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로버트 퍼시그)
친구의 안내로 이 책을 읽는다. 늘 그렇지만, 친구들이 없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신나게 살다가 죽을 텐데, 쓸데없이 먼 길을 헤매기도 한다.
[ 제1장 ] 신을 존중하는 불신자
1. 믿음을 믿다.
1) 유신론 : 인간과 자연세계의 너머에 존재하며, 우주를 창조했고,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인격신을 믿는다.
2) 이신론 : 인간과 자연세계의 너머에 존재하며, 우주를 창조했지만,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3) 범신론 : 매력 있게 다듬은 무신론, 우주의 법칙이 바로 신이며, 존재하는 것들의 위대한 모습이 곧 신이다.
"나는 물리학자들이 비유의 의미로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중략 / 그들의 신은 기적을 행하고 우리를 벌하는 신과는 다르다.) 둘을 일부러 혼동시키는 것은 학문의 반역행위다." (35쪽 / 번역서 자체를 옮기지 않고, 아주 조금 변형했다.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고, 영어 원본을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라서, 내가 번역한 것은 아니지만 역자의 힘을 빌려 번역은 내 의지대로 해도 좋다고 본다.)
'믿음을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전통을 따르고, 신의와 도덕을 지키며, 범신론에 기반한 경이로운 겸손을 종교라 생각하며 믿는 것을 말한다. 즉, 존재하는 절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믿음을 믿는다는 의미다.
2. 종교가 모든 것을 이긴다.
샐먼 루시디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루시디가 좀 심했다고 생각했으나 특별히 공개 발언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앵글로 색슨의 침략주의자들에 의해 이슬람교가 폄훼되고 착취당했으므로 이슬람교도들이 그의 책을 계기로 분노가 폭발했을 것이라 짐작만 했을 뿐이다. 도킨스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우리 사회가 종교를 지나치게 존중한다는, 종교를 정말 중시한다는 사례가 하나 있다. 전시에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근거는 종교다. 당신이 전쟁의 해악을 상세히 연구하여 우수한 논문을 발표한 뛰어난 도덕 철학자라고 해도, 양심에 따르는 병역 거부자로서 병역을 면제받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신의 부모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퀘이커교도라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당신이 퀘이커교의 이론을 모른다 해도 순풍에 돛 단 듯이 병역을 변제받을 것이다.
(중략) 미연방대법원은 뉴멕시코 주의 한 교파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준수해야 하는, 환각제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식물의 혜택을 입은 통일된 영혼'이라는 종교 단체의 신자들은 디메틸트립타민이라는 불법 환각제가 함유된 호아스카 차를 마셔야만 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략) 2004년 오하이오 주에 거주하는 제임스 닉슨(12세)은 "동성애는 죄악, 이슬람은 거짓말, 낙태는 살인. 흑백 논리로 해결할 문제도 있다!" 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학교에서 입게 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했다. (중략) 증오가 종교에 의거한 것임을 증명하기만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증오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래서 닉슨 측 변호사들은 언론의 자유 대신에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 호소했다.
(중략) "나더러 동성애자를 모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 편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어쨌든 여기서도 종교가 모든 것을 이긴다." (38~42쪽)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종교를 건드리면,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두려움이. 모든 종교는, 평가와 비판, 거부와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JMS와 종교는 과연 다른가? 어떻게 또는 무엇이, 왜? 누군가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고, 다수가 망상에 빠지면 종교가 되는가?
