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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달 - 목성 - 금성과 함께 한 야간 행군_서해랑길 47코스_변산마실길_230302

야간 행군이라.

 

참호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달 - 목성 - 금성이 내리 비추는데, 추위에 떨며 모자를 두 개나 눌러 쓰고 쉼없이 발길을 옮긴다. 멀리 변산 소노벨의 불빛이 보인다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섰더니 무인텔이다. 그래도 8시 10분에 소노벨 앞 음식점에 도착했다. 조개구이 집은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했고, 삽겹살 집은 긴가민가 하더니 9시까지만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고기 600g과 계란찜, 소주 한 병, 공기밥 한 그릇을 먹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12시가 조금 못되어 짐을 싸들고 집을 나선다. 살짝 막혔지만 중간에 짜장면 한 그릇 사먹고 숙소에 도착했다. 잠깐 앉아 쉬다가 택시를 불러타고, 변산해수욕장 사랑의 낙조공원으로 갔다. 택시비 14,000원. 변산은 어디에서 택시를 불러도 온다. 태안과는 다르다. 마음 편히 걷다가 어느 곳에서건 택시를 부르면 된다. 4시 50분 도착. 서해랑길 47코스를 거꾸로 걸어서 변산 숙소까지 간다.  

 

 

바람이 불어서 날이 쌀쌀하다. 바닷가를 걸으니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모자를 썼는데도 추워서 마스크까지 걸치고 걷는다. 숲으로 들어가면 걷기에 딱 좋은 날씨가 된다. 바람은 나무를 감고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모양이다. 얼마나 바람이 거센지 해변 곳곳에 모래를 잡아두려고 가림막을 설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길로, 집으로, 마당으로 밭으로 모래바람이 되어 날아가 버린다. 인간은 험하게 자연을 짓밟고, 자연은 인간의 노력을 헛되이 만들며 제 갈길을 간다.

 

오랜 동안 병사들의 참호로 사용되다가 이제는 여행객들의 길이 되어버린 국립공원변산반도의 변산 마실길이다. 길 잊어버릴 염려 없이 참호를 따라 걷는다. 전쟁을 준비했기에 평화가 있는 것인지, 평화를 만들려 했기에 평화가 이루어진 것인지. 빈총을 들어 서해바다를 노려 보아도 모두가 친구들 뿐이다. 날카로운 바람조차도 참호를 넘지 못하여 옛 전우들의 땀흘리던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사실 그때도 전쟁을 위해 참호를 판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파라니까 팠다.

 

 

발걸음을 마구 서둘렀다. 7시면 해가 진다. 분명히 10km라고 했으니까 2시간 반이면 가능할 것이다.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다. 도착지는 아직도 멀었는데, 해가 지고 있다. 두 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속보로 걸었는데, 산을 넘고 모래 사막을 건너 왔는데, 눈 앞에 시커먼 산이 가로막혀 있다. 핸드폰 후레쉬를 켠다.

 

이대로 가다가는 쓰러지겠다. 바람이 죽은 숲길에 앉아 따뜻한 물과 과자를 나눠먹으며 잠시 쉬다가 달빛을 동무삼아 걷는다. 하늘 위에 환하게 빛나는 두 대의 비행기가 나란히 날아가고 있다. 아마도 인공위성이겠지. 틀렸다.

 

야트막한 산들이 계속 갈 길을 막아서지만 괜찮았던 것이 그리 높지 않았고, 바람을 막아주어 추위를 잊게 했다. 적당히 땀도 흘리게 해 준다. 달빛이 밝아서 후레쉬 한 대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멧돼지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별 일이 있겠는가. 사람이 무섭지, 사람 없는 것이 뭐가 무서운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3시간 20분만에 식당에 무사히 도착했다. 중간에 건너 뛴 적벽강은 내일 오기로 했다. 멋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