흙 속에서 쪽파들이 전부 새끼를 치고 살아있다. 허걱. 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난다. 불과 두 평 남짓 쪽파 밭에서 일어나지를 못한다. 두 바구니 가득하게 쪽파를 힘들게 캐고 났더니 해가 뉘엿뉘엿 저버린다. 손이 엄청 느린 몸수의 게으름 탓이리라. 수확한 쪽파는 양파 옆에도 같이 보관해 두었다.

 

8일(목) 약간 피곤하다. 무슨 일을 할까. 우선 애플민트를 전부 수확했다. 너무 많이 자라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린 애플민트는 뿌리만 남기고 수확하고, 큰 것들은 싱싱한 중간 부분 이상만 수확을 했다. 한 줄기 한 줄기를 전지가위로 수확하다 보니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애플민트를 수확하다가 보니 죽은 줄 알았던 동백나무에서 새 잎이 자라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겨울에 보온을 해 주면 잘 자랄 수 있을까?

 

애플민트를 수확하고, 종이 상자를 정리해서 양파를 두 상자 담아서 그늘에 보관해 두었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은 날이 흐려서 밭의 작물들이 한숨 돌리리라.

 

시간이 남아서 무궁화나무 가지치기를 하기로 했다. 하고 났더니 너무 심하게 했다. 일정한 높이에서 잘라 주어야 했는데, 너무 낮게 잘라내었다. 2월 경에 했어야 했는데, 시기도 너무 늦었다. 하우스 밭둑에 자라던 거대한 참나무도 잘라 내었다. 어머님이 보시고 좋아하셨다. 너무 자라서 쓰러지면 하우스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뭐든지 적당한 공간에 자리 잡아야 한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쥐똥나무와 개나리 가지치기도 했다. 하우스와 배수로를 점령할 기세로 자라는지라 매년 두 차례 이상은 작업을 해 주어야 한다. 작년에는 천재가 꼼꼼하게 작업을 해 주어서 편했었다. 그런데, 일이 끝나지를 않는다. 가지치고 나서 풀 정리까지 하려고 했는데, 기온은 올라가고 몸은 지친다. 7포기 살아있는 머위대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오전 작업을 정리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왔다. 어머니께 빌려드린 거상 김만덕은 반납하고,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는 반납하지 않았다. 재미있게 읽고 계시단다. 글씨가 너무 작아 힘드신데도 즐겁게 읽으신다니 다행이다.

 

비가 내리기에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기 고양이들과 잠시 놀다 보니 비가 그친다. 아, 더 왔어야 하는데. 오전 작업의 마무리로 가지치기한 나무를 옮기기로 했다. 수레에 싣고 벚나무 아래에다 쌓아두는데, 쉽지 않고 양도 많다. 일이 진도가 더디자 갑자기 숨이 찬다.

 

이러면 안 된다. 이번 수레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신나게 일을 했다. 비로소 몸이 덜 힘들다. 눈은 게으르고, 팔다리는 부지런하다. 부지런한 팔다리에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힘이다. 세 번이면 끝날 주 알았던 작업이 8번을 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중간에 시원한 물도 한 잔 마시고, 새끼 고양이들도 잠자리에 넣어주고, 지친 팔다리도 쉬게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일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일을 끝냈다. 풀베기를 할까 말까 망성이다가 참기로 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재미있는 상황. 논 일이 없어지고 나니 아침저녁으로 할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김 메기를 하려고 하면 끝이 없겠지만, 더 중요한 일이 없어지고 있다. 완두콩을 따려고 봤는데, 아직도 알이 덜 찬 느낌이어서 다음 주에 따기로 했다.

 

외숙모가 주말에 내려온다고 하셔서 저녁 시간에 부천으로 왔다. 날도 시원하고 차가 밀리지 않아서 좋았다.

 

대간, 울고 있어도 아름답다_울진 망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