지난주에 들른 고창 병바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일어나는 감동을, 과학으로 분석해서 파편으로 만들어버리기보다는, 신이라는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감정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석하는 것으로는 느낌을 종합할 수가 없어서다. 신은 그렇게 위대한데, 신을 받드는 우리는 왜 이렇게 천박한가? 아름다운 신의 이름으로 미워하고, 매장하고, 때리고, 죽이고. 나도 그랬다. 전두환과 같은 악마는 신의 강력한 처벌이 내리기를 바랐으니까.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 나는 도대체 어떤 신과 종교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과 로만 가톨릭? 아름다운 신을 믿는 천박한 나. 이것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사회가 통상 수준의 존중보다 더 과장된 존중을 종교에 표한다는 사실 (중략) 2005년 9월 덴마크 신문 <율란트-포스텐>에 예언자 마호메트를 묘사한 12컷짜리 만화가 실렸다. (중략 / 신중하게 운동을 이끈 두 지도자들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전했다. / 중략) 아무 관련이 없는 3컷의 만화가 추가되어 있었다. 원래의 12컷짜리 만화와는 달리, 추가된 3컷은 정말 모욕 (중략, 그러나 / 턱수염이 있는 남자가 가짜 돼지코를 붙이고 있는) 컷은 프랑스의 한 지방 축제 기간에 열린 돼지 울음 흉내내기 대회에 출전한 프랑스인을 담은 연합통신 사의 사진으로 밝혀졌다.
(중략)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의 시위대들은 덴마크 국기를 불태웠고 덴마크 정부를 향해 사과하라고 흥분해서 요구했다. (중략) 리비아에서는 폭도들이 벵가지의 이탈리아 영사관을 습격해 불을 지르는 바람에 아홉 명이 사망했다. (중략) 마호메트는 이슬람 세계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과 애정을 받는, 너무나 깊이 추앙받는 존재입니다. (중략) 뮐로는 그 말속에 이슬람의 가치가 어느 누구의 가치보다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을 파악했다.
(중략) 종교는 뭐가 그렇게 특별하기에 그런 특권을 누리는 것을 당연시하는 걸까? (중략) 나는 이 책에서 종교에 대한 존중이 비할 바 없이 지나치다는 관점에서 내 견해를 펼치고자 한다. 나는 일부로 분노를 자극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들을 다룰 때보다 더 부드럽게 종교를 다룬답시고 미적지근하게 글을 전개해 나가지도 않을 것이다." (42~7쪽)
[ 제2장 ] 신 가설
"한 시대의 종교는 다음 시대의 문학적 여흥거리다." (랠프 월도 애머슨)
1. 신은 망상?
도킨스라고 해서 신과의 싸움을 원했을까?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교육하는 일보다도 쉽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종교들이 배제와 폭력, 전쟁과 살육을 부추기면서 양심의 가책 없이 온갖 잔혹한 범죄들을 장려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 연구하고 이야기하고, 마침내 싸움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기독교의 신은 잔인하고 복수심 많고 변덕스럽고 불공평한, 끔찍한 성격을 지닌 존재다." (토마스 제퍼슨 / 그러나) 그런 쉬운 표적을 공격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 (중략) 나는 신 가설(God Hypothesis)을 더 방어할 수 있는 형태로 정의할 것이다. 즉 그것은 “우주와 우리를 포함하여 그 안의 모든 것을, 의도를 갖고 설계하고 창조한 초인 초자연의 지성이 있다"라는 가설이다. 이 책은 그 가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견해를 옹호할 것이다. 즉 "무언가를 설계할 정도로 충분한 복잡성을 지닌 창조 지성은 오직 확장되는 점진해 온 진화 과정의 최종 산물로 출현한다"라는 견해 말이다. 진화된 존재인 창조 지성은 우주에서 나중에 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주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수 없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신은 망상이다. 그리고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신은 유해한 망상이다. (중략) 나는 어디에선가 날조되었거나 언젠가 날조될 자연을 초월한 힘을 갖는 모든 것, 모든 신들을 공격한다." (51~59쪽)
2. 다신교
내가 사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은 매우 재미있는 존재다.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좋아하다가, 어느 날 그것을 조롱하며 폐기처분했다가, 다시 고쳐 쓰다 보니 기분이 이상했는지, 완전히 새로운 그것을 또 만들어내서 좋다고 사용한다. 80억의 인류에 80억 개의 서로 다른 종교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은 정말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
"다신교에서 일신교로의 변화가 왜 진보라고 가정되어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가정은 널리 받아들여져 있다. 그 가정에 자극을 받은, 《내가 이슬람교도가 아닌 이유》의 저자 이븐 와라크(Ibn Warraq)는 재치 있게도, 다음에는 일신교에서 신이 하나 더 삭제되어 무신론이 될 것이라고 했다." (53쪽)
3. 일신교
