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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삼강주막을 거쳐 해운대로_230108 el ocho de enero el domingo_восемь январь Воскресенье

어제 삼양동을 거쳐 농원으로 아이들과 함께 내려왔다. 어머니가 잡채와 돼지갈비를 해 놓으셨고, 우리는 샤부샤부와 갑오징어, 물미역을 준비했다. 술을 자제하기로 해서 소맥 한 잔과 소주 두 잔으로 저녁을 먹고, 쇠와 장구를 치고, 아코디언을 켜며 놀았다. 어머니의 신청곡인 오래된 동요들도 함께. 영화도 보았다. 송혜교 주연의 글로리. 참으로 끔찍하다. 어머니는 보시지를 못하고 들어가신다. 영화가 갈수록 잔인해져 가고 있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다.

 

아침부터 어묵탕과 갑오징어-물미역을 데쳐서 개운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대봉연시도 하나씩 먹고 이동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들들이 꼼짝을 않는다. 음식물 찌꺼기를 밭에다 뿌리고 왔는데도 여전히 따뜻한 방에서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 사이에 그리미는 열심히 냉장고를 정리했다고 한다. 목표한 10시 반에서 한 시간을 넘겨 11시 반에 농원을 떠났다. 오늘 저녁에는 동생 식구들이 내려오기로 해서 마음 편하게 놀러 내려간다.

 

금왕 버스정류장에 아이들을 내려주고 국도를 타고 슬슬 내려간다. 첩첩산중에 뿌연 미세먼지가 끼어서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미세먼지도 한몫을 한다. 미세먼지가 그려내는 멋진 경관과 함께 삼강주막에 도착했다. 낙동강과 금천과 내성천이 만나는 곳에 소금을 비롯한 여러 물자들이 낙동강의 배들을 타고 교류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볼 것은 없지만 20분 산책하기에 딱 좋은 장소다. 한 봉지에 5천 원 하는 군밤을 사서 점심을 대신해 맛있게 먹었다.

 

들돌 : 들 수 있는 돌의 무게에 따라 품삯을 정했다고 한다 -

고속도로를 마구 달려서 5시가 못되어 호텔에 도착했다. 주상복합건물의 여러 오피스텔을 빌려서 호텔로 개조한 모양이다. 호텔 앞은 엘시티가 해운대 앞바다를 가리고 웅장하게 서 있다. 숙소에는 취사도구는 물론이고 세탁기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빨래까지 할 수 있었다. 놀러 와서 무슨 빨래? 더러운 옷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낫다.

 

샤워를 하고 쉬다가 6시가 못되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름이 좋다. 바다마루 전복죽. 깔끔하고 고소하고 전복이 듬뿍 들어갔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나간다. 이렇게 꾸준히 장사가 잘 되는 가게들이 많기를.

 

속이 편하려고 저녁을 죽으로 떼웠는데, 뭔가 허전하다. 고깃집들을 피해 다니며 산책을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감말랭이 봉투를 멀리하고, 술을 멀리하고, 과자를 멀리 했다. 그리고 책을 봤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과학과 현실을 거부한다고 하니 그것까지는 좋은데, 글을 가지고 노느라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모를 정도다. 천재는 김훈의 글솜씨가 감탄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그래도 이런 문장은 좋았다. 꽃잎은 바람이 데려가고 흙이 데려간다.

 

배가 고파서 일찍 자려고 했는데, 벌써 11시다. 아침에 누룽지를 먹으려다가 걸으려면 잘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밥 한 그릇을 씻어서 앉혀 두었다. 어머니가 담가주신 총각무가 맛이 좋아서 김 한 통 사다가 아침을 먹으려 한다. 여행 와서 무슨 밥이냐고? 여행도 삶이다. 밥을 해 먹어도 좋고, 사 먹어도 좋다. 여행이지 않은가?

 

19층 호텔 창문으로 올려다 본 엘시티 : 그대들의 높은 욕망 덕분에 내가 넓게 살 수 있으니,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