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다리를 절뚝이며 춘천역에서 백양리역까지_221107 el siete de noviembre el lunes_Семь ноябрь Понедельник

지난 4일(금)에 친구들이 내려와 내가 2주 동안 해야 할 일을 하루만에 해 주었다. 오늘 내가 춘천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이유다. 유상이의 망가진 몸을 회복시켜준 아름다운 길이란다. 친구를 살린 길이니 더 아름답지 않은가.

10.29 참사에 이어 지난밤에는 영등포역에서 기차 탈선 사고가 일어났다. 다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대구에서 KTX가 정상 출발했다고 한다. 유상이가 열심히 상황을 파악해서, 자유롭게 운신 가능한 우리 셋이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역곡에서 한참 여유 있게 전철을 탔는데도, 사고 소식을 받지 못하고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용산역에 9시 55분에 간신히 도착했다. '청춘'은 사전 통보도 없이 사고 여파로 15분이나 지연 출발을 한단다. 잘 올라오던 다구는 영등포역에서 한 시간째 발이 묶여있다.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청춘'에 올랐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분명히 선진국에서 살고 있던 우리가, 갑자기 후진국에 살고 있는 기분이다. 기분은 기분일 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가 선택했다. 서로 최선을 다한다고 믿자.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역사에 다시 등장한 고종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가슴을 열고 그 말에 담긴 진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정치를 하든, 그도 최선을 다한 것이라 믿자. 지지율 고공행진을 한 문재인 대통령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할 정도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쩌면 보수정권을 재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잘못은 없다, 우리가 선택할 뿐이다.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즐겁게 열심히.

춘천역은 한가로웠고 가을 풍경은 그림 같았다. 멀리 '김진태 사태'로 경영 위기에 처한 레고랜드를 바라보며 의암호를 걷는다. 다구가 12시 차를 탔다고 해서 우리는 남춘천까지 걸은 다음에 닭갈비로 점심을 먹었다.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고 남춘천역에서 다구와 만나 다시 의암호 길을 걷는다. 참 근사한 경치다. 남자들 또는 여자들끼리 몰려다니는 모습을 그리 유쾌하게 바라보지 않았는데, 30여 년 만에 내가 친구들과 함께 걸으니 기분이 좋다. 

 

화장실에 들르느라 카페에 가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잠시 쉬었다. 경춘선을 타고 이렇게 걸어 다닌 것은 대학 시절 이후 처음이라는 다구, 가평과 춘천을 놀이터로 삼았던 유상이, 자전거를 타거나 닭갈비를 먹으러 서너 번 온 적이 있는 나. 정말 많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었다.

 

1) 우리는 늘 존중 받으며 살아왔다. 우리보다 더 열심히 더 묵묵히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대접받지 못하고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우리가 받은 존중에 대한 보답이다. 

 

2) 수학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바꿔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성공의 기쁨'을 '스스로 성취한 경험'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수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고된 여행을 끝마치는 것과 같은 성취다. 우리가 은근과 끈기로 성공하는 삶을 살듯이, 아이들에게도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자. 할 수 있다.

 

3) 우리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 편견을 깨려면,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늙은 보수주의자가 되어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게 될 것이다. 원한다면 그렇게 살고, 올바른 생각을 갖고 살고 싶다면 태도를 바꿔야 한다. 자신을 무너뜨리는 고통을 감수하고.   

 

4) 이재명이 대선에 실패한 요인 중의 하나는 '억강부약'이라는 슬로건이었다. 우리를 두 가지 부류로 구분하면 "현재 강자"이거나 "앞으로 강자가 될 사람"이다. 강자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강자를 억압할 것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대통령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조강부약 助强扶弱"이라고 해야 했다. 강자는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고, 약자는 홀로 번영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후원해야 한다.

 

5) 즐겁게 살자. 시간은 우리를 가르칠 뿐이다.

     “시간은 위대한 교사이지만, 불행히도 제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걸었을 때' 중에서)

의암댐을 지나면서 자전거도 사람도 멋진 경치도 없다. 가지고 온 온갖 먹을 것을 나눠 먹으며 쉼 없이 길을 걸었다. 강촌역에 도착하니 발이 너무 아팠다. 지팡이가 없었다면 걷기 힘들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두 친구 모두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다. 기온도 적당해서 땀도 흐르지 않는다. 강촌역에서 저녁을 먹으며 쉬고 싶었는데, 길을 돌아야 하므로 백양리역까지 가자는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다시 1시간 반을 걸었다. 강촌 예인 카페에서 백양리역까지 가는 길은 흙길로 걷기에 좋았다. 해는 이미 저물어 캄캄해졌는데, 안심 가로등이 길을 은은하게 비춰준다. 멋진 길이다. 춘천역에서부터 34,000보를 걸었다. 11시 반부터 7시까지 걸었으니 휴식 시간을 포함해 7시간 반 만에 약 26km를 걸었다. 

 

백양리역 주변에는 식당이 전혀 없어서 전철을 타고 가평역(두 정거장)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가평 음식점 거리로 갔다.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소맥을 시원하게 한 잔씩 들이켰다. 삼각함수의 사인은 현의 길이, 탄젠트는 접선의 길이를 구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값이다. 처음 듣는 멋진 말이다. 꼭 확인해 봐야겠다. 다구는 언제나 이런 재미있는 정보를 전해준다.

 

8시 50분에 식당에서 나와 가평역까지 15분을 다시 걸었다. 다리를 절뚝이며. 왼쪽 무릎과 고관절의 근육이 땅긴다. '청춘'을 기다리며 다리를 주물렀다. 용산역에 10시 37분에 도착했고, 바로 앞에 동인천 특급이 있어서 계단도 건너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물론 승차 카드를 찍고. 역곡역에 내렸더니 55번이 기다리고 있다. 돌아오는 길이 힘들 줄 알았는데, 아주 시간이 잘 맞아떨어져서 편안하게 쉬면서 올 수 있었다. 11시 20분에 집에 도착했으니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상이 덕분에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정만이와 함께 팔공산을 가 보기로 약속했다.