일신교 전성 시대에 대해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일요일 아침에 나는 한가한 도로를 달려 대자연과 박물관과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모든 도로의 소통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나 유교같은 다른 종교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런 종교들은 종교가 아니라 윤리 체계나 인생철학으로 다루어도 될 법하다. 내가 출발점으로 삼은 신 가설의 단순한 정의를 아브라함의 신(종교로는 유대교, 개신교, 이슬람교 / 무일)에 끼워 맞추려면 꽤 살을 붙여야 한다. 그는 우주를 창조했을 뿐 아니라, 그 안이나 그 바깥에 (그 말이 무슨 뜻이든) 거주하면서 앞서 말한 불쾌한 인간적인 속성들을 지닌 인격신이기도 하다." (61쪽)
4. 세속주의 : 미국의 국부들과 종교
1776년 미국의 독립혁명은, 군주제를 폐지하고 주권재민을 실현하여 민주주의를 지구 위에 만들어냈다. 그 정치체제를 만들어 낸 사람들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정말로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전혀 증거를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붙들고 씨름하거나 고심하지 않으며, 실재하는 것들에 만족하며 충분히 몰입해 있다. (중략) 나약한 마음을 노예처럼 위축시키는, 근거 없는 편견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거라. 이성을 제자리에 앉혀놓고 모든 사실, 모든 견해가 그녀의 재판을 거치도록 하거라. 신의 존재 여부까지도 대담하게 묻고. 신이 존재한다면, 이유 없는 두려움보다 이성에 경의를 표하는 쪽을 더 용인할 테니." (68쪽 / 토마스 제퍼슨)
그런데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00년이 흘러 미국은 개신교의 나라가 된 것일까, 아니면 도킨스의 주장처럼 많은 수의 무신론자들이 있기에 세속주의가 포기되는 일은 없을까? 종교와 양심의 자유는 지켜질 수 있을까?
"나는 무신론자들을 시민으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들을 애국자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곳은 신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70쪽)
독실한 간디는 "나는 힌두교도며, 이슬람교도며, 유대교도며, 기독교도며, 불교도다!"라고 했고, 인도의 초대수상 네루는 세속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아름다운 정의다.
"우리는 세속주의 인도를 말하고 있다. (중략) 일부에서는 그것이 종교와 반대되는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국가가 모든 신앙을 똑같이 존중하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73쪽)
5. 불가지론자, 불신자의 또 다른 이름?
신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을 상처입히지 않으려고, 신의 존재 또는 부존재 증명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영구 불가지론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에 대해 도킨스는 분명하게 틀렸다고 주장한다. 있으면 있는 것이지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선명해서 좋은데, 신앙의 문제를 꼭 이렇게까지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른다고 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취하니까, 점점 더 이상하고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종교로 모든 답을 내려는 무리한 시도들이 무섭게 진행되고 있다.
"신의 존재에 대한 불가지론은 명백히 잠정 불가지론 즉, TAP Temporary Agnosticism in Practice 범주에 속한다. 신은 존재하든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그것은 일종의 과학 질문이다. 즉 우리는 언젠가는 그 답을 알게 되며, 그동안은 확률로 어떻다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다." (77쪽)
어떤 주장도 증명할 수 없으면 독단이다. 그리고 독단은, 독단을 주장한 사람이 증명해야지, 독단을 의심한 사람이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도킨스는 "어느 누구도 기발하거나 익살맞은 상상력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억지스러운 것들을 반증할 의무를 느끼지 못한다." (86쪽)고 했다. 맞는 말이다. 러셀의 찻주전자 증명도 재미있다. 뭔가 근엄하게 웃겨서 좋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수용된 독단은, 독단론자들이 아닌 회의론자들이 반증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그것은 잘못이다. 내가 지구와 화성 사이에 타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을 도는 찻주전자가 하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찻주전자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다는 단서를 신중하게 덧붙인다면, 아무도 내 주장을 반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장이 반증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용납하기 어려운 억측이라고까지 내가 말한다면 그건 헛소리로 여겨져야 옳다. 하지만 그런 찻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옛 서적에 명확히 나와 있고, 일요일마다 그것을 신성한 진리라고 가르치며, 학교에서도 그를 아이들의 정신에 주입시킨다면, 그 존재를 선뜻 믿지 못하는 것은 괴짜라는 표시가 될 것이고, 이를 의심하는 자는, 계몽시대 이전의 종교 재판관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다." (83쪽 / 버트런드 러셀)
6. 과학 너머에 종교가 있다?
로마 가톨릭의 신자로 등록해 두었더니 여러가지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교회를 비판해도 무신론자라서 그렇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고, 교회를 통해 돈을 벌어 생활이 안정되었으며, 경조사 때마다 교우들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전혀 기적을 기대하지 않으며, 마음의 위로와 그리 가깝지 않은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만을 감사히 받는다. 아마도 많은 신자들이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그들은 신자이면서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일까? 적어도 신의 존재에 대한 불가지론자로 분류해야 할 지도 모른다.
"기적도 없고 기도자에게 응답도 하지 않는 신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기도하다'라는 동사에 대한 앰브로즈 비어스의 재치 만점의 정의를 떠올려보자.
"지극히 부당하게 한 명의 청원자를 위해서 우주의 법칙들을 무효화하라고 요구하는 것." (97쪽)
7. 기도의 힘
보통 교회에서는, 간절히 기도해야 하느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골턴의 이 기도 실험은, 양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라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다만, 기도하면서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어 원하는 목표를 이룬 경험들은 다 있을 것이다. 기도는 나의 노력을 이끌어내는 깊은 철학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프랜시스 골턴은 기도가 효험이 있는지를 과학의 방법으로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일요일마다 영국 전역의 교회에 모인 군중들 전부가 왕실의 건강을 비는 공개 기도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왕실 가족은 가까운 사람들의 기도만 받는 나머지 사람들보다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 골턴은 조사를 했고, 통계를 분석해보니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99쪽)
불가지론자들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생각하는 종교인들에게 호소하려고 한다. 특히 진화론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호 세력들을 넓혀가야 한다. 그런데, 도킨스와 윌슨으로 대표되는, 미국 사회에서 창조론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과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불가지론이라는 말도 안되는 과학으로는 미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불가지론자들의 평화를 위한 주장을 이해하면서도, 선명하게 주장을 펼치는 도킨스에게 손이 올라간다. 정말 피곤하겠다. 나도 피곤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읽는다.
"그것은 단지 진화론 대 창조론(의 싸움)이 아니다. (중략) 진짜 전쟁은 합리주의와 미신 사이에 벌어진다. 과학은 합리주의의 한 형태인 반면, 종교는 가장 흔한 형태의 미신이다. (중략) 창조론자들은 과학의 영토가 따로 있다고 존중하기는커녕 지저분한 구둣발로 그곳을 마구 짓밟고 싶어 할 것이다. (도킨스 또한 창조론과 영토를 나눠가질 생각이 없다.) " (109~110쪽)
8. 외계인과 신
"신과 신 같은 외계 생명체의 핵심 차이는 그들의 특성이 아니라 기원에 있다. 복잡한 지성의 존재들은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가 마주쳤을 때 그들이 아무리 신처럼 보인다 해도, (중략 / 확률법칙은) 그들이, 그들 이전의 더 단순한 선행자 없이, 느닷없이 출현했다는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118쪽)
[ 제3장 ]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
1.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명'
1) 부동의 원동자 : 그 어느 것도 선행 원동자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중략) 무언가가 최초의 움직임을 일으켜야 하며, 우리는 그 무언가를 신이라 부른다.
2) 원인 없는 원인 : 모든 결과에는 그보다 앞선 원인이 있다. (중략) 원인이 없는 최초의 원인을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3) 우주론에 의한 논증 : 그 어떤 물체도 존재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략) 지금의 물체들을 출현시킨 무언가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믿기지가 않지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설계된 것들은 반드시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니. 설계되지 않은 것들은 설계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큰 것은 크게 보이고, 작은 것은 작게 보이고. 신처럼 보이면 신이고, 악마처럼 보이면 악마고. 그렇게 보이니 증명 끝.
"5. 목적론 논증 또는 설계 논증, 세계의 사물들, 특히 살아 있는 것들은 마치 설계된 듯이 보인다. 우리가 아는 것 중에 설계되지 않았으면서 설계된 듯이 보이는 것은 전혀 없다. 따라서 설계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며, 우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125쪽)
[ 제4장 ]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
1. 보잉 747과 고물 야적장
비개연성 improbability 논증은 설계 논증의 위장 형태로 신의 존재를 옹호하기 위한 이론으로 유신론자들의 환영을 받는다. 사람이 설계하고 만든 것들처럼 자연에 존재하는 무수한 생명들이 너무나 완벽하고 아름다워서,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고(비개연성), 신에 의해서 설계되고(설계 논증) 만들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수레에서 시작해 자동차로 발전하는 것을 보면, 점점 복잡해진다. 하나하나의 기술들이 더해져서. 진화는 그런 것이다. 단 한 번의 우연과 단 한 번의 노력으로 어떤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씩 진보해 나간다. 진화의 힘은 자연선택이다.
"비개연성 논증은 적절히만 전개되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의 입증해준다. (중략) 프레드 호일은 생명이 지구에 출현할 확률이 고물 야적장을 휩쓰는 태풍이 운 좋게 보잉 747을 조립해낼 확률과 별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중략) 자연선택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논증이다. 자연선택이 우연의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말이다. (중략) 다윈주의를 깊이 이해하면 설계가 우연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손쉬운 가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하며, 서서히 복잡성이 증가해가는 계단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73~176쪽)
2. 각성제로서의 자연선택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신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더글러스 애덤스는) 생명과 우주와 만물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다른(신이 아닌) 타당한 작업 모형을 구축하기에는 아는 것이 부족했어요. (중략 / 자연선택을) 접했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략) 나는 언제라도 무지의 경외심보다는 이해의 경외심을 택할 겁니다." (181쪽)
3.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4. 틈새 숭배
5. 인본 원리 : 행성편
6. 인본 원리 : 우주편
한쪽 편에서는 윤석열과 김건희를, 다른 편에서는 이재명과 조국을, 악마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도 살아 숨쉬는 똑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20년 전에 톰슨과 도킨스가 답을 내놓았다.
"톰슨에 따르면, 우리는 강도를 그림자로 착각하기보다는 그림자를 강도로 착각하는 성향이 더 강하다. 잘못된 긍정은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잘못된 부정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224쪽)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림자를 강도로 착각하는 반응은, 생명반응이다. 그림자를 강도로 만들어버리는 반응은, 거짓이다. 착각일까? 거짓일까?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강도를 그림자로 착각하지는 않는다.
"쪼들리거나 또는, 남들을 속이기 전에 자신을 속이는 엄청난 수고를 했다는 점에서, 거짓은 용서받을 수 있다." (239쪽 / '인간의 현상' 속 문장을 무일이 고쳐 쓴다)
7. 케임브리지의 막간극
이론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왜 기독교인일까? 그는 그냥 기독교인이다. 따지고 싶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조금만 따져보자. 성령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신이기 때문에 삼위가 하나의 신이다라는 은유는 받아들일 수 있다. 천지창조를 할 때,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느냐고 묻는다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복음서의 내용은, 좋은 말만 받아들인다. 과부를 돌보고, 잔치를 이어가게 술을 내주시는 등 세상에 필요한 일들을 하라는 복음서의 내용들은 좋다. 다만,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아기로 태어나셨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요셉의 족보를 한참이나 따지는, 이상한 첫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재미가 없었다. 신의 아들인데, 누구에게서 태어난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나는 삼위일체 교리나 복음서의 진실 여부에 별로 개의치 않는 많은 기독교인들 가운데 하나로 만족한다." (237쪽)
"나는 우주나 다른 무언가를 설계할 수 있는 신은 복잡하며, 통계학에 따르면 있을 법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238쪽)
도킨스가 이렇게 애를 쓰며 '신이 절대로 없다'고 논증하지 않아도 99%의 사람들은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신은 없지만,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생활을 가다듬고, 인간관계를 폭넓고 부드럽게 맺어가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부리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신을 믿는다. 따지고 들면 피곤하고, 어어 그래 그래 하고 수긍해주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이 자신에게 말을 한다고 주장한다면) 첫째, 신이 정말로 인간과 대화를 한다면, 그 사실 자체는 결코 과학의 바깥에 놓이는 것이 아니다. (중략) 인간의 뇌는 신의 메시지를 수신한다. (중략) 둘째,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를 보내고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동시에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 신은 절대 단순한 존재일 리가 없다. (중략) 신은 우리가 아는 가장 뛰어난 두뇌나 가장 뛰어난 컴퓨터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계획적으로 구축된 무언가여야 한다." (239~240쪽)
도킨스와 같이 나란히 서서 걸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도킨스만큼 잘 설명할 자신도 없지만, 종교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살았는데, 그 세상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주류에서 한참 벗어나서 살고 있는데, 더 벗어나야 하나? 아니면 제대로 벗어나보지 않아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일까? 종교를 주제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면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종교는 전쟁도 가난도 우울증에 의한 자살도 폭력이나 살인, 부패와 강도질도 막지 못했다. 앞으로는 막을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열린 자세로 종교를 대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종교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상황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공동체다. 그 안에는 생각과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배제와 폭력이 없다.
"당신은 예수가 처녀의 소생이라고 믿습니까? 같은 질문을 하다니 어떻게 그렇게 둔감하고 예의가 없단 말인가? (중략) 왜 무례한지 생각해보라. 그것은 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무례하다! 그러나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대답이다." (243쪽)
[ 제5장 ] 종교의 뿌리
1. 종교, 다윈주의를 비켜가다?
종교는 장례식을 치를 때 매우 유용하다. 슬픔을 함께 나누고, 고인을 추모하며, 힘든 일을 함께 한다. 게다가 장례 의식은 진지하고 엄숙하고 화려하다. 고인을 떠나 보내는 축제로써 종교 의식만큼 훌륭한 것은 없다. 종교 의식없이 멍하니 48시간을 보내는 것은 슬프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장례의식과 마찬가지로 휴식 시간을 종교의식으로 보내면 멋지다.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독서를 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고, 찬송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취미로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이 된다. 결혼식도, 우정을 나누는 것도 종교 의식과 함께라면 내용이 풍성해진다. 내 갈 길만 잊지 않고 중심을 잘 잡는다면 말이다.
"진화론자에게 종교 의식은 "햇빛이 드는 숲 속의 빈터에 앉아 있는 공작 수컷들처럼 돋보인다.(대니얼 데닛)". 종교와 관련된 행동은 개미 목욕이나 정자 짓기를 인간의 규모로 확대한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떄로는 풍조의 깃털만큼 화려하게 장식되기도 한다. (중략) 종교의 혜택은 과연 무엇일까?"
도킨스는 종교의 혜택이, 감기처럼 '확장된 표현형'인 다른 존재의 유전자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종교로 생존하는 사람들의 유전자는 특수하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고기를 먹지 않거나, (사이비의 경우) 잘못했다고 손을 싹싹빌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랜 시간동안 기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유전자를 보호해 주는 것이, 종교가 주는 혜택이다. 비록 내가 종교로 어떤 혜택을 입지는 않지만 말이다.
"데닛은, 일반 감기가 종교와 흡사한 양상으로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감기가 우리에게 혜택을 준다는 주장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다음 숙주로 옮겨가는 혜택을 얻기 위해 기생체가 동물을 조종하는 사례는 많이 알려져 있다." (251쪽)
한편으로 혜택을 입는 것은 종교 행위 자체일 수도 있다. 문화의 유전자인 밈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종교도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계속해서 진화하고 생존하고 있다.
2. 종교의 직접 이점들
신앙의 영역에서 믿음으로써 행복하면 될 일을, 근거를 들어 이치에 맞게 설명하다보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어떤 반응은 조롱이며 모욕인데, 포교하는 과정에서 모든 물음에 답하려고 무리할 경우에 불러오는 반발일 수 있으며, 속세의 모든 일을 신앙의 힘으로 강제하려고 하면 등장하게 되는 반항이다. 강제하지 말고 신앙의 영역에 머무르자.
"조지 버나드 쇼가 이렇게 말했다. '신자가 회의주의자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은, 술 취한 사람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과 별 다를 바 없다. (중략) 우리가 종교를 지닌 이유가 그것이 우리 조상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었기 때문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그 이론은 보조 설명은 되어도 주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종교는 커다란 현상이며 그것을 설명하려면 큰 이론이 필요하다." (254~6쪽)
도킨스는 글을 참 재미있고 어렵게 쓴다. 어렵게 써서 왠지 지학인 것처럼 나에게 받아들여진다. 내가 잘 또는 빨리 또는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으니까. 종교가 하위계급을 복종시키기 위한 도구로 발달했다는 정치에 의거한 생각도 다윈주의 지학자의 입장이 아니라고 잘라 말해버린다. 흥미가 확 당긴다.
"다윈주의의 궁극의 설명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신경과학자들이 뇌에서 신 중추 god centre를 찾아낸다면, 나와 같은 다윈주의 지학자들은 그것을 선호한 자연선택 압력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어할 것이다. 왜 신 중추를 성장시키는 유전 성향을 지닌 조상들이 그렇지 않은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후손을 가진 것일까?" (257쪽)
3. 집단 선택
전쟁의 신을 믿는 부족들이 점점 세력이 강해져서 같은 신을 섬기는 딸 부족들을 많이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이것도 엄밀한 의미에서의 집단 선택은 아니라고 한다. 전쟁의 신을 믿고, 전쟁에서 열심히 싸운 사람들이 커다란 혜택을 받게 될 수는 있어도, 그 부족 내의 배신자는 무임승차하여 생존하며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 배신자들이 늘어나면 결국 그 부족도 힘이 빠지고 도태되고 만다. 집단 선택이 가진 문제다.
4. 부산물로서의 종교
나방이 빛을 향해 달려드는 것은 자살행위가 아니라 태양빛이니 달빛이 비치는 곳에서 무언가를 포식하는 습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한다. 인간이 만든 빛이 없던 시대에서 새로운 빛의 시대로 변했다. 위험한 곳인데도 지금까지 진화한 사룸들이 이유없이 달라들 리는 없다. 분명히 진화 과정에서 얻은 어떤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빛에 타 죽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종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상상이 펼쳐진다. 아주 단순하다. 믿기에는 쉽고, 진리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볍다. 그럴 수도 있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도로 공감을 하는 것이 적당하다. 신을 보았으니 믿어도 좋다는 말보다는 훨씬 신뢰가 간다.
"다윈주의의 생존과 관련된 이유들 때문에, 아이의 뇌는 부모와, 부모가 믿으라고 말한 어른들을 믿어야 한다. 그로부터 자동으로 도출되는 한 가지 결과는, 아이가 좋은 조언과 나쁜 조언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 (269쪽)
5. 종교를 위한 심리 준비
종교는 이원론과 목적론 본능의 부산물이다. 사룸은 행동 결정을 통해 배가 부르거나 고플 수 있고, 살거나 죽을 수 있다. 경험이 축적되면 모든 행동을 이원론에 입각해서 분석하게 된다. 인간은, 대상을 바라볼 때, 대상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접근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인간은, 현실 세계가 어찌되었든, 이원론과 목적론의 본능을 갖고 태어났고, 종교는 그 본능의 부산물이라는 말이다.
"종교에서 진리는 그저 살아남은 견해를 지칭한다." (오스카 와일드 / 292쪽)
dk
(to be continued like reading a testa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